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에 잘 다녀왔습니다.
무너미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구요, 부산이 교육부를 맡았다는 소식을 다들 기다렸는지 무려 사십여명 선생님들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왔습니다.
아직도 조금은 핼쓱한 얼굴의 숙미쌤과 카스테라 회장님, 구자행 선생님, 봄에 돋는 풀 혜숙 선생님, 그리고 장총무가 함께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회덮밥을 먹자는 둥 여러 고민을 하다가는 결국 부산역 앞에서 충무김밥과 냄비우동으로 출출한 배를 잠재웠습니다.
구자행 선생님은 구포에서 잘 미끄러지셨는지요.
구자행 선생님께서 이번 주에 모여서 술이나 한 잔 마시자고 했는데, 그때 아쉬운 맘을 달래야겠습니다.
저는 공부방에는 두번째 걸음인데, 아직도 사람들 등 뒤에 서 있는 기분이 듭니다.
윤태규 선생님과 서정오 선생님을 직접 뵈니, 괜시리 들떴습니다. 공부방에 오신 분들도 다들 그리했는지 한 시간 예정이던 강의가 두 시간으로 길어져도 지리한 줄 모르고 재미나게 들었답니다. 윤태규 선생님의 평생경영록 이야기와 매해 교실에 붙여두신다는 '교실은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곳'이란 문구는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하여 데레사 선생님과 얼른 적어두었습니다. 선생님 말대로 아이들과 평생계약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였구요.
서정오 선생님 시간에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귀신이야기며, 손잘린 의붓딸 이야기며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이번 공부방에는 보리출판사의 새내기 식구들과 사장님이 오셔서 같이 공부도 하고 뒤풀이도 함께 했습니다.
이번 뒤풀이에서는 우리 카스테라 회장님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여지껏 보이지 않았던 그 전설의 '닐리리 맘보' 수건 버전을 선보여서 사람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등떠미셨답니다. 저는 웃다가 박수치다가 쓰러져서 상밑에 깔릴 뻔 했습니다. 보리식구들 중에서 걸쭉한 소리꾼들이 있고, 글쓰기 식구들도 멋진 곡조로 화답하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우리 혜숙 선생님은 편집부 일은 하나도 안하고(처음이라고 강조하셨어요.) 나쁜 피 조직에 들어가고, 또 소주를 거덜내고, 노래도 여러 곡조 하셨어요. 은영 선생님과 노래를 부르며 손을 솟구쳤다가 내리면서 추는 춤이 기억이 나네요.
여섯 시에 마지막으로 시간을 본 것 같은데, 한 시간 자고 일어나니 밥 먹으러 가자고 합디다. 그래서 숙미선생님과 데레사 선생님이 슬슬 걸어가자고 길을 나섰는데, 무너미 올라가는 길 중간에 있는 동상집에서 쉬자고 하셔서 얼결에 따라갔다가 밥도 얻어먹고 왔습니다.
회보 공부할 때는 혼수상태에 빠져서 부끄러워서 구자행 선생님을 못 쳐다 보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했던 손꼬집기, 볼펜으로 손찌르기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런 자학적인 행동도 소용이 없다면 그냥 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나가서 자다가 들어왔습니다.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하나 둘씩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헤어짐이 참으로 길어서 결국에는 차를 놓친 사람들은 조금더 만남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구자행 선생님은 상석쌤 대신이라며 황시백 선생님과 작별인사를 하였는데, 차마 나어린 제 입으로 말하지 못하겠으니, 다들 분들이 소상히 알려 주세요...
저희들은 여유있게 나서서 황금성 선생님 차에서 노래를 소리높여 부르면서 역까지 도착했습니다. 이은영 선생님이 교원대 대학원을 가셔서 중간에 내리셨는데, 사람들이 빈자리를 서운해 했습니다. 은영 선생님이 논 길 가운데 크게 솟은 아파트가 우리 집이라며 '아무리 내가 저기 살지만 저게 뭐냐'고 손가락질을 해서 우리도 어디어디 하면서 손가락질 하면서 보았습니다.
무너미로 갈 때에는 이야기도 하고, 회보공부도 하면서 와서 금새 왔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지리하게 길었습니다. 데레사 선생님이 집 앞에 떨궈 주셨는데,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아서 피시방에서 이렇게 보고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 6시, 성지문화원에서 모임 있는 거 아시죠?
아이들 글을 꼭 가지고 오기로 해요...
복사를 넉넉히 해오시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