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 국회의사당 앞마당 영결식 소회
여태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가보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정치의 중심지인 세종로와 광화문, 그리고 ‘촛불’이 나부꼈다는 그 광장, 청계천과 소라탑, 종로와 명동, 서울광장과 덕수궁 돌담길, 숭례문, 서울의 상징인 한강, 등등이 늘상 마음의 한 구석에서 에도는 따분한 내 처지를 이참에 위로할 양 국장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것도 순간의 결정이었다.
추모제가 열린 서울광장.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은 검은빛과 노랑으로 버무른 유성이 죽음 저 너머의 피안을 찾아가는 행렬, 축제 같았다. 미미하지만 스스로 흐름의 구성원이 된 기쁨 때문에 미래는 밝고 행복할 것만 같은 밤이었다.
떠들썩하면서도 지극히 평화로운 밤.
화합의 분위기 탓인지 주검을 담보한 밤이었건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다.
되려 광화광장, 세종문화화관, 청계천, 입구의 소라의 탑, 인사동, 명동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밤이었지만 재건 중인 숭례문을 먼발치로 만날 수 있어서 은근히 신이 났다.
국장을 치루고 있는 국회의사당과 그 일대 역시 온통 노랑과 검정색이었다.
국회 의사당 앞 공원 여기저기서 살랑거리는 작은 리본들의 흔들림은 누구의 어깨라도 잡아당겨 살아있는 한 더 힘차게 살라고 일깨워 주는듯 했다. 국장이 진행되는 국회의사당 앞마당의 투명한 흰빛도 먼발치로 보였다.
생전의 당신을 화면으로 대하면서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라고 모니터에 나타나자 아,하는 얕은 웅성거림이 들렸고, 그 순간 그곳이 고향인 내 부모님이 떠올라 내내 어린아이처럼 엄마 엄마,하고 칭어댔다.
공식행사를 마치자 큰 대로를 가운데 두고 의사당의 정면이 보이는 건너편 길가에는 장례행렬을 보이게 하기 위한 조처로 움직임이 있었다. 바르케이트 맨 앞 자리를 서기 위해 움직이는 바르케이트를 따라다녔다. 바르케이트를 경계로 잎사귀 셋을 어깨에 붙인 경찰 아저씨와 마주한 눈, 서로 웃었지만 8월 한낮 땡볕에 그들도 힘들어 보였다.
국회의사당에서 큰 대로로 나온 운구차가 장지로 향해 움직이자 슬쩍 촉촉한 기운. 어제도 추모제에 전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형사진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달았던 ‘근조’라는 씌인 검정색 리본으로 몇 겹이나 따뜻하게 감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겨운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었는데 말이다.
여의도를 걸어서 한강을 건너 정동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서울시청 앞 광장 ,어제의 그곳에 왔으나 노제는 끝나 동작동 국립묘지로 향한 뒤였다.
하루 종일 만난 길가에 늘어선 기동경찰버스와 짐작할 수도 없는 수많은 경찰들의 이동을 보았고, 선선한 빛이 도는 맑은 하늘도 보았다. 무궁한 허공을 맴돌 듯 반복하는 우리의 삶이 아쉬어 안타꺼웠지만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알지 못햇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8월의 땡볕 아래 무더위 속에서도 이렇게 꿋꿋하게 버티게 하는 그 분의 유언의 힘은 무엇일까?
큰 별이 졌다고들, 그래서 살아있는 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 비장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역시 살아있는 자임에 틀림이 없다. 역사니 시대정신이니 하는 거창한 신념은 아닐지라도 나도 분명 감정이 있고 소리를 들을줄 아는 살아있는 자 .
삼가 그 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