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만큼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희망의 힘은 얼마나 큰지,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진정 세상에 부질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마음을 쏟고 시간을 바쳐야 할 영원한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 10년의 시간이 제게 알려주었어요.”
2000년 7월 30일, 음주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얼굴은 물론 전신의 반 이상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던 이지선 씨. 신앙의 힘으로 절망을 이겨낸 그의 삶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을까? 30만부 이상 팔린 <지선아 사랑해>로 이미 유명인사가 된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지난 16일 밤 어느 교회를 찾았다.
교회에 붙어 있는 홍보 포스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고가 나기 전과 후의 이지선 씨 얼굴을 나란히 배치시켜, 마치 성형외과의 ‘Before/After’ 사진을 보는 듯 했다. 이런 사진은 이지선 씨를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 굳이 옛날 사진을 덧붙여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픈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속으로 나는 ‘이건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자 이지선 씨는 사고 전의 ‘아름다웠던’ 그 사진을 보여주며 웃었다. 이어 “꽤 괜찮았죠?”라며 너스레도 쳤다.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도 명랑했다. 사고 후 10년이 흐른 지금 “시간이 갈수록 더 감사하다”는 이지선 씨가 자살과 하나님 중 하나님을 선택한 이유를 들어봤다.
어머니의 기도
안면화상을 입어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 30번이 넘는 수술과 만만치 않은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녀에게 절망은 당연한 것이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몸에 붙어 있는 호스를 있는 힘껏 떼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소변을 받아내는 고무관이었다.
이런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기도였다. 중환자실에서 온몸에 붕대를 감고 ‘살고 싶지 않다’는 딸의 말을 듣고, 어머니는 ‘에스겔’서 말씀으로 기도하며 밥알 하나 하나를 집어넣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에 살을 입히시고 힘줄을 넣으시고 가죽을 덮으시고, 생기의 영을 불어넣으셨을 때, 그 마른 뼈들이 군대가 되게 하셨던 주님, 이 밥이 지선이의 살이 되고 피부가 되게 해주세요.”
이에 이지선 씨는 “어떤 모습이든지 제가 살아만 주기를 기도하시는 엄마 때문에라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라고 말했다. 중환자실에서 20분간 주어지는 어머니와의 면회시간이 그를 살린 것이다.
이 당시 이지선 씨는 어머니를 통해서 예수의 십자가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과 바꾸자고 하면 바꿀 거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바꿀 수 있었으면 천 번도 만 번도 더 바꿨을 거야’라고 대답했어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런 저와 인생을 바꾸고 싶겠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이 인간을 대신해 목숨을 버린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았어요.”
사랑하는 내 딸아
최선을 다해 살아내기로 다짐하는 것은 어려워도,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거울 앞에 서지 않았지만, 밤만 되면 유리창에 얼굴이 비쳐 ‘외계인’이 된 자신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식된 피부가 땅겨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침을 흘리지 않기 위해 수건을 물고 있어야 했다.
이지선 씨는 “피부 이식 수술 후 입이 작아져 숟가락을 새 것으로 바꿨을 때, 숟가락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몇 번씩이나 깜짝 깜짝 놀랐어요”라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음을 밝혔다.
병원에서 받은 수치심도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손가락 마디를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어쩔 줄 모르는 가족들에게 의사는 무심코 말을 내뱉고 나가버렸다.
“뭘 그거 가지고 놀라세요. 얼굴은 더 엉망인데!”
퇴원 후 옥상으로 올라갈까, 교회에 갈까 고민하다가 하나님을 찾아 교회에 갔다는 이지선 씨는 자주 그러시듯이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해주시지 않으셨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난 후, 목사님이 그의 옆에 앉아 함께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은 “사랑하는 내 딸아” 하고 응답하셨다.
이런 자신의 모습까지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한다는 거울보기를 시작한 것도 이때다. 처음엔 멀리서 보던 거울. 하나님과의 관계를 쌓아가면서 거울과의 거리도 좁혀졌다. 나중에는 거울에 코가 닿았다.

“고난이 축복이에요”
사고 후 10년이 지난 2010년 이지선 씨는 오는 9월부터 UCLA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예정이다. 보스턴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재활상담, 사회복지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살아도 사람 꼴 되지 않을 것이니, 세상에 나가서 살기는 힘들다”는 의사의 예언은 빗나간 지 오래다.
그는 “지난 10년의 시간은 정말 끝난 것 같은 인생에서 지독한 운명과 화해할 수 있는 법을 알게 해주었고 이렇게 눈물과 아픔의 소리가 아닌 행복의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었어요”라며 더 감사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을 담아낸 책 <지선아 사랑해>는 현재 30만부 이상 팔렸다. 이지선 씨는 이를 읽은 독자들이 “죽으려고 했는데, 저도 하나님을 믿어 볼게요”라는 편지를 보내올 때 가장 기쁘단다. 자신과 같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 것이 그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고난이 축복이라고 10년 전보다 더 크게 말할 수 있어요. 눈물은 눈물로만 닦아줄 수 있고, 아픔은 아픔으로만 위로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지금 이 모습이 아니고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를 저에게 전하게 하신 거지요”
이지선 씨가 기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은 “사고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의 대답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였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사고 전후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시킨 포스터를 보며, 내가 무례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지선 씨는 그래도 화상을 입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라는 당연한 추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기엔 지난 10년간 얻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만큼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희망의 힘은 얼마나 큰지,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진정 세상에 부질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마음을 쏟고 시간을 바쳐야 할 영원한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 10년의 시간이 제게 알려주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삶을 쉽게 포기하는 게 가장 안타까운 이지선 씨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어요. 고난은 곧 축복입니다. 이것이 제가 옥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한 이유입니다”라며 그만이 건넬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동행, 이범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