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골리앗을 제압한 당대 최고의 영웅입니다.(삼상17:50) 다윗은 왕의 아들 요나단이 여인보다 더 사랑했던 벗입니다.(삼하1:26) 다윗은 왕의 사위입니다.(삼상18:27) 왕의 사위 다윗이, 왕자의 벗 다윗이, 왕국의 영웅 다윗이 도망자가 되었습니다.(삼상22:1) 다윗이 사울 왕에게서 도망쳐 난민이 되었습니다. 시기와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기 때문입니다.(삼상18:11) 시142편은 난민이 되어 굴로 도망친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굴에서 옥에 갇힌 듯 살고 있습니다.(시142:7) 감옥 같은 굴에서 다윗은 기도합니다. 소리 내어 기도합니다.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시142:1)
다윗은 역전의 용사입니다.(삼상18:5~7) 난민 신세가 되어서도 블레셋의 침입을 받은 사람들을 지켜주기도 했습니다.(삼상23:5) 마음만 먹으면 사울 왕을 권좌에서 끌어낼 수 있었겠고, 실제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삼상24:4) 그러나 다윗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며 원통함과 우환을 하나님께 아룁니다.(시142:2) 속상한 것을 하나님께 말합니다.(시142:3) 자신을 죽이려는 자에게 등을 보인 채, 그저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민은 다윗을 쫓는 사울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윗을 좇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쫓아오는 사람은 피하면 되지만, 좇아오는 사람은 피할 수도 없습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삼상22:2) 다윗을 따르는 사람은 다윗에게 기대하는 게 있는 겁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윗에겐 관심이 없습니다. 다윗을 아는 자도 없고 다윗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도 없습니다.(시142:4) 사백 동지가 있지만, 다윗은 외롭습니다.
최고 권력자에게 쫓기는 괴로움,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르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껴안고 다윗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며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시142:5) 다윗을 따르는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는 모두 땅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사울의 왕국에서는 땅이 없어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워 땅을 되찾고자 합니다. 다윗은 사울도 두렵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어쩌면 다윗이 왕이 된다 해도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땅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전에는 사울이 다윗을 향해 창을 던졌지만(삼상18:11), 후에는 추종자들이 다윗의 심장에 활을 쏠지 모릅니다.
땅을 재분배하자면 부득이 지주들을 죽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삼하3:20)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창9:11) 다윗의 신정(神政)으로는 추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어렵습니다.(삼하3:24)
오직 다윗이 나누어 줄 수 있는 확실한 땅은, 하늘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시142:5) 하나님 아버지가 분깃분배받은 토지입니다. 오직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만이 확실한 땅입니다.(마6:9) 하나님 아버지를 분깃 삼는다는 것은 피조 세계의 일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통째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분깃 삼는다는 것은 악한 사람의 부당한 재산을 환수하지 않고도, 작은 나눔을 통해 배부르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눅9:13~17) 하나님 아버지를 분깃 삼는다는 것은 피조 세계의 일부에 나를 매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게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분깃 삼는다는 것은 주택담보대출 상환 비율이 낮아도, 엔저현상의 지속에도, 투기성 자본의 횡포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경제 원리가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분깃 삼아, 하늘을 영토로 삼을 때, 다윗은 개국공신들에게 하늘을 땅으로 분배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아버지를 분깃 삼은 것처럼,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가 하나님을 분깃 삼을 것입니다. 다윗을 알고 다윗의 영혼을 돌보는 진정한 동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분깃 삼아 하늘을 토지 삼을 때, 사람을 얻습니다.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시142:7) 골리앗을 제압하는 용사보다, 골리앗을 제압할 수 있는 용사들의 충성을 받는 사람이 훨씬 빛나는 사람입니다.(삼하23:8~39)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진실로 계산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통째로 소유하고, 사람을 얻습니다.
첫댓글 아멘
목사님. 종종 들러 은혜받고 갑니다. 헌데 세번째 문단 "쫓아오는 사람은 피하면 되지만, 좇아오는 사람은 피할 수도 없습니다."가 이해가 잘 안되서요. 목사님 설명이 듣고파 댓글 남겨요^_^*
-김연기 드림-
약한 고리를 들켰네요 ^*^ 다윗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요. 다만 4절의 한탄과 7절의 찬송을 통해 유추할 순 있겠습니다.
다윗이 성취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과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겠지요. 예수님의 뜻과 예수님 제자들의 이해관계가 달랐던 것처럼요.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기도하고 싶지만, 무리는 예수님을 좇아오는 상황이 복음서에 있듯, 다윗에게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인한 딜레마가 있었겠습니다. 아둘람 굴에 있었던 사람들 중엔 영웅도 있지만(삼하23:13), 그를 따르는 영웅들의 욕구를 다 해결해 줄 수 없는 다윗의 고민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아, 문학적 표현이었네요. 저는 단순히, 이 문장의 앞절과 뒷절이 모순절이어서, "쫓아오는 사람"을 피하면 되지만, 피할 수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감정이입을 하니 무슨 의미인지 알겠네요.^^
말씀을 통해, 저도 늘 하늘의 신령한 복을 쫓는 사람이 되길 결심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