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픈소리란 깊은 샘물처럼, 샘골(井邑)에 오랫동안 내려오는 풍류를 길이길이 이어갈 동아리라는 뜻이다. 전라북도 중요무형문화재 대금정악 제4호 송파(松坡) 김환철(金煥喆) 선생의 이수자인, 金文善이 선생의 대금 풍류를 보존하고, 정읍풍류의 전통을 이어받아 널리 알리고자 만들었다.
김문선은 1988년 신흥학원 김태룡 원장(현 정읍신문사장)의 배려로 학원의 교실 하나를 얻어 단소 강습을 시작한다. 그 후 종로 사진 교실, 무심토 화실, 밀알회 사무실 등을 전전하면서 어렵게 강습을 하였다. 1991년 3월 손정국 회원이 천수당 한약방에 방 하나를 모임 장소로 제공하면서 활기를 띠게 된다. 적당한 모임 장소가 생기자 그 동안 강습에 참여했던 회원들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어 그 이름을 '샘기픈소리’라 하였다. 이때 참여한 회원은 김문선․김언기․김정순․나종민․박성경․손정국․서영미․정유순․이희숙․이혜경․이효신․오은희․ 정칠환 등 30여 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그 동안 단소나 대금을 배웠던 사람들이다. 이때부터 단소나 대금 위주였던 강습을 전종목으로 확대한다. 강습 횟수도 주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여기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되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정식 회원이 될 수 있다. 강습생들은 무료이지만, 회원이 되면 회비를 내야 한다.
* 1988 단소 강습으로 출발
* 1991. 3. 샘기픈소리’로 이름함(모임터 : 연지동 259-31, 천수당 약방, 손정국)
* 1991. 5. 1. K. B. S 1TV 지방시대 ‘정읍풍류 정읍사람’
* 1992. 1. 5. K. B. S 1TV 문화가 산책-‘정악 그풍류의 세계’
1993년에 들어, 그 동안 회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미흡하나마 풍류의 틀을 갖추게 된다. 이때부터 시민들을 위한 공개 국악 강습회나, 각종 공연에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회원은 나종민․박미라(거문고), 이영자․김경숙․김이진․김옥자․차행복․최명자(가야금), 정칠환․이효신(양금), 김언기(대금), 박성경․최낙필․오은희․이현춘․손원영․유기남․홍명렬․배수경(단소), 서영미․이영식․홍순옥(해금), 손정국․김진우(피리), 안완식(아쟁), 김문선(장구) 등이었다.
이때는 샘기픈소리와 초산음률회를 거의 구분 없이 넘나들며 활동하던 때다. 초산음률회의 대부분 새로운 회원들은 샘기픈소리 회원들이었다. 초산음률회는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추어진 사람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새로운 회원들이 거의 없었다.
* 1994. 12. 8. 모임터 (수성동 523-3, 유영자)
* 1994. 5. 11. 국악인의 밤 출연
* 1995. 2. 14. 밝은사회정주클럽 국악 연수
* 1995. 4. 동학백주년기념
1996년에 들어 활동이 많이 위축된다. 회원의 갈등으로 일부가 초산음률회로 빠져나가고, 개인 사정으로 그만 둔 회원들이 많았다. 샘기픈소리는 대체로 회원들이 젊어서 안정된 직장이 없고, 결혼 등으로, 들고남이 매우 많다. 한 종목의 악기 주자가 일이 생기어 빠져 나가면, 그 자리를 채우는데, 악기에 따라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회원 모으기도 쉽지가 않다. 음악이 대중적이지 못한 정악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강습 위주로 운영하다 보니 수강생이 많고 정식 회원이 적다. 무료 강습이라 경제적 어려움도 많았다. 그래서 일정한 모임터 하나 갖지 못하고 더부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에 활동했던 회원들을 보면, 배정인․김영윤(거문고), 김민숙․김경숙․설은숙․이시우․유예순․김진석․정은선․안필남(가야금), 성희옥․최영선․김은례(양금), 박성경․유동훈, 종광(대금), 김용련․이은정․이영순․이은미․김경민(단소), 손정국․김정호(피리), 이영식․홍순옥(해금), 박송자(아쟁) 김문선․김영애(장구) 등이다.
* 1995. 5. 7. 모임터 (연지동 58-2, 김옥자)
* 1995. 8. 14. 모임터 (연지동, 교차로 신문사)
* 1995. 9. 24. 내장동 경로 위한 잔치
* 1996. 1. 2. K. B. S 1TV ‘6시에 내고향’ 출연
* 1996. 7. 18. 모임터 (연지동 259-31, 손정국)
* 1996. 7. 23. 청소년 문화 마당 연주회
* 1996. 9. 8. 최경선 장군 제막식 제례악 연주
* 1996. 11. 24. 울림야학 학교 공연
* 1997. 2. 27. 모임터 (수성동,정읍신문펜클럽)
* 1997. 12. 27. 제1회 샘기픈소리 어울마당
* 1997. 5. 23. 정읍신문 창간 기념
* 1997. 21. 19. 정읍신문펜클럽
* 1998. 5. 9. 제1회 정읍신문 학생 농구 대회
* 1998. 7. ‘우리 것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국악여행
* 1999. 1. 11. 정읍신문펜클럽
* 1999. 10. 20. 장승 축제
* 2000. 1. 10. 정읍신문펜클럽
* 2000. 5. 11. 동이학교
* 2000. 7. 16. 문화유산답사동호회 연수
* 2000. 9. 2. 모임터(수성동)
* 2000. 10. 15. 장승축제
* 2001. 8. 11. 제1회 정읍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어울마당
* 2001. 9. 1. 모임터(상동, 초롱이피아노 학원)
* 2001. 12. 14. 제2회 샘기픈소리 어울마당
* 2002. 8. 9. 제2회 정읍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어울마당
* 2002. 10. 1. 모임터(쌍암동 573-1, 김문선)
* 2002. 10. 20. 장승축제
* 2003. 8. 9. 제3회 정읍시민과 청소년을 위한 어울마당
샘기픈소리의 정읍풍류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은 샘소리터를 지으면서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샘소리터는 2004년 5월 30일에 문을 열었다. 정읍시 쌍암동 573-1번지 달맞이골에 풍류를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읍내에서 좀 떨어져 있다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나 풍류를 하기에는 주위 경관이 아주 좋다. 샘소리터는 그 동안 모임터가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던 모든 회원들의 숙원이 이루어진 곳이다. 이때 활동하고 있는 회원은 김문선(거문고), 김민숙․설은숙․김진석․정은선․안필남(가야금), 김은례(양금), 박성경․유동훈(대금), 이은정․이영순․김경민․최은미(단소), 김용련(피리), 신보람(해금), 김영애(장구) 등이다.
* 2004. 5. 30. 샘소리터 개원(쌍암동 573-1 달맞이골)
*2004. 8. 14. 제4회 샘골에 흐르는 달 井邑 시민ㆍ학생을 위한 藝術무대
샘기픈소리는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악기를 가르쳐 왔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에 강습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제대로 배워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처음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악기를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보다, 그저 악기 하나쯤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온다. 각기 줄이 얹혀진 비슷한 모양새의 현악기들을 보고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을 못 하는 사람들이다. 부는 악기도 대금 외에 소금, 단소, 피리가 있고, 대금도 정악대금․산조대금이 있다는 것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이렇게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은 악기를 보고, 연주도 들어보며 자신의 빛깔에 맞는 악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우리 악기는 처음부터 그 진짜 소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손가락이 터지는 아픔과 머리가 빙빙 도는 고통을 이겨 내어야만 제 소리가 난다. 제 소리를 낸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샘기픈소리에서 하는 음악은 주로 정악이기 때문에, 곡도 배우기가 어렵다. 그뿐인가? 오선보밖에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한자로 된 정간보는, 음의 높낮이조차 구분할 수 없는 어려운 악보이다. 또한 합주는 어떤가? 아무리 혼자 잘 해도 서로가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음악이 되지 않는다. 참으로 인내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음악이다.
그러나 제대로 배워 맛을 알면 어떠한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진정한 즐거움을 알고자 하는 이들의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한다.
첫댓글 이것으로 정읍정악의 뿌리와 샘소리터의 자료정리는 다 된것인지요.? 우선 기쁜 소식은 김홍진선생이 서울에 거쳐하고 계시고 지금은 외국에 나가계시지만 곧 귀국예정이고 나이는 80세 입니다. 학교로 찾아 뵙겠습니다.
귀한 소식입니다. 시일 내에 만났으면 합니다. 아직 악기별 계보 정리를 해야 다 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제부터가 힘든 작업이 될 것입니다.
나도 하고픈데 ㅠㅠㅠㅠㅠㅠㅠ 부럽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