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연꽃
김영자
날마다 어둠을 뚫는 그녀를 말리느라
홀어머니 방패 같은 손등은 상처투성이다
이웃집 처녀들 분홍빛 브라우스를 입고
푸른 들판을 나폴거릴 때
그녀 홀로 깊은 늪 속에서 외친다
엄마 집을 벗어나고 싶어요
그럴수록 뿌리는 진흙탕에 점점 더 깊이 박히고
아무도 그녀를 꺼내주지 않는다
아이 징그러워 온 몸이 쭈글쭈글 하네
수런대는 사람 소리에 움찔 놀라는 어머니
음지에서 자라는 딸에게 부지런히 갑옷을 껴입힌다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내 보이면 안된다
온 몸으로 가시를 세워야 해
싫어요 정말 싫어요
습기 찬 집구석만 벗어나면
햇빛 찬란한 곳으로 나갈 수 있어요
여름 내내 어머니의 생살을 뚫고
보랏빛 드레스 화사하게
세상 밖으로 튀어 나오는 그녀
7080 뮤직박스
김영자
그때 음악들이 나를 꼭꼭 골방에 가두어 놓았지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스모키로 비틀즈로 잠궈 놓았지
온 몸을 배배 꼬고 고개를 흔들게 했지
단발머리를 고래고래 불러재꼈어
뮤즈박스 속의 나에게 환호성을 질러대던
삼삼한 그녀들을 잊을 수가 없지 그 시절
째지라 온 몸이 짜릿해 지는 걸 나도 어쩔 수가 없었지
세기말을 넘겨서도 박스 안에서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어
달콤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심장을 두들겨대던 목소리들
동굴 속에서 혼미하게 소리질러대는
나를 혼자 둘 수가 없는 거야
간혹 시계 속에 모래가 남아서
고양이 같이 스며드는 모래알들에게 나는 미친 듯이 노래를 불러주지
이 골방은 늙지 않으려는 자들의 천국이지
그대도 나와 함께 생활하지 않겠나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하루 종일 함께
온 몸을 흔들어 대는 거야
단발머리 그년들이 또 깍깍 소리를 질러대네
늙은 몸 이건 비밀인데 귀 좀 대보게
시끄러운 소리 스모키가 주름살들을 늘어트리네
이 골방은 7080 젊음이 박제된 영혼의 성이라네
철쭉꽃 바다에 뛰어들다
김영자
산등성이를 타고 초록이 녹아내린다
발이 미끄러지고 출렁 흔들리는 아랫도리,
진분홍 꽃빛 번진다 향기가 아득하게 닿는 곳
오월이 들어서는 능선 길 따라
푸르게 번졌다가 선홍빛으로 질주해 오는 물결
위에 떠다니는 그녀 몸이 꽃바람에 열린다
그대는 야생의 작은 짐승같이
꼭꼭 숨었다가 햇살을 따라 순록을 깔아놓고
산 밑까지 내달린다
때로는 바람에 밀봉되어 향기가 코끝을 스치어도
그대는 묵묵부답이다
떠다니는 구름들이 자꾸 꽃대를 흔들자
그대는 어느새 산 위로 숨차게 뛰어 올라와
온통 불덩이로 달구어지는 몸
어쩔 줄 모르다가 온 천지 산등성이에
뒤엉키고 있다
첫댓글 잘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