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날, 길을 가다가 문득 개울물 소리 들었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개울에
멀리서 온 맑은 물 이 가는 물길을 내면서 흐르고 있었습니다. 봄입니다.
하지만, 개울이 제 폭과 제 깊이를 다 움직여서 내는 소리를 듣기에는 철이 아직 이릅니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골짝엔가 시린 물방울을 떨구 는 잔빙이 아직 남아 있을 터입니다.
그 물을 지나오면서, 시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여울인 것을 생각 했습니다.
그러니까 소리는 흘러가는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고 자연의 말소리이기도 한 셈입니다.
찬기운으로 천지를 붙들어매던 겨울이 지나고 낮고 넓은 물이 제 힘껏 봄날을 흘러가면
그 말소리 더욱 우렁찰 터입니다. 그날은 그 말씀 듣겠습니다.
오늘은 잔물소리 나직하여 정겹습니다.
같은 달빛은 서로 나누어 쪼이기만 해도 남남이 아닙니다.
그는 오늘,사람 없는 솔숲으로 갔습니다.
숲속의 자기 수행과 가 난한 마을의 고된 노동과
어느것이 더 소중한가 하고 묻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일하지 않는 수 련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노동이 모두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난한 세상이 달빛 환히 뒤집어쓰고 있는 데, 산골짜기 솔숲이라고 그 빛 못 얻어쓰겠는가?
그 숲에 달빛이 좋아서 바람도 소리하고 지나갑니다.
벌써! 가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에는 찬바람 일찍 부는 법,
어떤 이들은 마음으로 벌써 한겨울을 살고 있을지도 모 릅니다. 슬픈 일입니다.
누구라도 수십의 가을을 누리고 나면 이승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잎새 떨구며 퇴색하는 가을이 아쉽고, 생각은 깊어가고,
골똘한 생각의 끝이 아! 하는 탄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도 하는! 가을입니다.
기억하시지요?
깃발도 바람도 아니고 마음이 나부끼는 것이라 던 조사의 말씀.
큰나무가 잎사귀를 바람에 다 맡겨버리는 일이 그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은 나뭇잎도 흔들고, 당신의 옷깃도 흔들고, 가난한 세상도 흔듭니다.
가을, 바람 부는 날. 우리들 마음 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바람을 따라서 흐르다 보 니 오늘은 문밖입니다.
바깥 세상이라고 작은 한 몸 누일 자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문 안팎의 구 별이 부질없어서,
그 문밖에도 온전한 푸르름을 키우고
낙엽을 바람에 다 내어줄 줄 아는키 큰 나 무들 드문드문 삽니다.
쓸데없는 드높음입니다.
누군가, 이 집에 사람 살 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혼자 오만하면 당연한 노릇
사람 살지 못하고 아무도 드나들지 않습니다.
깨어보니 아침입니다.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기와 여기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매인 데 없는 마음에 집을 짓습니다.
다툼 없이 조용해지고 나 야
그 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마음에 비로소
조용한 소리!
조용하여 깃드는 것이 있 으니
좋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길에 눈 비 바람 다 맞고 사는 낡은 부도 하나.
없으면 허전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남을 이기고 쉽게 살기를 꿈꾸다
이제 고요한 존재가 되기를 꿈꿉니다.
그도 욕심입니다
막돌이, 제자리에서
그저 막돌로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것을 알겠습니다.
꽃들은, 혼자 조용히 제 꽃을 제가 피워내는데
사람은, 실없는 이름을 다투느라 소란스럽습니다.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는가?
하는 이도 있지만 이름은 사람이 지어낸 손가락질일 뿐입니다.
꽃 한송이 환히 피어나는 것, 이름 때문이 아닙니다.
진면목은 이름보다 먼저 있습니다. 이름 없이 흔한 것들이
한꺼번에 꽃피어 흐드러지면 그도 장관입니다.
세상에 이름 있는 꽃이 과연 있기는 한가?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마음을 가려서
마음은 정작 어려운 물건이 되는 것처럼,
눈에는 움 직이고 형상 있는 것이 먼저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새떼를 버리고 빈자리를 보아야 한다니 그도 어려운 노릇입니다.
하지만,그림 그리는 흰 종이가 본래 바탕이듯 허공이 본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마 음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그놈 잡아다 구워도 먹네!
멀고 깊은 자리는 힘들여서 천천히 찾아들어야 깊은 줄 압니다.
그 깊은 데를 차를 달려서 보고 오면 허탕입니다
언제고 다시 가야 합니다.
그렇게 다녀오는 것에는 밟을 답(踏)에 조사할 사(査) 를 써서는 안됩니다.
상선암.
어디나 그 이름 자리는 깊습니다.
거기 이르는 길이, 호젓하고 조용했습니다.
그 자리 일러주시던 이는 지난 봄날 이승 떠났습니다.
다비장,소나무 향기,그 깊은 데 화엄사 언저리 꿈 같습니다. 스님!
그이, 그 깊은 자리로 혼자 가셨습니다.
밖에서 지붕선만 보아도 집에 든 마음을 알겠습니다.
창이 커서 방이 춥겠고 등뼈가 길어 식구가 많고 입이 여럿이라 살림이 넉 넉치 않겠습니다.
공부하는 이들의 집이라 아무것 없고 좌복 위에 사람만 앉아 있습니다.
그 집이 허리가 휘도록 애를 쓰고 공을 들이는데
봄날 꽃소식은 환하게 밝고 사람의 마음 소식은 캄캄하면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너는 여기 있으니 ‘잡’ 소리를 듣지 않는구나.
논밭에 들어 있으면
너도 별수 없는 잡초라 ‘잡놈’이 되는 것이지. 세상 은 그렇게 어렵습니다.
욕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잡’ 없는 세상이 갈수록 멀어지는 듯합니다.
대승사 제일 높은 자리 산신각 아래, 마른풀 열매가 바람을 타고 있었습니다.
다시 가보지 않았으 나 그 일가가 거기서 여전히 살고 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적 없이 적적한 자리에 잠시 다녀 간 사람이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니 마른풀이 실없다 하겠습니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그대가 내 소리를 들었다 하시는가?
해 전에 성전암에 다녀왔 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사람 떠나간 흔적을 찾는다 하였더니
그 자리에 피고 지는 꽃나무도 웃 고 나이 먹어 의젓하신 나무들도 웃습니다.
자네 왜 걸음하였는지 다 알겠다 하는 기색들이십니다.
뭐 볼 게 있다고 헛걸음을 하시는가? 하는 말씀을 꾸중처럼 듣다가 그 산을 내려와,
길게 뻗은 아 스팔트를 달리다 이런 솔밭 등성이 하나 만났습니다.
그 자리도 물어오시는 바가 있습니다.
―어 이! 성전암 다녀가는 그대는 누구신가?
―알고 가시는가?
―모르고 갑니다!
당간에 내걸린 누더기 한 벌도 일자불설(一字不說)이라......
한 말씀도 아니라지만
―오늘은 누더기에 입이 생겼습니다.
누구나 제 살아온 껍데기 를 버리고
이렇게 이승을 떠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옛적 달마가 동으로 오셨다더니 이제 소문만 남았습니다.
다시 오시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조주의 뜰에 천년 묵은 잣나무 아직 푸릅니다.
다람쥐들 드나드는 것 보니 잣도 벌었는가 봅니다.
원효는 당(唐)으로 가다 돌아섰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머릿속부터 남의 땅입니다.
천 년을 남의 머리 남의 가슴으로 살았으면
이제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명당이 발복하게 한다고 합니다.
묏자리 하나 제대로 잡아 앉으면
나라도 얻고 돈도 얻고 명예도 얻고 온갖 영화를 다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다 얻는다는 그 자리를 다투는 면면들을 보면 안 믿기도 어려워집니다.
벌써 절반 넘게 갖춘 사람들이라 그 자리 얻으면 마저 다 얻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대단한 풍렐値지렇??다 믿는다 해도,
그렇게 많이 누리고 살면 정말 좋은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많아서 좋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염주는,새 끈을 꿰었더니 다시 쓰겠습니다.
새 임자가 생겨서 들고 다니는 것 보았습니다.
괜찮으시지요?
주전자에는 늘 물 끓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 그리 여기기는 하지만
지나는 바람에 가끔 솔깃합니다.
모르는 새 다녀가셨던가요?
차 한잔 하러 들르시지요!
그이는 오실 때처럼
가벼운 빈손으로 가셨습니다.
철들고 나서 내내 빈손이었습니다.
내내 빈마음뿐이었습니다.
촛불 꺼지듯 가셨으니 촛불 켜듯 오실 터입니다.
조용한 자리에는 슬픔도 기쁨도 나고 죽음도 없다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빗자루로 평생 티끌을 쓸면서
마음 자리도 다 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자리를 모르는 사람이라 혼자서 슬픔을 붙들고 삽니다.
제 안에 있는 욕망과 씨름하고 사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으니 근심도 많다는 격입니다.
빚잔치해서 다 내주고 나야 시원하고 깨끗해집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 는 일이 대장부 일이라 했습니다.
이 밥도둑놈들아!
지는 꽃잎에게 묻습니다. 안 자고 안 먹고 꽃 피우셨는가?
꽃잎은 말없이 웃고 집니다.
졸음 이기지 못하여 잠에 듭니다.
무엇 이기지 못 하면 죽음에 드는 것인지요?
꽃이 피었습니다.
온통 밝습니다.
저 밝으니 나도 밝습니다.
밝은 그 꽃을 보고 마주 웃어줍니다.
저는 꽃피운 보람 있고 나는 저 만나 기쁨이 있습니다
좋은 날입니다.
새 한 마리가 나를 피해 저쪽 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네가 나를 잘 아는구나!
단박에 아 는구나!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정진도
세상에서는 겉멋이 되고 분위기가 됩니다.
어느 수행자가 좌 탈이 소원이어서
방 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앉아 사투를 벌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양 내고 살려는 욕심이 대개 앉아서 죽겠다는 바보짓과 비슷한 꼴입니다.
미물이 사람보다 나아 서 배추 한 포기 위에서 한생애를 다 보내는 청벌레도
꾸미고 살지는 않습니다.
꾸미고 죽지도 않 습니다.
청벌레 한 마리,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터뜨려 죽입니다.
적적하고 고요한 삶이 귀 해진 지 오랩니다.
뜻깊은 자리마다 길을 내고
바퀴 달린 물건들이 바퀴벌레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더러운 것을 흘려놓습니다.
조망이 좋은 산꼭대기 암자에도 바퀴벌레는 거침없이 올라오고 내려갑니다.
나가서, 문 닫아걸어라!
기계는 낡으면 애물단지 가 됩니다.
냉장고·자동차·컴퓨터가 다 그렇지만 첨단의 기계일수록 망가지면 곧 쓰레기가 됩니다.
손으로 만든 옛 물건이 손때가 묻을수록 편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보면 ‘첨단’이 무언가 다시 생각하 게 됩니다.
깊이 있고 아름답기도 한 노경이 흔치 않은 것도 시대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뜻하지 않은 돌발사고에 사고사, 비명횡사가 흔해졌습니다.
존재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셈 입니다.
뿌리 없는 시절입니다.
풍요로운 세상이라 가난하게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쓰고 버리는 것만 뒤져다 써도 호사를 하게 생겼습니다.
이 세상의 살림살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마도 ‘낭비’가 될 터입니다.
가난한 삶 이라야 깊고 아름답습니다.
이승을 살고 가는 일이 가볍기로 하면 새털이 무색한 것이지만
무겁기로 하면 태산보다 오히려 무거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이 세상의 평가인 줄 알지만 결국은 우리 심중의 일입니다.
제가 저지른 일이라 평생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마련입니다.
스스로 살펴서 어두우면 서둘러야 합니다.
노장의 잔소리는 늦가을 벼이삭이 바람결에 내는 소리입니다.
익을 대로 익은 소리라 겸손히 들으면 배가 불러질지도 모릅니다.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시간입니다.
―봐라, 사람들아!
시간 없다! 노인은 노심초사.
― 고맙습니다!
차 한 잔에 무슨 마음? 하기도 하지만
무릎 꿇고 앉아서 혼자 조용한 순간이면 몸뚱이 문득 마 음덩어리이기도 합니다.
차 한 잔에 가득 마음! 입니다.
진초록의 대숲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바 람 소리에 덩달아
넘쳐버린 마음은
주워담을 길 없이 번져나고 있습니다.
마음 벌써 대숲 밖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우리들 서로 만납니다.
길 없는 길에도 같이 가는 큰길 있고 좁은 오솔길 있습니다.
그 길을 여럿이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초록 이정표에는 곳곳의 지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지만,
영어로도 크게 적혀 있지만,세상에는 길 없습니다.
마음에 이르는 길 없습니다.
그 길에서 살펴보니 아, 내게는 눈도 없습니다.
눈 없이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본지풍광을 깨달 아 아는 것이 대장부의 일이라 했습니다.
옳은 말이지만 대장부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꼭 같이 해당하는 말이려니 짐작합니다.
세상은 사람을 내다버리는 데 이르렀습니다.
휘황한 소비 와 환락의 불빛 아래서 시들고 타락해가는 젊음과,
쓸모없어서 일찍 버려지는 장년과 노년의 삶에,
이제 파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마음을 내팽개치고 사는 때문이라 하면
너무 막연하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마음이 탓입니다.
소나무 그림 중에도 백미 라 하는
<세한도>보다 훨씬 잘생긴 소나무가 즐비한 옛 무덤자리가 있습니다.
몇 해째 소나무들 이 말라 죽는 것 안타깝더니 이제 젓가락만큼씩 한 어린 소나무들이
그 밑에 번지고 있더라는 소식입니 다.
노인네와 고사목은 절의 자연스러운 풍광이라 한 경전의 한 대목이 기억납니다.
어린 아이와 어린 나무도 자연스러운 풍광 아닐 리 없거니와,
노유가 한 자리에서 어우러지면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효율과 속도 따위가 대접받는 시절이라 ‘나이먹은 것’에 대한 존경이 흔치 않습니 다.
하지만 큰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만 보아도 노경의 아름다움과 뜻깊음을 알 만합니다.
늙마의 일이, 자리를 지키면서 그림자 안에 깃드는 생명들을 쉬게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머지 않은 종명(終命)을 생각하고,
이렇듯 작고 철없는 생명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쯤은 그래도 ‘늙은이의 마지막 일’이 됨직합니다.
저 소나무 한 그루가 목숨 자리를 알아서 그 소식 전하시는가?
어린 소나무에게 이르는 전등(傳燈)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소리 없이 천둥칩니다.
힘들면 몸부터 주저앉고 눕게 되는 것에서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죽은 몸뚱이가 적막한 것을 알면 더 분 명해집니다.
사람은 끝내 고요한 데 이르게 생긴 존재입니다.
늦가을이 온통 기품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늦가을 오색 장엄 앞에서 겨울 백발을 짐작키도 어려울 것이 없고
봄 어리광 여 름 장난을 이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거 짓말이 흔한 시절에는
거짓이 가득 차 있는 내 속부터 살펴야 합니다.
살피면 절로 밝아집니다.
마음에 환히 떠오르는 달 있으면 손가락이 무슨 소용?
해 지면 달 떠오르고 꽃피고 나면 지고
우리들 나고 스러지고 당연한 것이 당연히 오고 가는 그 자리에서
개나 사람이나 어리석어서 달 을 보고 자꾸 짖습니다.
상한 콩을 골라서 퇴비더 미에 쏟아버렸는데,
그 반편들―찌그러지고 썩고 병들어 문드러진, 콩들이
소복하게 파란 싹을 틔 워냈습니다.
온전한 생명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죄송천만이었습니다.
제 속의 어둠을 툭 터 뜨리면서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살지!
힘겨운 삶도 살아보면 기쁨 있는데......
어리석음이 제 목숨을 제가 내다버립니다.
마음 한가운데 색이 앉아 지냅니다
그러면 서로 부끄럽습니다
면목없습니다.
마음 한가운데
어 둡고 답답한 기운이 들어와 앉아서 편치 않습니다.
뱃속이나 마음속이나 방귀 크게 뀌고 나야 시원스러 워집니다.
마음을 가만히 살피면
오색 종이가 들어 있는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현란하고 변화무쌍합니다
마음의 천변만화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
―빨래 다 걷어내고 나니
빨랫줄에 빈 하늘이 잔뜩 내걸렸습니다.
―그 하늘에 구름무늬가 들어 있는가?
이승 떠나면서
마 지막으로 눈에 담고 떠나게 될 풍광을 아시는가? 묻습니다.
모르면 눈 없는 사람 알면 지레 죽은 사람 입니다.
―창문 열고 보면 그날도
허공에 구름 떠가고 있을 터,창문 닫아도 허공에 구름 흘러가기 마찬가집니다.
밤 이슥토록 일하고 뜰에 나서는데 어둠 깊은 산의 외줄기 능선 위로
조각달과 초롱한 별이 하늘에 지켜 서 있는 것 보였습니다.
피곤한 삶을 지켜 선 것이 거기도 있었구나 하고 어둠 속을 돌아보니
희미한 달빛에 조용히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더 있습니다.
아직 삽자국이 선명한 흙덩이들과 낮은 지붕들과 멀리 잣나무 숲입니다.
그것들로 봄밤이 문득 아름답습니다.
한낮 햇살이 눈부시고 그 따사로움이 세상 키우는 힘이지만,
어둠 속에 온기 없이 희미한 달빛만으로도 마음 이렇게 넉넉해집니다.
이만큼만 나누어 도 한시절 겨우겨우 살아가기는 하려니......
차고 기우는 달은, 밝고 어두워지는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 다.
육창(六窓)의 달.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고,달 하나가 천 줄기 강물에 두루 비쳐
있는 아름다움에다밝은 지혜의 두루한 힘을 넌지시 실어 보인 표현이 있습니다.
TV의 작은 화면에 비치는 이미지와 메시지의 힘은 지혜 아니어도 한없이 크고 거침 없습니다.
밝은 지혜의 언어는 어디 사시는가?
현주소가 궁금해집니다.
큰 강을 건넜습니다. 썩은 물도 흐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 꺼지지 않는 불빛의 홍수 속에서 많이 희미해진 도시의 달이 비치어 있었습니다.
낯익은 풍광인데 눈물겹습니다.
하늘 보면, 다 버리고 사 는 것이 옳은 줄 알게 됩니다.
맑은 날, 하늘에 가득한 별들의 사방팔방 연속무늬를 배경으로
가 끔 떨어지는 별똥을 만납니다.
별도 때가 되면 꽃 지듯 떨어집니다.
별이 지는 것입니다.
하 늘에서, 지는 별을 보고
땅에서는 달빛의 하얗게 빛나는 배꽃의 낙화를 봅니다.
사람도 지는 법.
별 보고 꽃 보는 우리들도 그렇게 지고 맙니다.
무심한 눈이 되어서 바깥을 조용히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바라 보아도 좋고
새떼들이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는 겨울풍경을 그리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그 눈으로 제 삶의 갈피와 구석구석을 조용히 보고 있으면저
혼자 소란스러운 것이 가여워지기도 합니다.
그 렇게 가여운 것이 바로 나인 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비 오는 날 툇마루에 앉아 내다보는 경치 중에 제일 가까이
있는 것이 낙숫물 떨어지는 풍경입 니다.
저 혼자 듣는 낙숫물에 천천히 마음을 맡겨가노라면
낙숫물은 문앞에 드리운 발처럼 조용히 그저 있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 마음 한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문득 그 일뿐,바깥풍경도 무엇도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상은 그 물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 버리면 오히려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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