대게의 학생들이 배우는, 배웠던 국사책 과 일반서점에서 파는 한국사 책들은 효종의 북벌론의 평가는 대략 이렇다. "현실과 동떨어지는 무모한 계획이였다." 등의 성공가능성 보다 실패가능성을 둔 예상들이다.
여기서부터 필자의 반론은 시작된다.
역사책에서는 효종이 국수적인 정책을 펴고 대외전략이나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효종이 군대를 양성할때만 하더래도 일본의 3단사격법이나, 명의 보병전술과 자체적인 화기제작, 왜검술과 명검술의 적극적 도입되어 삼국의 무예와 전술이 모두 종합되던 시기이며,
기존에 있던 구체적 진법을 설명한 척계광의 '기효신서'가 북방의 기병을 상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조선에맞추고 화약무기 의 추세를 따라 수정하여 '연병시기' 라는 독자적인 병법서(진법상세설명)가 저술되던시기이다.
조선의군대의 질적수준은 상당히 높았으며 더이상 병자호란 이전의 조선이 아닌 수준급 군대를 가진 위험국가였다.
만약 효종이 살아서 북벌론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면,
효종이 북벌을 계획한시기와 청나라 강희제 즉위때 '삼번의 난'의 연도가 재미있게 일하는 점이있다. 삼번의난은 강희제때 일어났으며 이반란은 반란군끼리 서로 싸우게하여 진압할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반란이였다.
이런 내란의 상황에서 효종이 북벌론을 게시하여 만주본토에 압박을 가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얼마나 끔찍한가? 또한 북벌의 예상등지는 만주땅이다. 중국본토도 유지하기 힘든데다가 만주 본토까지 빼앗기는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청나라 내에서 옜날의 명을 그리워 하는 친명세력인 삼번이 조선과 우호 관계를 맺은다고 가정하면 청이란 국가가 유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마도 효종이 죽지 않고 유지되었더라면, 중국은 더많은 내란으로 조선이 더 성장했을 지도모른다.
이건 농담이지만 혹시, 중화사상가가 후의 강한중국을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효종을 죽인것은 아닐까?
첫댓글북벌의 성공여부를 떠나 북벌자체가 그 당시 무너져 가던 양반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효종의 생각이 어떻했던지 북벌론은 사회내부의 갈등을 외부로 돌리기위한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어영청, 훈련도감을 통해 군대가 많이 강해졌지만..어영청을 제외하곤 아직도 일반 생필품도 배급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면 박서방은 바로 땅에 엎드려서 "죄...죄송합니다~나~리.." 이렇게되지요. 그러나 임난과 병자..정묘호란 후의 사회에서 박서방이 길을 것다가 동네 양반과 다시 부딛쳤을땐..박서방은 양반을 위아래로 훑으면서."아..에시" 하게 되고 양반은 "..엇..어 미안하네 " 이렇게 됩니다. 약간 풍자적이지만
실제로 이런 분위기 였습니다. 전쟁만 낮다하면 지조고 충성이고 강조하더 양반들이 먼저 짐싸고 나른 이유가 가장큰 이유지요. 이로인해 각지의 민심은..화약고처럼 누가 불씨하나만 제대로 던져주면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솔직히 양반사회는 이미 이때부터 무너지기..아니 이미 무너졋다고 보는게 옳습니다.
또한 조선은 더 이상 언어적, 문화적으로 여진족을 침공, 지배할 계연성이 없어졌으며 결국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점령지의 확보, 유지가 극히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인구, 경제력이 그러한 대규모의 전쟁을 뒷밧침 할 수 있을정도로 성장하진 못했다 봅니다. 결국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군요
그 이전의 북벌론들과 비교하면 가장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양난을 겪은 후 회복이 안된 조선의 경제력으로 재정이 뒷받침이 안되고, 강희제 때의 삼번의 난은 강희제 스스로가 주동적인 입장에서 계획했으며 반란세력들을 서로가 견제하게 하여 진압한 후, 청나라의 지배를 공고히 만든 사건입니다.
첫댓글 북벌의 성공여부를 떠나 북벌자체가 그 당시 무너져 가던 양반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효종의 생각이 어떻했던지 북벌론은 사회내부의 갈등을 외부로 돌리기위한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어영청, 훈련도감을 통해 군대가 많이 강해졌지만..어영청을 제외하곤 아직도 일반 생필품도 배급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전쟁준비도 잘되지 않은걸로 압니다. 그리고 만약 북벌이 진행됬다면..좀 과장해서 현재의 조선이 남아 있을지 의문입니다.
강희제는 희대의 명군입니다. 제가 보기엔 회의적이네요. 다크킬러님 말에 어느정도 수긍합니다. 게다가 만주벌판에서 팔기를 제압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네요.
전 가능하다고 봅니다.. 효종이 나선정벌로 통해 얻은 자신감도 있엇겠고, 삼번의 난도 겹쳤었고.. 전 북벌론이 양반사회를 유지 한 수단이라고 보고 싶진 않네요. 서인정권이 북벌을 이용했다고 하지만, 실은 그 북벌을 결사 반대한것도 서인들이니까요..
북벌을 시도하게되면 조선의 상태가보이니까 서인들이 반대한것은 아닐까요? 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미 여러 난을 통해 양반의 위신은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가지 재밋는 예를 들자면..임난전 조선에서 길가던 박서방이 동네 양반과 잘못해서 부딧칩니다.
그러면 박서방은 바로 땅에 엎드려서 "죄...죄송합니다~나~리.." 이렇게되지요. 그러나 임난과 병자..정묘호란 후의 사회에서 박서방이 길을 것다가 동네 양반과 다시 부딛쳤을땐..박서방은 양반을 위아래로 훑으면서."아..에시" 하게 되고 양반은 "..엇..어 미안하네 " 이렇게 됩니다. 약간 풍자적이지만
실제로 이런 분위기 였습니다. 전쟁만 낮다하면 지조고 충성이고 강조하더 양반들이 먼저 짐싸고 나른 이유가 가장큰 이유지요. 이로인해 각지의 민심은..화약고처럼 누가 불씨하나만 제대로 던져주면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솔직히 양반사회는 이미 이때부터 무너지기..아니 이미 무너졋다고 보는게 옳습니다.
또 리플 길어지는데..ㅡㅡ 간단히 축약하자면 그런 민심을 외부의 적에게 돌림으로서 과거 도요토미히데요시가 그랬던 것처럼 ..북벌이라는것을 던져주고 양반체계를 유지하려고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만약 만약 전쟁이 발발했어도
만주팔기라는 당대 최강의 군대가 있는이상..어영청과 훈련도감(나머지 군사는 솔직히 군이라 부르기 괜히 죄송합니다.) 만으론 커버가 불가능합니다. 쉽게 이해하시려면 소설 '신쥬신건국사'읽어보십시오. 물론 추려서 읽어야 합니다 ㅡ.ㅡ
저도 다크킬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솔직히 아무리 중국이 그당시 망하기 직전의 나라였지만 동쪽의 작은나라(중국의 입장에서요)에게 까지 전쟁에서 당할정도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죠 그리고 물론 조선의 군대의 질이 높긴했지만, 수적으로 군수물품으로 너무나 부족했던게 사실이고
설령 중국을 공격했더라도 방어가 매우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아님 스타의 용어인 빈집털이를 당할위험이 더 클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선정벌은...솔직히 말하면 피크닉 수준이었습니다. 정말 군사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쓸 수 있을진 미지수이며 청국의 잠재 전력이 조선의 그것보다 크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조선은 더 이상 언어적, 문화적으로 여진족을 침공, 지배할 계연성이 없어졌으며 결국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점령지의 확보, 유지가 극히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당시 조선의 인구, 경제력이 그러한 대규모의 전쟁을 뒷밧침 할 수 있을정도로 성장하진 못했다 봅니다. 결국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군요
북벌이라.... 솔직히 임난을 기준으로 이나라가 강대국이라는 느낌이 싹사라졌죠... 조선군이 만주를 침공하는건 일시적인 마비현상이 아닐까요.. 중국내에서 한족들이 얼마나 더 들고일어나는가에 따라 성공할수도 실패할수 있을거같네요;
그 이전의 북벌론들과 비교하면 가장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양난을 겪은 후 회복이 안된 조선의 경제력으로 재정이 뒷받침이 안되고, 강희제 때의 삼번의 난은 강희제 스스로가 주동적인 입장에서 계획했으며 반란세력들을 서로가 견제하게 하여 진압한 후, 청나라의 지배를 공고히 만든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런종류의 논의는 일주일에 한 개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논의가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직 여파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너무 무리하신 듯 합니다. 솔직히 어제 이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 좀 과장해서 경악했다는...^^;;
쩝 재미있는 소재를 찾다가 그만 ㅡㅡ;;
강희제 대단한 놈입니다. 녹정기(?)를 보면 15살에 오배를 주살할정도로 똑똑한 놈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중학생에 불과한 어린놈이..... 권력을 탈취한 놈이죠. 효종보다 한수위라 생각됩니다.
여러가지 정황상 북벌의 실현 불가능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