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란 말에 뭉클한 그리움이 일어나고, 아스라이 멀어져간 기억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때에 전 마루 위에서 종이비행기를 접던 일, 자그마한 정원에 핀 이름 모를 꽃들, 장독대에 내리쬐던 햇볕, 마을 앞을 흐르던 작은 시냇가에서 어울려 놀던 동네 친구들에 대한 기억들이 삶에 지친 우리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 준다.
그렇지만 거대하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건물,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고향의 이미지는 어떨까? 그마저도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옮겨 다니는데, ‘집’이란 것이 우리의 정서와 느낌이 담겨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물며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점에서 집이란 우리의 문화이고 삶의 모습 자체라는 생각을 평생에 걸쳐 말하고 실천해온 사람이 있다. 바로 그 사람, 신영훈 한옥문화원장은 삼복 더위 속에서도 한옥 이론 강의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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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한옥에 관심을 갖고 한옥 건축의 보존과 이론 보급의 길을 가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얘기를 청해 보았다. 그는 거꾸로 필자의 전공을 물은 뒤 미학이고 미술평론이라고 대답하자 꾸짖기 시작한다.
“요즘 미술을 보면 도대체 근원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의 것을 너무 모른다는 말이에요. 내 것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 남의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근원이 없는 일들에 너무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것을 어떻게 남에게 설명할 것인가 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서양 것을 가르치기보다 우리 것에 대한 논리를 터득해서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 백성에게 도움을 주는 학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옥문화 보급의 길을 간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는 말이다. 우문(愚問)을 먼저 던진 필자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올해 69세인 신 원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집을 짓는 목수가 아니다. 전통건축에서 집 짓는 것을 가르치고 깨우친다는 뜻의 ‘지유(指諭)’다. 집 짓는 일을 기획하고 설계와 시공을 총괄하고 관리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또 그는 국보급 문화재의 보수와 기념비적인 전통한옥의 건축 겫맑痔?대부분을 도맡아 한 우리 문화재 보수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는 1935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6 ·25전쟁 이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55년 중앙고등학교 졸업반 때 당시 국립박물관 과장이던 최순우 선생의 강의를 듣고 나서부터 우리 문화유산의 보존과 보수라는 외길을 걷게 되었다. 62년 국보 1호인 남대문 중수공사 감독관을 시작으로 1964년 금산사 미륵전 중수공사 감독관, 그 후 석굴암 ·경복궁 ·송광사 ·황룡사 9층탑 등 그의 손을 거쳐간 문화재들은 무수히 많다.
66년에는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으로 ‘백악산방’이라는 사랑방을 지었고, 67년에는 멕시코 차플텍 공원에 한국정을 짓기도 했다. 이런 그의 이력으로 인해 62년부터 99년까지 문화재전문위원을 지냈으며, 2000년에는 영국 대영박물관에 한옥 사랑방을 지으면서 영국 건축가들로부터 감탄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99년에 설립한 한옥문화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한옥문화 보급을 위한 강의와 저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순리’·'고요'·‘분수’
그의 평생을 이끌고 있는 한옥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한옥에 깃든 조형의식을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조형의식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편안한 집,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깃든 집이 바로 한옥입니다. 가끔 산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각 나라 지역에 따라 산의 형세나 자태가 서로 다릅니다. 그 산들은 바로 천연 속에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요.
각 지역의 풍토나 기후조건에 맞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한옥도 우리에게 맞고 우리의 생활을 배려하는 아름다움과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뒤뜰에 있는 장독대에는 미적인 측면도 있지만, 김치나 장을 숙성시키기도 하고 보관하기도 한다는 기능적 측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옥의 구조에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도 간직되어 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하기에 무리가 없고, 편안한 집이 곧 한옥의 내면에 있는 조형의식이라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신 원장은 한옥에 담긴 아름다움으로 ‘순리의 아름다움’ ·'고요의 아름다움’ ·'분수의 아름다움’ 등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사람이 편안하게 잘사는 집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선 중요한 것이 어떤 넓이일 때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느냐는 것입니다. 너무 좁으면 답답해지고, 너무 넓으면 허망해 집니다. 우리 방의 기본 넓이는 15자×15자입니다. 이때 15자라는 것은 인간의 평균신장을 5자로 보고 거기에 3을 곱한 수치입니다.
5자라는 수치는 삼국시대부터 유래하여 온 것이고, 3이라는 것은 천(天) ·지(地) ·인(人)을 말하는 것으로 5자의 사람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산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또 천장은 낮아지면 기가 약해지고 높아지면 기가 승해집니다. 이런 점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수치가 5자에 그 절반인 2자 5치를 더한 7자 5치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간에 무리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편안해지고 남들과 다툴 이유도 없어집니다.”
한국사람의 평균 신장을 기준으로 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의 아름다움’인 것 같고, 그 속에 있으면 평온함과 평상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 ‘고요의 아름다움’인 것 같다. 그렇다면 ‘분수의 아름다움’이란.
“15자×15자가 기본이 되고, 그 변형으로 18자×18자, 21자×21자, 24자×24자의 크기로 늘어납니다. 천장의 높이도 방의 넓이에 비례해서 높아집니다. 이것은 집주인의 신분이 높아지면 거기에 따라 크기가 늘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신분이 높아지면서 만나고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활동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지위나 위치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가 ‘분수의 아름다움’인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순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 지금 우리 가옥에는 구들과 마루가 함께 있는데, 이것은 본래 구들이 없고 마루만 있었던 (따뜻한) 남방의 백제문화와, 마루는 없고 구들만 있었던 (추운) 북방의 고구려 문화가 합쳐지면서 하나의 정형으로 된 것입니다. 그것을 표준으로 지역적 특성과 신분에 따라 다채로운 양식들로 나타나게 되었지요.”
자연과 함께한다는 말에는 결국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집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본주의가 한옥에 있어 기본이 된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문화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통가옥 헐어버린 재개발 발상 한심
“젊어서부터 외국을 많이 돌아다니게 되었어요. 여러 나라에서 우리 전통 한옥을 짓는 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전세계를 다니면서 그곳의 집들을 비교해 보고 우리 문화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집을 짓는 데에는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나 문화에 대한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전통 가옥에는 우리 조상의 삶과 문화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살림살이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사랑채보다 안채를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왕궁에서도 왕비의 침전이 더 크고 여러 가지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있어 정서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서입니다.
또 대부분의 안채 뒤에는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장독대도 있지만 동산도 있는데 이것은 산의 정기가 가장 많이 배어 있는 장소가 아이를 키우는 안채여야 한다는 점에서 입니다.”
신 원장이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런 한옥의 원리를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삶에 적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한옥이란 무엇일까.
“요즘 고층아파트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펜션이다 해서 콘크리트 건물들로부터 탈출해 자연으로 나가려는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머지않아 한옥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에 영국 대영박물관에 사랑채를 지은 적이 있는데, 그때 옆에서 지켜 보던 영국 건축가가 우리 한옥이 21세기에 가장 인상적인 집이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 사람은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말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지낼 때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집에서 생활하고 잘 때만큼은 전자파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쇠나 철골 구조로 되어 있는 집에서는 불가능하고, 나무와 흙 돌로 이루어진 집에서는 전자파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전통건축에 확신에 찬 믿음이 있는 그가 과연 지금 서울의 건축을 어떻게 생각할까 해서 화제를 돌려 보았다(대부분의 건축가는 사대문 안에서만큼은 고층건물을 짓지 말고 우리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건축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1920~1930년대 사대문 안의 한옥과 건축물들을 보존했다면 관광특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강남 개발을 위해 사대문 안에 있는 학교들을 강남으로 보냈고, 그 자리에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남아있던 한옥들을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대부분 헐어 버렸습니다.
건설에도 바탕에 문화가 깔려 있지 않으면 그런 일들이 생깁니다. 그 후로는 좀 나아졌습니까.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되어 버렸어요. 최근에는 수도를 공주 지역으로 옮긴다는 말들을 합니다. 공주는 백제의 고도이고 많은 문화재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대한 대책은 한 마디도 없어요.”
결국 정책입안자나 정치가들의 문화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건축물을 경제적 재산과 기능적 가치 정도로만 인식하고, 그 안에 담겨야 할 문화적 측면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정체성이 없는 도시들을 만들어 놓는다는 말이다.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큰 만큼 많은 바람과 하고 싶은 일들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전통건축 지식을 전파하고 몇 사람이라도 전문가를 키우고 싶습니다. 또 외국인들이 한옥에 관심이 많은데 영어로 된 한국 한옥이나 건축에 대한 책 하나가 없어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우리 것을 중국과 일본의 것에 붙여서 간단하게 설명해 버리기도 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 하루빨리 시정되고, 우리 것의 논리와 체계를 세우고 외국어로 번역해내는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목수에는 집을 짓는 큰 건축 일을 하는 대목(大木)과 집 짓는 데 필요한 문짝을 만드는 것 같이 작은 건축 일을 하는 소목(小木)이 있다. 또 이 목수들이 갖고 있는 지식의 방향을 이끌어 주는 일은 ‘지유’가 한다. 즉 지유는 목수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테크닉에 정신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스스로 지유라고 말하는 신 원장에게서 한옥의 원리나 지혜를 넘어 우리 시대 문화의 진정한 지킴이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댓글 신영훈씨는 참으로 훌륭한 우리 문화지킴이 중의 한사람이지요. 우리 것을 잘 알아야 남의 것과 비교 할 수 있는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잘 모르니...
런던 대영박물관에 그가 손수 공을 들여 만든 사랑방 한옥이 있어서 가 보았지...규모가 작아서 좀은 실망은 되었지만,,,그래도 그 박물관 귀퉁이에 그의 작품이 들어가 자리 잡은 게 참 뿌듯 하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