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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종합교양 [28]
교육·문화예술 용어해설
교육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國際聯合敎育科學文化機構,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유네스코라고도 한다. 1945년 11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주체로 런던에서 열린 유네스코창설준비위원회에서 44개국 정부대표에 의해 유네스코헌장이 채택되었으며, 1946년 11월 20개 서명국가들이 헌장비준서를 영국 정부에 기탁함으로써 최초의 국제연합전문기구로 발족했다.
모든 이를 위한 평생교육, 인류에 기여하는 과학, 세계유산보호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발전, 정보와 정보학의 기반구축에 활동목표를 두고 있으며, 각 분야별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① 교육분야:문맹퇴치, 초등의무교육의 보급, 난민교육 등, ② 과학분야:생물학·해양학·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 정보교환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인권문제에 관한 연구·분석, 개발도상국의 통신설비·정보시설 지원, 언론인을 육성 지원 등, ③ 문화분야:세계문화유산 지정, 가치있는 문화유적의 보존 및 보수 지원, 세계 각국의 독자성있는 전통문화 보존지원, 세계 각국의 문학 및 사상에 관한 문헌의 번역소개 등이다.
이밖에 라디오·텔레비전·영화의 개발 보급, 출판기술의 향상, 우주통신의 개발과 평화적 이용,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교육의 보급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교육·과학용 자재의 구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유네스코 쿠폰제도'를 운영한다. 또한 인재 양성을 위한 연구보조금의 지급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
기구로는 총회·집행위원회 및 사무국이 있다. 총회는 회원국 전체의 대표로 구성되는 최고의사결정기관이며, 2년에 1회씩 약 1개월에 걸쳐 개최된다. 주요 임무는 집행위원회위원의 선거, 사무국장의 임명, 가입의 승인, 유네스코의 정책·사업계획·예산의 심의와 의결, 국제조약 및 권고의 채택 등이다. 집행위원회는 총회에서 선출한 58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매년 2회 이상 소집되며. 주요 임무는 총회 의사일정의 준비, 총회에서 채택한 사업의 실행 및 예산의 집행을 감독하는 외에 사무총장을 추천하여 총회에서 임명하게 한다.
사무국은 임기 6년의 사무총장 지휘 아래 총회와 집행위원회의 의결사항들을 집행한다. 사무국은 파리 본부와 세계 각지에 설치된 지역사무처 및 각종 부속기관으로 구성된다. 본부의 직원은 세계 각국에서 모집된 전문가를 포함하여 2,200명에 달하며, 60개국의 지역사무처에는 5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주요 임무는 총회와 집행위원회에 제출할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준비하며, 전반적인 활동에 관해 보고하고 총회에서 결정된 사업계획과 예산에 따라 각종 사업을 추진한다.
회원국은 188개국이며, 6개의 준회원국이 있다. 준회원국은 총회의 투표권이 없고 이사회의 직책을 맡을 수 없는 점 외에 회원국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 한국은 1950년에 가입했고, 1987년 제24회 총회에서 집행위원국에 선출된 바 있다. 또한 1995년에 종묘, 불국사 석굴암, 팔만대장경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에 강화군·화순군·고창군의 고인돌과 경주유적이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대안학교 [代案學校, alternative school]
영국의 교육가 A.S.닐이 1921년 설립한 서머힐(Summer hill), I.일리치가 제창한 탈학교교육(deschooling) 등이 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자유학교(free school)·개방학교(open school) 등으로 불리는 학교교육개선의 영위(營爲)를 가리킨다.
그 특징은 ① 작은 학급에 의한 인간성 회복 ② 아동·학생의 수업계획에의 적극적인 참여 ③ 능력주의·경쟁주의 원리의 약화 ④ 시민의 광범위한 지원 등으로, 의무교육을 중심으로 한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일리치의 탈학교교육론과는 다르다.
로스쿨 [law school]
미국에서는 법률교육을 대학과정에서 하지 않고, 법률 이외의 과목(사회 ·인문 ·자연과학 등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을 주전공으로 한 본과졸업자를 전형하여 수업연한 3년의 로스쿨에서 시행한다. 단지 일부의 로스쿨에서만 특히 우수한 학생이거나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대학 3년 수료자의 입학을 인정한다. 로스쿨 제도를 최초로 시도한 것은 1670년 C.C.랭델이 법과대학장을 지낸 하버드대학교이고, 이것이 미국 법학교육의 지배적인 제도가 된 것은 1920∼1930년대에 걸쳐서이다.
로스쿨 제도의 실시는 법학이라는 ‘실학(實學)’을 배우기 전에 실용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학문을 이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를 법적으로 처리할 능력을 갖춘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많은 주(州)에서 미국법조인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가 정한 기준에 이른 로스쿨 졸업을 사법시험의 수험요건으로 하고 있다.
리비도 [Libido]
이 말은 보통 말하는 성욕, 다시 말해서 성기(性器)와 성기의 접합을 바라는 욕망과는 다른, 넓은 개념이다. S.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사춘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발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본능은 구순기(口脣期)·항문기(肛門期)를 통해 발달하다가 5세경 절정에 이른 후, 억압을 받아 잠재기에 이르고, 사춘기에 다시 성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리비도는, 중도에서 발달이 중지되기도 하고[固着], 완전히 발달했다가 거꾸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退行]. 이상성욕(동성애 등)이나 신경증(神經症)이 이에 속한다. 또한 리비도는 대상에 주입(注入)되어 축적되는데, 이러한 리비도를 대상(對象) 리비도라고 한다. 우정, 부자간의 정, 연애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자아(自我)에게 주입된 리비도를 자아 리비도 또는 나르시시즘적 리비도라 한다. 자기의 건강상태를 이상스러울 정도로 걱정하는 상태, 말하자면 심기증(心氣症) 같은 것이 그것이다.
리비도가 충족되기를 바라다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불안으로 변한다. 또한 리비도는 승화되어 정신활동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처음에 리비도를 자기보존 본능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았으나, 나중에는 이 둘을 결합, 에로스(영원의 결합을 구하는 본능)라고 하여 죽음의 본능, 즉 삶을 파괴하려는 본능과 대립시켰다.
마인드맵이론 [mind-map theory]
영국의 전직 언론인 토니 버전이 주장하여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킨 이론이다. 성공의 비결로 기록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이론이 유럽의 여러 기업에서 각광을 받았다.
기록하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고, 적는 습관은 인간 두뇌의 종합적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읽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기억하는 그 모든 것들을 마음속에 지도를 그리듯해야 한다는 독특한 방법이다.
매슬로 [Maslow, Abraham H., 1908~1970]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설을 주도하였으며,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사랑, 존중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충족되어야 할 욕구에 위계가 있다는 요구 5단계설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욕구는 병렬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에서부터 충족도에 따라 높은 단계로 성장해가는 것이며,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높은 단계의 욕구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고 이미 충족된 욕구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매슬로가 주장한 인간의 욕구는 강도나 중요성에 따라 계층적으로 배열한 것이지 결코 행복 그 자체를 계층적으로 배열한 것은 아니다.
저서에 《인간의 성격에 대한 심층접근》이 있다.
모라토리움인간
모라토리움이란 원래 경제용어로서 지불유예기간(支拂猶豫期間)이라는 의미로, 미국의 정신병리학자 E.H.에릭슨은 이 말을 사회심리학 용어로 전용(轉用)하여, 청년기는 지식 ·기술의 연수 때문에 지적 ·육체적 ·성적(性的) 능력면에서는 제구실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의 지불을 유예당하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였다.
청년기가 연장되어 언제까지나 모라토리움 상태에 머무는 청년층이 증가하자, 청년뿐만 아니라 각 연대 ·계층의 현대인의 마음 속에 언제까지나 모라토리움 상태로 있으면서 사회적인 자기를 확립시키지 않으려는 심리구조가 일반화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여 붙이게 된 것이다.
모라토리움 인간은 종래의 일정한 사회적 자기의 본연의 자세를 확립하기 위하여 그 밖의 자기의 가능성을 포기해버리는, ‘이것이냐 저것이냐’형의 생활태도에 비하여 ‘이것이든 저것이든’형이며, 자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항상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만한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 대하여 당사자의식(當事者意識)이 결여되어 있으며, 방관자적이어서 조직 ·집단 ·사회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이 희박하여 매사에 일시적 ·잠정적으로밖에 대처하지 않는다. 따라서 참다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 하지 않으며, 부분적 ·일시적으로만 자신을 연관시키려는 심리경향을 가지고 있다.
몬테소리운동 [Montessori Movement]
프랑스에 유학하여 백치아교육의 선구자 이타르에게 인류학에 기초를 둔 특수교육의 방법을 배운 몬테소리가 1907년 로마에 창설한 ‘어린이의 집(Casa dei Bambini)’이라는 유아학교에서 처음으로 몬테소리법을 실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몬테소리법의 특색은 정리된 환경에서 아동의 자기활동을 철저히 발양(發揚)시킴과 아울러 감각의 연마를 위한 특별 교구(敎具)를 안출하여 아동이 자유로이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과, 아동이 자주성을 갖도록 교사는 좋은 관찰자로서의 역할만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E.케이가 20세기를 특징지은 소위 ‘아동의 세기’의 유아교육에 알맞은 방법원리로서, 유럽 각지 특히 가톨릭 교육권에 급속하게 보급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시적 부진기간을 거쳐 193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 ·벨기에 등의 초등 또는 유아교육 시설에 정착되었다. 이는 아동의 자유로운 활동을 강조하면서도 정리된 환경이라는 대전제로 인하여 방임주의(放任主義)에 빠지지 않고, 감각의 연마를 통하여 지성의 연마에 이르기 때문에 계통적 학습에 적당한 기초를 제공하며, 가정의 교육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가정에서도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몬테소리 운동은 유아교육의 큰 동향으로 세계 각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몬테소리협회 본부는 암스테르담에 있다.
바칼로레아 [baccalauréat]
나폴레옹 집권 당시인 1808년에 처음 실시되었으며, 1902년에 현재의 제도로 확립되었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고등전문학교 ·고등기술전문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을 대상으로 리세 ·칼리지와 같은 중등교육의 후기과정 3학년 말에 실시한다.
이는 중등교육의 수료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적성을 시험하는 것으로, 이에 합격하면 무시험으로 국립 종합대학 등에 입학할 수 있다(단, 법학부 이외는 학부로 진학하는 단계에서 시험을 치른다).
프랑스의 지방 자치단체인 교육청(Rectorat) 교육아카데미가 관장하며, 지역에 관계 없이 전국적 효력을 가진다.
스톡홀름 증후군 [Stockholm syndrome]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법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처음에는 인질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심리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인질사건과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게 되면 강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겨 차츰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자신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까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리마 증후군이라고 한다. 1997년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조직 요원들이 127일 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족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고, 미사를 개최하는 등의 현상을 보였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인터내셔널바칼로레아 [International Baccalaureat]
1962년 제네바의 국제학교와 국제학교협회가 중심이 되고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협력하여 이 제도를 관장하는 본부를 스위스에 설립, 1970년부터 실시하였다.
이 제도에는 국가가 자금을 갹출해서 가맹하는 경우와, 아메리칸 스쿨과 같은 국제학교가 각기 가맹하는 경우가 있다. 본부가 공인하는 국제학교에서 2년간 수업한 후, 공통입학시험에 합격하면 가맹국의 대학 입학자격 또는 수험자격을 얻는다.
피그말리온효과 [Pygmalion effect]
로젠탈효과, 자성적 예언,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도 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이다.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여신(女神)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여인상에게 생명을 주었다. 이처럼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여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교육심리학에서는 교사의 관심이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1968년 하버드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과 미국에서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한 후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한 반에서 20% 정도의 학생을 뽑았다. 그 학생들의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지적 능력이나 학업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라고 믿게 하였다.
8개월 후 이전과 같은 지능검사를 다시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명단에 속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높게 나왔다. 뿐만 아니라 학교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기대와 격려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 연구 결과는 교사가 학생에게 거는 기대가 실제로 학생의 성적 향상에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필즈상 [Fields Medal]
그 학문상의 중요성에서 '수학에 있어서의 노벨상'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노벨상에는 수학부문이 없기 때문이다. 192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국제수학자회의의 조직위원회가 개최되었을 때, 그 이후 4년마다 개최되는 국제수학연합이 있을 때마다 전회의 회의에서 다음번의 회의 사이에 수학의 새로운 분야의 개척에 공헌한 2∼4명의 수학자에 대해서 금메달을 증정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상(賞)의 자금은 당시 토론토대학교의 수학과 교수인 J.C.필즈가 기부하였다. 그는 이 상이 전세계의 어느 나라의 수학자에게도 주어질 것,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업적에 대한 표창인 동시에 그것을 수령한 수학자의 장래의 정진(精進)에 대한 장려의 뜻을 포함한다는 것을 희망하였다.
실제로 이 상이 주어지기 시작된 것은 1936년부터였다. 193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개최된 국제수학연합에서 수상위원회가 조직되어 이탈리아의 세베리가 위원장이 되고 1936년 오슬로회의에서 최초로 핀란드인 L.V.알프르가 함수론으로, 그리고 미국인 J.더글러스가 플래토문제(Plateau's problem:공간 내에 주어진 폐곡선을 경계로 하는 곡면 중에서 그 겉넓이가 최소가 되는 것을 구하는 문제)의 연구로 상을 받았다. 국제수학연합은 통상 4년에 1회 개최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1936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50년까지 개최되지 못하였다. 1960년 이후는 4년마다 회의가 있었고, 회의 때마다 이 상이 수여되었다.
CAI [Computer Assisted Instruction]
컴퓨터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개인의 적성(適性)이나 이해력에 즉응(卽應)하는 개별교육까지 실시하는 프로그램학습을 말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교재나 문제를 제시하여 그에 대한 학생의 반응을 살피고 이를 평가해서 다음 교육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와 같은 교사의 활동을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대량정보 처리능력을 이용하여 대행시키는 것이다.
컴퓨터에게 인간인 교사의 역할을 완전하게 대행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나, 지식의 정확한 기억이나 개별화 등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훨씬 우수하다. 한편 수업 전개의 모든 과정에 컴퓨터를 사용해서 필요한 정보의 처리는 물론 결정을 행하게 하는 시엠아이(CMI:computer managed instruction)도 계속 연구되고 있다.
시엠아이 [CMI]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instruction' 대신 'learning'을 써서 CML로 약칭한다. 시엠아이란 단순히 성적이나 회계 등의 사무처리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일제학습이나 개별학습에 있어서 개인에 맞는 학습을 위하여 학습지도 과정의 설계·실시·평가 등 각 단계에 필요한 데이터의 수집·축적·가공·검색·활용 등을 꾀하는 교육방법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설계된 시스템이 곧 CMI 또는 CML 시스템이다. 따라서 CMI 시스템은, 그 기능이라 할 수 있는 학습자의 향상기록, 개인차의 측정, 교수계획이나 교재계열의 조정·선택, 학습상태의 진단과 처방 등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NIE [Newspaper In Education]
우리말로는 ‘신문 활용 교육’으로 풀이된다. 1930년대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뉴욕타임스》가 신문을 교실에 배포하며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청소년의 문자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학교 수업에 신문 활용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1958년 미국신문발행인협회(ANPA)가 NIE의 전신인 NIC(Newspaper In the Classroom)를 주도하면서 본격 확산되었다.
1976년 NIC는 NIE로 바뀌는데, 이는 학교뿐 아니라 병원·감옥·기업체 등 다른 기관의 학습 활동에서도 폭넓게 신문을 활용하던 캐나다 일간신문발행인협회의 제안을 미국신문발행인협회가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통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4년 현재 모두 950여 개 신문사가 NIE를 실시하고, 10만여 개의 학교가 NIE를 실천하고 있다. 또 세계신문협회(WAN)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세계적으로 52개 국이 NIE를 도입했다.
NIE의 목적은 신문에 실린 정보를 활용해 교육 효과를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교양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신문의 기능과 역할, 제작 과정을 개론적 수준에서 이해해 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하는 학습에도 중점을 둔다. 따라서 NIE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신문사와 학교 등 교육주체 사이의 교육적 협력관계가 꼭 필요하다.
신문에는 매일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정보가 실리므로 이를 활용하면 유익하고 실용적인 학습이 가능하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신문이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NIE는 이러한 신문의 특성을 교육에 반영해 지적 성장을 꾀하고 학습효과를 높이는 교육 방법을 통틀어 일컫는다.
크게 신문의 구성요소인 기사를 활용하는 방법, 사진을 활용하는 방법, 시사만화를 활용하는 방법, 광고를 활용하는 방법과 신문의 형식 자체를 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학습자의 지적 수준이나 학습목표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서 가장 주된 방법은 정보가 가장 많이 들어있는 기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미 검증된 교육 효과로는 ①종합적인 사고 및 학습능력 향상 ②독해 및 쓰기능력 향상 ③논리성과 비판력 증진 ④창의력 증진 ⑤문제해결 및 의사결정 능력 배양 ⑥올바른 인성 함양 ⑦민주 시민의식 고취 ⑧공동체에 대한 관심 및 적응능력 제고 ⑨정보 및 자료의 검색·분석·종합·활용 능력 제고 ⑩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인식 제고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94년 5월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교육부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내 학교 교육에 NIE를 도입할 것을 건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처음으로 한국언론연구원이 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NIE 연수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1995년에는《중앙일보》가 신문사로는 맨먼저 NIE를 도입하고 관련 지면을 발행하였다. 2004년 현재 10여 개 신문사가 직·간접적으로 NIE를 실천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문화
레드콤플렉스 [red complex]
적색공포증이라고도 한다.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과장되고 왜곡된 공포심과, 그 공포심을 근거로 한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거나 용인하는 사회적 심리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6 ·25전쟁을 겪고 분단된 국토에서 남북이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해 온 한국의 현실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일반인의 마음 속에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하여 한국 현대사에서 정권에 의하여 레드 콤플렉스가 체제안정과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사건이 왜곡되거나 부당한 탄압을 받은 사람들도 많은데, 군사독재정권하에서 민주·통일운동에 헌신했던 문익환(文益煥) 목사가 대표적이다.
국민대학교 최종욱 철학교수 등은 《레드 콤플렉스》라는 제하의 책에서 레드 콤플렉스의 가해자와 피해자인 작가·교수·정치인·예술가·인권운동가 등에 대한 인물 비평을 시도하였다. 이들이 어떤 이유와 배경에서 발언하고 활동했는지를 통해 레드 콤플렉스가 어떻게 인간성을 철저히 파괴했는지 그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주사파 정국을 이끌었던 박홍 전 서강대학교 총장, 자전소설 《변경》을 통해 레드 콤플렉스를 부추긴 작가 이문열, 평화통일론자에서 대북대결주의자로 평가된 김영삼 전 대통령, 레드 콤플렉스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진실을 위한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9번 투옥되는 곤욕을 치른 지식인 리영희 등이다.
메세나 [Mecenat]
메세나는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등 문화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로마제국의 정치가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에서 유래한다.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쓴 이후, 각국의 기업인들이 메세나협의회를 설립하면서 메세나는 기업인들의 각종 지원 및 후원 활동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예술·문화·과학·스포츠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공익사업에 대한 지원 등 기업의 모든 지원 활동을 포괄한다. 기업 측에서는 이윤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기업 윤리를 실천하는 것 외에, 회사의 문화적 이미지까지 높일 수 있어 홍보전략의 수단으로도 유리하다.
2003년 현재 세계 각국에 메세나협의회가 조직되어 있지만, 명칭은 국가마다 다르다. 1997년부터는 국제 기업예술지원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Business Arts Association)가 조직되어 같은 해 창립 총회를 연 이후 해마다 개최하는데, 이 회의에서는 주로 각국의 메세나 현황을 토의하고 정보를 상호 교환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한국에서는 1994년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의식을 높여 문화예술 인구의 저변을 넓히고, 한국의 경제와 문화예술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비영리 사단법인인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발족하였다. 2003년 현재 회원은 134개 기업이며, 창립 이후 1기업 1문화 운동, 문화예술 운동 체험 모임, 학술세미나 개최, 국제회의 참가, 메세나 대상 시상 등의 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수조 원 규모에 달하는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문화예술 분야 지원금은 연간 1000억 원 정도에 지나지 않아 메세나 운동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밈 [meme]
영국의 생물학자 도킨스(Richard Dawkins)가 1976년 출간한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 만들어 낸 용어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문화의 전달은 유전자(gene)의 전달처럼 진화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언어·옷·관습·의식·건축 등과 같은 문화요소의 진화는 유전자의 진화방식과는 다르다. 따라서 문화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유전자가 복제되는 것과 같은 복제기능이 있어야 한다. 즉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는 것과 같이 문화의 전달에도 문화의 복제 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 곧 중간 숙주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정보의 단위·양식·유형·요소가 바로 밈이다.
즉,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사람의 문화심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밈이다. 《옥스퍼드영어사전》에도 올라 있는데, '모방 등 비유전적 방법으로 전달된다고 생각되는 문화의 요소'로 정의되어 있다. 도킨스는 '진(gene)'처럼 복제기능을 하는 이러한 문화요소를 함축하는 한 음절의 용어를 그리스어(語) '미메메(mimeme)'에서 찾아내 여기서 밈을 만들어냈다. '미메메'에는 '모방'의 뜻이 들어 있다.
밈의 전달 형태는 유전자가 정자나 난자를 통해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전달되는 것과 같이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전달된다. 이러한 전달과정에서 각각의 밈들은 변이 또는 결합·배척 등을 통해 내부 구조를 변형시키면서 진화한다.
따라서 음악이나 사상, 패션, 도자기나 건축양식, 언어, 종교 등 거의 모든 문화현상들은 밈의 범위 안에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선행 혹은 악행이 여러 명에게 전달되어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밈의 한 예에 속한다.
베른조약 [Berne Convention]
정식 이름은 ‘문학 및 미술 저작물 보호에 관한 국제협정(協定)’. 만국저작권보호동맹조약이라고도 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외국인의 저작물을 무단출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위고가 명예회장으로 있던 국제문예협회의 강력한 주장이 이 조약 체결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조약은 약 20년마다 규정을 개정하는 관습이 있는데, 1908년에는 베를린, 1928년에는 로마, 1948년에는 브뤼셀, 1967년에는 스톡홀름, 1971년에는 파리에서 각각 규정의 개정(改正) 회의가 열렸다.
이 조약에는 첫째, 저작물의 완성으로써 저작권이 발생하는 것으로 하고, 등록(登錄)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른바 무방식주의(無方式主義)를 채택하고 있는 점과, 가맹국은 서로 다른 가맹국 내에서 공표된 저작물은 물론이고, 아직 공표되지 않은 것이라도 서로 보호할 것. 이것은 이른바 속지주의(屬地主義)로서, 설사 가맹국 국민의 저작물이라도 가맹국 이외의 장소에서 최초로 발표된 것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 다음은 ‘내국민 대우’라고 하여 보호를 필요로 하는 외국인의 저작물에 대해서도, 그 국가가 자국민(自國民) 저작물에 대하여 부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보호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대국의 보호기간이 자기 나라의 기간보다 짧을 경우에는 짧은 쪽의 기간만큼만 보호하면 된다는 점(이것을 보호기간의 상호주의라 한다) 등이 있으며, 그 조항들이 이 조약의 핵심이 된다.
이 조약 이외에 따로 세계저작권협약이 있지만, 베른조약이 세계저작권협약에 우선하므로 모든 것을 베른조약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되도록 되어 있다. 보호기간은 사후기산주의(死後起算主義)로 되어 있으며, 브뤼셀 규정에서는 ‘사후 50년보다 짧아서는 안 된다’라고 되어 있고, 영화·사진·응용미술에 관해서는 각국의 자유결정에 맡겨져 있다. 이 조약의 해석에 관해서 만약 분쟁이 생길 경우에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의뢰(依賴)하기로 되어 있다. 이밖에 라디오·텔레비전·미술 추급권(追及權) 등에 관한 새로운 규정이 추가되었으며, 1967년 발전도상국(發展途上國)에 특례(特例)를 인정하는 스톡홀름 개정규정이 성립하기는 했으나, 비준국(批准國)이 극히 적어 아직 발효(發效)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 1995년 7월부터 발효됨에 따라 1996년 가입하였다. 2003년 현재 가맹국은 150여 개국이다.
서브컬처 [subculture]
하위문화(下位文化) 또는 부차적 문화(副次的文化)라고도 한다. 즉, 어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행동양식과 가치관을 전체로서의 문화라고 할 때, 그 전체적 문화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어떤 점에서는 독자적 특질을 나타내는 부분적 문화가 곧 서브컬처이다.
이것은 전체사회 속의 특정한 사회층이나 집단을 담당자로 하는 독특한 행동양식 및 가치관으로서, 이른바 '문화 속의 문화'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상류계층의 문화, 화이트칼라의 문화, 농민의 문화, 도시의 문화, 청소년문화, 군사문화(軍事文化), 불량배 집단의 문화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 이들 서브컬처를 하나의 전체적 문화(또는 上位文化)로 보고, 다시 그 안에서의 서브컬처를 생각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서브컬처인 청소년문화를 전체적 문화로 본다면 학생문화는 또 다른 하나의 서브컬처가 될 수 있다.
서브컬처의 개념은 1950년대 후반, 미국 사회학에서의 비행연구(非行硏究:비행소년들이 형성하고 있는 독특한 비행하위문화의 연구)에서 발전한 것이며, 오늘날에는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계층문화, 연령층문화, 직업문화, 지역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두루 쓰이게 되었다.
서브컬처는 전체적 문화로부터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독자성을 가지는 문화이기 때문에, 이 문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전체문화 속에서는 채울 수 없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또, 그들에게 심리적인 지주(支柱) 구실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시에 다양한 서브컬처의 존재는 문화의 획일화를 방지하고 문화에 동태성과 활력을 불어넣는 작용을 한다.
서브컬처와 전체문화, 또는 주요문화 사이의 기능적 관계는 대개의 경우 상호 보완적이다. 즉, 서브컬처는 그 독자성을 통해 지배적인 문화구조를 보완하고, 이의 유지·존속에 공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배적 문화에 대립·저항하는 대항문화(counter culture)로서의 작용을 하는 일도 있다. 즉, 서브컬처의 독자성이 강하여 그 내용이 지배적 문화에 대하여 비판적·적대적이며, 더욱이 그것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때에는 대항문화로서 작용, 지배적 문화구조의 동요와 변동을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문화형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가령, 히피의 활동과 신좌익운동이 등장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의 선진적 산업사회에서의 청소년문화에서는 그와 같은 대항문화적인 성격을 확실히 찾아볼 수 있다.
수치문화 [羞恥文化, shame culture]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R.베네딕트가 처음 사용하였다. 베네딕트는 수치문화에 대응하는 문화로서, 내면적 죄의식을 중시하는 행동양식을 죄의식문화(罪意識文化)라고 하였는데, 전자가 동양적 특징을 지닌 문화인데 대하여 후자는 서유럽 문화의 전형(典型)이라고 주장하였다.
언해두창집요 [諺解痘瘡集要]
활자본. 2권 1책. 1608년(선조 41) 어의(御醫) 허준(許浚)이 왕명으로 편찬 번역하였다. 책 끝에 있는 허준의 발문에는 임진왜란으로 없어진 《두창집(痘瘡集)》 《태산집(胎産集)》 《구급방(救急方)》 등 세 가지 의서를 다시 엮어 한글로 간행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카피레프트 [copyleft]
자유소프트웨어(free software)라고도 한다. 지적재산권(저작권)을 의미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저작권의 공유(共有)를 뜻한다. 1984년 미국의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이 소프트웨어의 상업화에 반대해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하자는 운동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
스톨먼은 인류의 지적 자산인 지식과 정보는 소수에게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작권으로 설정된 정보의 독점을 거부하였다. 이어 리누스 토르발즈(Linus Torvalds)가 유닉스를 기반으로 개발한 공개용 오퍼레이팅시스템인 리눅스(Linux) 프로그램을 공개하자, 카피레프트 운동에 참여한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리눅스 커널을 채택하면서 이 운동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카피레프트 운동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모든 저작권의 공유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한국에도 1990년대 중반 정보통신 운동단체들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러한 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업들도 저작권 보호를 고집하지 않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검색 소프트웨어를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복제를 허용한 뒤 검색에 필요한 검색장비 시장을 공략하는 것 등이 카피레프트 전략의 좋은 예이다.
팬픽션 [fan fiction]
줄여서 팬픽(fan fic)이라고도 한다. 만화·영화·소설·드라마 등 일정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널리 인기를 끄는 작품이 있을 경우, 이들 작품을 모태로 팬(fan)이 직접 자신의 뜻대로 원작을 비틀기(패러디)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용을 전개시켜 나가는 방식의 작품을 통틀어 이르는 개념이다. 따라서 원작과 내용이 거의 비슷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곧, 원작의 어느 한 부분이나 전체가 팬이 생각하고 의도하는 방향과 달라 '이 부분은 이렇게 했으면 좀더 좋을 텐데', 혹은 '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독자(시청자)가 직접 원작을 보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작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하는 일체의 작품을 말한다.
보통 팬아트(fan art)와 함께 팬컬쳐(fan culture:팬문화)·팬워크(fan work)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는데, 인터넷의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거리낌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대상이 생길 경우, 이 대상은 곧 팬들을 불러모으게 되고, 팬들은 다시 인터넷을 통해 몰입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대상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면서 그 대상에 대한 팬사이트까지 생겨나게 되었는데, 팬픽션은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원작의 캐릭터만을 빌려올 수도 있고, 등장인물을 늘리거나 줄일 수도 있으며, 도입부나 결말부의 어느 한 부분만 바꿀 수도 있는 등 팬이 원하는 어떠한 방향으로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팬픽션을 단정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팬들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픽션을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로 인해 수준에도 못 미치는 많은 팬픽션이 인터넷 공간에 떠돌아다닐 수 있고, 또 아무리 좋은 팬픽션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비틀기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창작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슬레이어즈' 의 경우, 2002년 현재 미국 내에만 60여 개의 전문 사이트가 있고 슬레이어즈 팬 사이트만도 800여 개나 된다. 한국에서도 2000년 이후 N세대(Net Generation: 사이버 공간을 삶의 중요한 무대로 인식하고 활동하는 1977년 이후 출생자들)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많은 사이트들이 존재한다.
예술음악
가야금산조 [伽倻琴散調]
5∼6개의 장단구성에 의한 악장으로 구분되며,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보다 먼저 발생하였고, 또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19세기 말 고종 때 김창조(金昌祖)에 의하여 틀[型]이 짜여졌다고 하나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즉 김창조와 동년배인 한숙구(韓淑求)·심창래(沈昌來)·박팔괘(朴八卦) 등도 산조를 연주한 점으로 미루어 김창조산조를 효시로 볼 수 없다는 설이다.
그리고 산조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시나위(또는 심방곡)와 판소리가 연주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틀이 잡히기 전의 유사 산조는 김창조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김창조가 그 가락들의 틀을 짜서 오늘날과 같은 산조의 체계를 세웠다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김창조 이후 많은 가야금산조의 명인이 탄생하였는데, 이들은 각기 나름대로 가락을 지어서 보유자(保有者)의 이름을 붙여 제(制)·류(流)로 가야금산조를 전하고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가야금산조의 계보를 보면, 이 중 널리 알려져 있는 한성기류(韓成基流)·최옥삼류(崔玉山流)·김병호류(金炳昊流)·강태홍류(姜太弘流)·안기옥류(安基玉流)·김종기류(金宗基流)·박상근류(朴相根流)·심상건류(沈相健流) 등이 있다.
게르니카 [Guernica]
크기는 349×775cm이며, 에스파냐의 소피아왕비 미술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게르니카는 에스파냐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에스파냐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館)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조국의 비보에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붙였다.
이 작품은 파리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프랑코 체제가 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그림반입을 거부하고, 1939년 에스파냐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 후 반드시 프라도에 전시할 것 등의 조건으로 이 작품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형식으로 빌려주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한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1981년에야 에스파냐에 반환되어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일부 정치인과 예술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소피아왕비 미술센터로 옮겼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의 테마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
과다니니 [Guadagnini]
18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바이올린과 첼로 제작으로 이름을 떨친 이탈리아의 가문과 그들이 만든 악기의 명칭으로, 그들이 제작한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Stradivari)·과르네리(Guarneri)와 함께 세계 3대 명품으로 꼽는다.
처음으로 과다니니를 제작한 사람은 스트라디바리의 제자인 로렌초 과다니니로, 현악기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에밀리아로마냐주(州)의 피아첸차에서 활동하면서 기틀을 닦았다. 그의 아들 조반니 바티스타(Giovanni Battista)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과다니니의 명성을 확립하였고, 특히 말년에는 스트라디바리의 영향을 받아 많은 명품을 제작하는 등 이름을 떨쳤다.
특히 과다니니는 바이올린뿐 아니라 첼로로도 명성을 얻었는데, 보통 첼로보다 길이가 짧고 너비가 넓으며, 양쪽 측면이 깊어 연주하기에 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도 어마어마해 명품은 보통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한국인으로는 첼리스트 장한나가 1757년 작품인 조반니 바티스타 과다니니를 사용하며,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1753년 작품)·강동석·장영주·김남윤 등도 과다니니를 사용하고 있다.
국민악파 [國民樂派, nationalist school]
1848년 프랑스 2월혁명 이후 그 영향을 받아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나라들 사이에 독립운동이 성행하고 그것이 음악상의 운동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러시아에서는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저지하려던 제정(帝政)의 탄압정책에 반대하는 운동형식으로 나타났다. 국민악파의 음악적인 특징의 하나는 독일 ·오스트리아의 기악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배적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예술음악 속에 살리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던 보헤미아에서는 B.스메타나가 민족적인 제재에 의한 오페라와 교향시를 작곡하여 국민악파의 기반을 굳히고, 이어서 A.드보르자크도 민족적 색채가 짙은 교향악과 실내악곡 등을 작곡하였다.
헝가리에서는 에르켈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에서 벗어나 참다운 헝가리적인 국민 오페라를 썼으며, 폴란드에서는 모뉴시코가 많은 민족적인 오페라를 남겼다. F.리스트와 F.F.쇼팽은 주로 국외에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보통 국민악파에 포함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는 글린카가 국민주의적인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으며, 발라키레프, 큐이, 무소르크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보로딘 등 소위 5인조가 국민악파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꼽힌다. 이 밖에 북유럽에서는 덴마크의 게제, 노르웨이의 그리그 등이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썼다.
그래미상 [Grammy Award]
전미국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NARAS:Nation Academy of Recording Arts & Science)에서 주최하는 음반업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1957년 제정되어 1959년 제1회 시상식을 한 이래 매년 봄에 열리며, 영화의 아카데미상에 비견된다. 팝(포퓰러뮤직)과 클래식을 아우르며, 우수레코드·앨범·가곡·가수·편곡·녹음·재킷디자인 등 총 43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수상자는 음악인·음반산업자·프로듀서·스튜디오기술자 등으로 이루어진 NAR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하며, 각 부문 수상자에세는 축음기 모양의 작은 트로피(그래미:축음기를 뜻하는 그래머폰의 애칭)가 주어진다. 또 본상 외에 25년 이상 된 앨범들 가운데 예술적 완성도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작품에 수여하는 명예의 전당상, 뛰어난 예술 성과를 올린 음악인에게 수여하는 평생공로상, 2000년에 신설된 라틴 그래미상 등이 있다.
음악적 역량, 예술성·연주·녹음·역사성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수상자로 결정하기 때문에 음반업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기는 하지만, 비영어권 음악과 가수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라는 비난도 받는다.
2002년 제44회 시상식이 2월 28일에 열렸는데, 미국의 앨리샤 키즈(Alicia keys)가 신인상과 올해의 노래,최우수 리듬 앤드 블루스(R&B) 앨범,최우수 R&B 여성보컬,최우수 R&B 노래 등 5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재미 한인2세 조지프 한이 최우수 하드 록 보컬상을 공동 수상하였고, 일본의 신시사이저 연주자 기타로[喜多郞]가 최우수 뉴 에이지 앨범상을 수상함으로써 일본인으로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에 이어 두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극사실주의 [極寫實主義, hyperrealism]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라디칼리얼리즘 ·샤포포커스리얼리즘 ·포토아트라고도 한다. 같은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시도된 비슷한 경향의 미술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처럼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며, 아무 뜻없이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다루어진다. 또한 감광제(感光劑)를 캔버스에 발라 직접 프린트하는 경우도 있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리얼리즘으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따라서 극사실주의는 팝 아트와 같이 매일매일의 생활, 즉 우리 눈앞에 항상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한편 팝 아트와는 달리 아주 억제된 것이어서 아무런 코멘트 없이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만 취급한다. 그러나 감정이 배제된 채 기계적으로 확대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추악함, 이를테면 모발에 가려진 점이나 미세한 흉터까지도 부각되어,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현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극사실주의는 미국적인 즉물주의(卽物主義)가 낳은 미술사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종래의 추상미술과 사진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로는 작품제작에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C.클로스, H.캐노비츠, M.몰리 등과 사진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을 대상으로 하는 P.펄슈타인, S.틸림 등이 있다.
낭만파음악 [浪漫派音樂, romantic music]
낭만주의 음악이라고도 한다. 그 초기는 고전파의 말기와 겹치며 그 말기는 근대음악의 발단과 겹친다. 일반 역사의 시대 구분으로는 프랑스혁명으로부터 19세기 말의 제국주의적 경향이 성행했던 시기로 잡는 것이 보통인데, 이 약 100년간은 인류 발전상 극히 주목할 만한 시기였으며, 또한 사회적으로도 착잡한 양상을 드러냈던 시대였다.
낭만파 음악의 바탕이 된 사조의 하나는 개인주의 사조이다. 이것은 휴머니즘이 극히 주관주의적 경향을 띠게 됨으로써 일어난 것으로, 그 결과 지나친 개성의 편중을 초래하여 갖가지 분열을 일으키게 되었다. 또한 개성의 편중경향이 짙어지자, 정열의 연소현상이 일어나 거기에서 공상의 세계가 펼쳐지게 되었다. 이성을 부정한 정열의 세계가 병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그 결과 불건전한 데카당스로까지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성의 분열이며, 그로 인해 고전주의 음악의 바탕인 전인성(全人性)까지도 완전히 붕괴되었다.
개인주의적 경향과 함께 낭만파 음악의 바탕이 된 또 하나의 사조는 국민주의이다. 국민주의가 가장 강렬했던 나라는 독일인데, 그것은 나폴레옹의 압박에 대한 반항에서 일어났다. 즉, 나폴레옹의 세계 정복에 대한 반발에서 국민성에 눈뜨고 국민주의를 강화하게 되었다. 이 국민주의는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고, 특히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국민주의는 범슬라브 민족운동에 뿌리를 박은 강력한 것으로서, 그 음악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패배로 프랑스에서도 새로운 국민음악운동이 일어났으며, 이에 의해서 프랑스는 근대음악에서의 지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국민주의의 발전과 함께 세계 각국에는 국민음악이 새로 생겨나 화려한 음악의 꽃을 피웠다. 음악상에 나타난 국민주의는 먼저 모국어의 존중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낭만파 음악에 대한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여, 특히 모국어에 의한 문학과의 결합은 음악에서 다시 없는 큰 힘이 되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새로운 음악이 생겨났는데, 특히 가곡 ·오페라 ·교향시를 중심으로 한 표제음악의 3자는 그 가장 뚜렷한 예이다. 문학과의 결합이라는 것은 음악이 음 자체의 결합에 의해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음의 말로써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데서 극 또는 극적 구성이라는 것이 낭만파 음악의 본질적인 것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오페라뿐만 아니라 교향시에서도 극적 구성은 그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 가곡분야에서도 발라드와 같은 극적 구성을 가진 것이 나타났다. 개성의 편중경향에서 정열의 연소라는 특징이 생겨났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격렬한 정열을 불태우면 태울수록 인간은 현실에서 멀어져간다.
그리하여 현실에 대해 절망을 느끼고 공상이나 환상의 세계에서 구원을 찾으려고 한다. 낭만파 음악에서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것은 큰 특징으로 되어 있다. 또한 19세기가 지니고 있던 한없는 불안은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하여 종교에 의한 구원을 희구하게도 하였다. 특히 공상세계에 대한 동경이 강한 낭만주의자에게 있어서는, 그 공상의 세계가 종교적 신비의 세계로 대치되는 일이 쉽게 생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낭만파음악은 공상이나 환상의 세계를 노래했고, 종교적 신비나 신앙의 세계도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내드름
'드름'은 가락을 뜻하는 우리말로, 내드름은 '내는 가락'이라는 뜻이다. 한 악절을 시작할 때 그 음악의 성격을 제시하는 가락으로서, 주제의 씨앗을 던져주는 기능을 한다.
강원도 민요 《한오백년》의 경우, 음악을 시작할 때 후렴구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가 먼저 나오는데, 이와 같이 한 악절을 시작할 때 그 음악의 성격을 제시하면서 나오는 머릿장단을 말한다.
호남 우도(右道)의 판굿 《오방진》에서 쇠가락·장구가락 등이 나오기 전에 내는 장단인 '갱-개갯-갯-갱-개갯-갯'이 바로 내드름으로, 이 장단이 끝난 뒤에야 다음 가락으로 이어진다. 곧 한국 고유의 음악인 판소리·산조·농악 등에서는 처음에 제시하는 내드름의 선율이나 리듬을 타고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다가 맺고 풀어 종지한 뒤 다시 다른 가락을 내게 되는데, 이때 제시하는 첫가락이 내드름이다.
녹턴 [nocturne]
야상곡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어의 노투르노(notturno)와 같은 뜻이기도 하나, 노투르노는 18세기의 세레나데(serenade)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녹턴을 맨 먼저 작곡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J.필드로 알려져 있다. 그의 20곡에 가까운 녹턴은 쇼팽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또 쇼팽에 의해서 정교하고 세련된 피아노소품으로 완성되었다. 분산화음(分散和音)의 반주를 타고 느린 속도로 꿈을 꾸는 듯한 오른손의 선율이 흐른다. 녹턴에는 피아노독주곡 이외에도 A.보로딘의 《제2현악 4중주곡》(제3악장), F.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중의 관현악곡 등이 있다. 또 C.A.드뷔시는 여성의 합창을 곁들인 관현악을 위한 3악장으로 이루어진 인상파적 작풍의 《녹튀른》을 작곡하여 녹턴이란 이름에 새로운 뜻을 부여하였다.
누보레알리슴
신현실주의로 번역된다. 1960년 4월, 밀라노의 아폴리네르화랑에서 최초로 선언하여 “사회의 현실을 논쟁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다”는 뜻을 밝히고, 이어 6월 파리의 리브도로워트화랑에서 “현실은 허구를 능가한다”는 표어를 내걸고서 ‘파리―뉴욕 누보레알리슴전(展)’을 개최하였다.
구성원은 이브 클라인, J.팅겔리, 니키 드 생파르, F.아르망, B.세자르 등 외에, 뉴욕의 네오다다이즘의 미술가들도 참가하였다. 그들은 추상표현주의에의 반동으로 현대의 도시적 현실의 제시를 노리는 일종의 반예술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62년 뉴욕, 1963년 뮌헨, 1970년 밀라노에서 개선전(凱旋展)을 개최하고, 이 운동을 종식시켰다.
대위법 [對位法, counterpoint]
‘음표 대 음표’를 뜻하는 라틴어 푼크투스 콘트라 푼크툼(punctus contra punctum)에서 유래하는 말로, 음악은 단선율의 경우를 제외하면, 음의 수직적 결합(화음 ·화성)과 수평적 결합(melody)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겸비하고 있는데, 어느 것이 우위에 있는가에 따라서 화성음악(homophony)과 다성음악(polyphony)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전자의 기법이 화성법, 후자의 기법이 대위법이다. 그 때문에 다성음악을 대위법적 음악이라고 부를 때도 많다. 대위법에서는 각 성부가 명료하게 식별할 수 있는 선율적 독립성을 지니며, 또한 여러 성부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서양음악의 역사에서는 16세기 말까지가 다성음악의 시대이며,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말까지가 화성음악의 시대에 해당하고, 17 ·18세기 및 20세기는 양자의 공존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연대의 길이로 보아서도, 대위법은 서양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기법 ·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레퀴엠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의 독창(소프라노 ·바리톤), 합창 및 관현악을 위한 종교곡(작품번호 45). 독일진혼곡이라고도 한다. 약 10년에 걸쳐 작곡, 1868년에 완성된 것으로 모두 7곡으로 되었다. 일반 레퀴엠과는 달리 가사는 라틴어가 아니라 루터가 성서를 번역했던 독일어로 그대로 쓰고 있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악회용으로 작곡한 것이며, 분노의 날, 최후의 심판, 부활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의하여 남게 된,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하여 작곡한 것이다.
로코코미술 [Rococo art]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도 퍼져나갔다. 로코코라는 말은 프랑스어의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한다. 본래는 당시 귀족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양식 내지 공예품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이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는 유럽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그 어원에서 오는 조소적(嘲笑的)인 의미는 불식되고, 독자적인 형식감정과 이에 부응하는 창조적이며 자율적인 가치를 가진 미술양식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로코코는 그에 앞서는 바로크 미술이 즐겨 쓰던 부정형(不定形)이나 유동적인 조형요소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바로크의 연장 및 변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바로크가 지녔던 충만한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따위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유희적 정조로 바뀌었는데, 다시 말하면 바로크가 남성적 ·의지적(意志的)임에 비하여 로코코는 여성적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코코의 특색은 그 말의 어원인 로카유가 조개껍데기 세공(細工)이나 모양을 가리키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식미술, 특히 실내장식이나 가구류에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실내의 각 부분 또는 가구의 형태 등에 조개 모양이나 아칸서스무늬가 도입되고 혹은 그것들의 조합이라고 할 만한 곡선무늬가 뒤얽혀 물결친다. 건축가들은 당시의 살롱 문화를 배경삼아 이런 곡선을 활용하여 실내공간 자체를 원형적(타원형 또는 다각형)인 멋으로 처리하고 벽과 천장의 연결부분 또는 벽과 벽의 연결부분에도 분절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구조를 고안했다. 직선 ·직각을 가능한 한 배제하여 부드러운 곡선이 자유롭게 교차하도록 만들고 벽이나 천장의 색채도 담백하고 우아한 색조, 예컨대 흰 바탕에 금색으로 곡선무늬를 안배하는 것 같은 배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런 것은 바로크가 지닌 중후성이나 오만성과는 다른, 경쾌하고 화려한 취향이며 로코코의 특색은 어디까지나 회화적이고 평면적인 데에 있다.
로코코 건축의 최초 작품은 로베르 드 코트의 베르사유궁전 예배당인데 메소니에, 보프랑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이어서 오베르, 가브리엘 부자(父子)와 쿠르톤 등이 활약하였고, 보프랑이 만든 오텔 드 수비즈의 타원형 살롱, 또는 가브리엘의 퐁텐블로궁의 회의실이나 베르사유궁전의 여러 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은 당시의 취미를 잘 전해주고 있다. 가구 분야에서는 C.크레상이 일찍이 레장스 양식을 완성하였고, 루이 15세의 궁정소속 가구목수인 A.고드로라든지 P.미종, 독일 출생인 J.F.에벤이나 그의 제자인 J.H.리즈너 등도 유명하다.
로코코의 실내장식은 실내에 있는 그림 ·조각 ·공예 ·거울, 그 밖의 모든 것을 하나의 기조 위에 통합, 조화하려는 것이었으므로 그 특색은 공예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가구나 집기류는 모두 경쾌하고 우아한 형태와 무늬로 만들어지고, 자기(瓷器)에도 지나치게 도안화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인간이나 식물의 형태 ·무늬가 활용되었다. 좌우대칭의 전통이 깨지고 애시메트릭(asymmetric)한 자유로운 디자인이 등장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유럽에 유행하였던 중국 취미와 더불어 동양 공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또 회화가 번성한 시대이기도 하였다. 단지 귀족들만이 아니라 서민층에도 회화취미가 침투하여 전람회(살롱)를 통하여 화가와 대중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미술평론이라는 새로운 장르도 나타났다. 엄격한 데생을 주장하는 푸생파(구파)와 색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루벤스파(신파)의 대립을 거쳐 이 무렵에는 이미 신파의 승리가 결정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경쾌한 필치와 풍요한 색채에 의한 화려한 구도와 정서적인 표현방식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파 외에 베네치아파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색채와 함께 풍속화의 양식도 유입되어 사실적 표현이 애용되었다.
로코코 회화는 와토의 《키테라섬의 순례》(1717)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1721년 사망하기까지의 짧은 기간에 색과 선이 서로 융합되고 서로 연관되는 섬세 ·우아한 작품을 보이면서 품위있는 궁정 남녀의 유희도 등 걸작을 남겼다. 이어서 부셰나 그의 제자 프라고나르 등이 로코코조(調)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와토의 신선한 발상력은 차차 퇴조하여 코케트리는 에로티시즘으로 옮겨진다. 이런 현상은 프라고나르에 있어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는 궁정적 환경으로부터 부르주아적 환경으로의 이행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샤르댕은 소시민 사회의 겸허한 생활을 반영한 실내화나 정물화를 그렸고,‘교훈화’를 많이 그린 J.B.그뢰즈, 풍경화의 베르네도 이때 활약하였다. 뛰어난 초상화를 남긴 파스텔 전문화가 캉탱 드 라투르, J.M.나티에 등도 출현, 파스텔화를 독립된 회화로서 미술사에 올려놓았다.
조각에서는 J.B.피갈과 E.M.팔코네를 꼽을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은 먼저 프랑스에서 일어나 프랑스 왕권의 흥성과 함께 전유럽에 파급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것을 대폭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에서는 1720년경부터 약 50년간 로코코 양식이 건축계를 지배하였다. 다만 독일의 로코코 양식에는 바로크적인 장중미가 많이 남아 있는데, 장중한 건축과 경쾌 화려한 내부장식이 색다른 대조를 드러낸다.
론도형식 [rondo form]
그냥 론도라고도 한다. 주제부 A 사이에 삽입부(揷入部) B,C를 끼고 되풀이되는 형식으로, 이 형식은 17세기 프랑스의 클라브생악파의 롱도(rondeau)에서 발달하여, 18세기에는 독주용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의 끝악장에 쓰이게 되었다. 또 이 형식으로 독립된 악곡도 있다. ABA/C/ABA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으나, 이 기본형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변형(확대나 생략)도 이루어진다. 이 중간부 C에 중점이 두어져 소나타형식의 전개부처럼 다루어진 것은 론도 소나타형식이라고 한다. 론도의 초기의 예는 에마누엘 바흐와 크리스티안 바흐, 하이든 등의 소나타에서 볼 수 있다. 빈고전파의 협주곡 끝악장은 거의 이 형식에 따르고 있으며,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끝악장에도 많이 쓰이고 있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 낭만파음악에서는 흔히 자유롭게 변형되고 복잡화되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한때 쇠퇴했으나, 현대음악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마드리갈 [madrigal]
14세기의 것과 16세기의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14세기의 것은 2∼3연의 3행시에 2행의 리토르넬로가 붙었으며 연애시·전원시 등의 서정적·목가적 내용을 지녔고, 또 다성음악으로 시구의 부분에서 같은 선율이 되풀이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4세기 후반에 쇠퇴하였다. 16세기에는 14세기의 것과는 관계없이 당시 유행하고 있던 프로톨라를 예술적으로 세련되게, 플랑드르악파의 작곡가들이 폴리포닉작법을 도입하여 작곡하였다. C.제수알도, C.몬테베르디 같은 마드리갈의 대가들이 많이 나오고, 반음계법·음화법(音畵法) 등 풍부한 표현법이 생겨나, 칸타타·오페라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16세기의 이탈리아 마드리갈의 영향을 받아들인 영국 등의 작품도 마드리갈이라고 부른다.
모노크롬 [monochrome]
단색 사진이나 단색 영화를 모두 일컫는 말로, 미술에서는 한 가지 색이나 같은 계통의 색조를 사용하여 그린 그림을 말한다. 단색화로 번역되며, 다색화인 폴리크롬(polychrome)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1950~60년대의 현대회화에서 이러한 모노크롬적 경향이 많이 보이는데, 색채를 통해 배어나오는 인간의 감수성을 모두 배제한 하드에지 페인팅(hard edge painting)이나, 형태와 색채의 극단적인 절제를 표명한 미니멀 아트(minimal ar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채색이 기하학적으로 화면을 메워 승화된 감정의 극치를 보여준 절대주의의 대표자 K.S. 말레비치, 공간주의를 주창한 L. 폰타나, 비물질화를 통해 물질의 기화를 시도한 E.클랭, 무의미한 단색 화면을 통해 무념무상의 경지를 개척한 A.라인하르트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들의 작품은 완벽하게 감정이 여과되었다는 호평을 받은 반면에 지나친 결벽증에 의한 삭막한 공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F.스텔라, R.맨골드, R.라우션버그, P.만조니, E.켈리, A.마틴, R.라이만 등은 모노크롬의 대표적 작가들이다. 스텔라의 단색화는 무관계 미술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뉴욕 스쿨의 라우센버그는 흰색으로만 칠한 대형 작품을 발표하여 다른 뉴욕파 작가들과는 다른 감각을 보여주었다. 라이만은 질감이 다른 갖가지 종이를 사용하여 촉각이 느껴지는 흰색의 화면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만조니는 털이나 솜의 질감을 가진 흰색 파이버글라스 작품을 발표하여 단순한 평면 캔버스에 변화를 주었다.
단색의 사용은 회화뿐만 아니라 미니멀 조각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는데, J.맥클라겐은 판자에 광택 있는 원색을 칠하였으며, D.저드는 육면체에 채색을 하였고, D.플래빈은 채색된 형광등을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모노크롬 회화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서양에서처럼 다색화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의 모노크롬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정신세계로 승화시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중성적 논리를 펼친 것이 특징이다.
모노크롬 성향은 1980년대 이후 기하학적 작품이나,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리바이벌 형태를 구사한 P.타피의 작품에서 다시 선보였으나 과거와는 달리 사회적·문화적 메타포가 강하게 드러났다. M.탠지처럼 구상화에 모노크롬 기법을 도입하여 갈색 톤이나 청색 톤으로 일관되게 인물화와 풍경화를 구상한 작가도 있다.
삼현육각 [三絃六角]
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의 6개 악기로 이루어진 편성이다. 대개 관악영산회상(管樂靈山會相)·염불·타령·굿거리 같은 무용음악에 쓰이며, 길군악·길타령·길염불과 같은 행악(行樂), 양주별산대놀이·봉산탈춤·은율탈춤과 같은 가면극에도 쓰인다.
쉬르레알리슴선언
합리주의를 부정하고, 무의식의 외재화(外在化)에 의한 인간의 해방을 선언하였다. 1924년에 '제1선언'이, 1929년에 '제2선언'이 출판되었다.
'제1선언'에서 브르통은 쉬르레알리슴을 "구술·기술, 그 밖의 모든 표현 방법으로 사고의 참다운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동기술법(오토마티슴). 이성(理性)에 의한 모든 검열을 배제하고 미학상(美學上)·도덕상의 일체의 선입주(先入主)로부터 떨어져 이루어지는 사고(思考)의 참다운 복사(複寫)"라고 정의하였다. '제2선언'에서는 쉬르레알리슴과 유물사관을 제창하고,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함과 더불어 A.아르토, F.스포, R.데스노스, A.마송, F.피카비아 등으로부터 쉬르레알리스트의 자격을 박탈하였다.
스푸마토 [sfumato]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의 'sfumare'에서 유래했다. 회화·소묘에서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운 색의 변화를 표현할 때 쓰는 음영법이다. 물체의 윤곽선을 마치 안개에 싸인 것처럼 사라지게 하는 기법이다. 전체적인 정경은 독특한 분위기에 온화하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조르조네(Giorgione)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으며 플랑드르 미술(Flemish art)이나 베네치아파(Venetian school)에 의해 뚜렷한 효과를 보였다.
다 빈치는 기하학적 원근법의 견고성이 화면의 조화를 해친다고 보고, 윤곽을 분명히 하지 않고 오히려 없애거나 아주 연하게 하였다. 이 섬세한 명암법은 원거리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화면 전체에 심오한 깊이를 더해주는 효과를 낳았다. 즉 회화의 소재가 화면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작품으로는 다 빈치의 《The Virgin of The Rocks》(1483)와 18세기 프란시스코 고야의 《성 가족 La Sagrada Familia》(1780∼1785) 등의 작품에서 아기의 몸을 이 기법으로 표현했다.
시나위
신방곡(神房曲)·심방곡(心方曲)이라고도 한다. 한강 이남과 태백산맥 서쪽지방의 무속음악에서 유래한 기악곡으로서 특히 호남지방에서 많이 부른다. 어원은, 신라 때 노래를 뜻하던 사뇌(詞腦)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외래 음악인 당악(唐樂), 즉 정악(正樂)에 대하여 토속음악인 향악(鄕樂)으로 해석하여 당악보다 격이 떨어지는 음악의 일반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다.
심방곡은 당초 무당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옛 문헌에는 신방곡으로도 나오며,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의 기악곡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처럼 시나위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무속음악에서 영혼을 달래는 의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옛날에는 삼현육각 편성으로 시나위를 연주하였으나 지금은 가야금·거문고·해금 등의 현악기가 함께 연주한다. 연주 형태는 무당이 육자배기토리로 된 무가를 부르면 모든 악기는 저마다 허튼가락을 무가의 대선율(對旋律)로 연주한다.
이 때 무가의 선율과는 다른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다성적 효과를 나타낸다. 이같은 선율진행과 장단은 연주자들의 현장 호흡으로 맞추어지는 즉흥음악이므로 고도의 음악성과 연주기술을 요한다.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은 무의식이 아닌 민속음악에도 쓰이는데 이 경우도 시나위라고 부른다. 시나위는 조선 후기에 산조·판소리·잡가 등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판소리에는 시나위의 더늠이 간혹 보인다. 최근에는 일반인에 의한 시나위 연주는 거의 없고, 다만 살풀이춤의 반주나 순음악의 합주로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조직은 산조(散調)와 같다.
신품사현 [神品四賢]
신라의 김생(金生), 고려의 유신(柳伸)·탄연(坦然)·최우(崔瑀)를 말한다.
이들이 쓴 글씨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유신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新坪里) 송광사(松廣寺)에 있는 보조국사비문(普照國師碑文)과 탄연이 쓴 춘천에 있는 문수원기(文殊院記) 등이다.
전위예술 [前衛藝術] [avant-garde]
전위(아방가르드:avant-garde)란 본시 군대용어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의 뜻이다. 이것이 변하여 러시아혁명 전야 계급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적의식적으로 일관된 집단으로서의 정당과 그 당원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것이 이윽고 예술에 전용(轉用)되어 끊임없이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을 일변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예술경향 또는 그 운동을 뜻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화가 칸딘스키는 그의 저서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2) 속에서 '정신의 3각형'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위미술의 선구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시대의 정신생활이 형성하는 3각형 속의 저변(底邊)에는 광범위한 대중이 있고, 정점(頂點)에는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런데 이 3각형 전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앞으로, 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며, 오늘 고독한 정점에 있는 예술가의 예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내일은 지식인의 관심사가 되고 모레는 대중의 취미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는 시대의 통념과 절연(絶緣)하여 '정신의 내적 필연성'에 따름으로써 다음 시대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다다이즘은 여러 의미에서 예술의 한계를 타파하고 단순한 물체도 행동도 하나의 관념으로 일관할 때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여기에서 칸딘스키의 '정신의 3각형'은 역전하여 예술가는 기성의 통념을 파괴하고, 흔히 있는 물체나 우연한 행위와 구별할 수 없는 지점까지 개아(個我)를 추구하였을 때 비로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러시아·헝가리·독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그 후 각국에서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정치혁명과 예술혁명의 관계가 끊임없이 논의되고 전위예술의 개념은 널리 퍼졌다.
다다이즘·미래주의·구성주의(構成主義)운동이 그 초점이 되면서 이윽고 추상예술과 초현실주의가 전위예술의 2대 조류를 이루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기성예술에의 반항이나 혁명정신 그 자체가 대중사회의 다양한 풍속 속에 확산하여 전위예술은 특정 유파나 운동에 그치지 않고 첨단적인 경향의 총칭이 되었다.
오브제 [objet]
미술에서는 일반적으로 '주제'와 대조적으로 사용된다. 현대회화, 특히 세잔 이후 큐비즘(입체파) 등에서는 주제성을 배제하고 물체를 중히 여겼다. 그러나 오브제라는 말이 특수한 용어가 된 것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나타난 이후부터이다.
M.뒤샹이 1917년에 기성품 변기를 《샘(泉)》이라는 주제를 붙여 전람회에 출품한 것과 같이 다다이즘 시대에는 기성의 일용품이나 기계부품 등이 반예술형식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초현실주의에서는 다시 자연물·수학적인 모형, 미개인의 숭배물 등의 물체를 비합리적인 또는 초(超)의식적인 인식의 대응물로써 취급하였다.
또 종래의 전통적인 조각형식을 타파한 구성작품(예를 들면 움직이는 조각 모빌 등)을 오브제라고 할 때가 있다. 미술에서의 오브제관(觀)은 흥미있는 미적 인식 문제를 투입하고 있으나, 오브제는 예술의 재료·형식·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외부의 세계를 정복하는 수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예술 (영화,연극)
골든글로브상 [Golden Globes Awards]
1943년에 설립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2000년 제57회를 맞이하였다. 그 영향력이 아카데미상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이라고 불린다. 1944년 20세기폭스필름의 스튜디오에서 소규모로 최초의 시상식이 개최된 이래로 현재는 세계 영화시장을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약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시상식은 드라마 부문과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생방송으로 세계 120여 개 국에 방영되어 매년 약 2억 5,000만 명의 시청자들이 이를 지켜본다.
극예술연구회 [劇藝術硏究會]
극연이라고도 한다. 1931년 홍해성(洪海星)·유치진(柳致眞)·서항석(徐恒錫)·김진섭(金晋燮) 등이 결성하였다. 창립 취지는 극예술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넓히고 진정한 의미의 신극을 수립하는데 있었다. 처음에는 여름 연극강좌를 개최하여 이 방면의 계몽에 노력하였으며, 뒤에 실험무대(實驗舞臺)를 조직하여 실제로 공연활동을 전개하였다.
고골리의 《검찰관》과 입센의 《인형의 집》 등 세계 명작이 이때 상연되었고, 5∼6년 동안 20여 회 공연하여 서구 사실주의의 도입을 통해 신극운동에 기여하였다. 또한 기관지 《극예술》을 발간하였다. 후에 극연좌(劇硏座)의 모체가 되었다. 당시 활동한 회원으로 홍해성(洪海星)·유치진(柳致眞)·서항석(徐恒錫)·김진섭(金晋燮)·이하윤(異河潤)·정인섭(鄭寅燮)·함대훈(咸大勳)·장기제(張起悌)·최정우(崔廷宇)·이헌구(李軒求)·김광섭(金珖燮)·윤백남(尹白南) 등이 있다.
누벨바그 [nouvelle vague]
20∼30대의 젊은 영화인들이 전통적인 영화에 대항하여 새로운 영화제작을 시작한 것으로, 직업의식을 갖지 않은 작은 그룹에 의한 제작이 많다. 당시 문학에서의 앙티로망, 연극에서의 앙티테아트르 등의 동향과 상관관계에 있으나 특별히 체계적인 이론을 갖춘 예술운동은 아니다.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줄거리보다 표현에 중점을 두고 현실과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중시하여, 예컨대 즉흥연출, 장면의 비약적 전개, 완결되지 않은 스토리, 영상의 감각적 표현 등에 의하여 종래의 영화개념을 바꾸어 놓은 점이다. L.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7) 《연인들》(1958), 샤브롤의 《사촌들》(1959) 《이중의 열쇠》(1960), A.레네의 《24시간의 정사》(1959), F.트뤼포의 《어른들은 알아주지 않는다》(1959),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A.바잔이 주재하는 잡지 《카예 뒤 시네마》의 비평가 동인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시네마테이크(영화자료관)에서 고전작품을 공부하고 ‘개인의 영화’를 주장한 데 특징이 있다. 2∼3년 후 자연 도태되었으나 세계 영화에 끼친 영향은 크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The Locarn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스위스 영화협회가 주관하는 대회로 2편 이내의 영화 제작 경력이 있는 신인감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시상은 금표범상·은표범상·동표범상·어네스트 아타리아(Ernest Artaria) 기념상·심사위원 특별상 등 5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한국은 1968년부터 참가하였으며, 1989년 제42회 영화제에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대상인 금표범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1년 제54회 영화제에서는 문승욱 감독의 《나비》에 출연한 김호정이 여우주연상인 '청동표범상'을 받았다.
마카로니웨스턴 [macaroni western]
미국 서부극과 같은 개척정신의 요소는 없고, 주로 멕시코를 무대로 총잡이를 등장시켜 잔혹한 장면을 강렬하게 묘사한 것이 특색이다. 1964년 세르지오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를 제작한 이래 미국 서부극을 압도할 기세로 선풍을 일으켰다. 한국에도 1966년 《황야의 무법자》(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가 상영된 이래 여러 편이 수입되어 마카로니 웨스턴 붐을 일으켰다.
미장센 [mise en scène]
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한다. 희곡에는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무대장치, 조명 등에 관한 지시를 세부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각본의 내용을 통일적이고 효과적인 형상(形象)으로 만들어 무대에서 상연하는 작업을 말한다. 따라서 연출가는 희곡의 각 장면 또는 각 국면의 미장센을 결정한다. 이 용어는 1820년경부터 연극상연을 위한 인원이나 재료의 총체(總體)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나 1835년경부터는 무대표현의 각종 방법을 종합 통일하는 조작과 기능을 가리켰으며, 19세기 말부터는 무대표현상의 개성적 예술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베세토연극제 [Be Se To]
한국·중국·일본의 연극인들이 '상호교류를 통해 무대예술의 창조정신을 고무하는 만남'이자 '동양연극의 개성과 그 예술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만남'을 주요 목표로 하여 1994년 처음 개최한 이래 해마다 3개국이 돌아가며 열고 있다. 베세토(Be Se To)란 3국의 수도인 베이징(Be), 서울(Se), 도쿄(To)를 의미한다.
1993년 연극인 김의경(국제연극협회 한국센터회장)이 중국의 서효종(중국 희극가협회 부주석)과 일본의 스즈키 다다시(당시 재단법인 국제무대예술연구소 이사장)에게 처음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94년 서울에서 제1회가 열렸다.
제2회는 도쿄에서, 제3회는 베이징에서 열린 이래 2001년 일본에서는 공연장소를 도쿄 외에도 시즈오카[靜岡], 도가무라[利賀村]로 넓혔고, 해외 초청작을 3편으로 늘리고 인도 작품을 특별히 초청하였다. 2003년 한국에서는 공연장소를 처음으로 수도에서 지방도시(의정부시)로 옮겼다.
처음 시작 때는 해마다 주최국이 주제와 관계없이 2편 이상 자국 작품을 공연하고 해외에서 각 1편씩 참가하였는데, 2001년 이후 피초청국에서 1차 선정한 작품 가운데 주최국이 자국 취향의 레퍼토리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특별공연으로 1995년 한중일 합동공연 《물의 정거장》(오타 쇼고 연출, 도쿄)과 1998년 《제우스가든의 쇠망사》(미야기 사토시 연출, 도쿄)를 별도로 제작하였고, 2000년 《춘향전》(서울)을 3국이 각국의 전통연희 양식으로 공연하여 연극인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소시오드라마 [sociodrama]
사회적 ·문화적 문제 또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문제를 주제로 하여 감독(의사 ·교사)이 극의 전체의 테두리를 정해준 뒤, 나머지는 연기자(환자 ·학생)가 상황에 따라 자발적 ·즉흥적으로 일정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자발적인 역할행위에서 집단 이데올로기, 집단 사이의 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이코드라마(모레노가 생각해낸 심리요법의 일종)와 마찬가지로 소시오드라마의 바탕이 되는 관념도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하면서 그것을 발전시키거나 변화시키거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면 그 역할(가령 인종적 편견을 가진 행동)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방법은 언어와 동작을 포함한 종합적 ·전체적 ·집단적 진단방법이며 치료방법이라 할 수 있다.
시네라마 [Cinerama]
미국에서 개발·실용화된 방식으로 시네마(cinema)와 파노라마(panorama)의 합성어이다. 월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의 사격훈련용으로 개발하였다. 마치 적의 항공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중에 훈련병이 앉아 있는 듯한 상태를 만들어내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52년 9월 《이것이 시네라마다 This is Cinerama》가 시네라마 방식의 첫 작품으로 뉴욕에서 개봉되었다.
실리우드 산업 [Silliwood industry]
세계 유수의 반도체산업이 한데 모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첨단기술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영화의 중심지 할리우드(Hollywood)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이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뒤, 컴퓨터 기술을 접목한 영화들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개념의 영화 장르 또는 영화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실리우드'로 줄여서 말하기도 하는데, 주로 영화에 국한하여 사용한다. 사람의 동작이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경관, 혹은 기존의 장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을 컴퓨터 그래픽이나 과학기술을 이용한 특수효과 등을 통해 생동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영화의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이를 산업적으로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영화나 영화산업을 통틀어 일컫는다.
실리우드 영화는 주로 거대 자본을 들여 제작하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가 대표적이다. 1993년에 제작된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쥐라기 공원》, 할린(Renny Harlin) 감독의 《클리프행어》, 제메키스(Robert Zemeckis) 감독의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1994), 론고(Robert Longo) 감독의 《코드명 제이 Johnny Mnemonic》(1995) 등이 대표적인 실리우드 영화들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실리우드 산업은 영화뿐 아니라 연극·인터넷게임·비디오게임 등 각종 오락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카메오 [cameo]
영화나 텔레비전드라마에서 직업 연기자가 아닌 유명인사가 잠시 얼굴을 비추거나 배우가 평소 자신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단역을 잠시 맡는 일 또는 그 역할을 이른다. 곧 인기배우나 유명인사가 극 중 예기치 않은 순간에 등장하여 아주 짧은 동안만 연기를 하면서도 내용상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는 연기이다.
작품 구성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실제인물이 나와야 할 경우, 또는 한 장면이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될 때는 영화의 맛을 살리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유명배우의 되풀이되는 이미지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색다른 느낌과 여유를 맛보게도 해준다.
서스펜스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앨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1940년대부터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대사 없는 엑스트라로 몇 초 동안 출연한 것이 시초로, 그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은 《플래툰》에서 중대장으로, 《7월 4일생》에서 기자로 출연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조지 루카스(George Lukas)는 《레이더스》에서 비행장 직원 역할을 맡았다.
영화나 드라마 홍보를 위해 유명 배우들이 감독에 대한 존경의 의미에서 출연을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 즉 로버트 앨트먼(Robert Altman)이 감독한 《플레이어》에서는 주인공인 팀 로빈스(Tim Robbins)보다 휠씬 유명한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나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가 한 장면에만 나오는 단역출연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히는 《바보선언》을 감독했던 이장호가 옥상에서 자살하는 영화감독의 장면을 실감나게 연기한 것으로 유명하고, 1970∼1980년대 한국영화 흥행작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썼던 최인호도 이장호의 《어제 내린 비》에 출연하였다.
최근 《엑스트라》에서는 이상벽·임성훈·최선규 등의 인기 MC를 비롯해 개그맨 임하룡 및 감독 정지영·장현수, 팝 칼럼니스트 이무영 등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시트콤의 경우 유명 배우나 가수 등이 깜짝 출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듯 감독이 자기 작품에 직접 출연하는 일은 이미 흔하게 되었고, 극중에 실제 모델이나 가수 등이 직접 출연하여 자신의 콘서트 모습을 보이는 '자기복제 카메오'도 있다. 한편 흥행을 노리는 선전에 사용되는 것을 카메오 퍼포먼스(cameo performance)라고 한다.
토니상 [Tony Awards]
1947년에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여배우 앙트와네트 페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의 극장 기구ㆍ극장 및 제작자연맹 등에 의하여 창설된 상으로, 'A. 페리상'이라고도 한다. 토니는 페리의 애칭으로 지금도 그녀는 그냥 토니라고 불린다. 1947년의 제1회 시상식 이후 1999년 제53회 시상식까지, 매년 5월 하순에서 6월 상순에 최종발표와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영화의 아카데미상에 견줄 만한 상으로 ‘연극의 아카데미상’이라고도 부르며, 한 작품을 장기 흥행하는 미국 흥행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은 스트레이트 플레이(연극 부문)와 뮤지컬 플레이(뮤지컬 부문)로 나누어, 각각 작품상ㆍ남녀배우상ㆍ연출상 등 모두 21개 부문에 대하여 상을 수여한다. 수상 작품은 미국연극협회 평의원을 비롯한 유명한 배우와 연출가, 매스컴의 연예담당 기자 등으로 이루어진 782명의 선발 위원에 의하여 선발된다.
1999년 6월 6일 뉴욕 거슈인 극장에서 개최된 제53회 토니상 수상식에서 연극부문 작품상은 재즈 연주가의 파탄 난 가정을 다룬 워런 라이트의 〈사이드 맨(재즈 연주가)〉이 차지하였고, 뮤지컬 부문에서는 1987년 심장마비로 숨진 전설적인 무용안무가 보브 포스에 관한 단상을 모은 〈포스〉가 선정되었다.
프롬프터 [prompter]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에 등장한 배우가 대사나 동작을 잊었을 때, 대사를 가르쳐주거나 동작을 지시해주는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