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신 정 규 1955년 국무회의에서 어머니들의 헌신과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어머니날을 제정하였고 1956년 5월8일 이땅의 어머니들께 기념비적인 어머니날이 공식 출범하였다. 그후 아버지와 어른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고자 1973년 5월8일 어버이날이라고 바뀌었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어머님 가슴에 빨간 꽃을 달아드리며 지난 일년동안의 은혜를 다 갚았다고 생각했던 철부지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른 새벽 스스로 카네이션을 달았다. 아직 한번도 달아보지 못하였던 카네이션이라서 그런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 이젠 달아도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새빨간 카네이션의 화려한 빛이 형광등 조명 아래서 더욱 빛나는 것 같아 너무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있었다. 어서 오세요 하며 당당히 손님을 반겼더니 새벽시간에 카네이션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나의 모습이 생경스러웠나보다 오십을 갓 넘겼을 중년의 사내가 멋쩍은 듯 물어본다. “어르신 카네이션 일직 달으셨네요” “하하 아예 스스로 달았답니다. 아들 녀석 둘 다 장가를 보내고 나니 이제야 부모노릇 다한 것 같고, 또 안 달고 있으면 자식들 욕보이는 것 같고 하여 셀프디스 하였답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장황한 설명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한 본인도 자극이 왔는지 어머님을 위해 오래간만에 카네이션을 사야겠다고 하며 마음에 드는 꽃바구니 하나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혼자 슬며시 웃으면서 카네이션 달아서 기분 좋고 어버이날임을 홍보함으로서 한사람의 효자를 만든 것 같아 또한 신바람이 났다
나는 젊은 시절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린 적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하교 후 집에 돌아오니 내 방 한가운데 작은 책상하나와 교과서 그리고 이불 한 채 덩그러니 남겨두고 먼 타지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갔던 것이다. 그리고 19살 어린 나이일 때 아버님은 오랜 지병을 이기지 못하시고 일직 돌아가셨다. 그 후 혼자서 타지를 떠돌며 나를 위한 삶의 시간을 가졌었고 이후 29살 되던 그해 3월 결혼식 마치고 한 달 후에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던 것이다. 첫 번째 어버이 날 부터 카네이션을 멀리 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삶이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들이 학교에서 만들어 온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지 못하고 그냥 기쁜 마음으로 보관만하고 눈 호강만 했었다. 아들 둘의 마음 씀씀이는 그리 다정스럽지 못하여 한 번도 카네이션 꽃을 달아보지 못하고 지나왔던 것이다. 4년전 작은 아들의 혼사를 5월 5일 날 마치고 바로 맞이한 어버이날도 신혼여행을 떠난 아들부부로 부터 어버이날 카톡으로 울려 퍼지는 축하메시지와 사진으로 카네이션을 대신하는 황당한 그런 날이었던 것이다. 다음해부터 화분과 카네이션을 받았지만 큰아들이 짝을 찾지 못하여 어버이날이 항상 기울어진 것 같은 아픔이 있었기에 그냥 식탁의 장식으로만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지난 3월 큰아들이 가정을 이루었다. 그 무엇보다도 기쁜 일 이었기에 나의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였다. 첫 번째 맞는 어버이날이 돌아오고 멀리서 꽃바구니가 전달되었다. 두 개의 꽃바구니를 받고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이제부터는 꽃바구니가 걱정이다. 교통정리를 잘하여 하나의 꽃바구니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봉투로 달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지난 4월 마지막 주에 장인어른을 양로원에 모시고 돌아서는 걸음 눈물방울 되어 하나 둘 어른의 삶이 지워져 갔다. 이렇게 기억 속에서 지워지시겠지 하는 마음에 가슴이 너무도 아린다. 사위 자식도 자식인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반성이 된다. 눈앞의 내 가정만 생각했지 멀리 떨어져 계신 장인장모님께는 어떻게 하였는지 반성이 된다. 그동안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던 어버이날이다. 돌이켜보니 정말 크나큰 죄를 지었다는 자괴감이 든다. 후회하기에는 너무도 늦었지만 크게 반성을 한다. 얼마 남지 않은 두 분의 여생에 조금이나마 아름다운 삶과 추억을 만들어 드리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카네이션의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무언가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하다가 이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아이들에게 부담되는 삶 보다는 더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타한다. 우리의 삶은 부모를 받들어 모시는 삶이었는데 시대가 바뀌어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로 어른 봉양과 경로효친의 미덕은 사라지고 점점 우리의 자리는 자식의 부담이 되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고들 이야기 한다. 슬프지만 현실이 아닌 가 예전에는 부모님 속 썩이는 자식이었는데 이제는 그 부모의 자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식 속 썩이지 않고 잘 사는 노년을 맞이하고 깨끗하게 삶을 정리해야 되겠다는 걱정을 하고 살아야하는 부모가 되어버렸다.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카네이션의 의미와 부모와 자식의 역할에 대하여 반성과 각오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