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1부 모가지가 없다. 7회
등에서 갈비로 잘라 각을떳다. 앞다리와 뒷다리로 나눠 4등분하여 아버지는 앞다리를 지고 어머니는 뒷다리를 이고서 집으로 오는 길이다. 연이는 두 사람이 산 짐승을 잡아 오는 것이라 여겼다. 여자가 허겁지겁 먹어댄 고기 때문에 입안에서 나는 누린 내 때문인지 고기를 보자 헛구역이 나려는 것을 배고픈 사람들을 생각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부모를 만난 반가움에 자식이 굶어 죽은 것도 서방이 매질을 하고 학대를 하며 몹쓸 짓을 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은 것도 까맣게 잊은 채 그저 반가움에 번들번들한 입가 기름을 닦으며 아버지에게로 뛰었다.
여자의 아버지가 등에 진, 고기를 내려놓고 딸을 앉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가타고 안쓰러우면서도 먹을 것 하나 입에 넣어주질 못할 형편에 둘러보지도 못하였던 그 자식이 아니던가. 어미도 운다. 아비를 부둥켜 앉은 딸년의 등짝을 쓸어내리며 ‘이년아...... 이 썩을년아.... 어뜨케 살았냐. 어뜨케 왔냐.’ 먹을 게 입에 들어가니 부모도 뵈고 자식도 뵌다. 꼭 여자가 그랬다. 먹을 걸 찾아 친정으로 나설 때야 걷지 못할 자식은 버리고 제 발로 걸을 자식들은 따라 나서게 하지 않았던가.
“어무이 잘 지셋재?”
“이, 그려.......... 너도 잘 있썼재?”
“말도 마러. 사는 거시 사는 거시 아니여.”
“악!”
마당에서 고기를 뜯던 여자의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입안에 있던 고기를 파내고 구역질을 하였다. 무섬증이 확 돋은 연이, 길가에 머리 없는 귀신들이 달려드는 것 같은 그 두려움이 찬물을 끼얹는 듯 전신에 식은땀이 흐른다. 입안에 있던 고기를 파내고 고래고래 악을 써 대던 아이, 거품을 물고 발광을 하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선으로 아이 뒤를 쫓다가 여자의 부모님이 가지고 온 고깃덩이에 눈이 멎었다. 내장을 들어내고 앞다리에 각을 뜬 고깃덩어리에 달린 다리에 손가락 다섯 개가 달려있었다. 심장이 멎는다. 목이 조여 오고 모가지 없는 귀신들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우~ 우~ 우-웩~!”
연이는 자신도 모르게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토악질을 해댔다. 뭔가를 붙들고 토하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둠이 내린 산, 남원시내의 야경이 희미하고 안개인지 구름인지는 선명하게 걷혔는데 비에 젖은 세상은 습하고 눅지다.
연이가 토악질을 멈추고 붙들었던 그것을 의지하고 일어서는데 여자가 칼로 베인 가슴을 감추고 거기 서 있었다.
“악~!”
연이가 뒤로 넘어지며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고일령이 잠에서 깨 달려왔다.
“연이야...........”
“그 여자............, 그 여자!”
“무슨 여자.”
“꿈에서 본 그 여자.”
“정신 차려. 저건 여자가 아니라 돌부처 상이야. 돌부처 상.”
고일령이 연이를 흔들었다. 연이의 고개가 흔들리면서 하늘이 흔들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숲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렸다. 그리고 고일령의 얼굴이 보이고 고일령 뒤로 돌부처 상이 있었다.
“꿈을 꿨어. 저 돌부처 상의 꿈을..........”
고일령이 안타까움에 연이를 안았다. 연이가 어떤 꿈을 어떻게 꾸었는지 모르지만 땀에 젖어 오돌 오돌 떠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고 먹먹하였다. 둘은 안개로 갇혔던 고개를 넘어 남원시내로 나왔다. 고립무원에서 탈출 한 것 같은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헛것이 보이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도시 문명에 길들여진 습성 탓인지 모르지만 환한 불빛이 있고 높은 건물이 있는 도시로 나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환희였고 의욕이고 쾌감이었다.
운봉과 달리 남원에서는 숙박을 하는데 아무런 거부 반응이 없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 앞에 서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연이도 고일령도 처음 깨달았다.
고일령이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pc방을 들렸다. 연이도 고일령 옆자리에 앉아 남원서 운봉으로 넘어오는 24번국도의 고갯길을 검색했다.
여원재(女院峙)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 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으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연이는 자신이 꾼 꿈이 단순한 악몽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대로 여원재에 여관이나 주막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있었고 고려 시대에는 왜구가 빈번히 출몰 하였다는 것과 가슴을 베어내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도 꿈의 내용과 같았다. 목 없는 귀신들도 그렇고 여인의 꿈도 그렇고 연이는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맥주나 한잔 하고 들어갈래?”
“아니, 오늘은 너무 피곤해. 그냥 잘래.”
고일령이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연이의 방문을 열어줬다. 연이가 엷게 웃어 보이고 방으로 들어가 달-칵 문 잠기는 소리가 고일령의 가슴에 메아리쳤다.
‘연이야, 넌, 반드시 날 사랑하게 될 거다.’
문에 기대 선 연이가 고일령이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에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드는 연이 눈에 눈물이 주루륵 흘렀다. 지금에 이르러 정조관념이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남편을 위해 처녀를 지키려는 여자는 더더욱 없을 것이며 연이 또한 그런 여자가 아니다. 더더욱 연이는 처녀도 아니다. 대학 MT때 선배에게 이미 처녀를 잃었으며 일 년에 한 두 번은 어떤 식으로든 남자와 잠자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고일령하고는 그게 안 된다. 지극한 관심과 도움을 주는 선배, 정을 주지 못하면 몸이라도 줘야 할 만큼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도 은근한 고일령의 접근이 느껴지면 연이는 자신도 모르게 담을 쌓고 몸은 차가워진다.
다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둥근 형광등이 달린 천정에 꿈속에서 보았던 여자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연이가 생각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침대에 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연이의 나신이 비쳤다. 175cm 53kg B컵을 하는 적당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수태를 하지 않은 자궁을 담은 배는 미끈하게 뻗어 있었고 시커먼 거웃이 무성한 삼각주가 있었다.
“니 몸은 왜 이렇게 차갑니. 여자로서 문제가 있는 거 아냐?”
연이가 화장대 모서리에 양손을 받히고 거울을 보는데 연이의 얼굴이 자꾸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흔들고 거울 봐도 눈을 감아도 거울 속 여자가 보였다.
‘왜 무서움이 들지 않을까? 이 여자는 왜 무섭지 않지?’
거울 속 여자가 운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서럽고 서럽게 우는데 연이도 그만 슬퍼서 눈물이 났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다가 입을 벌려 엉 엉 거리며 울다가 기슴을 치고 여자처럼 쥐어뜯었다.
“어머이, 내가 무근거시 머다요? 사람 괴기다요? 나가 사람을 무것다요? 사람을............”
“사람 이믄 어뗘. 죽는 것 보다 낫재. 고려 놈이고 왜적 놈이고 어디 우리를 사람 취급 허간디. 우리 무글 것일랑은 생각이나 허간디. 즈그끼리 싸우다가 죽어가는 놈 괴기 좀 무것거니로서니 머시가 어쩌간디.”
웅그리고 얼굴이 엉그름진 아비가 끙 내뱉은 소리는, 인육을 먹는 금수의 포효가 아니다. 오죽하면 사람고기를 먹겠느냐는 아비요 남편인 남자의 절규 같은 것이다. 어쩌면 여자가 어렸을 적 먹었던 맛나던 고기 역시 인육인지 모를 일이다.
“어무이 먼 고기가 요로캐 맛나대?”
“이, 느그 아부자가 나무허로 갔다가 퇴깽이를 안잡았냐. 잔소리 씨부래들 말고 언능언능 무거라. 옆집 박샌 또 괴기냄새 맞고 차자온디 후딱 무거 치워브래라이......”
환하게 웃으며 고기를 입에 넣어 주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이 구름처럼 흐르는데 여자는 힘없이 친정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는데 부모님 아무도 여자를 붙잡지 않는 것은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부끄러움 때문, 터벅터벅 걷던 여자가 뛴다. 아니 빙글 빙글 세상이 도는 것이 어지럼증이 핑 한 것이 구역질에 토악질이 계속 되는 것이 머리카락을 태우듯 노린내 누린내 진동 하는 것이 딱 죽었으면 싶다가도 사람고기에 놀라 뛰쳐나간 자식 놈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조급하다. 여자가 애타게 불러도 아이는 없다. 암만 세상을 되잡아도, 목이 터지게 불러도 없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집을 찾았다. 입과 코에 피를 토하고 죽은 사내의 주둥이로 쥐가 들락거리고 눈깔과 콧잔등은 뜯겨먹어 형상을 알 수도 없는데 여자는 무섬증도 없이 방안을 휘둘러본다. 아이들, 아이들! 아이들 시체가 없다. 산짐승이 물고 갔는지 여자의 아비 같은 인간들이 지게에 지고 갔는지 아이들 몸뚱아리가 보이질 않는다.
미쳐버린 여자, 눈에 불을 키고 울부짖어 아이들 이름을 부른다. 억~ 어~! 엉~ 엉! 짐승처럼 울며불며 불러대는 아이의 이름을 연이는 들을 수 없었다. 연이도 아이의 으름들을 함께 불러 찾아보고 싶었지만 이름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함께 부를 수 없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달이 지고 해가 뜨고 또 해가 지고 달이 뜨도록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여자.......
희미한 달빛 아래 아이를 찾아 헤매는 여자, 그 여자를 가로막은 일단의 그림자 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