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님믈 그리자와 우니다니 산접동새 난 이슷하요이다.
아니시며 그츠르신 달 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르시리이다.
넉시라도 님은 한데 녀져라 아으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
과(過)도 허물도 천만(千萬)업소이다. 말 힛마러신뎌 슬읏븐뎌 아으
니미 나를 하마 니즈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드르샤 괴오쇼서.
뜻을 새겨 풀어보면
우리 님을 그리워하여 늘상 울고 있는 나는
저 접동새(두견새)와 비슷도 합니다.
참이 아니고 거짓으로 꾸민 것인 줄을
아! 저 새벽 하늘에 비쳐주는 조각달과 샛별만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넋이라도 우리 님이 계시는 곳에 가고 싶습니다.
아! 우기시던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지나친 일도 허물도 나에게는 털끝만도 없습니다.
뭇사람이 시기하여 남을 참소하는 말이신데 슬픕니다.
아! 우리 님이 나를 이미 잊으셨습니까?
아 우리 님이시여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을 들어 주셔서
제발 나를 전과 같이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정과정 현대어본]
(前腔) 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며지내니
(中腔) 山접동새와 난 비슷하여이다.
(後腔) 아니시며 거짓인 줄 아으
(附葉)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알고 있으리이다.
(大葉) 넋이라도 님과 한곳에 가리라 아으
(附葉) 우기시던 이 뉘더시니잇가.
(二葉) 과(過)도 허물도 천만(千萬) 업소이다.
(三葉) 무리의 말이신저
(四葉) 슬픈 일이저 아으
(附葉) 님이 나를 아마 잊으셨는가.
(五葉) 아소 님하, 돌려 들으셔 괴오쇼셔.
[정과정 해석]
내가 임을 그리며 울고 지내니
산 접동새와 난 처지가 비슷하구나
나에 대한 말은 진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을 아!
지는 달 새벽 별만이 아실 것이리
넋이라도 임과 함께 가고싶습니다. 아아
내 죄 있다 우기던 사람이 그 누구입니까?
나는 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나에 대한 뭇 사람들의 거짓말이여
슬픈 일이로다 아아
임이 나를 아마 잊으셨는가
아아, 님이여, 내 말씀 다시 들으시고 사랑해 주소서
정과정곡
작자인 정서는 이종과는 동서지간이었으며 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인조에 이어서 자기 이질인 의종이 왕위에 오르자 의종의 아우를 추대하려는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는 참소를 입어 1151년에 고향인 동래로 귀향가게 되었다. 의종은 “오늘 일은 조정 의론에 핍박되었으나 가서 있으며 마땅히 소환하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귀양에서 풀려난 것은 무신란이 일어나 의종이 쫓겨나고 명종이 즉위한 뒤의 일어었다. 소환한다는 명령을 기다리다가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노래를 지으니 그 사설이 슬펐다는 말이 <고려사>에 보인다. 이어서 정서가 스스로 호를 과정이라 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 곡조를 <정과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했다.
<정과정곡>은 열한 줄로 되어있는데 처음 두줄에서는 님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는 모습이 산에 사는 접동새와 비슷하다고 했고 그 다음 두줄은 자기 죄가 임금이 잘못 알고 있는 바와 다르고 사실은 참소를 당해 허망하다는 것을 남은 달 새벽별이 바로 알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넋이라도 한데 가고 싶다고 하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하며 그런 어냑을 어기고 임금이 자기를 버린 것을 원망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과도 허물도 천만 없다 사고 그 모두가 참소하는 무리의 말일 따름이니 슬프다고 했다. 마지막 두 줄에서는 님이 자기를 벌써 잊었는가 묻고 마음을 돌리어 사랑해달라고 간청했다.
<정과정곡>역시 사뇌가의 잔존 형태이며 향찰로 표기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나 오로지 구전으로만 전해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향찰표기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다섯 줄로 볼 수 있으면서도 사뇌가 본래의 격식과는 아주 달라진 데가 있으니 바로 감탄구가 놓인 위치이다. “니미 나를‘하는 말 앞에 와야 할 감탄구가 ”아소 님하“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사뇌가가 해체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겠다.
내용의 맥락을 따지면 이 노래는 <원가>와 연결된다 할 수 있다. 자기를 돌보아주겠다고 한 임금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 것이 서로 같다. 그러나 원망보다는 하소연이 앞섰다. 신하의 위치를 아주 낮추고 버림받았더라도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충신이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이해되고 조선시대의 가사나 시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작품들과 공통점을 지닌다고 인정되었다. 그래서 후대에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