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화가 박수근(1914-1965). 보통학교(초등학교) 학력이 고작인 그는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버겁게 이어나갔다.
예술가가 작업만으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벅차기는 마찬가지. 박수근 역시 온전한 직장 없이 그림에 의존해 생활을 꾸렸다. 화랑 종사자로 그의 만년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박명자 갤러리현대 대표는 "당시에 그림으로 먹고 사는 진정한 의미의 전업작가로는 박수근이 대표적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에게 그림은 곧 밥이었다. 관념 따위는 너무나 사치스럽고 거리가 멀어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빈한한 일상과 가난한 캔버스는 늘 등을 맞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우직하나마 정직하고 눈물겨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는 게 미술평론가 오광수(국립현대미술관장)씨의 표현이다.
박수근의 작품에는 가난한 모습이 절절하게 박혀 있다. 이는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뒤 타계할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평생 가난을 털어내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그는 데뷔작 <가난한 농가> 이후 절제된 선과 단순한 색으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전후를 통과하는 서민의 애환을 소박하게 그려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빈한한 여인들. 이들은 절구질을 하거나 나물을 캐는 등 힘겹게 노동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맷돌질하는 풍경도 쉽게 발견된다. 일생 동안 제작한 300점 안팎의 유화가 대부분 이런 분위기다. 이 여인들은 그의 어머니이기도 했고, 아내이기도 했다. 나아가 조선 여인의 삶이었다.
오는 17일부터 5월 19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한국의 화가 박수근’전. 그가 올해 5월 ’문화인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일하는 남정네들을 다룬 작품 두 점이 출품돼 눈길을 모은다. 이중 <청소부>와 <농부들>은 남자들의 노동장면을 담았다. <청소부>가 두 명의 청소부가 청소 리어카를 앞에 세워놓고 잠시 쉬는 모습이라면, <농부들>은 농부 셋이 나목 아래서 작업하는 풍경이다.
박수근에게 여성은 삶의 최일선에서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남성은 쉬거나 노는 존재로 비쳤다. 이는 살림을 아내에게 내맡기다시피 했던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아내의 고단함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무능에 대한 죄책감이 교차하고있는 셈이다.
그래서 작품 속의 남성은 정적인 반면 여성은 동적이다. 아이들도 사내아이는 그저 앉아 있기 마련이었고, 계집아이는 나물을 캐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광수씨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관념화한 그의 남성상이 확대된 것이다"라고 풀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