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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수학
〈22〉 올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컬링 속에 담겨 있는 수학
글 : 이충국 CMS에듀 대표
⊙ 컬링은 스톤의 회전, 각도, 확률 등이 작용하는 고도의 수학적 경기
⊙ 컬링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각도로 쳐야 하고 그때 스위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연습이 필요
이충국
1963년생. 연세대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 생각하는 수학교실(CMS에듀의 전신) 설립, 세계수학올림피아드 WMO (World Mathematical Olympiad) 부위원장, CMS에듀 대표이사(2003.7~) / 《초등학생이 반드시 알아야 할 똑똑한 수학 공부법》 《엄마도 꼭 알아야 할 똑똑한 수학 공부법》 《잠자는 수학 두뇌를 깨우는 창의사고 수학》 출간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평창 동계올림픽과 평창 패럴림픽이 3월 18일 막을 내렸다. 참가한 모든 선수는 올림픽 기간 내내 국민들에게 기쁨과 환호를 안겨주었다. 그중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선수들은 ‘팀킴’ ‘마늘소녀’ ‘컬벤져스’ 등으로 불리며 아시아 최초의 컬링 은메달 신화를 쓴 여자컬링 국가대표팀 선수들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길이 42.07m, 너비 4.27m인 직사각형의 얼음링크 안에서 컬링스톤을 하우스라는 표적 안에 넣어 득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컬링 경기는 다음과 같은 경기 방법으로 진행된다(평창올림픽의 경우 길이 45.72m, 너비 5m인 얼음링크가 사용되었다).
(1) 한 팀은 5명의 선수(교체선수 1명)로 이루어져 경기를 진행한다.
(2) 두 팀이 10엔드(10회전)에 걸쳐 각 엔드에 한 선수당 2개씩 총 16개의 스톤을 번갈아 하우스를 향해 던진다.
(3) 스톤은 티라인 이전에 선수의 손을 떠나야 하며, 호그라인을 넘어야 정상적인 투구로 인정된다.
(4) 각 팀은 10엔드에 합쳐 38분의 싱킹 타임(thinking time)을 사용할 수 있다. 투구 시의 시간은 작전시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경기시간은 두 팀 합쳐 3시간 정도 소요된다.
(5) 첫 엔드의 선공과 후공은 각 팀이 스톤을 하나씩 던져 정하게 되며, 2엔드부터는 진 팀이 다음 엔드의 후공이 되며, 양 팀이 모두 점수를 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음 엔드에서도 공격 순서가 그대로 유지된다.
(6) 한 엔드 안에서 모든 스톤이 투구된 후 하우스 안에 있는 스톤을 따져 득점을 계산한다. 상대 팀의 어느 스톤보다 하우스의 중심에 근접한 스톤에 대하여 1점을 획득하게 된다. 10엔드가 끝났을 때, 각 엔드의 득점을 합친 점수가 높은 팀이 승리하게 되며 점수가 같은 경우 연장엔드를 진행하게 된다.
컬링은 각 엔드별로 스톤의 위치와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 매우 복잡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불린다. 우리나라 여자 국가대표팀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 사상 처음으로 출전, 8위를 기록하였다. 4년이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거두었다.
선수들이 이렇게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4년 동안 착실하고 과학적인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톤이 하우스에 도달하는 시간과 그에 따른 속도 그리고 하우스에 도착하기까지의 회전수와 스톤의 각도 등 다양한 부분의 자료를 기록하고 그 자료를 분석해 가며 정확한 샷을 날릴 때까지 반복하는 훈련을 진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확한 샷을 날리기 위한 훈련 속에는 다음과 같은 수학적 통계적인 부분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1. 스톤의 회전
컬링 경기를 시청하면 스톤이 직선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직선으로 가다가 꺾어져서 다른 스톤 뒤로 숨거나 스톤 뒤에 숨어 있는 다른 스톤을 제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의 20kg에 달하는 스톤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스톤의 회전에 비밀이 있다. 실제로는 평평해 보이지만 얼음바닥에 닿는 스톤의 아랫부분은 약간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스톤이 앞으로 나아갈 때 회전이 일어나기 쉽다. 그림에서처럼 시계방향으로 회전을 줬을 때 스톤 앞부분에 작용하는 마찰력보다 스톤 뒷부분에 작용하는 마찰력이 더 크기 때문에 스톤을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준다.
또한 스케이트와 같은 종목과는 다르게 매끄러운 빙판이 아닌, 페블(pebble)이라는 작은 얼음 알갱이가 있는 빙판에서 진행된다. 빙판에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있는 페블은 회전을 만들기도 한다. 스톤이 진행할 때, 알갱이에 들러붙어 아주 조금 스톤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이 스톤이 얼음 위를 미끄러지면서 방향 전환이 반복되어 큰 회전이 일어나게 된다.
스톤이 휘어지는 거리는 스톤의 반경, 스톤 하단의 구조, 빙판의 상태, 페블의 크기와 밀도, 스톤의 속도와 착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여 수식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컬링 선수가 스톤에 준 회전, 스위핑(빗질) 등의 변수가 존재하기에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의 회전각을 줬을 때 스톤의 위치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선수들이 익힐 수 있을 것이다.
2. 스톤의 각도
당구를 쳐 보았다면 당구공을 쳐 낼 때에 각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당구와 마찬가지로 컬링에서도 정확한 각도로 스톤을 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행하는 스톤이 멈춰 있는 스톤을 맞힐 경우 두 스톤은 각각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때, 두 스톤이 움직이는 방향의 각을 분리각이라 한다. 이론적으로 두 스톤이 충돌한 후 움직이는 분리각의 합은 90°를 이룬다. 예를 들어, 진행하는 스톤과 45°의 각도로 멈춰 있는 스톤이 충돌한다면 진행하는 스톤은 45° 방향으로 이동하고, 충돌된 스톤은 나머지 45° 방향으로 꺾여 움직인다. 만약 진행하는 스톤이 멈춰 있는 스톤을 가능한 한 얇게 친다면 진행하는 스톤은 원래 진행방향으로 이동하고, 멈춰 있는 스톤은 90° 방향으로 이동할 것이다. 반대로, 진행하는 스톤이 멈춰 있는 스톤을 두껍게(정면에서 보았을 때 겹쳐지도록) 친다면 진행하던 스톤은 그 자리에 멈추고 원래 멈춰 있던 스톤은 0°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정밀하게 스톤을 움직인다면 진행하는 스톤과 멈춰 있는 스톤을 0°~90°까지 방향 전환 및 이동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정확한 각도로 하우스 중심에 있는 상대팀의 스톤 여러 개를 제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스톤이 충돌할 때는 운동량과 운동에너지가 모두 보존되는 완성탄성충돌이 아니며, 스톤이 회전하는 도중 두 스톤이 충돌하였을 때는 분리각의 합이 90°보다 커지거나 작아진다.
위의 사진은 동점인 상황에서 빨간 스톤을 이용해 노란색 스톤 두 개를 더블 테이크아웃(한 번에 두 개의 스톤을 모두 제거하는 경우) 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은 스톤이 완벽한 각도로 들어가지 않으면 나타날 수가 없다.
아래는 다양한 상황별로 어떤 각도로 스톤을 보냈을 때 상대편의 스톤들을 제거하고 안에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http://www.uppervalleycurling.org/wp-contenthttp://monthly.chosun.com/uploads/2012/12/Secrets-of-Angles.pdf)
컬링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각도로 쳐야 하고 그때 스위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3. 확률의 이용
최근에 야구를 시청하다 보면 승리 확률이란 것을 볼 수 있다. 승리 확률이란 것은 야구가 통계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긴 경우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서 그것을 확률로 나타내 주기 때문에 앞으로 이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컬링에서도 간단하게는 선수의 정확도 확률부터 복잡하게는 경기 전체의 승리 확률이나 경기 중 벌어지는 특별한 상황마다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아래는 평창올림픽에서 진행되었던 대한민국 남자대표팀과 덴마크팀의 경기에서 각 엔드별 승리 확률과 득점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대한민국이 첫 엔드에서 2득점 한 이후에는 승리 확률이 크게 올라갔으나 8엔드에 3실점을 한 이후에는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되어 승리 확률이 크게 떨어진 것을 살펴볼 수 있다. 9엔드가 끝나고 난 뒤에도 8:6으로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승리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극적으로 10엔드에 2득점을 하게 되어 승리 확률이 다시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컬링은 후공이 유리하므로 동점이라도 덴마크의 승리 확률이 높다. 이 경기는 연장전까지 끌고 갔으나 아쉽게 실점을 하여 진 경기이다.
이렇게 앞으로의 승리 가능성을 알 수 있다면 다음에 어떤 샷을 날려야 하는지 결정할 수도 있다.
다음 〈보기〉와 같은 상황에서 A팀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보기〉
1. 현재 9엔드가 진행되고 있으며 A팀과 B팀이 마지막 샷을 남겨두고 있다.
2. 9엔드의 가장 마지막 샷은 B팀이 던진다.
3. 현재까지 A팀이 1점 리드하고 있다.
4. 하우스 앞쪽에 위치한 B팀의 돌 하나를 제외하고, 하우스 안에 다른 돌은 없다.
5. 9엔드에서 득점한 팀은 10엔드에 선공을 하게 되며, 9엔드에서 비기는 경우 B팀이 10엔드에서도 후공을 한다.
그리고 다양한 경기를 분석해 통계를 내었을 때, 10엔드에서 예상되는 결과는 다음과 같다.(아래의 예상결과는 마지막 엔드의 15번째 스톤이 투구된 후 만들어진 상황에 따라서 16번째 스톤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을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어 비기는 경우는 15번째의 스톤이 투구된 후 하우스 안에 몇 개의 스톤이 남아 있어도 그 스톤을 다 제거해야 한다. 그 확률을 다 합쳤을 때, 75.7%라는 것이다.)
마지막 샷으로 비기는 경우 : 75.7%
마지막 샷으로 한 점 지는 경우 : 39.5%
마지막 샷으로 두 점 지는 경우 : 11.7%
(단, 세 개의 스톤이 남아 있을 상황부터는 확률이 적어 생략)
한편, A팀이 9엔드 마지막 샷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1)하우스 앞에 위치한 B팀의 돌을 제거하고 멈추는 경우, (2)B팀의 돌을 제거하고 A팀의 돌을 하우스 안에 넣는 경우, (3)B팀의 돌을 제거하지 않고 A팀의 돌을 더 가까이 넣는 경우이다.
각 경우에 따라 발생하는 경우의 확률과 그때, A팀이 이길 확률을 구해보면 다음과 같다.
(1)하우스 앞에 위치한 B팀의 돌을 제거하고 A팀의 돌을 그 자리에 멈추는 경우
9엔드에서 비길 확률 : 95%
이때, A팀이 이기는 경우는 9엔드에 비기고, B팀이 10엔드에 한 점을 못 냈을 때와 9엔드에 비기지 못하고(B팀이 한 점을 냈을 때) A팀이 10엔드에 한 점 이상 내는 경우이다.
따라서 확률은 0.95×60.5 + 0.05×(39.5+11.7) = 60%가 된다.
(2)B팀의 돌을 제거하고 A팀의 돌을 하우스 안에 넣을 경우
A팀이 1점을 획득할 확률 : 5%
비길 확률 : 70%
B팀이 1점을 획득할 확률 : 25%
이때, A팀이 이기는 경우는 A팀이 9엔드에 1점을 획득하고 10엔드에 2점을 실점하지 않을 때, 9엔드에 비기고 10엔드에서 1점을 실점하지 않을 때, 9엔드에 B팀이 1점을 획득하고 10엔드에 A팀이 1점 이상을 획득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확률은 0.05×88.3 + 0.70×60.5 + 0.25×51.2 = 59.6%가 된다.
(3)하우스 앞의 B팀의 돌을 제거하지 않고, A팀의 돌을 B팀의 돌보다 더 가까이 넣는 경우
A팀이 1점을 획득할 확률 : 25%
B팀이 1점을 획득할 확률 : 50%
B팀이 2점을 획득할 확률 : 25%
이때, 이기는 경우는 A팀이 9엔드에 1점을 획득하고 B팀이 10엔드에서 2점을 획득하지 못하였을 때, B팀이 9엔드에 1점을 획득하고 A팀이 10엔드에 1점 이상을 획득하였을 때, B팀이 9엔드에 2점을 획득하고 A팀이 10엔드에 2점을 획득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확률은 0.25×88.3 + 0.50×51.2 + 0.25×11.7 = 50.6%가 된다.
이와 같은 확률에 의해 A팀은 9엔드 마지막 샷으로 (1)의 경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통계를 통해 상황별 확률을 계산해 놓으면 필요한 순간 최적의 샷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컬링에 담겨 있는 물리・수학적인 부분들을 이해한다고 해서 컬링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경험과 훈련이 축적되어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하지만 컬링 속에 담겨진 물리, 수학적인 원리들을 이해한다면 컬링을 좀 더 스마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