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신인조화는 먼저 신과 인간의 상보적 관계를 전제로 하여 나아가 합일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존재를 가정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인조화의 개념적인 분석과 더불어 인존의 사상, 윤리도덕 세계의 구현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신인조화의 개념
신인조화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순 종지 가운데 음양합덕의 의미에 대하여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음양합덕은 음과 양의 대대적(對待的) 존재가 하나의 절대세계에서 만나 통일된 경지에서 무한한 혜택을 창조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강세하신 구천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한 천지조판이며 후천을 이루는 원 바탕이다. 즉, 그 어떤 것도 음양합덕이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음양합덕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신인조화는 신과 인간의 상대적 관계가 하나의 절대적 경지에서 합일되어 새로운 존재의 무한한 가치를 표현한 말로 이해되어 질 수 있다.
한편, 조화(調化)라는 개념은 조화(調和)라고 할 때의 "고를 조"자와 조화(造化)라고 할 때의 "될 화"자가 합성하여 이루어진 글자이다. "고르다"는 개념은 모두가 동등 동권하고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된다"는 것은 제각각이 자기 한도대로 다 된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신과 인간은 더 이상 별개의 존재가 될 수 없으며 하나의 새로운 가치창조를 위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3. 인존의 실현
신인조화의 이념은 인존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때 인존이란 가치가 진리로서의 신에 꼭 부합되어 인간이 지닌 한도대로 신이 응하여 이루어지는 신인합일의 경지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단순한 인간존중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가치에 신격을 부여한 것이니 인간의 위상이 더할 나위없이 높아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존(尊)'자의 의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존귀하다는 뜻보다는 고대로부터 인간이 숭배해왔던 신적인 대상을 내포하는 글자인 것이다. 그리하여 신을 떠받들 듯이 인간을 떠받드는 시대가 바로 인존의 이념인 것이다.
이러한 인존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대비되는 다른 개념과 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서 "천존(天尊)"과 "지존(地尊)"을 들 수 있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
이 때 천존이란 말하자면 신(神)이 하늘(天)이라고 하는 영역에 집을 정하고 머물면서 권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모든 인간 사물이 하늘을 향해 공경을 표시하고 제사를 지내왔던 역사를 의미한다.
지존은 또한 신이 땅(地)의 영역에 머무르면서 사람으로부터의 제사와 공경을 받아왔던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인존시대"라 한 것은 인간이 곧 신이 머무는 집이 된다는 것이며 그 모든 신의 권위와 능력도 인간에 의해서 행사되어 질 것임을 암시하는 구절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숭배의 대상도 천.지에서 인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며 이는 나아가 천지가 담당해왔다고 생각했던 우주역사를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나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 때의 인간은 그야말로 모든 존재 가운데 으뜸이 되고 신의 권위를 행사하므로서 천지만물이 오직 인간을 위해 그 혜택을 베풀어 주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후천선경의 실상이며 음양합덕의 결과와도 연관이 있다.
4. 윤리도덕 질서의 확립
신인조화로 인해 이룩되어지는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보다도 윤리도덕질서의 확립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이상이 될 수 있다.
선천의 현실에서 윤리도덕이 타락한 원인은 모두 신을 무시하는 데서부터 발생한 것이며 또한 선천의 윤리도덕이란 묵은 하늘이 빚어낸 것이라서 오늘날과 같은 원으로 점철된 참혹한 현실이 빚어지게 되었다.
제자가 스승을 해하며, 자식이 아비를 죽이며, 신하가 임금을 해치는 것 등은 상극세상에서 생겨난 윤리도덕관의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인이 조화된 세상에서는 이러한 윤리도덕은 새롭게 정립된다. 즉, 후천은 신이 인간을 집으로 삼아 합본이 되어서 이루는 세계이므로 신의 질서와 체계가 그대로 인간세상에 베풀어지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누구를 감히 속인다는 것도 있을 수 없으며 확고한 신의 질서에 어긋나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그러한 세상이 이룩되는 것이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선천에서는 상극지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였으므로 도수가 그릇되어 제자가 선생을 해하는 하극상(下克上)의 일이 있었으나 이후로는 강륜(綱倫)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런 불의를 감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런 짓을 감행하는 자에게 배사률(背師律)의 벌이 있으리라」하셨도다"
윗 글에서 말하는 강륜(綱倫)이라는 것은 모두 신의 감시와 수찰이 아주 엄격해서 감히 속일 수가 없고 어길 수가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른바 삼강오륜이라고 하는 것은 임금이 신하의 벼리가 되며(君爲臣綱), 아비는 자식의 벼리가 되며(父爲子綱), 지아비는 지어미의 벼리(夫爲婦綱)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벼리"라고 하는 것은 임금과 신하 사이의 신의(信義)의 벼리(信義之綱)이며, 아비와 자식 사이의 양생(養生)의 벼리(養生之綱)이고, 지아비와 지어미 사이의 화락(和樂)의 벼리를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윤리적 실천으로서 아비와 자식간에 친함이 있어야 하며(父子有親), 임금과 신하간에 의리가 있어야 하고(君臣有義), 부부사이에 구별이 있어야 하며(夫婦有別), 어른과 아이간에 차례가 있어야 하며(長幼有序), 친구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朋友有信)는 것인데 이러한 전통적 윤리관념에다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이조(以詔)의 강(綱)이 덧붙어 그 새로운 윤리체계가 갖추어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인조화의 시대란 바로 이것이 보편화된 것이며 모든 사람이 이러한 경지속에서 생활해 나아가는 때다.
따라서 어떠한 사곡함도 행해질 수 없고 아주 엄격한 윤리도덕이 세워질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신명 시대니 삼가 힘써 닦고 죄를 짓지 말라. 새 기운이 돌아 닥칠 때에 신명들이 불칼을 들고 죄 지은 것을 밝히려 할 때에 죄 지은 자는 정신을 잃으리라"
즉 신명시대로써 표현되는 후천은 신과 인간이 조화되어 인사의 모든 일이 신도의 권위로서 행해지는 세상이다.
따라서 아주 큰 일에서부터 아주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신이 개입하지 않는데가 없으며 또한 이를 감독하고 수찰하면서 오로지 바른 것만을 지켜나가게 된다.(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
사람이 사람을 속일 수 있을 지언정 신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정과 불의가 없는 세상, 밝고 투명한 세계가 이룩된다.
5. 맺음말
대순사상이 한국종교로서 갖는 신관의 구조는 그 상대성과 일원적 합일의 구조를 면할 수 없다.
신과 인간관계에서 상보적인 면을 강조해 나가고 나아가 "인존"의 사상을 언급하게 되는 것은 신과 인간의 상대성이 합일적 경지에서 일원화될 것을 주장함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신인조화라고 할 수 있다.
신인조화는 신이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신이 되는 신과 인간의 합일적 경지를 묘사한 말이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최고신격으로서의 "상제(上帝)"도 대순사상에서 인신(人身)으로 지상에 강림하게 되는 것이니 이 점은 인간 존중과 세계 일원화를 지향하는 대순사상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이루는 부분이다.
1. 머리말
우주 자연은 음(陰)과 양(陽)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경의 "인위양 신위음(人爲陽 神爲陰)"이란 구절에서 보듯이 인간 세계는 양이고 신명 세계는 음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다시 이야기하면 우주 자연은 인간세계와 신명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날, 사람들의 인식방향과 종교계에서 신은 점차 배제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은 과학문명의 발전 결과로 나온 현상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가 신을 전제로 형성되어 있으므로 종교는 신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과학이 발달했지만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의 등장이 요청된다.
대순사상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대순진리회의 종지인 신인조화와 신에 대한 인간위상의 변화과정도 알아보기로 한다.
2. 선천시대의 神人관계
원시시대의 인간은 수렵생활에서 농업혁명으로 농경사회를 이루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게 일을 해도 증가하는 인구에 비해 먹을 것이 부족하고 수화풍의 삼재를 늘 당하였으므로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자연의 모든 현상이 하늘의 뜻이라고 믿었으므로 인간은 자연의 지배 아래서 순종과 복종을 하였다. "선천에는 모사는 재인하고 성사는 재천이라"하신 것처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을 이루고 못이루고의 결정은 하늘 즉 신에게 달려 있었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사람과 하늘의 관계가 인간과 신의 관계로 볼 수 있고, 역사 이래로 18세기까지 선천시대 인간은 신에 대한 예속적 관계로 있었다. 한편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고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라는 상제님의 말씀처럼 선천에서의 인간세계가 지배와 피지배의 상극으로 분리되었듯이, 인간과 신의 관계 역시 분리된 관계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신과 인간의 관계는 동학의 수운 최제우에 와서 획기적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면 다음으로 동학에서 발생한 신인관계의 변화과정을 알아보기로 하자.
3. 동학에서의 神人관계
18세기까지 사회적, 종교적 신인관계의 측면을 살펴보면 신과 인간은 분리된 예속관계로 위치를 달리했으나 최수운에 와서 시천주 사상을 표방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관계변화를 가져왔다.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 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道)를 계시하였으되"의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최수운은 상제님으로부터 천명을 받고 난 이후 시천주 사상, 즉 인간의 마음속에 하느님(神性)을 모시고 있다고 주창하였다.
최수운의 시천주(侍天主)는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신(神)관념인 삼신(三神)사상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선천 시대 종교에서 인간이 신을 모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보면 인간 위상의 일대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사상이었고 인간 위상이 발전하게 되는 시초단계였다.
해월 최시형에 와서는 인간위상이 도약하는 단계라 볼 수 있다. 최해월의 양천주(養天主) 사상은 최수운의 시천주 사상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느님의 성품을 양성한다는 것인데, 씨앗을 땅에 심어 씨앗의 생명이 자라게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본성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지고한 신을 인간이 모시고 있으면 인간도 수양을 통해 지고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자세일 것이다.
이는 의암 손병희에 와서 인내천(人乃天)의 사상으로 발전, 인간이 수도를 함으로써 인격의 위상이 신격과 동등한 위치에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4. 대순진리의 神人調化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동등함을 주창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과 인간이 분리된 관계에서 본성이 동등해진 관계로 이루어졌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과 인간의 완전한 화합이 이루어져, 하나로 어우러진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이 완전한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단지 동등한 관계로 그치게 되면 또다시 차별이 생길 수 있는 소지가 있으므로 같이 하나가 되는 사상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순진리의 신인조화는 인내천 사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순진리의 신인조화에 나타난 신인관계를 살펴보면
첫째로 신과 인간은 상호 순환적 관계를 가진다. "사람에게 혼과 백이 있나니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후손들의 제사를 받다가 사대(四代)를 넘긴 후로 영도 되고 선도 되니라.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사대가 지나면 귀가 되니라"는 이 구절에서 보듯이 신과 인간은 존재방식의 차이를 가질 뿐 연관성을 가진다. 신이 변화한 모습이 인간이고 다시 변화한 모습이 신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신과 인간은 상호 보완적 관계이다.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여기서 신명들이 사람의 마음으로 출입하므로써 사람들의 체질과 성격이 바뀌므로 신명은 인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로 신과 인간은 상호 의도적(依導的) 관계이다. 음양경의 "...神無人後無托而所依 人無神前無導而所依(신은 사람이 뒤에 없으면 의탁하여 맡길곳이 없고 사람은 신이 앞에 없으면 이끌어 맡길 곳이 없다)"에서 보듯이 신과 인간은 서로 의지하고 이끌어 주는 관계이다.
이상과 같이 신은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고 사람 역시 신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신과 인간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순진리의 신인조화에서 나타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음양의 기운이 합해진 연후에 신과 인간의 조화가 된 상태가 신명계와 인간계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참된 경지이다.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신을 속일 수가 없게 되고, 인간 스스로도 속일 수 없으므로 거짓없는 밝은 인간이 되고 밝은 세상이 이루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천의 상도가 어겨진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물질문명에 치우친 윤리도덕관의 부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윤리도덕관의 부재상태에서 모든 것을 속일 수 없고 밝은 상태인 신인조화가 실현되면, 더 이상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후천시대의 윤리도덕관이 확립될 것이다.
5. 맺음말
후천은 인존시대이므로 인간의 위상이 바르게 정립되어야만 신명의 위상이 정립되고 진정한 음양합덕과 상생이 이루어질 것이다. 선천은 음양이 조화되지 않고 대립된 세상이었으므로 상극이 존재했듯이 신명세계와 인간세계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대립되었으며 인간은 신에 대해 철저한 예속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구천상제님의 천지대도가 펼쳐진 후 인간은 신과 더 이상의 대립된 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합덕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 위상의 혁명이 최수운의 시천주를 시발점으로 최해월의 양천주, 손의암의 인내천으로 이어져 인간의 위상이 신과 동등해졌고, 도주님께서 음양합덕을 종지로 확립하므로써 신인조화가 이루어지고 신과 인간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천지 무일월 공각(天地無日月空殼) 일월 무지인 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했듯이 천지일월도 인간이 알아 주지 않으면 빈 그림자와 같은 것처럼 신인조화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될 것이며 그러므로 신인조화는 후천시대를 이끌어갈 하나의 근본원리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대순회보 제56호 3면 부전방면 교감 이재호
神과 人間관계에 대한 소고
1. 머리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라고 표방하거나 인식되어지는 경우에 신에 대한 관념이 내재되어 있지 아니한 종교는 거의 전무하다. 만일 인간이 완전한 존재라면 종교내지는 신의 존재가 필요치 않겠으나, 유한한 존재로서 한계를 인식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신적인 존재와의 교섭이 불가피하다 하겠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있어서는 종교와 그에 결부된 신적인 존재가 인류역사의 시발점과 함께 요구되어져 왔으며, 각각의 종교는 이러한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수용하여 왔다. 이것은 인류가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와 원리를 터득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자기완성을 목적으로한 신인조화를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수도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신인조화의 법리에 대해 잘못 인식할 경우, 수도의 과정에서 진정한 수도자로서의 자세를 망각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무기력함에 빠져버릴 수 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상제님 말씀을 통해 신인조화의 가능성과 그 법리를 알아보고, 이를 위한 수도인의 기본적 자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신명적 존재의 특질
전경의 신명에 관한 말씀을 종합, 분석하면 신명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될 수 있다.
첫째, 신명의 세계에서도 인간계에서처럼 상극적 상황이 발생되어(공사3장1절) 신명계 상호간에도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각각의 경계가 존재 하였으며, 또한 서로 척이 맺혀온 바(공사2장4절,교운1장9절), 이에 상제께서 신명에 대한 해원공사로써 신명을 조화하여(공사3장5절,교운1장20절), 상생의 세계로 개조하고 있다(예시10절).
둘째, 신명은 상제의 주재하에 천지공사에 참여하기도 하며(공사1장10절,교법1장18절), 인간으로부터 특히 상제로부터 일정한 예우를 받는 존재이다(공사2장5절,교법1장66절,예시69절).
셋째, 신명은 인간의 윤리,도덕에 대하여 심판자적인 성격을 지닌다.(행록1장38절,행록5장4절,교법1장17절,교법1장29절).
넷째, 신명계와 인간계는 밀접한 유기적 관계를 이루어(행록3장44절), 인간계와 음.양의 관계로써 규정되어지는 존재이며(제생43절), 인간계의 일은 미리 신명계에서 작정되어지기도 하며(권지1장6절), 인간 각자의 기국에 따라 신명이 응하여, 이른바 신인조화의 형태로서, 대순진리회의 궁극적 목적인 후천선경의 세계로 향하게 된다.
3. 신과 인간의 관계
대순의 궁극적 목적은 후천선경을 이루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선천의 상극적 상황이 해소되어 상생적 상황으로 전환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인간계뿐만 아니라 신명계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명과 인간이 상합하여 후천선경을 여는데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신명과 인간은 과연 어떠한 관계로 존재, 작용하며, 신명과 인간이 조화하게 되는 법리, 그리고 이러한 조화를 위해 인간이 수용해야 할 실천적 자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인간계에 태어난 사람으로써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에 대해서 상제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
여기에서 살펴보면, 조상들의 무한한 공덕으로 인해 인간계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조상들의 뜻에 부합되지 않은 삶을 영위한다면 이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임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또한 일을 주관하여 왕성되게 함은 천지에 있는 것이요 사람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가 없는 연유로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고자 함에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천지가 사람을 쓰고자 하는 시기를 맞아 이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찌 가히 인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즉 천지가 사람을 내어 후천선경을 열기위해 천지공사에 쓰고자 할때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이에 참여하여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선천에서의 인간은 상극에 지배되어 불완전한 면을 내포함으로 신명과 인간이 상합하여야 한다.
그러면 과연 신명과 인간은 서로 상합될 수 있는가?
먼저 신명이라는 존재의 모습을 살펴보자. "사람에게 혼과 백이 있나니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후손들의 제사를 받다가 사대를 넘긴 후로 영도 되고 선도 되니라.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사대가 지나면 귀가 되니라"
인간의 몸속에 깃들어 있던 인성의 활동이 사후에 시간의 제약을 받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또다른 형태로서, 인간 모두는 사후에 신이 될 수 있다. 다만 생전의 삶에서 각자가 쌓은 공덕과 수도의 정도에 따라 신명계에서의 위치에 차등이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사실과 예를 상제님께서는
"도를 닦은자는 그 정혼이 굳게 뭉치기에 죽어도 흩어지지 않고 천상에 오르려니와 그렇지 못한 자는 그 정혼이 희미하여 연기와 물거품이 삭듯 하리라"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명부가 되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시어 인간 각자가 생전에 수도한 정도에 따라 사후의 정혼의 모습이 달라짐과 생전에 쌓은 공덕에 의해 사후 신명계에서의 신격(神格)이 정해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신명과 인간이 상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면 이러한 신과 인간과의 상합 가능성을 전제로 하여, 그 이후의 실제적인 상합은 어떠한 법리로써 이루어지는가?
"...교중이나 가중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이 문란하여 지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
"사람들 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
"..그것은 신명공사에서 작정된 것인데 어찌 결실하기도 전에 농작을 얘기할 수 있으리오"
위의 구절을 통해 살펴보면 신과 인간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계에서의 분쟁은 신명계에서의 분쟁을 일으키며, 이러한 신명계에서의 분쟁은 다시 인간계에 파급되어짐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는 인간계의 모든 일들이 신명계에 그대로 반영되며, 또 그 결과가 인간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계의 농업작황이 미리 신명계에서 작정되어지는 것처럼 인간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이미 신명계에서 작정되어지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관계는 인간 개개인에 이르러 더욱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신명은 이른바 인간의 내재적 주체로서 작용하게 된다. 마음을 가리켜 "天地之中央心也 故東西南北身依於心(천지지중앙심야 고동서남북신의어심)" 이라 하여 인간에게 있어서도 핵심적인 부분으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또한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심야자귀신지추기야문호야도로야..." 라고 하여 신명과 인간이 상합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상태에 따라 그에 맞는 신명이 응기하여 합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의 작용이 어떻게 신명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살펴보자.
"마음을 깨끗이 가져야 복이 이르나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 들어 복을 이루지 못하나니라"
"나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자기 일에 해태한 마음을 품으면 나의 신명이 그에게 옮겨가느니라"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되어 갚나니라"
이에 의하면, 도적의 마음을 품으면 도적의 신명이 응하여 결과적으로 자신의 복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자기일에 소홀한 채 남의 업적만 부러워하는 자는 그 기국이 작음을 알고 신명들이 떠나가 결과적으로 신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며, 남을 미워하면 상대방의 신명들이 이를 알고 자신에게 척을 맺어 보복하게 됨으로 선천의 상극적 악순환을 다시 초래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가능성과 방법을 부여받은 인간은 신과의 합일을 위해 어떠한 수도자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일까?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앞에서 신과 인간이 합일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마음이 핵심적 요소로 작용되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의 말과 행실로써 외형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행은 인간 각자의 마음상태를 반영한 것이되며, 따라서 이러한 언행은 결과적으로 신명과의 합일을 이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구체적인 수도자세는 항상 언행을 바르게하여 남과 사소한 척이라도 맺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이는 "나"가 아닌 "너"를 항상 먼저 염두에 두고 수도에 정진할 때에 실현가능하다고 하겠다.
4. 맺음말
이상 상제님의 말씀을 통하여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 보았다. 대순에서의 신과 인간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신인조화로 귀결되어 진다.
이것은 선천과는 달리 신과 인간이 서로 분리되어서는 후천선경의 세계로 향할 수 없으며, 반드시 신과 인간이 합일되는 신인조화로써만이 완성세계인 후천세상에 참여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후천선경을 향하고자할 때 수도인 각자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인조화의 가능성과 법리는 이미 수도인 각자에게 주어져 있으며,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이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이에 따른 실제적인 수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매사에 언행을 바르게 하며, 항상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수도에 임하여 척을 짓지 않도록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대순회보 제21호 4면 연구위원 신 일호
(論文중 일부만 발췌 했음)
"신인의도"란 신과 인간이 상호의지해서 어떤 일을 이끌어 간다는 의미이다. 전경을 통해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 (만사가 음에서 일어나 양으로 펼쳐진다 - 신은 음이고 인은 양이다. 음양이 서로 합한 연후에 변화의 도가 있다. 불측변화의 술법은 모두 신명에게 있으니 신명과 감통한 연후에 일을 삼는 즉 대인대의라 일컫는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이 만사를 일으키는 시발처가 되어 인간계에 작용한다. 또한 불측변화의 술법은 모두 신명에게 있기 때문에 인간은 신명과 서로 감통한 후에 변화의 도, 즉 대인대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신인의도란 신이 인간의 말을 듣고 계략하여 쓰는 것(언청 신 계용)을 의미한다.
전경을 통해서 예를 들어보자.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뱃속에 출입케 하여 그 체질과 성격을 고쳐쓰리라"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
이상에서 인간과 신과의 관계는 공재적이고 상호 교접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의 보은사상은 인간과 신을 분리시켜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는 신인의도의 이법이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상제께서는 "천지에 신명이 가득차 있으니 비록 풀잎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를 것이며 흙바른 벽이라도 신이 옮겨가면 무너지느니라" "지금은 신명시대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천지에 신명이 가득차 있다고 하면서 지금은 신명시대라고 선포하셨다.
따라서 필자는 보은도 신명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지 않고는 완전하게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본다. 오로지 신인조화가 이루어져야만 보은도 무위이화로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대순회보 제23호 4면 연구위원 박팽련
烈風雷雨不迷(열풍뇌우불미)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인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서경>에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자의 자리를 선양하는 것에 대해 나오고 있다.
요임금은 어질기가 하늘과 같고 지혜가 신과 같아 그 큰 덕을 밝히어 백성을 다스리니 온 나라가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되니 바야흐로 태평성대인 것이다. 그러나 어느덧 요임금은 나이가 들어 몸도 노쇠해졌고 더구나 유례없는 대홍수가 일어나 온 세상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요임금은 자신의 뒤를 이어 능히 홍수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여러 신하를 불러 모으고 각기 천하를 다스릴만한 덕있는 선비를 추천하기를 명하였다. 방제라는 신하가 요임금의 큰 아들인 주를 추천하였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두라는 신하가 공공이란 인물을 거론하였으나 그 역시 적합하지가 않았다. 사악이란 신하가 곤이란 사람을 등용할 것을 간하기에 요임금이 시험삼아 홍수를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역시 감당을 하지 못하였다.
실의에 빠져 있는 요임금에게 뭇 신하들이 어떤 현인을 추천하였는데 그가 바로 우순이었다. 요임금은 과연 순이 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하였다. 먼저 아황과 여영이라는 두 딸을 시집보내 그가 능히 두 부인을 잘 다스릴 수 있는가를 살펴 보았다.
순은 능히 가정을 화목하게 다스렸을 뿐 아니라 벼슬자리에 오른 뒤 요임금의 명을 받아 백성들로 하여금 오륜의 가르침을 실천하도록 하였으며 문무백관의 질서를 바로잡으니 그 덕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요임금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천자가 되려면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의지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요임금은 대록이란 밀림에 순을 보내 홍수피해상황을 알아오게 하였다. 대록은 지금의 하북성 거록현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온갖 맹수와 독충들이 우글거렸으며 기상이변이 심해 그 누구도 가기를 꺼려했던 곳이었다.
순은 기꺼이 명을 받들어 대록으로 떠났다. 독충과 맹수들이 가득한 밀림속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기겁하였으나 순은 의연하게 길을 나아갔다. 갑자기 후끈후끈한 광풍이 몰아닥쳤다. 일행이 모두 혼비백산하였지만 순은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순은 강인한 정신과 의지력으로 요임금의 명을 완수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일을 <서경>에서는 "납우대록(納于大麓)하신대 열풍뇌우(烈風雷雨)에 불미(不迷)하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 도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심우도의 면이수지 벽화처럼 도인들이 수도해 나가는 과정이 순탄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뇌성벽력이 일어나고 비바람이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순임금이 열풍뇌우가 몰아치는 순간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간 것처럼 우리도 어떤 난관과 고초가 닥쳐도 정심을 유지하여 원하는 바 도지통명의 세계로 나아 가야만 할 것이다.
대순회보 제54호 4면 교무부 제공
옥조빙호(玉藻氷壺)
전경교운2장50절 「...옥조빙호(玉藻氷壺)의 네자와...」에 나타나 있는 옥조빙호는 옥과 같이 맑고, 깨끗하고 투명하게 순결한 일심을 가진 마음을 말한다. 그 절개가 대쪽과 같아 굽힐 줄 모르며 죽음을 불사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며 사리에 맞지 않으면 만금의 유혹을 물리치며,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 마음을 일컫는다.
옛 충신들은 이러한 마음으로 임금을 보필하면서 이 나라를 위난에서 구해왔던 것이다. 이것이 한 민족의 정신이며 군자의 정신이다. 군자는 현실 속에 살면서도 진리를 구현하고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청사에 빛나며 충의 표본이 된 사람이 있으니,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다. 자는 근보, 호는 매죽헌이다. 그가 막 태어나려고 할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하고 세 번 묻는 소리가 났으므로 삼문이라 이름 지었다. 세종대왕 측근에서 좋은 건의를 많이 하였으며, 신숙주등과 같이 정음청에서 훈민정음 창제에도 참여를 하였다. 1453년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참살하고 집현전의 여러 신하들에게 정란공신의 호를 내리니 모두들 순번으로 축하연을 베풀었으나 그는 수치로 여기고 혼자만이 연회를 베풀지 않았다. 1453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니 그는 예방승지로서 국새를 안고 통곡하였으며 이듬해 그의 아버지 승,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과 상왕(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같이 모의하던 김질의 밀고로 세조의 친국으로 가혹한 고문 끝에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세조가 그를 친국하는자리에서
세조 : 무엇 때문에 나를 배반 했느냐?
삼문 : 옛 임금을 복위 시킬려고 했을 뿐입니다. 하늘에 두 태양이 없고 땅에 두 임금이 없으니 상왕이 계시는데 나으리께 충성이란 왠 말이며 무엇을 배반이라 합니까? 나으리는 항상 주공(周公)을 인용하셨는데 주공도 이런 짓을 했습니까?
세조 : 너는 나의 녹을 먹지 않았느냐. 녹을 먹고 배반하는 자는 반역자다. 명분은 상왕을 복위시킨다지만 사실은 자기 잇속을 위한 것이 아니냐?
삼문 : 상왕이 계신데 나으리가 어찌 저를 신(臣)으로 할 수 있습니까? 저는 나리의 녹을 먹지 않았습니다. 이에 세조는 크게 노하여 무사들로 하여금 불에 시벌겋게 단 인두로 삼문의 다리를 잘라버리니 그는 안색하나 변치않고 조용히 "나리의 형벌은 참혹합니다 그려. 더 있으면 하십시오. 한번 먹은 마음이 형벌로 변할 수 있습니까?"하였다.
세조가 조사를 해보니 과연 세조가 준 녹은 하나도 먹지 않고 별실에 쌓아 두었으며, 자기 방에는 거적을 깔았고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살림이었다. 그의 아버지 또한 형장에서 "내가 늙어 명분없이 죽는 줄 알았더니 아들을 잘 두어 죽을 자리를 찾았으니 내가 효자를 두었구나"하면서 웃으며 죽어갔다.
이에 반하여, 현대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잇속에만 치우쳐 충효사상(忠孝思想)이란 찾아볼 수 없으니 너무나도 대조적인 흐름에 빠져 들고 있는 실정을 볼 때, 한번쯤 옥조빙호의 글을 읽고 생각을 하여 반성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상제께서 "일심 가진 자에게 지체없이 베풀어 주리니.."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였던 사마천이 쓴 "사기 회음후열전"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시대적 배경은 항우와 유방이 격돌하던 초한시대에 항우가 형양에서 유방을 포위하고 있던 상황에서 한신이 유방에게 제나라 왕이 되게 해 달라고 청원한다.
이때 유방은 장량과 진평의 계책을 따라 한신을 왕으로 임명해 준다. 그러자 항우가 위협을 느끼고 한신에게 한.초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의 평소 은혜 때문에 유방을 배척하고 이익을 찾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제나라 사람 괴통이 현재 천하의 형세를 잡고 있는 사람은 한신이라 간파하고 다음과 같이 한신에게 말한다.
"저는 사람의 운명을 보는 재주를 배운 일이 있습니다. 귀천은 골상에 있고, 기쁨과 근심은 얼굴빛에 있고, 성공과 실패는 결단에 있습니다. 지금 왕의 얼굴을 뵈오면 기껏해야 제후에 봉할 만한데 왕의 등을 보니 입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상입니다. 지금 한.초가 쟁패함에 쌍방이 모두 결정적인 우위에 설 수 없는 상황이며, 항우와 유방의 운명의 귀추는 왕의 거취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왕께서 취할 최상의 길은 초.한 어디에도 편들지 않고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양나라에 평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백성의 소망으로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천하의 군주장상들은 왕께 와서 조회할 것입니다"
괴통은 이와 같이 설명하고 다음의 말로 결말을 지었다.
"대개 듣건대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 좋은 기회가 왔는 데도 행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고 합니다. 원컨대 이것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신은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이윽고 천하통일은 한에 의해 이루어지고 한신은 유방의 정벌중에 반란을 일으켰다하여 참형에 처해졌다.
참형에 처할 때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괴통의 계략을 쓰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이에 여후에게 속임을 당하게 되었다.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상기 일화중 "천여불취 반수기앙"의 구절은 공사 3장 18절에 실려 있다.
상기 고사와 관련하여 다음의 상제님 말씀을 깊이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운수는 열려도 자신이 감당치 못하면 본곳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혹시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기도 하리라. 잘 믿을 지어다" 이다.
하늘이 내려준 복록과 인간완성의 길을 받은 줄 알면서도 나태하여 그것을 받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기의 운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무도병으로 진멸지경에 처한 현실 속에서 진리와 생명의 길에 입도하여 장차 상제님의 큰 덕화를 받게 될 우리는 훗날 탄식줄이 나오지 않도록 지극하고도 변함없는 일심의 성경신을 하루하루의 수도생활 속에서 탄탄히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늘이 준 복록을 받는 길이며 또한 재앙을 물리치는 첩경이라 생각해 본다.
束手之地葛公謨計不能善事
우주의 모든 일들은 질서를 따라서 차착이 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지극한 천지신명의 조화가 있어 가능한 것이다. 만일 진리에 지극한 신명의 노력이 없다면 질서는 물샐틈 없이 잡혀질 수 없는 것이다.
지극한 노력은 사회에서 인간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된다. 정성이 빠진 채 매사를 대하다 보면 여러 가지 실수와 잘못이 연발하며 그에 따른 문책이 인간에게 내려진다.
여기에서 우리의 "대순진리"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도는 삼계대권의 주재자이신 구천상제님의 강세와 천지공사를 통해 모든 우주의 법리를 바로 잡아 하늘, 땅, 인간 그리고 신이 상생의 도를 따라 존재하게 되는 신도이며 대범하고도 큰 천지대도이다.
더욱이 이제는 "인존시대"가 되므로 성사재인에 따라 인간이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게 됨은 주지의 사실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실로 모든 일을 귀신과 같은 경지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처리해 나가는 진심갈력의 수행이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주리니 상등은 만사를 임의로 행하게 되고..."라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성.경.신에 따른 극진한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수도의 완성이란 법방과 대순진리에 따른 나 자신의 지극한 노력과 실천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나의 수행과 도에서의 공덕이 없다면 어느 것 하나 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말세를 당하여 무극대운이 열리나니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처럼 현 대순진리회의 수도의 제규정과 실천덕목을 지신지덕, 극성극경으로 수행해 나가는 수도의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점에 비추어 이제 인간이 도통군자가 되어 일을 이루는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상제님께서 "전경"에 말씀하신 "束手之地葛公謨計不能善事(속수지지갈공모계불능선사:두 손을 팔짱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갈공명이 일을 꾸며 계획한다 하여도 능히 일을 잘 할 수 없다.)"라는 구절을 깊이 숙고해 모든 일에 있어 인간의 "적극적이고도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팔짱을 낀 채 생각에만 그친다거나 모든 일을 소심하게 저어하여 행하지 않는다면 뛰어난 재조와 지략의 소유자인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이 일을 꾸민다 하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천지공정속에서 상제님의 해원상생의 법리에 따라 경위에 맞게 실천하고 실행할 때 공덕이 쌓여지고 지혜가 밝아져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고 심령이 통해 귀신과 함께 응대할 수 있으며 만물과 함께 질서를 갖출 수 있는 것이다.
도의 진리를 많이 알고 모르고를 떠나 일차적으로 팔짱을 낀 채 수수방관하는 자세를 버리고 상제님의 진리와 그에 따른 도주님의 법방을 맞춰 한걸음 한걸음 실천하고 반성해보는 수도인의 자세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것은 상제님께서 "모든 일을 알기만 하고 쓰지 않는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상제께서 교운을 펼치신 후 때때로 자기를 좇는 종도들에게 옛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주시니라. 그 사람들 중에는 강태공. 석가모니. 관운장. 이마두가 끼었도다"라는 내용에서 우리는 상제님 말씀에 인용된 옛 성현들이 "지극하고도 적극적인 노력속에서 냉철한 상황판단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지상천국건설이라는 인류애"로써 현실의 모진 역경을 극복하여 대업을 이루었던 과거사를 돌아보며 이제 이 시대의 천지대도의 일꾼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로 솔선수범하여" 포덕천하의 새장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제28호 5면 교무부
德懋耳鳴 過懲鼻息(덕무이명 과징비식)
인간을 괴롭히는 수많은 질병중에 「이명증」과 「비식증」이 있다.
'이명증'은 귀에서 매미소리, 바람소리 같은 것이 항상 들려 고통을 당하는 병으로서 본인만이 그 증상을 느낄 수 있다.
'비식증'은 잠을 잘 때 코를 고는 병으로서 본인은 모르지만 주위 사람에게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피해를 입힌다.
이 두 병증은 서로 대조적인 면이 있다. 전자는 본인만이 느끼는 병이라면 후자는 주위 사람이 다 아는 병이다.
상제님께서 이 두 증세를 갖고 덕을 힘쓰고 자기 허물을 징계하는데 비유하신 대목이 있다.
德懋耳鳴 過懲鼻息(덕무이명 과징비식)이란 말씀으로 "덕을 힘쓰는데는 귀에서 소리 나듯이 하고, 허물이나 과실을 징계할 때는 코에서 숨소리 나듯이 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덕을 힘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덕은 모든 상서로움의 근본이요, 모든 사업의 토대가 된다. 사업자가 덕을 베품에 인색하다면 그 사업은 반드시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후덕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큰 그릇엔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듯이 후덕한 사람은 도량이 넓어야 하며, 넓은 도량은 넓은 식견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덕을 힘쓴다는 말은 먼저 널리 보고, 듣고 체험하여 깊이 깨달으므로써 식견을 넓혀가는 것이요, 큰 도량으로 여러 사람에게 해원상생의 진리를 실천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덕을 쌓기엔 인색하면서도 큰 복 받기만 학수고대한다. 이것은 하늘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면 '덕무이명'란 말씀은 무슨 뜻일까?
귀에서 나는 소리를 덕에 힘쓰라는 하느님의 말씀, 또는 천지신명이나 조상님의 말씀으로 생각하란 뜻이다. 이 귀에서 나는 소리는 자기 귀에는 크게 들려도 남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법으로 남이 모르는 음덕을 쌓으라는 뜻이다.
덕에는 양덕과 음덕이 있으며, 음덕은 사람의 이목에는 보이지 않는 신명만이 아는 덕이다.
'과징비식'은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
사람들이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과오를 범할 수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그 허물을 감추려 든다. 그러나 그 허물을 숨기려들지 말고 공개하여 자기 스스로를 징계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이다. 상제님께서는 이 허물을 징계할 때, 코에서 숨소리 나듯이 하라 하셨다. 그것은 잠잘 때 코를 곯아 주위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듯이 허물이 있으면 언젠가 들어나는 법이므로 숨기려 들지 말고 공개하여 반성할 때, 다시는 그 과오를 범하지 않게 되고 자기에게 스스로 맹세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수도생활을 하다보면 잘한 일도 있으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때에 잘한 일을 남이 알까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덕에 힘쓰고, 잘못된 일은 애써 감추려 들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알릴 수 있을 때 올바른 수도생활이 된다고 믿는 바이다.
대순회보 제7호 9면 교무부 제공
소원인도(所願人道)
사람들은 소원을 갖고 있으며 소원성취하고자 노력한다. "각자가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소원하여 행하는 행위는 여러 가지 형태이다. 그리고 소원하여 기원하는 내용도 각각이다. 그러나 大仁, 大義, 大德의 원대한 포부에서 바라보면 동일하다.
여기서 상제님의 말씀을 새겨보아야 하겠다.
所願人道 願君不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소원인도 원군불군 원부불부 원사불사
有君無臣其君何立 有父無子其父何立
유군무신기군하립 유부무자기부하
有師無學其師何立 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
유사무학기사하립 대대세세천지귀신수찰
사람은 누구나 소원성취를 바란다. 누구는 부와 명예 혹은 지위와 권력을 구한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단지 과정이나 방편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이 구하는 부와 명예와 권력은 결국에는 올바른 君.師.父가 되어 쓰고자 구하는 것이다. 즉, 한 인간으로서 君이 되고 師가 되며 父가 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君이 되고자 하여도 君이 되지 못할까? 왜 아버지가 되고자 해도 아버지가 되지 못할까? 왜 스승이 되고자 하여도 스승이 되지 못할까? 이것은 본래의 목적을 잊고 현재의 재리에만 따르다 보니 근본과 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君이라 하면 선정을 베풀어 만인을 평안하게 하여 천하사를 도모하는 분을 말한다. 또한 천하를 위하여 형극의 길을 걸으신 성군을 말씀하심이다. 즉 요순의 도를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우임금은 천하의 치수사업을 위하여 맨발로 9년간을 돌아보며 대역사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극한의 고통을 이기고 덕을 폈던 그 길이 君의 길인 것이다.
스승은 어떠한 것인가?
스승은 천하의 만인에 모범을 보이고 천하의 모든 사람이 올바르게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분이다.
옛 말씀에 성인이 세상에 나오심은 우민우부를 가르쳐 천하의 대의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실천함으로써 시기와 질투 그리고 중상모략의 고통을 극복하신 분을 일컬음이다.
父라 함은 아버지로서 자애하심을 말한다. 또한 천하의 만인을 구분없이 평등하게 사랑하시는 분이 그분이다. 그럼으로써 천하의 대인을 바로 세우는 분을 말한다.
이 길을 펴 주시고 실행으로 보여주신 분이 있다.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기억에 없는 분도 아니다.
바로 천하대순의 길을 걸으신 구천상제님이 그분이시다. 상제님께서 君.師.父의 대도의 길을 후세를 위하여 펴주셨다.
상제님께서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라, 천지신명이 모여 상제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 하므로 괴롭기 한량 없으나 어찌 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하신 바와 같이 지극한 형극의 길이지만 천상천하의 君.師.父로서 행도하신 것이다. 이것을 천지공사하신 9년과정에서 보면 지극한 고통의 길이요 부와 명예와 권위의 길은 결코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즉, 백의장상도수를 보시던 때 형옥(刑獄)을 당하신 것이나, 만인을 위하여 병을 대속하신 것,
장흥해의 난 때에 당하신 수모와 불음불식하시며 49일 공부를 하신 것 등 천하만민을 위하여 덕을 펴셨다.
이와 같이 상제께서 천하만인을 위하여 일하시고 천하에 그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창생을 건지려 하노라"하신 말씀이 大仁.大義.大德을 천명하여 밝혀 주셨다.
이로써 진정한 스승의 길과 임군의 길 그리고 천하만인의 大父의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 수도인이 가는 길은 상제님께서 몸으로, 언행으로 보여주시고 펴주신 길을 간다. 이 길이 희생의 길이며 형극의 길이며 극기의 길이고 상생의 길이다. 또한 이 길이 人道의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 펴신 가르침을 닦고 배움으로써 스승의 자리에 바로 세워 드리고, 또한 본 뜻을 잊지 않고 행함으로써 신하와 자식의 도리를 다하여 임금과 아버지의 자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따라서 수도의 길은 각기 자기의 본위치에서 행할 바를 바르게 성경신으로 끝까지 행할 때 각자의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
대순회보 제10호 11면 부전방면 선감 정대진
病自己而發
- 病(병)은 걸리는 것이 아니라 自己(자기)에게서 일어난다 -
- 모든 病(병)이 마음에 따라 생긴다 -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 치유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학에서 조차도 병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그 근본적 원인을 시원스럽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우리들은 수도를 하는 입장에서 병에 대해 그 해결책을 찾아 보아야 한다. 상제님께서는 병에 대한 말씀을 글로써 많이 남기셨다. 그중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 구절은 "병은 자기에게서 일어난다"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상의 공덕으로 건강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살아가면서 병마가 찾아와 쇠해지고 병들어 죽게 된다. 이때 병은 자기 자신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말을 한다면 도에 맞지 않는, 的中(적중)하지 못한 생활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우주에는 진법으로 존재하는 진리가 있다. 그것을 알고자 배우고자 우리는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일생동안 자기완성의 길을 가고자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을 접하며 마음과 몸을 인도에 맞게 제어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병의 경지에 갈 수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몸과 마음이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안에서 맑고 투명해졌을 때이다.
서신사명하에 천지가 성공하는 이 천지가을은 구천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안에서 생존의 가치와 무병장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병은 자기에게서 일어난다"라는 말씀에서 自己(자기)는 道(도)를 모르는 未完(미완)의 자신이다. 진법이 흘러가고 있는 대류를 따라 천하절후가, 천하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자기이다. '고해의 바다'라고 상제님께서는 이 세상을 진단하시고 재리에 빠진 세계창생을 건지시고자 대망의 천지공사를 역사하셨다.
병든 세상을 구하는 것이 상제님의 천지대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 천지대도의 진리와 말씀 그리고 수도 법방에 맞추어 성경신으로 수행하게 되면 병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러할 때 우리의 모든 것이 진법의 대로를 따라 "도즉아 아즉도"의 차원으로 승화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이 세상 속의 제도나 문물, 사회풍조가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
고대로부터 천지인에 통하는 진리가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상제님께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은 무도 속에서 본연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
병은 이러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도에 맞춰 이끌어가지 못하고 세상에 이끌려 어두워질 때 걸리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에 맞춰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는 수행을 몸소 행할 때 먼지와 티끌이 사라지고 무한한 대순의 무병장수의 빛이 우리 몸을 광명하게 비추게 된다.
"안심 안신은 대병의 약이다(安心安身大病之藥)" "모든 병이 마음에 따라 생긴다(諸病從心起)"라는 말씀을 심신에 깊이 새겨 법방에 따르는 올바른 수도 속에서 상제님의 대업을 전천하에 펼쳐나가는 생활이 곧 병에 걸리지 않는 첩경이 될 것이다.
대순회보 제36호 제6면 교무부
無私至公(무사지공)
도(道)는 어떤 일개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포용하여 경위와 질서를 따라서 쉼없이 흘러가는 원리인 것이다.
만일 도가 사사로움에 따라 움직여간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도라는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로지 천리에 따라 끊어지지도 않고 쉼도 없이, 형체도 없고 냄새도 맡을 수 없는 것이지만 도는 "공(公)"을 따라 우리 주변을 오늘도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도(道)가 공(公)의 틀을 벗어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때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멋대로 흘러가는 자연의 변화속에서 천재지변이 수시로 일어나고 우주는 물론이고 인간세상 또한 무법천지로 변해 모든 것은 마비상태속에 빠지며 인간은 진멸지경에 처할 것이다. 아직 선천의 상극세상이지만 우리가 그나마 자연의 변화에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경위와 질서를 따라 움직여 가는 원리가 존재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국 도라는 것은 일체의 사가 없이 공명정대하고 무편무사하게 존재하는 법이며 율령이므로 인간은 그 속에서 질서있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공평무사한 도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수도를 해나가야 할 것인가.
도의 흐름속에서 살아 가고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무사지공(無私至公)"의 수행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수행을 통해 도의 완성을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전님께서 "수도를 잘 하고 잘못 함은 자의(自意)에 있으나, 운수를 받는 것은 사가 없고 공에 지극한(無私至公) 인도(人道)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道)란 부단불식(不斷不息:끊기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는다)하여 무형무적(無形無跡:형상도 없고 자취도 없다)하고, 무성무취(無聲無臭: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하지만 공명정대하여 무위무가(無爲無假)하며, 무편무사하여 두과지리(豆瓜之理)와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점을 보여 주신 것이라 사료된다.
결국 수도에 있어 개인적 감정과 이익을 떠나 천하의 마음으로 돌아가 남을 잘 되게 해 주는 공명정대한 수행이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경"에 "천리의 극진함이 털끝만한 인욕의 사가 없나니라"라고 하신 말씀과
"난법 난도(亂法亂道:법도를 어지럽히다)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가"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을 세우고 그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 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하라.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하여 마음에 먹줄을 겨누게 하고 사정의 감정을 번갯불에 붙이리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 고 하신 구절에서도 역시 도를 닦아 운수를 받는데 있어 진실되고도 공명정대한 성.경.신의 노력이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강세하시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신 것은 "공사(公事)"라는 낱말이 보여 주듯이 우주전체의 바른질서를 세우기 위한 광대정명한 대역사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바로 잡혀져 가는 "진법(眞法)"의 원리안에서 수도인으로서 "천지공정"에서 일개인적 사심과 사욕을 부려 어지럽히는 일을 행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의 도는 신도로서 천지신명의 "공판(公判)"과 함께 가는 수도의 길이다. 인간이 만들어 개인적 사고에 따라 복록을 주는 사사로움이 개입될 수 없는 "신인조화(神人調化)"의 공정한 대도인 것이다. 그래서 도통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한 종도에게 상제님께서는 그 청을 꾸짖으시며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고 말슴하셨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콩심은 데 콩나고 오이를 심은 데 오이가 난다(豆瓜之理)"는 당연한 진리의 말을 생각하며 항시 수도생활속에서 나 자신의 "私"를 버리고 "公"으로 돌아가 모든 수도인들과 화합단결을 이루는 수행의 장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제26호 5면 교무부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천지인 삼계를 상생지도로 개벽하여 무너진 상도를 바로잡는 일이셨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천지인 삼계와 관련지어 신도를 통해 공사를 처결하셨다. 그 점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류가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여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져 삼계가 혼란해 도의 근원이 끊어졌다'는 말씀이나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여 원한이 쌓이고 천지인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했다'는 지적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천지인은 한몸인데 그 한몸이 분리되고 유리되어 맥이 통하지 못하고 피가 흘러 몸전체를 돌 수 없었기에 이곳저곳에 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상제님께서는 삼계의 상극과 원한을 말씀하신 것과 함께 인간에게 있어서도 하늘과 선령신의 공력과 공덕을 깊이 마음속에 새겨야 됨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드려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 같이 공을 드려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 "이제 각 선령신들이 해원 시대를 맞이하여 그 선자 선손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내세우나니 힘써 닦을지어다"
선령신들의 공력을 받고 태어난 존재로서 인간은 해원시대인 지금 도를 지극히 수행해 운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늘이 인간을 낳게 하는 것이니 인간은 그 근본을 명심하여 스스로 천지가 인간을 쓰는 천운구인 시대에 상제님의 천지대도에 참여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天地生人 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 : 일이란 것은 마땅히 왕성히 천지에 있다. 반드시 인간에게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없다. 그러므로 천지는 인간을 낳아 쓴다. 인간으로 태어나 천지가 인간을 쓰는 때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찌 인간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밝히셨다.
실로 천지가 인간을 낳아서 쓰는 이때에 천지대도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운을 모르는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옛날 당나라가 천하를 평정한 일도 상제님께서 "천지에서 혼란한 시국을 광정하려고 당 태종을 내고 다시 이십 사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나니 너희들도 그들에게 밑가지 않는 대접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처럼 천지가 인간을 내어서 썼던 것이다.
더욱이 지금 이 시대는 중국 한 지역만 평정하는 때가 아니다. 천계 지계 인계 모든 우주를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로써 후천선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도인들을 낳아서 쓰는 것이다. 이러한 천지가 성공하는 개벽시대를 맞아 인간으로 태어나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는 포덕사업은 우주에서 가장 성스럽고 지고한 일이며 우리 도인들이 반드시 현창시켜야할 대업인 것이다.
대순회보 제52호 4면 교무부
환부역조
우리나라는 수백번의 크고 작은 외침에도 굴하지 않고 단일빈족국가로서 민족의 전통과 혼을 면연히 이어왔다.
이는 우리 민족이 옛선조들에 대한 공경심과 숭배의식이 투철하여 옛것을 존중하며 선조들의 위업을 수호하고 길이 보전하고자 하는 강한 민족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뿌리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혼이 살아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시회일각에서는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업신여기는 반면 외래의 사상, 풍조, 주의, 학문, 제도 등의 선별없는 도입이 만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사회실상, 즉 전통문화에 대하여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현실에 견주어 우리의 근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한번쯤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나라를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한 공사와 민족혼을 일깨워 주기 위해 계시하신 상제의 말씀을 통해서 민족혼을 되살리고 민족적 자긍심을 가져야알 것이다.
상제께서는 "우리나라를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해 서양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니 이제 배에 실어 오는 화물표에 따라 넘어오게 됨으로..."라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원시반본 하는 때라 혈통줄이 바로잡혀 환부역조와 환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하셨다.
이러한 상제의 공사와 계시는 구한말 무역에서 뿐만 아니라 상품을 통하여 국내 경제의 파탄을 조장하여 국토를 강점하고 사상(종교)을 앞세워 민족혼을 유린하려 했던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민족과 민족혼을 길이 보전하고 나가서는 우리 민족의 주체하에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상제의 크나큰 덕화를 망각하고 오히려 우리의 전통문화를 치졸한 것으로 치부하며 왜래문화를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소홀히 하고 등한시 하여 우리의 혼이 깃든 근본을 외래의 문화와 사상 등에 의해서 퇴색되게 한다면 이는 상제의 덕화에 대한 큰 배은임을 물론이요 우리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태인들이 2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라없는 유랑 끝에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었던 힘(정신)이 무엇이었는가를 통해 민족정신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유태인들이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저력은 그들의 혼이 깃든 경전 "탈무드"에 있다 할 것이다. 이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즉 유태인의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물고기가 물에서 나오면 어떻게 되느냐"하고 질문하자 그의 아들이 "말라 죽고 만다"라고 대답을 한다. 이에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유태인은 유태인으로 살아야지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유태인임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이와 같이 유태인들은 그들의 후손에게 유태인의 근본(혼)을 잊지 말 것을 가르쳤고 그 후손들은 조상의 가르침을 성실히 이행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기록인 "단기고사"-학계에서는 정사가 아닌 야사로 보고 있음-에도 민족혼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 있다. 즉 나함연이라는 신하가 단군왕검의 아들 부루에게 남함지라는 잘 사는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도덕과 정치를 시찰하고 좋은 점은 취하자고 제의를 한다. 그러나 부루는 "새와 짐승은 땅에 살고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니 물고기를 육지로 옮겨 놓으면 오래살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를 본받고자 하면 반드시 나라가 오래가지 못하리라"하고 말을 한다.
이는 남의 것이 아무리 훌륭하고 좋아 보인다 할지라도 자국의 환경과 민족성등의 입장에서는 부적합할 수 있음은 물론 남의 것을 모방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자기의 근본 혼을 잃게 된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제의 공사와 계시의 말씀을 깊이 헤아림은 물론 유태인의 정신과 옛 선지자의 교훈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근본이 어디로부터 비롯 되었는가를 통찰하여야 할 것이다.
상제께서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 하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대에서부터 비롯 되었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환부역조와 환골"은 선조들에 대한 배은임은 물론이요 스스로 자멸을 재촉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조들의 혼이 깃든 전통문화를 숭상하고 또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령신들에 대한 예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것 우리의 문화를 소중히 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갖도록 하자.
대순회보 제15호 10면 교무부 제공
"도(道)가 음양(陰陽)이고 음양이 이치(理致)이며 이치가 경위(經緯)이고 경위가 법(法)이다"라고 하신 지침의 말씀과 같이 도라는 것은 음양의 원리속에 이치와 경위를 따라서 변화해 가는 법인 것이다.
우주의 법은 인간과 함께 항시 생활속에 존재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도리에 맞는 올바른 법의 실현이 될 것이다. 그래야만이 어그러지거나 잘못되는 일이 없이 세상의 질서가 상생의 원리에 따라 진행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리와 예의관계에 대한 다음의 상제님 말씀을 생각하여 수도인으로서 엄숙히 "예(禮)"를 잘 지켜야만 될 것이다.
"예로 움직여 예에 머무는 것을 말하여 도리라 한다(動於禮者 靜於禮曰 道理)" 위의 말씀은 도리(道理)의 시작과 마침, 출발과 귀결이 모두 예절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예를 지키지 않을 때 인생의 바른 길을 갈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의 주재자이시면서도 신명에 대해 "상제께서 대신명이 들어설 때마다 손을 머리 위에 올려 예(禮)를 갖추셨도다"와 같이 하신 것과 "고부(古阜)는 예절을 찾는 구례(求禮:예를 구하다)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예절이 원초적으로 항시 필요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대순지침"을 통해 "예"의 의미를 새겨보자.
"예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일생 동안 움직일 때나, 누워 있을 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를 넘는 일이 없이, 공경심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 주는 인도를 갖추는 것을 이른다" 윗 말씀에서 예는 일생동안 꼭 지켜야할 기본이며 모든 일의 바탕이 되는 것임을 우리들은 알 수 있다. 즉 일상의 모든 것을 "예로부터 시작해 예로 마무리하는" 도의 이치를 수도의 장 속에서 수행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예를 통해 "사람의 도가 예를 체로 삼기 때문에 그 체통을 바로 하여야 체계질서가 정립된다" "윗사람은 매사에 예를 갖추어 공정을 기하고 아랫사람은 직책을 예법에 합당케 하여야 한다"고 하신 말씀과 같이 "체계질서"의 근본을 세워야만 될 것이다.
그것은 "도덕과 인의도 예가 아니면 이루워지지 않는다. 풍속도 예가 바로 서지 않으면 갖추어지지 않는다. 부자 형제도 예가 아니면 윤리가 정립되지 않는다. 스승을 섬기고 학문에 힘쓰는 일도 예가 아니면 바른 수업이 될 수 없다. 군률을 세우고 관직에 있어서 법을 행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 조상을 받들고 신명앞에 치성을 드리는 일에도 정성의 예를 갖추어야 하므로 사념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신 훈시속에서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연원으로 세우신 도법위에 "예"를 체계 질서 속에 실현시켜 수행속에서 몸과 마음에 푹 베이게 해야 될 것이다.
또한 상제님께서 "不受專强專便曰禮불수전강전편왈예:오로지 강하게만 하거나, 오로지 편히만 한다고 (인상을) 받지 않는 것을 예라고 말한다"고 하신 말씀과 같이 평범하면서도 적중한 가운데 위의(威儀)를 세워야 할 것이다.
선천에서도 예(禮)는 악(樂)과 함께 음과 양이 되어 통치질서의 핵으로써 강조되어져 왔다.
유가에서는 "예기(禮記)"라는 책을 지어 예를 외면적 규율의 총체로 삼아 제도.법률에서 의식범절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 일신의 수양에서 천하의 경륜에 까지, 일상의식의 범절에서 제례에 까지 그리고 심성의 체용에서 우주의 변화에 까지 세미한 것을 지극히 하고 광대한 것을 지성으로 수행했던 것이다. 그것은 대인의 학(學)인 "대학(大學)"이 예기중의 일부분이었다는 점을 잘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한(漢)나라의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예서와 악서편을 두어 예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다루기도 했다.
실로 수도에 있어 예의 중요성은 막중하다 하겠다. 우리들은 인간 도리의 근본인 예를 적중하게 수행하여 상제님의 진리위에 체계질서를 바로 세워 천하에 후천의 정대광명한 인도를 심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제25호 4면 교무부
근대적 민족종교인 동학을 창시한 최수운, 제세구민의 큰 뜻을 품고 물밀 듯 몰려 들어오는 이질적 서양문화 곧 서학(西學,천주교)에 대하여 소박한 백성을 위하여 동학을 창시한 최수운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천도교의 자료에 의하면 수운은 호이고, 아명은 제선(濟宣), 이름은 제우(濟愚)이다. 1824년 10월 28일 경주 가정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동경대전의 노소문답가에 "금강산일협곡"이라고 수운이 직접 기록한 점을 들어 금강산에서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경주 가정리에서 성장한 수운의 선조는 신라말기의 유명한 석학 고운 최치원이다. 수운 부친의 호는 근암, 이름은 최옥이고 모친은 한씨부인이다. 근암은 63세의 노경에 들어 수운을 얻었다. 근암은 문장과 도덕이 높아 경상도 일대에서 사람의 사표가 되었으나 끝내 벼슬없는 선비로 불운하게 살다가 한평생을 마쳤다. 그는 특히 성리학의 연구에 힘쓰면서 주자와 퇴계의 학설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수운은 어려서부터 도량이 크고 사리가 밝을 뿐 아니라 얼굴이 관옥같으므로 집안이나 이웃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고 보는 사람마다 신동이라 이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특히 눈에 광채가 있어 마치 샛별같은 눈이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렵게 하므로 남들이 희롱하기를 "너의 눈은 역적이 될 눈이다"라고 하면 수운은 태연하게 답하기를 "나는 역적이 되려니와 너희는 어진 백성이 되라"고 하였다.
수운은 점점 성장함에 따라 매사를 범연히 보아 넘기지 않고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회의적이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가 하면 반대로 비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수운은 비교적 일찍부터 세상이 어지럽게 되어 감을 보고 이 세상은 "임금은 임금답지 않고, 신하는 신하답지 않고, 아비는 아비답지 않고, 아들은 아들답지 않고, 남편은 남편답지 않고, 아내는 아내답지 않다"는 것을 탄식한다.
13세에 부친 명에 따라 밀양 박씨 가문에서 부인을 맞아들였다. 다음해 14세 때에는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여행길에 나섰는데 우선 경주 치술령을 거쳐 금강산을 위시하여 여러 명산을 두루 찾았다. 이 여행에서 수운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근본원리와 시운시변하는 세상 이치를 수 없이 느끼고 그 때의 일들을 뒷날 "몽중 노소문답가"에서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양반지배층의 부패, 무능한 정치와 가혹한 착취로 나라안 각처에서는 크고 작은 민란이 일어나고 심각한 사회적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어갔다. 따라서 도탄에 빠진 민생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였으며 이렇듯 소외 당하고 실의에 빠진 백성들이 찾을 곳은 신앙적인 안식처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성종교는 이미 쇠퇴하였고 밀려들기 시작한 서학은 오랫동안 유교적 윤리에 젖어온 일반 백성들에게는 쉽게 영합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1840년 부친마저 세상을 뜨니, 수운의 나이 17세였다. 양친을 모두 잃고 외로운 몸이 된 수운은 자기의 고독을 통하여 한층 더 명상에 젖어들고 세상인심과 더불어 인생에 관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군신부자의 상하관계가 뒤흔들리는 속에서도 낡은 도덕과 타락한 윤리를 탄식하면서 스스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건지기로 굳게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선대로부터 전해오는 경서(經書)를 연구해 보았으나 아무 소득없이 "이 세상은 요순의 정치로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며 공맹의 도덕으로도 또한 건지지 못하리라"고 단정했다. 다시 불서(佛書)를 깊이 연구했으나 역시 얻은 것이 없어 "유도 불도는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라고 안타까워 했다. 또다시 도가의 신선술도 연구했지만 그도 역시 병든 세상을 살릴수 있는 도리가 못된다고 단정했다. 이는 수운으로 하여금 과거의 모든 종교를 부인하게 했고 따라서 새로운 가르침을 찾는 의지를 발휘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수운이 20세(1843)되던 해 큰 화재를 당하여 가산과 모든 유물이 타버리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마음에 충격적인 상처를 입고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된다. 이처럼 자책하는 마음에 후회막급한 생각마저 겹친데다가 가정을 이끌어갈 생업조차 막연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보다 큰 뜻을 품고 있던 수운은 전래의 가업을 버리고 구도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집은 이미 불타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처자를 울산 처가에 맡기고 드디어 도를 구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고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세상인심과 시운시변하는 사회환경을 힘써 살피면서 동으로는 금강산, 서쪽으로는 구월산, 남으로는 지리산, 북으로는 묘향산 등 널리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며 큰 절에 이르러는 고승들과 불경을 토론하고 큰 마을에서는 서당에 들러 선비들과 정담을 벌였다. 이처럼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는 동안에 수운은 보고 들은 것도 많거니와 느끼고 깨들은 바도 많았다. 어수선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보고 들은 수운은 이 세상이 뿌리채 무너져 간다고 느꼈다. 그 무엇보다 이 세상을 뿌리로부터 바로 잡을 수 있는 원천적인 진리를 갈망하게 된다.
수운은 세상 사람이 "하느님(상제)의 뜻, 천명"을 돌보지 않으므로 이처럼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다고 진단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상제의 뜻을 알고 따르기만 한다면 어지러운 세상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수운은 무엇보다 앞서 상제의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다.
수운은 20세에 집을 떠나 천하를 두루 다니다가 31세 되는 갑인년(1854)에 돌아와 처자가 기거하고 있는 울산을 찾아 그 곳 유곡동(경남 울산시 유곡동) "여시바윗골"에 초가 3칸을 마련하고 살게 된다.
이듬해(1855) 을묘년 춘삼월 초순 수운이 홀로 토당에 앉아 이치를 생각하고 있는 중에 문득 눈을 들어보니 어떤 이상한 도인이 앞에 나타나 책 한권을 주고 합장 사배한 다음 사라지니 이것을 일러 "을묘천서"라고 한다.
을묘천서 속에 적힌 "지극한 정성을 하느님께 49일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뜻에 따라 1856년 천성산 내원암에 들어가 술수를 터득했으며,
이듬해(1857) 가을 천성산 적멸굴에서 지성으로 49일간의 기도를 드렸지만 역시 불가사의한 이적과 영험이 있을 뿐이요 세상을 건질만한 큰 도는 얻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1859년 수운이 생각하기를 "내 창생을 건질 도를 얻기 위하여 10여년의 긴 세월을 주유천하 하였을 뿐아니라 수련과 기도를 계속하여 왔으나 아직 조그마한 이적을 얻었을 뿐이요 제세안민의 대도를 찾지 못하였으니 내 선조의 유산을 탕패한 보람이 어디 있으며 내 가산을 돌보지 않은 면목이 어디 있는가. 내 이제로부터 고향에 돌아가 제세안민의 큰 도를 얻지 못하면 깊이 숨어 세상에 다시 나오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처자를 데리고 고향인 경주로 돌아와 구미산 아래에 있는 용담정에 은거하면서 침사명상을 계속했다. 또한 그 큰 뜻을 이루기 전에는 다시는 이 산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중한 맹세를 하고 "불출산외(不出山外)"의 뜻을 밝힌 시를 써 붙였다.
"道氣長存邪不入 世間衆人不同歸도기장존사불입 세간중인부동귀(도의 기운이 오래도록 함께 있으니,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고,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과는 같은 길로 가지 않으리)"
수운은 기필코 세상을 건질 무극대도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용담에 돌아와 산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세상과 같이 돌아가지 않기로 맹세한 다음 상제께 지극한 정성을 드림으로써 도를 구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했다. 이제 수운은 너무도 절망적인 그의 처지를 오로지 어떤 절대적인 존재의 뜻에 걸었다. 그의 모든 것을 절대적인 존재 곧 상제께 걸고 이처럼 절대적인 경지에서 수운은 드디어 그 어떤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된다.
수운의 나이 37세(1860,경신년)에 무극대도를 득도하였다. 지극한 정성을 드리면 상제의 뜻도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한 수운이 일심으로 수도에 최선을 다한 끝에 드디어 뜻을 이루고 만고에 없는 무극대도를 얻게 된 것이다.
이로써 만고없는 무극대도 곧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게 되는데 수운은 이를 동학이라 일컬었다.
수운사상에 있어서 핵심은 시천주 사상이다. 이는 상제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모심으로써 후천선경과 지상선경을 실현하고 세계개벽을 이룰 수 있다는 후천개벽 사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수운은 상제님을 모시는 올바른 태도가 성.경.신에 있다고 말한다. 이 속에서 힘써 공부하면 진리를 통달하여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신의 도덕을 밝히는 노력을 넘어서 상제님을 모셔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바로 수운사상의 핵심이 있다. 이렇게 수운이 도달한 경지는 도덕의 경지를 넘어선 종교 또는 도의 경지요. 상제님을 모시는 종교적 헌신에 의해서라야 성.경.신이라는 뭇 도덕이 비로소 그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천(天).인(人)을 대도의 근원으로 성.경.신을 도의 본체로, 수심정기(守心正氣)를 수도의 요결로 삼고 포교를 시작하여 도를 천도(天道)라 하고 농민.천민.유생에 이르는 광범한 계층에 침투했다. 62년 도수사, 권학가를 짓고 동학론을 집필하며 포교에 전심, 각 지방에 접소를 두어 관내의 교도를 관장하게 함으로써 1863년에 교세가 교인 삼천여명, 접소 14개소에 이르렀다. 같은 해 최시형을 북접 대도주로 앉히고 8월 도통을 계승시켜 교주로 삼았다.
1864년(갑자년), 각 접소를 순회하다가 용담정에서 동학을 사학으로 단정한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3월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참수되었다.
수운은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느님만 믿어서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하단 말가"라고 말한 바와 같이 시천주를 통한 후천개벽을 부르짖었다. 그는 결국 개벽의 첫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선지자였다고 볼 수 있다.
수운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개벽이란 대변화의 시기를 예고했던 것이다. 한 편 전경에는 최수운에 대한 상제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선도(仙道)와 불도(佛道)와 유도(儒道)와 서도(西道)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을 선도의 종장(宗長)으로 세우노라..."
대순회보 제 21호 14면 연구위원 강 상년
이마두-서양 문운(文運)을 열다
동서문명 교류의 주역
천주를 전하고 마음을 배우다
동양에 오다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느니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딴 것이라」(교운1장9절)
전경에 보이는 이마두, 그는 과연 누구인가? 본명은 마케오 릿치(마테오는 세례명. 한자 이름 利瑪竇 또는 利西泰)이다.
그는 1552년에 이탈리아에서 탄생 예수회(耶蘇會) 대학에서 수학한 수사(修士)로 인도 마카오 지나의 남부를 거쳐 중국대륙으로 들어가 1610년 오십팔세를 일기로 북경에서 사망했다. 당시 예수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신앙 속에서 살고 그 신앙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해외 포교 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이마두는 포교를 위하여 인도-마카오-남지나-북경으로 옮기면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중국 땅에 옮겼다.
이마두는 이십세(1572년)때부터 만 칠년동안 예수회의 대학에서, 유명한 독일의 역학자(易學者)로부터 역학을 비롯하여, 역사학, 어학, 인문학등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습득하였다. 이 지식이 지나(之那:중국을 지칭)에 있을 때 지나인들의 호기심을 크게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승려복을 입다
이십팔세 때 인도로 건너가 사년동안 인도인들을 하나의 신앙에로 뭉치게 하는 운동에 몸을 던졌으나, 예수회가 생각하는 하나의 신앙만을 그들에게 강요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서양문명 속에서만 자란 그리스도교를 강요할 수가 없고, 유럽세계와 구별하여 형제의 사랑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고 예수회 총회장에게 서신으로 호소하였다. 이에서 그의 외유내강한 성격을 엿볼 수가 있는데, 그는 이 성격을 어디에서나 발휘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인도를 떠나 마카오로 옮기게 되었고, 이곳에서 「중국의 훌륭한 문물과 인심을 동경하여 배운다」는 자세를 갖추고 중국으로 들어갈 계획을 진행시키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그는 광동의 관리를 만나게 된 자리에서 「지나의 좋은 정치의 명성에 끌려, 마카오 상인들과 속인들의 시끄러움을 피하여 내륙에 조그만 집과 절을 세워 일생을 살며 보내고 싶습니다. 의식주에 조금도 수고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저는 천축(天竺=佛敎)에서 왔습니다. 허가를 해 주십시요」라고 간청하여 조경(肇慶)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는 승려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이 복장이 신부의 복장과 다를 바가 없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다. 조경의 마을사람들이나 관리들은 높이 이백척의 구층 탑인 숭희탑 근처에 마련된 서양풍 건물, 그 건물에 걸려 잇는 서양풍의 그림등에 호기심을 나타냈다. 특히 서양인 얼굴을 보려는 사람들이 집 주변에 매일같이 운집했다. 이런 속에서 그는 붓글씨를 읽히고, 예의를 배우면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생활을 조용히 보냈다. 이러하 마리아상 앞에 중국식 절을 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들의 입을 통해서 그곳(서양) 신이 여자라는 소문이 확 퍼졌다. 당황한 나머지 마리아상을 예수의 초상으로 대체하였다. 이때 천주(天主)란 말이 생기게 되었는데, 릿치를 따르던 선량하고 양식(良識)있는 진이란 소년이 자기 집에 붓글씨로 천주(天主)라 쓴 목판(木版)을 안방 벽 복판에 걸어놓고 모셨다. 즉 그 소년은 릿치가 예수를 설명할 때에 발음하였던 「데우수」(라전어로 신=神)을 「티엥슈」로 받아들인 것이다. 「티엥슈」를 한자어로 쓰면 천주(天主)가 된다. 중국발음에서는 '디'음이 '티'가 되는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천주는 이탈리아의 "띠이오(dio)"를 그 내용으로 삼고 있다 할 것이다.
조경에서의 또 하나의 업적은 한자로 십계명을 적은 것이다. 말하자면 서양어로 된 교리가 한문화된 것이다. 이 십계와 서양말로써의 그것과 일치할는지 알 수 없지만 혼합된 그 무엇만을 남긴 것이다. 그가 세운 교회의 이름도 동양의 절이름처럼 "遷花寺"(西來淸寺)라 하였다. 천국과 정토도 일치하지 않을뿐더러 교회가 절로 비쳤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천주실록(天主實錄:1584년 간 다른 수사(修士)가 쓴 것. 이마두의 것은 천주실의(天主實義1603년 간))은 서문에서 천주신앙이 마치 유교나 선도(仙道)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내세웠다. 양지(良知) 운운한 것은 도가풍이고, 부모 운운한 것은 유교의 효경(孝經)에 있는 사상이다. 이러므로 유교의 폐습을 쉽사리 개혁하지 못했다고 상제께서 지적하신 것이다.
조경에 머물고 있는 동안 이마두는 산해여지전도(山海與地全圖)를 만들어 천문지리만을 알고 있던 지나사람에게 지리학(地理學)을 알렸다. 즉 "지나는 정방형에 가깝고 북위 23도에서 50도. 경도로는 120도에서 130도에 위치한 크기에서 첫째로 뽑힐 나라이고, 수향풍물(水鄕風物) 지대물박(地大物博)하다"고 지나를 소개하고 있다.
육년 동안의 조경체재를 청산하고 서서히 북상하기 시작했다. 북상도중에 소주에 들렀다. 이곳에서 도적을 만나 지나인들의 도벽을 알았다. 이곳에서도 충실한 친구 태소를 얻었다. 태소는 릿치에게 은(銀)을 뽑아내는 기술을 청하기도 했으며, 서양의 수학(數學)과 과학의 지식을 습득했다. 태소는 연금술에 능통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다른 유럽의 자연과학, 유크릿트기하학을 지나어로 번역했다. 그로 인해서 태소는 나중에 여러 종류의 태양시계를 만드는 법과 높이, 길이를 재는 측량방법도 습득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컴파스, 혼천의, 천문관측기,상한의, 시계, 나침판 등을 나무, 유기 혹은 은을 써서 만들었다.
이마두에게 있어서는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전경」에서는 「선도(仙道)와 불도(佛道)와 유도(儒道)와 서도(西道)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바탕이 되었나니 ...」(교운1장65절)라 하여 상제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 역시 문명의 뿌리가 종교에 있고, 문명과 종교가 갈라지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주고 있다.
유복(儒服)으로 바꾸어 입다
지나의 남부에서 활동을 끝내고 이제 북상하기에 분주했다. 이마두는 승복(僧服)을 유복(儒服)으로 바꿔입게 되었다. 그것은 천주교의 입장이 불교의 입장보다는 유교에 가깝다는 지식에 도달하여, 유교와 친해진다는 태도에 기인된 것이었다. 유복을 입은 이마두의 과학과 종교에 대한 태도를 보자.
1595년 4월 16일, 마카오에 도착해서 13년이 되는 해에 북경을 향해 소주를 떠났다. 북경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은 1589년 9월이었다. 삼년여 동안 지나의 각도읍을 거쳤던 것이다. 그중 중요한 도회지는 남창, 남웅, 남경, 소주 등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쫓겨나 되돌아가야 할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북경에서도 쫓겨나 끝내 되돌아가서 죽고 싶어했던 곳으로 가지 못하고 생애를 마쳐야 했다. 릿치는 한문으로 "교우론(交友論)"을 써서 동양사람을 놀라게 하고, 고전인 "논어(論語)"의 첫머리에 있는 '친구가 원방(遠方)에서 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의 구절에서 교우론에 "삼우(三友)"를 언급했다.
삼우도 논어의 익자삼우에서 딴 것이다. 이 익자삼우는 상제께서 쓰신 현무경 속에도 "익자삼우 손자삼우"가 나온다. 릿치는 '익자에 세 친구, 손자에 세 친구가 있다. 직(直).량(諒).다문(多聞)을 벗으로 삼는 것이 익(益)이고, 편벽(便벽:마음만 앞세움)을 벗으로 삼는 것은 손(損)이다'고 말한다. 이래서 그는 지나의 사서오경(四書五經)은 예수교 이전 서양인들의 최고 작자의 글과 같다고 보고,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현자(賢子)로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릿치는 도덕적으로는 그러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달랐다. 토론의 여지를 지나인들에게 남겨 놓았다. 그것은 불교와 도교를 우상숭배로 몰고, 유교를 칭찬하면서도, 공자를 '그는 내세(來世)를 모르고 전적으로 이 세상을 잘 되게 하는 법(法)에 관해서만 말하고, 왕국을 평화 속에 통치.유지 하려는 법을 가르치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우상숭배로 가리킨 것은 천지와 모든 창조물의 주인인 천주(天主)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이성(理性)을 등한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릿치는 삼회화상과의 토론에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은 태양이나 달이 아니고, 그것은 그것들의 상(像)이고, 상(像)은 먼저 진짜 태양이나 달을 보지 않고는 만들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에 화상은 "천주는 무엇을 먼저 보고 만들어진 상인가"고 묻는다. 그 결말이 지어지지 않았으나 화상이 이성(理性)적인 사고방식을 배웠고 릿치는 천지의 작자(作者)를 인간의 마음속에 그린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로써 서로가 넘나들지 못했던 신명의 왕래를 틔웠다. 또 릿치는 사서오경, 사고전서 등을 서양말로 옮겨 후에 서양에 전케함으로써 동양문명신을 서양에 옮겼다.
이마두는 명나라 남부지방에서 임진왜란에 동원되는 명나라 증원군의 동원상태도 목격했었다.
대순회보 제5호 15면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제공
금천씨.고양씨.고신씨
황제 헌원씨가 서릉씨의 딸 유조를 정비로 삼아 두 아들을 낳았다. 그 중에서 장자는 현효이며, 차자는 창의라고 했는데 제후로 나와 약수가에 거주했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는 이름은 현효인데 일명 청양이라고도 했다. 오제중 첫 번째 제왕으로 현 중국의 산동성 곡부에 도읍을 정하였다. 현효는 제후로 강수가에 거주했으며 제위에 오르자 봉황이 춤추며 날아 왔다. 그래서 관직 이름에 새 이름을 붙였다.
금천씨의 관제가 지금까지 전하게 된 것이 춘추 좌씨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소공 17년 가을철에 담자가 노나라에 와서 소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소고씨의 세대에 나르는 새의 이름을 가지고 벼슬이름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이까?"..."나의 선조 소고씨께서 임금이 되심에 봉새가 날아와서 그 새를 수호신으로 삼아 새이름으로 벼슬이름을 삼으셨던 것이오. 봉조씨는 역을 주관하는 관장이었고, 현조씨는 춘분과 추분의 시기를 구별하는 일을 맡았으며 백조씨는 하지와 동지를 구별하는 일을 맡았었고, 청조씨는 양기가 만물의 힘을 열어주는 일을 관장했었으며, 단조씨는 음기가 만물의 힘을 갈무리하는 일을 관장했었고, 축구씨는 사도가 되었으며, 저구는 사마가 되었고, 시구씨는 사공이 되었고, 상구씨는 사구가 되었고, 골구씨는 농.공을 관장했었오. 다섯 구의 관은 백성들을 모아 영도했었고, 또 다섯 치의 관은 다섯 분야 공인을 맡는 관장이 되어 도구를 편리하게 하고 도량의 법을 바르게 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했었오. 그리고 또 아홉의 호의 관은 아홉까지 농사일을 맡는 관장이 되어 백성들을 안착시켜 게으르지 않게 했던 것이오"
또한 삼국사기 열전 제일 김유신상 에는 '신라인들이 스스로 소호 금천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씨이라 한다고 했으며, 유신비문에도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종손'이라고 되어 있고, 동서 백제본기 제육에도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예이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한다'라고 나와 있다.
현효가 재위 84년만에 붕어하자 백성들은 공상의 동북산에 그의 능을 만들었고, 그의 아들은 삼년 동안 능을 살폈다(지금 산동성 곡부현에서 동북 3킬로에 소호릉이 있다고 한다)
전욱고양씨(전頊高陽氏)
창의의 아들이며 황제의 손자이다. 소호씨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소호의 정치가 쇠퇴해지면서 여씨를 일컽는 아홉 사람의 제후도 덕을 잃고 도를 어지럽혔으므로 백성과 신이 섞여 살아서 쉽사리 이것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전욱은 이와 같이 난세의 뒤를 이어받았으므로 남정의 관직에 있는 중이라는 사람에게 명해서 하늘에 관한 일을 관리케 하여 그에게 모든 종교행사를 맡겼다. 또 화정의 관직에 있는 여라는 사람에게 지상에 관한 일을 관리시켜 그에게 모든 민정을 맡겼다. 그래서 백성과 신이 서로 범하는 일이 없고 욕되게 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는 사람이 조용하고 깊이가 있으며 계략이 있고 만사가 정통했다. 적합한 토지를 골라 오곡을 번식시키고 사계절의 행사는 하늘의 시간에 맞춰 순응해서 행하였다. 역서를 만들어 맹춘(맹은 처음, 봄은 첫달)으로서 원(해의 처음이므로 정월)을 삼았다.
신의 권위를 배경으로 존비의 제도를 마련하고 사시와 오행의 기를 조화시켜 백성을 교화시키고 청결한 참마음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북으로는 유릉에 이르고 남으로는 교지에 이르고 서로는 유사에 이르고 동으로는 반목에 이르렀다.
조수와 초목이나 크고 작은 산천의 신들도 해와 달이 비춰주는 범위에서는 그의 덕으로 알고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전욱이 세상을 떠나자 현효의 손자 고신이 즉위했는데 그가 제곡이다.
제곡고신씨(帝곡高辛氏)
황제의 증손이다. 고신의 부친을 교극이라 하고 교극의 부친이 현효라고 한다. 곡은 극의 뜻으로 도덕을 닦아 궁극까지 실행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가졌으며, 고신은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는 나면서부터 신성을 갖추고 있어 갓난 아이때부터 자기의 이름을 스스로 말할 수 있었으며, 도읍을 박에 정하였다.
널리 덕을 끼쳐 만물에 이익을 주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 총명해서 멀리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 차렸고, 눈이 밝아 미세한 것이라도 다 판별하였다.
하늘의 뜻을 따르고 백성들의 급무을 알고, 인덕을 갖추어 위엄이 있었다. 자애롭고 신의가 있으며 자신의 덕을 닦았으므로 천하가 성심을 다하여 순종하였다. 땅에서 나는 재물을 절약해서 사용했으므로 만민을 어루만져 이익으로 인도한 도덕으로 가르쳤으며, 일월의 운행을 헤아려 역서를 만들어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이했다.
신의 권위를 밝혀 공경하고 섬겼다. 그의 얼굴빛은 부드러웠으며 그의 덕은 드높았다. 그가 움직일 때에는 천시를 따랐으며 그의 의복은 일거 선비의 복색에 지나지 않았다.
제곡은 제후인 진봉씨의 딸을 얻어서 지와 방훈을 낳았는데 방훈이 곧 요이다.
끝으로 "전경"에서 살펴보자.
傳효頊곡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전하건대 효, 욱, 곡, 훈, 화, 우는 초통초회때 대대로 성인이었다)
日出萬暈同發明 春回品物共華盛 初統之中降中季 聖不承承但一時(해가 뜨면 만물이 비치는 광훈으로 모두 동시에 밝게 드러나게 되고, 봄이 오면 만물이 동시에 번성한다. 초통에서 계속 내려와 초통중회에서 계회까지는 성인이 계속, 계승되지 않았다. 계승되어도 단지 한번이다)
이처럼 삼황오제에 해당되는 효, 욱, 곡은 도를 계승한 성인으로써 상고시대에 인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분이었다.
대순회보 제54호 14면 연구소
郭再祐(곽재우)
곽재우(1552~1617)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우리에게 잘 장려진 사람이다. 본관은 현풍이며 자는 계수요 호는 망우당이다.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황해도 관찰사 월의 아들이다. 1582년 34세의 나이로 별시의 정시에 2등으로 뽑혔으나 지은 글이 그 당시 왕인 선조의 뜻에 거슬려서 발표한 지 수 일만에 전방을 파하여 무효가 되었다.
그 뒤, 과거에 나갈 뜻을 포기하고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인 기강가에 강사를 짓고 평생을 은거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머문 지3년 만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관군이 크게 패하자 의령에서 함안 사람인 두암공 조방등과 같이 의병을 일으켰다. 그 때 붉은 옷을 입고 선두에서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 불리웠다.
그 공으로 1592년 7월에 유곡찰방을 시작으로 바로 형조정랑에 제수되었고, 10월에는 절충장군에 승진하여 이듬 해 12월 성주목사에 임명되었다. 성주목사에 임명된지 2년후인 1595년에 진주목사로 전근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현풍으로 귀향하였다.
1597년 강화회담이 결렬되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고 경사좌도방어사로 임명되어 창녕의 화왕산성을 수비하였고, 경상우도조방장이 되어 영창대군을 신구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낙향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경상도 병마절도사, 수군통제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는데, 그 후 부총관, 한성부좌윤을 거쳐 함경도 관찰사를 지내다가 당쟁관계로 나라의 형편이 날로 어지러워질 뿐만 아니라, 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죄없이 잡혀 올라오고 또 절친한 사이인 광주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이몽학의 난에 휘말려서 죽은 일을 통탄하여 벼슬을 사퇴하고 창암에 망우정을 짓고 은둔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곽재우는 문학적 소양도 뛰어났으니, 그 필체는 웅건 활달했고 시문에도 능했다. 죽은 뒤에 그의 사우에 "예연서원"이라는 사액이 내려졌고, 1709년(숙종35)에는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망우당집>이 있다. 시호는 충익이다.
이상의 기록은 선조실록, 광해군 일기, 징비록, 난중잡록 등에 나타난 것으로, 곽재우의 명리를 초월한 소탈한 성품과 진명보국하고자 한 충의의 정신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곽재우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충의지사의 모습 이외에도 신선의 도를 닦은 이인으로서의 흔적도 여러 기록에서 보이고 있다.
관동의 한 승려에게서 나온 것을 택당 이식이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해동전도록>은 <청학집>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신선술의 유래와 도인드르이 계보에 대하여 자세하게 밝힌 책으로 유명하다. <청학집>에서는 신선술의 근원을 환인, 환웅 그리고 단군에 두고 문박씨가 단군의 도를 세상에 전하였다고 하는 데 비해 <해동전도록>은 여동빈의 스승인 종리권이 당나라에 유학온 최승우, 김가기, 자혜(의상대사)에게 신선술을 전한 것이 해동선도의 기원이라고 적고 있다.
그 중 자혜에게 전한 선법이 권청과 설현등을 통해 김시습으로 이어졌고, 김시습은 이를 홍유손, 정희량, 윤군평 등에게 전하였으며, 이 맥이 면면히 흘러 정북창, 박지화, 곽치허, 한무외 등으로 이어졌다고 행동선도의 계보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해동전도록>에서는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그 사승관계가 알려진 도인들의 이름 이외에도 스승을 알 수 없지만 신선술을 닦은 열 이인들을 열거하고 있으니, 바로 남추, 장세미, 강귀천, 김덕량, 이지함, 곽재우가 바로 그들이다.
곽재우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의병장이라는 것 이외에 신선술을 연마한 도인이라는 사실은 <해동전도록> 뿐만 아니라, 효종때의 유명한 학자인 홍만종이 저술한 <해동이적>에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곽재우의 자는 계수요, 현풍사람으로 감사 월의 아들이다. 어려서 남명 조식을 좇아 공부하더니, 남명이 외손녀사위로 삼았다. 공이 과거공부는 하지 않고 나이 40이 넘도록 벼슬도 없이 궁하게 지내며 삿갓 쓰고 짚신을 끌며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군을 물리치는데 늘 홍의를 입었으므로 왜적들이 이를 홍의천강장군이라 불렀다. 후에 왜병을 물리친 공으로.... 함경감사에 배명을 받았으나 부임치 않았다. 내직으로 있으면서 오직 솔잎만 먹고 살았다. 일찍이 비파산에 들어가 솔잎을 먹고 벽곡하더니 그 후에 취산 창암에 돌아와 연화(음식을 익혀서 먹는 것)를 완전히 끊었다. 그의 시에, '벗들은 내가 연화를 끊음을 안타까이 여기어 낙강가에 초옥을 함께 지었네 배주리지 않게 다만 솔잎만 먹고 옥천의 물 마시니 목마르지 않네 고요를 지키어 거문고타니 마음 담담하고 문닫고 조식하니 뜻이 깊구나 한 백년 지나서 도통한 후면은 날보고 웃던 이들 날 신선이라 이르리' 라 하였다."
<명신록>에 이르기를 선산 사람 박승지 수홍이 출세하기 전에 일찍이 공을 찾아오자, 공이 묻기를 '어디로 가려는가' 하니 '과거를 보고 오겠습니다' 하였다. 공이 '이런 때에 과거는 하여 무엇에 쓰노' 하며 이내 술을 내와 너댓 잔을 같이 마셨다. 한참 있다가 하는 말이 '술이 취해 괴롭다' 하며 그릇을 하나 가져오라 하였다. 그릇을 귀에 대고 귀를 기울이니 마셨던 술이 모두 귓구멍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밖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는 곽재우가 방술을 배워 산에 들어가 벽곡을 하니 이는 천지의 기운을 먹는 '연기법'을 터득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곽재우는 평화시에는 명리를 초탈하여 소탈하게 자신의 성명(性命)을 닦았으며, 난세에는 이웃과 국가를 위해 멸사봉공하는 군자로서의 모범을 보인 인물로 오늘의 도를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순회보 제62호 11면 연구소 제공
大巡思想의 神明觀
-典經을 中心으로-
序論
종교는 관념의 내용에 있어서 인간존재의 본질(실존)과 생의 가치(운명)에 대해서 뚜렷한 견해를 제시해야 된다. 즉, 인간의 삶의 궁극적 진리에 대한 해명이다. 아울러 창조원리와 그 생겨진 모습에 대해서도 규명(糾明)해야 되는데, 결국 우주라고 하는 것도 "인간과 세계"의 복합체라고 하는 테두리 밖에서는 이해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결국 인간을 떠나서는 존재가치를 상실한다고 여겨진다.
위에서 제시한 두 가지 조건을 규명하기 위해서 종교에 있어서의 주체적 입장인 인간은 신(神)이라고 하는 초자연적 존재를 전제한다. 물론 인간이 만물의 주재자라면 신이나 신적 존재와 같은 것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겠으나 유한한 존재로서 한계를 인식하는 인간은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섭(交涉)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신이 주재하는 우주적 질서와 그 안에서 인간과 세계의 존재방식이 어떠하다 하는 문제는 일반적으로 종교의 기본적인 구도라고 보겠다.
대순사상에 있어서의 신에 대한 관념을 신명관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다분히 인격화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전술한대로 신은 초자연적인 힘을 소유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일정한 모습을 갖추어, 신체나 마음에서 매우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대순종교사상 P75-76) 또, 신명을 흔히 천지신명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때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천(天)과 지(地)를 각각의 신명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天)과 지(地) 사이의 모든 신적 존재를 신명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전자가 자연신교에서의 다신론적 입장이라면 후자는 범신론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신명을 인격적이라고 규정했으므로 이에 비춰보면 대순사상에서 이야기하는 천지신명은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할 것이다.
신을 규명하고 해석한다는 것이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분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 일이며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이러한 작업을 한 것은 대순사상에서의 신명에 대한 관념을 올바로 이해하여 앞에서 밝힌, 인간의 실존과 생의 가치를 규명(糾明)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本論
1. 典經상에 나타난 神的存在
전경에서 보이는 신적 존재의 종류를 필자는 대개 ① 신(神) ② 신명(神明) ③ 신장(神將) 등으로 보려고 한다. 그런데, 교법1장50절에서 "...사람에게 혼과 백이 있나니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이 되어 후손들의 제사를 받다가 사대를 넘긴 후로 영도 되고 선도 되니라.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사대가 지나면 귀가 되니라..."라고 해서 신의 전단계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명백히 표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관(神觀)"자체가 다분히 인격적일 수밖에 없으며, "신명관(神明觀)"을 인격적이라고 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장에서 열거할 신, 신명, 신장 등이 모두 인격성을 전제로 함을 밝혀 둔다.
먼저, ① 신으로 볼 수 있는 것은 ⓐ 문명신(文明神) ⓑ 도통신(道通神) ⓒ 황천신(黃泉神) ⓓ 중천신(中天神) ⓔ 선령신(先靈神) ⓕ 지방신(地方神) ⓖ 황극신(皇極神) ⓗ 아표신(餓莩神) 등이 있다.
문명신(文明神)은 교운 1장 9절에 "...서양인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을 열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명신은 "문운을 열었느니라"에서 보이듯 이 문화와 문명을 모두 주관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도통신(道通神)은 교운 1장 41절에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처럼 '도(道)에 통(通)'하게 하는 매우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신이다. 여기서 덧붙일만한 사실은 구천상제님은 도에 통하는 방법만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도통줄을 추후에 선택된 대두목에게 보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황천신(黃天神)과 중천신(中天神)으로, 이는 공사 1장 29절에 "...중천신은 후사를 못 둔 신명이니라. 그러므로 중천신은 의탁할 곳을 두지 못하여 황천신으로부터 물과 밥을 얻어 먹고 왔기에..."라고 되어 있다. 즉 이생에서의 자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신들인데 이와 관계된 것이 선령신(先靈神)이다.
선령신(先靈神)은 조상신(祖上神)이라고도 하는데 교운 1장 33절에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공정에 참여하여..."라고 밝히고 있다. 즉 선령신은 자기 씨족을 대표하여 천상에서의 후천도 모사(後天圖 謀事)에 참석하며 그 후손의 닦은 바를 대변할 것인데, 위의 두 신과 관련을 맺는다고 보면 황천신과 더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선령신은 자손을 얻어야 하는 입장에 있고 그 얻어진 자손을 보호, 육성하는 책임이 있다고 보여진다.
지방신(地方神)은 일정한 지역이나 또는 그 지방의 기국에 맞는 인물을 호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교운 1장 63절에 "...지방신들이 호위하여 떠나지 못하였던 까닭이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일이다.
황극신(皇極神)은 황제의 위치로서 정사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며 이는 공사 3장 22절에 "...이 혼란한 세상을 바르려면 황극신을 옮겨와야 한다..."라고 나타나 있는 것과 같다.
아표신(餓莩神)은 권지 1장 8절 "...아표신을 천상으로 몰아 올렸으니 이후에는 백성이 기근으로 죽는 일은 없으리라..."처럼 이생에서 못먹고 굶주렸던 신을 일컬음이다.
② 신명(神明)은 앞의 신(神)과 뚜렷이 구분되는 선이나 한계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신(神)은 대개가 사람이 죽어서 직접 그 위치가 되는 비교적 단순한 입장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인데 앞에서 언급한 것 중 ⓒⓓⓔ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신명(神明)은 그 역할이나 임무가 집단적, 공적인 성향을 띄며, 대상에 따라 변하거나 옮겨 다니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총체적 성향을 띄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앞의 ⓐⓑⓖ등은 신명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전경상에서 보이는 신명을 살펴보자.
공사 1장 25절에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의 감동에 인함이나..."와 같이 신명은 서론에서 추론한 인간의 심정을 헤아려 주고, 또한 "...의병을 거두고 민족의 활로를 열었느니라..."처럼 나름대로의 신적 의지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와같이 천지신명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전경상에 나타난 신명은 대개 공사 2장 5절에서 보이는 대신명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것으로는 예시 25절의 "...조선신명을 서양에 건너보내어 역사를 일으키리니..."에 나타난 '조선신명(朝鮮神明)'과 29절 "...우리나라를 상등국으로 만들기 위해 서양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니..."의 '서양신명(西洋神明)' 그리고 공사편의 '도술신명(道術神明)' '동학신명(東學神明)'등이다.
위의 두 가지 그것과 더불어 ③ 신장(神將)이 있는데, 이도 물론 인격적 성향을 지니며 맡은 바 직능이 각기 뚜렷하다. 그리고 그 소임의 범위가 명확하며 대단히 세분화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신이나 신명과 구별되는 점이라고 보겠다.
신장(神將)에는 공간상(宇)의 '28수신장(宿神將)'과 시간상(宙)의 '24절신장(節神將)'이 있는데 이 둘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외에도 "천존신장(天尊神將), 태을신장(太乙神將), 풍운신장(風雲神將), 기문신장(奇問神將), 둔갑신장(遁甲神將), 팔문신장(八門神將), 금령신장(禁令神將), 십이진신장(十二辰神將), 호령신장(呼令神將), 순찰신장(巡察神將)" 등등 자그마한 현상에서부터 사물의 생성, 변화, 소멸에까지 그것을 관장하는 신장이 전부 따로 따로 있으며, 이러한 신장과 명칭은 다르나 성격상 유사한 것으로 수문장군(守門將軍), 뇌성벽력장군(雷聲霹靂將軍)의 "장군(將軍)"과 도원사(都元師) 등의 "원사(元師)"라는 명칭을 찾아볼 수 있다.
앞에서 보인 것 외에 명부시왕(冥府十王) 등의 "왕(王)"과 칠성사자(七星使者) 등의 "사자(使者)"가 있다.
이 밖에도 공간상의 "정(精)"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사물이나 존재의 본질(대순사상 P82)이거나, 현상의 '최소한의 원리'로 생각되는데 전경의 '부모산의 정기(精氣)' '서양기운(西洋氣運)' '수기(水氣)'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2. 신명계와 인간의 관계
1에서 전경상에 나타난 신, 신명, 신장 등을 살펴보았는데 이와 같은 신적 존재가 그 자체로만 영원히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주어진 일-신적 소임-을 하며 주어진 테두리-신명계-안에서의 활동이 전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에 있어서의 신적존재나, 신명계에 있어서의 인간이란 존재는 서로 관심 밖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결국 그 의미를 우리는, 인간계에 있어서의 신명과 신명계에 있어서의 인간이 상호강화(相互强化).보완작용(補完作用)을 하는 데서 찾아야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살펴보면 본론 1에서 제시한 신적 존재는 대개가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중의 특수한 형태가 바로 인간이 사후에 신 또는 신명이 되는 사실이다. 교법1장2절에 "...전명숙이...조선명부가 되었느니라..."와 같이 실존인물이 사후에 특정한 기능을 관장하는 신명이 되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사람이 죽으면 그 집안의 자손을 지켜 주는 선령신(조상신)이 된다. 더구나 28수와 24절에 나오는 신장들은 모두가 과거에 실존했던 역사상의 인물들로 배치되어 있다.
위의 그러한 것들은 결국 인간 각자의 기국(器局)에 따라서 신명계의 고유한 기능을 가진 신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대순사상에 있어서의 '신명계'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인간의 외경(畏敬)을 강조하거나 인계(人界)와 확연히 구분되어지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형태는, 신명계에 있어서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예시 7절에서처럼 사람은 신명이 드나들 수 있는 매개(媒介)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러한 매개의 결과로 결국 후천사를 도모하는데 양자(兩者)가 상호강화(相互强化)작용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예로는 공사2장19절 "...동학신명을 모두 경석에게 붙여 보냈으니..."와 3장22절의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될 인연은 송우암이...시작되었느니라..."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경우가 모두 인간이 신명계의 역사에 있어 매개체적 역할을 한 것이다.
結論
이상으로 본론1에서 전경상에 나타난 신, 신명, 신장 등의 종류와 역할을 살펴 보았는데, 우리는 '신명계'가 단순히 인간으로부터 격리되어 두려움이나 외경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나름대로의 충만한 질서와 조화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공간과 시간에 적절히 들어있으므로 이를 우주적 질서라고 표현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본론2에서 신명계와 인간과의 관계를 규명했는데 여기서 신명계라고 하는 것을 관념상 '천계'와 '지계'로 각각 상정한다면, 결국 삼계일체(三界一體)와 신인합일(神人合一)의 논리를 쉽게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대순사상에서의 최고 이상(理想)은 결국에는 "후천개벽에 의한 지상선경세계"를 건설하는 것인데 이는 다름이 아니고, 신(神).인(人)이 합일(合一)이 되는 것이요, 이를 동기로 해원하고 상극이 상생으로 치달리는 것이다.
또한 신명계는 인계와 동떨어진 다른 세계가 아니고, 우리의 현실생활이 신명의 세계이며 신명계에서 이루어진 일은 우리의 일상생활 형태로 현현하는 것이다. 그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자신을 종교적 인격으로 심화시켜 나가면서 꾸준한 자기수련을 하는 것이 후천세계에서의 신명계의 실상이며 자신의 모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제13호 6면 연구위원 윤 재근
三界公事에 대한 一考察
-三界의 相互關聯性을 中心으로-
1. 序論
상제께서 우주를 바로 잡고 인류를 광구 광제하시기 위해 행하신 공사는 천.지.인 삼계(三界)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연관성을 비탕으로 역사되었다고 생각된다. "전경"에서 삼계개벽공사의 원인과 방법, 그리고 그 결과를 분석해 보면, 삼계가 서로 유기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 쪽의 혼란과 무질서가 다른 쪽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였으므로 원한이 세상이 쌓이고 따라서 천.지.인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여 이 세상에 참혹한 재화가 생겼나니라"라는 구절을 보면 이러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세상의 원한이 삼계를 서로 막히게 하였고 역으로 세상에는 참혹한 재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종래 우주를 천.지.인 삼계로 나누어 삼극(三極) 또는 삼재(三才)라 칭하여 왔다. 동양의 이 삼계에 대한 사고의 특징을 보면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고 천지의 작용에 동화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존재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일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에서는 단지 인간은 천지에 순응해야 될 존재였을 뿐이었고, 인간의 힘으로 천지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킨다는 사고관념은 보이지 않는다.
대순진리에서의 삼계관(三界觀)은 기존사상의 그것과는 달리 유기적(有機的)인 연관성(聯關性)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삼계공사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삼계관의 특징을 정확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이 삼계의 상호관련성에 바탕을 둔 예는 보기 드물었다. 대개가 삼계공사에 대한 연구가 그 원인과 결과에만 치중함으로써 단편적 이해에 그쳤다고 생각된다. 즉 유기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삼계의 개념을 명확히 알 수 없었으며 또한 공사의 결과로 삼계가 어떤 관련성속에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파악하기 곤란했던 것이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삼계의 상호관련성을 중심으로 삼계공사를 밝혀보고자 한다. 우선 삼계가 어떻게 상호유기적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다음에 삼계공사가 구체적으로 삼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또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三界의 相互關聯性
대순진리에서의 삼계관은 삼계가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대순사상의 삼계관을 "전경"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① "...서양사람이 발명한 문명이기를 그대로 두어야 옳으냐, 걷어야 옳으냐...그들의 기계는 천국의 것을 본 딴 것이니라..."이 말씀은 인간세계의 문명이 곧 천상계의 영향하여 이루어지고 발전함을 나타내 주고 있다. 즉 현재 인간이 이루고 있는 문명조차도 결국은 천상계의 모형을 본따 노력하여 발전시킨 결과이다. 이는 인계가 천계의 영향을 받는, 즉 인계와 천계는 직접적으로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서양인 이마두가...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딴 것이니라"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인세에 그것을 베풀고자 하였으나..."등의 구절은 이러한 의미를 잘 말해 준다고 하겠다.
② "...신방축 공사를 보시고 지기를 뽑으셨다....일본의 지기가 강렬하므로 그 민족성이 탐욕과 침략성이 강하고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일삼느니라...이제 그 지기를 뽑아야 저희의 살림이 분주하게 되어 남을 넘보는 겨를이 없으리라..." 이 구절은 인간이 생존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땅의 기운 즉 지기(地氣)가 그 곳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그 땅의 고유한 특성을 전함으로서 사람의 성격(性格)내지 기질(氣質)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을 나타낸다. 구체적으로 이 글에서 일본지기의 영향으로 일본인의 성격과 기질이 탐욕하고 침략성이 강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지기가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혀 준 것이다.
③ "사람들 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 여기에서는 인간계의 문제가 즉시 인간계에 혼란을 야기 시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신명계를 혼란하게 한 후 그 결과 인간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이와같이 인간계와 신명계는 직접 연관이 되어 있어서 상호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단주(丹朱)의 원(원)에 대한 것이 있다. "...단주가 불초하다하여 요가 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에서 붕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에서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여기에서 보면 단주의 원으로 천지가 혼란스럽게 되었고 결국 그것은 온 우주를 병들고 무질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대순진리에서의 삼계는 깊은 연관성 속에 존재한다. 이것은 삼계(三界)중 한 쪽이 변화하면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계전체의 변화를 유발시킨다는 의미이다. 즉, 인계(人界)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천계(天界)에 반영되고 천계(天界)의 일이 인계(人界) 및 지계(地界)에 영향을 주며 지기(地氣) 또한 인간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삼계는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포괄적 의미에서는 삼계가 하나의 공간이라고도 간주될 수 있다. 이렇게 삼계가 서로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혼란된 선천의 세계를 부분적으로 뜯어고쳐서는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따라서 상제께서는 완전한 선경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삼계전체를 뜯어고치는 삼계공사를 하시게 되었던 것이다.
3. 三界公事의 有機的 關聯性
전장에서는 삼계가 상호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상제께서 행하신 삼계공사는 이러한 삼계관을 바탕으로 처결된 것으로 보인다. 즉, 공사의 처결이 삼계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분석해 보면 천.지.인 삼계중 한쪽에 대한 공사는 그것이 곧 다른 세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삼계공사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삼계의 상호유기적 연관성속에서 운용되고 작용되는가를 살펴보겠다.
먼저 천계에 대한 공사가 다른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상제께서는 공사를 처결하심에 있어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神道)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고 하셨다. 그 이유는 신명계의 혼란이 삼계가 참혹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 구절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 일이 해결되느니라..." 명부는 인간이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일종의 신명계 법정으로서 명부가 혼란하게 되면 인간계까지도 무질서하게 되고 그에 따라 삼계가 모두 혼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착란하게 된 근원인 명부를 뜯어 고치면 이것이 곧 다른 곳에도 영향을 주어 온 세상이 바로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제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부공사를 행하셨다. "...조선명부를 전명숙으로, 청국명부를 김일부로, 일본명부를 최수운으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노라....하룻밤 사이에 대세가 돌려 잡히니라..." 이와 같이 명부를 새롭게 함으로써 비겁에 쌓인 신명계 및 인간계까지도 질서가 바로 잡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기(地氣)에 대한 공사를 알아보자.
인류가 지역에 따라 사상과 관습을 달리하여 서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지기 차이 때문이라고 상제께서 말씀하셨다.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쟁투하느니라..." 라는 구절은 이를 뜻한다. 또한 "...地用水土之薄則必有萬物之怨..." 라는 구절도 땅의 고르지 못한 기운으로 원이 생김을 말한다. 이와 같이 땅도 그 기운의 차이로 땅 자체의 부조화를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영향으로 인간의 사고관념과 행동양식은 달리하게 되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극상(相克像)을 낳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상제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기통일공사를 보시게 되었다. 상제께서 각 처에서 정기를 뽑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강산 정기를 합치시려고 부모산의 정기부터 공사를 보셨도다. "부모산은 전주 모악산과 순창 회문산이니라...다음에 네 명당의 정기를 종합하여야 하느니라.." 이와같이 지기를 조화롭게 함으로써 지계뿐만 아니라 그에 영향을 받는 삼계까지도 바르게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인간사(人間事)도 천지에 영향을 미친다. 상제의 권능으로 어찌 장효순의 난을 당하였느냐는 종도들의 물음에 상제께서는 "...교중(敎中)이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 지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기운을 받아서 재앙을 해소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인간세상의 일이 신명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인간사를 조정함으로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전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을 귀하게 만들어 주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명부가 되었느니라..." 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도 인간의 일이 신명계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인간계에서 천하를 위하여 노력한 전명숙을 조선명부에 봉하심으로써 천지를 바로 잡으려는 상제님의 공사는 삼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또 다시 증명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세계에 있어 반상의 구별, 적서의 차별을 없애는 것, 그리고 여성해원공사등은 인간을 해원하고 화평케 함으로써 삼계를 바로잡는 것이라 볼 수 있다.
4. 結論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삼계는 긴밀한 연관성속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이러한 삼계관은 대순사상전반-해원,통일,인존,조화등-에 깔려 있다. 이 글에서는 삼계의 유기적 관련성을 바탕으로 삼계공사의 방법과 그 운용에 대해 분석하여 보았다. 그 결과 우주전체 즉 삼계는 서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 중 한 쪽이 변화하면 삼계전체가 영향을 받아 유기적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삼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상제님의 삼계공사는 이러한 삼계관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여진다.
한편 위와같은 사실을 깨닫는다면 인간의 마음가짐과 행동은 곧 삼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상제께서 "너희들은 항상 평화를 주장하라. 너희들끼리 서로 싸움이 일어나면 밖에서는 난리가 일어나리라"고 하신 말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선천과는 달리 모사재천 성사재인의 인존시대에서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그만큼 우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다.
대순회보 제14호 6면 연구위원 장 근환
女性解寃公事의 深層的 意味
남녀평등.여성해원을 위한 공사는 사실상 우주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즉 음양(陰陽)이 부조화(不調和)한 우주를 개조하여 그에 따라 인간사회가 남녀공존의 원리하에 존재토록 하신 것
1. 序
대순진리의 중심적 사상의 골자는 해원상생, 평등, 평화, 인존, 개벽, 통일, 원시반본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모든 사상의 근본맥락은 후천선경을 이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겠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들 사상의 여러 측면은 각각 별도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다만 이처럼 여러 가지로 나누어 보는 것은 이 사상이 너무나 획기적이고 방대한 것이어서 쉽사리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해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한즉, 이러한 여러 사상적 특징은 모두가 종합적, 연계적인 검토가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상이 일관된 핵심이 없다면 그것은 실재성이 없는 단순한 관념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순진리의 강점은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실제적인 것이라는 데에 있다. 즉 상제님께서 하신 말씀과 펴 놓으신 도수는 실제상으로 현실에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주제로 삼고자 하는 여성해원공사도 마찬가지다. 상제님께서는 여성해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예부터 내려오는 남존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 그리고 이에 따라 여러 공사를 처결하신 이후로부터 당시까지 인간사회를 지배해 왔던 남존여비의 풍조가 점차 사라지고,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공사는 과연 어떠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단순한 인간사회적 차원에서의 변화인가 아니면 보다 근원적인 의미가 있을까?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성해방, 여성상위 운동은 앞으로 과연 어떠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등등의 문제를 상제님의 여성해원공사를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남녀평등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해원상생, 개벽사상 등과 연결지어 종합적인 견지에서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먼저 선천에서의 여성의 지위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이에 대해 상제님께서 행하신 해원공사를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여성해원공사가 전 우주적 차원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분석할 계획이다.
2. 선천시대 여성의 지위
선천시대에서는 여성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았던 것이 분명하다. 1910년대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던 여성의 지위향상 노력, 즉 여성해방운동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반 활동과 조류는 이전의 여성의 지위가 안정되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언제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그 격이 낮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사회적 상황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남존여비 의식은 선천의 종교나 사상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불교의 경우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는 만물평등 사상을 가지고는 있으나 남녀관계에 있어서 여자에게는 오장(五障;다섯가지 장애, 막힘)있어 범천왕(梵天王), 제석(帝釋), 마왕(魔王), 전륜성왕(轉輪聖王), 불(佛) 즉, 완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함으로서 남녀불평등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남자가 죄를 지으면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게 되고 여자가 성불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윤회를 통해 남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양모(養母)가 출가를 간청했을 때 비구(比丘)에게는 없는 '팔경계(八敬戒)'를 지킨다는 조건이 붙고서야 출가수도가 허락되었고 석가모니가 교단을 통솔할 때 남성비구의 우위성(優位性)과 여성비구니의 종속성(從屬性)이 현저했다. 또 비구(比丘)에게는 250계(戒)가 있는데 반해 비구니(比丘尼)는 약 350계(戒)가 주어졌다는 것만 보아도 그 남존여비의 실상을 잘 알 수 있다.
유교사상도 근본적으로 남녀의 차별이 심했는데 "논어"에 '여자와 소인은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는 말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하겠다. "소학"에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내세워 여자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크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여불갱이부(女不更二夫), 여필종부(女必從夫) 등의 의식은 남존여비사상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여성관도 역시 마찬가지로 여성비하의 경향이 나타난다. 애초에 남자를 타락시킨 존재가 바로 여성이므로 여자는 타락의 상징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이러한 성격은 여성을 상당히 업신여기던 유태교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십계에서는 아내가 하인, 가축과 같이 취급되었고 신약에서도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하고 또 여자는 남자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였다. 5C 의 교부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분리하여 남성은 영혼에 가깝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가지고 있고 여자는 육체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어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 복종해야 한다는 이론을 폈다.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남자를 먼저 만들고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의식은 근본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부분, 종속물이라는 여운을 남겨준다.
이외에도 이슬람교는, 여자는 영혼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내용이 있고 페르샤 지방의 경우 영혼의 세계를 이루는 선의 원리와 물질의 세계를 이루는 악의 원리중에서 남자는 선(善)의 원리에 가깝고 여자는 악(惡)의 원리에 근접한다는 이원론을 전개하였다. 그리이스의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성을 비하시키는 철학이론을 주장했다. 즉 그는 생명현상(生命現狀)의 적극적인 원리는 오직 남자에게만 있고 여자는 여기에서 어떤 결함이 있어 여자를 '덜된 남자' '되다만 남자'등으로 인식했던 것이다(조성자. 현대카톨릭교회의 여성관-여성문제연구 제 15집 P263참조). 이같은 사실들은 실로 극심한 남녀불평등사상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생성, 변화, 발전원리를 밝혀 놓았다고 할 수 있는 주역의 이치에서도 남존여비의 양상은 뚜렷하게 보인다. 역(易)에서는 양(陽)은 강하고 능동적인데 반해 음(陰)은 유하고 수동적임을 밝혀 우주 운행의 기본요소로 개념화했다. 그리고 건천(乾天)을 양(陽), 곤지(坤地)를 음(陰)이라 하여 천(天)은 우주만물의 힘의 원동력이 되고 지(地)는 천의 원리에 따라 만물을 생육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양은 본래 강하고 밝고 크고 음은 그 반대이기 때문에 천존지비(天尊地卑)의 기운이 생긴다. 이에 대응하여 인도(人道)에서는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의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주역의 괘상(卦象)은 양효(陽爻)와 음효(陰爻)의 연속적인 상관관계 즉 음기운(陰氣運)과 양기운(陽氣運)의 상대적 변화로서 우주만물의 일정한 변화이치를 밝혀 놓은 것인데, 음이 충만하여 양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면서 생성되기 시작하는 괘는 길(吉)한 괘상이오, 거꾸로 양이 극대하여 음기가 시작되는 괘등은 흉괘(凶卦)로 판단되는 것만 보아도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역에서도 부인(婦人)의 생명은 바로 복종(服從), 순종(順從)에 있다고 한 근본적 배경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선천의 여성은 그 지위가 상당히 낮았다. 여자는 항상 피동적이었고 남자에게 지배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사회의 경우 여자는 남자에게 언제나 복종해야 한다는 규범인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랐고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의해 활동이 제한되었으며 정조(情操), 예법(禮法)에 눌려 외부활동은 물론 재권(財權), 자유(自由)가 전무(全無)한 상태였다. 여성에게는 단지 순종(順從), 정절(貞節)만이 강조되었는데, 여성의 이름에 순자(順子), 정자(貞子)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은 이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서양에서도 남존여비의 풍조는 마찬가지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양문화의 밑바탕이 되었던 사상들이 근본적으로 여성의 기본가치를 부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도 전반적으로 교육이 남자에 한해서 행해졌고 여자에 대한 교육은 가정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넘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13-14C 이후 교회를 떠난 세속적인 교육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여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각성과 이를 실현키 위한 노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한계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럼으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나 활동은 극히 미약하고 제한되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미국이나 영국같은 서구의 국가가 여성에게 참정권(參政權)을 부여한 것이 20C 초.중반이후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사상이 남존여비사상만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여자를 남자와 동등한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그 낮은 지위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움직임과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산업의 발달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속에서 여성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것들로 남존여비의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방법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 같이 제도와 인습의 억압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원은 천지에 가득차게 되어 마침내는 여성의 지위향상, 남녀동등권이 주장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여성의 뿌리 깊은 원(원)의 역사속에서 움튼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1894년 동학군의 '과부재가금지폐지안'과 1898년 남녀동등권을 외치는 독립협회의 활동 등은 그 하나의 예이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여성의 뿌리깊은 포원(抱寃)을 진단하시고 이를 풀어주기 위한 공사에 착수하시게 된 것이다.
3. 여성해원 공사의 처결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남존여비의 폐단을 고치기 위한 공사를 보셨는데, 이것은 진멸지경에 처한 인류와 겁액에 싸인 신명계, 그리고 질서가 허물어진 우주를 구하시기 위한 천지개조공사(天地改造公事)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왜냐하면 선천의 인류역사에서 여성이 품은 원한이란 실로 지대하여 새로운 상생법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를 해원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풀어 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乾坤)의 위치를 바로 잡아 예법(禮法)을 다시 세우리라"하심은 여성해원공사의 필연성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해원(解원)이란 개념과 범위를 살펴보자. 해원(解원)이란 말 그대로 원을 푼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해원의 범위는 과연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그것은 첫째, 과거로부터 쌓여온 모든 원한과 척을 푸는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원한이 생길 수 있는 우주의 근본적 불완전성 즉, 구조적 모순을 뜯어 고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남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척을 짓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참으로 중요하나 현실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미흡하다. 이것은 해원이란 개념이 없는 종교사상의 논리가 지니고 있는 한계성이기도 하다. 현재 두 사람이 다투고 있다면 아무런 과정도 없이 마음의 결정만으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싸움의 원인은 반드시 과거에 있기 마련이다. 그 과거의 원을 풀지 않고는 절대로 사랑하는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맺혀 있는 원한을 풀어내는 과정, 단계가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과거의 원(원)을 업(業)이라고 표현하고 전생에 쌓인 이 업을 푸는 수도를 통해 해탈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다음으로 과거의 원이 모두 풀렸다면 어떻게 될까? 즉시 평화가 오고 질서가 잡히는 것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새로운 원이 맺힐 수 있는 근본적 요소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것 자체까지 완전히 고쳐 원이 맺힐 수 있는 근거를 없애야만 완전한 해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원이라 함은 과거로부터 쌓여온 원을 모두 풀어냄과 또한 그러한 원이 다시 생길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을 고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제까지 쌓인 여성의 원을 풀고 그 기세를 높여주는 공사에 관한 내용은 "전경"에 많이 보인다.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상제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상제께서 길을 비켜 외면하셨도다" 이 구절은 일면 평범한 서술같이 보이지만 상제님의 공사를 이해한다면 참으로 깊은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이 같은 일은 좀처럼 있기 힘든 것이다. 당시는 남존여비의 풍조가 심했던 터라 상제님께서 길가는 여인에게 길을 비켜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상제님께서 이처럼 이상한 일을 행하심은 천지 신명으로 하여금 이를 본(本)으로 삼게 하여 여성의 기세(氣勢)를 높임으로써 여성해원을 의도하신 것이다.
또 "상제께서 하루는 공사를 행하시고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 써서 불사르셨도다"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여성의 기운을 높여 해원코자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남자를 사내 대장부로 지칭하여 그 기세의 강대함을 표현해 왔는데 이를 따라 대장부(大丈婦)라 하여 음(陰), 여자를 상징하는 부(婦)자를 붙여 불사르심으로써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위치가 되도록 획정(劃定)하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여장군(女將軍)이라는 글을 써서 불사르심으로써 여자의 기운을 발동케 하셨던 일과 비슷하다. 백용안이라는 사람이 관가로부터 술도매의 경영권을 얻게 되자 전주 부중에 있는 수백개의 작은 주막이 폐지되게 되었다. 이에 살림을 걱정하는 주막의 어떤 여인을 가엽게 여겨 "어찌 남장군(男將軍)만 있으랴 여장군(女將軍)도 있도다"하시고 종이에 여장군이라고 써서 불사르시니 그 여인이 갑자기 기운을 얻고 주모들을 모아 백용안의 집을 급습했다. 그 결과 백용안은 주모들에게 사과하고 도매주점을 폐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후천에서는 여성의 기운이 높아지고 그 쓰임이 커질 것을 비유하시기를 "사람을 쓸 때는 남녀 노약을 구별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진평(陣平)은 야출 동문 여자 이천인(夜出東門女子二千人)이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중국의 초.한(楚漢) 양립(兩立) 시대에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결전에서 진평이 여자 이천명을 군사로 가장시켜 작전을 함으로서 항우에게 잡힐 위험에 처해 있는 유방을 구한 것을 예로 들은 것이다. 즉 선천에서는 무시되고 멸시되었던 여자도 때로 커다란 쓰임이 있음을 암시하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후천에서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차별을 두지 않으리라는 말씀이시다.
후천에서의 음양도수(陰陽度數)를 조정하는 공사도 결국은 여성의 기운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어느 날 상제께서는 종도들에게 종이쪽지에 각자 점을 표시해서 후천의 음양도수를 정하라 하셨다. 이 중 한점만을 찍은 종도 공신에게 그 이유를 물은즉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오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으니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원리인 줄 안다"고 하였다. 상제께서 이를 옳다고 하시고 이것이 바로 정음정양(正陰正陽)이라고 하셨다. 이제까지 음(陰)은 양(陽)보다 그 격이 낮았으므로 일부다처(一夫多妻) 또는 첩살이의 폐습이 있었다. 이것을 정음정양의 원리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 다음, 당시까지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 공사를 행하시었다. ...어느날 박공우에게 '깊이 생각하여 중대한 것을 들어 말하라'하시니라. 공우가 지식이 없다고 사양하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 아뢰기를 선천에서는 청춘과부가 수절한다 하여 공방에서 쓸쓸히 늙어 일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불가하오니 후천에서는 이 폐단을 고쳐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서 친족과 친구들을 청하고 공식으로 예를 갖추어 개가(改嫁)케 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처결하지 못할 것이므로 너에게 맡겼더니 잘 처결하였노라"고 이르시고 "이 결정의 공사가 오만년을 가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이상과 같은 모든 공사로 인하여 수천년 쌓여 왔던 여성의 원이 풀리고, 후천에는 정음정양(正陰正陽),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원리가 되기 때문에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된다. 그러므로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응기하여 일만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그러나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인도 자신의 노력과 공에 따라서 성공하게 될 것이다.
4. 여성 해원공사의 우주적 의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해원이란 예로부터 맺힌 원을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원이 생길 수 있는 근본적 원인, 요소를 뜯어 고치는 것도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것이다. 이같은 근본적인 불완전성의 타파는 "나는 하늘도 뜯어 고치고 땅도 뜯어 고치고..."라고 하신 말씀에 그 구체적 대의가 잘 나타난다고 하겠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내용은 선천의 사상과 종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과거의 모든 성인의 사상과 종교들은 모두가 당시 우주의 구조를 파악하고 이해하여 적응하려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추위와 더위등의 불완전성과 모순이 있어도 그것자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 이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조한다는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다. 이것이 선천의 모든 종교와 사상의 한계성이다.
이들 선천의 종교.사상들과 비교하여 볼 때 상제님의 천지개조공사(天地改造公事)는 실로 획기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하는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상제님께서 행하신 삼계개벽공사(三界開闢公事)는 이전의 선천 역사에서는 생각이 미친 바도 표현된 바도 없는 것이었다. 오직 상제님만이 인류의 화평과 우주의 질서를 위해 계획하고 실행하신 것이다.
공사(公事)는 인간사에 일어나는 모든 부패, 부조리와 포원(抱寃)의 근원(根源)을 천지(天地)에 두었던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우주 전체를 조화주의 입장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선천 모든 사상, 종교 등은 그것 자체가 우주의 틀 안(범주)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우주와 인간사에 있어서 무질서와 혼란의 원인을 단지 인간의 잘못, 인간의 타락에서만 찾게 되었던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이와는 달리 "사지당왕재어천지 필부재인(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일을 당하여 흥왕되게 하는 것은 천지에 있지 사람에 있지는 않다)"이라는 말씀에서 어떠한 일의 추이가 그 근원적인 원인이 천지에 있는 것이지 반드시 사람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 주셨다. 인생에서 필요한 의식주등도 모두가 천지로부터 받은 것이오 사람중에서도 혹세무민하는 사람이나 사람을 속에 재물을 갈취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천지의 기운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잘못과 무질서는 인간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天用雨露之薄則必有萬方之怨
地用水土之薄則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必有萬事之怨"
하늘이 우로를 내림에 있어 고르지 않고 박하므로 만방에 원이 생기고, 땅에서도 수토의 기운이 각기 다르므로 만물에 원이 맺힌다. 또 사람이 덕을 박하게 쓰므로 인간사 모든 일에 원이 발생한다. 이처럼 상제님께서는 천지인 삼계가 근본적으로 그 운용이 순조롭지 못하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근원적인 천지의 모순, 불완전성을 뜯어 고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원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이제 뜯어 고치지 못하면 안되느니라"라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대강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녀평등. 여성해원을 위한 공사도 사실상 이러한 우주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남녀평등.여성해원 문제는 단순한 인간적.사회적 차원의 개혁적 의지가 아니라 온 우주적 차원에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천에서는 남녀의 엄격한 구분이 있었고 그것이 여성비하로 나타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혹간 이에 대한 반성과 반발로 여성의 지위향상 의지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막연한 생각의 차원에서 멈추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이나 해결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여성억압의 부당성과 여성해원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강력히 제의하고 그 대안으로써 음양이 부조화한 우주를 개조한다는 우주적 차원에서의 공사를 처결하심으로서 이러한 목표가 단순한 환상이나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운용되어 인간사회가 남녀공존의 원리하에 존재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같은 우주적 차원의 해원공사는 상생지도(相生之道)의 실현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우주는 근본적으로 음양의 변화에 따르고 있는 바, 선천우주는 일양시생(一陽始生)한 기운이 점차 강해져 지나친 상극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 극단적인 상극의 기운을 풀기 위해서는 일음시생(一陰始生)하여 새로운 음(陰)의 운로(運路)를 찾아야만 한다. 양(陽)은 화기운(火氣運)으로 동적이고 활발하며 강하므로 상극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음(陰)은 수기운(水氣運)이라고 할 수 있어 정적이고 유(柔)하므로 관용.포용.상생의 성질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음의 기운을 높여 선천의 억음존양의 도수를 고치고 건곤의 이치를 조화함은 상극을 상생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선천(先天)의 건곤이치(乾坤理致)를 뜯어 고쳐 새롭게 조화(造化)함은 근본적인 우주의 구조를 개조(改造)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선천의 음기운, 지덕(地德)이 제대로의 위치를 찾지 못하였으므로 그 기세를 높여주는 것이다. "선천에서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아니하였으되 이것은 지덕이 큰 것을 모름이라 이 뒤로는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들어야 하느니라"라는 말씀에서 그 의미가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또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풀어 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 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은 해원의 궁극적 목적은 건곤의 위치를 바로 세워, 쭉 이제까지 많은 폐단과 원을 낳은 우주의 질서를 새롭게 조정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지.인의 강기(綱紀;기강.질서)를 새롭게 조리(調理)하고 건곤(乾坤)을 통제(統制)하는 공사(公事)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조화(造化)의 수단(手段)이 되는 것이다.
건곤이 바로 선다는 것은 우주 전체의 음양기운이 조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양은 화, 음은 수의 기운을 대표하는데 이제까지는 화의 기세가 높았으므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수의 기운이 필요하니 상제님께서 "이제 천하에 물기운이 고갈하였으니 수기를 돌리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화를 누르고 수를 세우기 위함이다. 그런데 선천에서는 수와 화가 수극화(水克火)의 관계에 있었음에 반해 상제님의 공사로 지어지는 후천은 "수생어화 화생어수(水生於火 火生於水)..."의 원리로써 운용된다. 그러므로 "水火金木待時以成(수화금목대시이성) 水生於火(수생어화) 故天下無相克之理(고천하무상극지리)..."라는 교시와 같이 선천에는 상극관계에 있던 수화금목의 기운이 새로운 조화법에 의해 정해진 도수에 따라 때가 되면 모두가 상생으로 성숙되고 세상은 상극이 없는 지상낙원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차원의 음양조화로써 인간세계도 정음정양, 일음일양의 원리가 지배하게 되고 남존여비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상제님께서는 이 새로운 정음정양의 운기를 전 우주로 퍼지도록 기운을 돌리셨다. "...천하음양신전주운회(天下陰陽神全州運回)..." 전주에는 건지산(乾止山), 곤지산(坤止山)이 있어 우주의 만사만물이 생성될 수 있는 음양의 기운이 머무르고 있는 바, 새로운 정음정양의 기운을 전주, 즉 온 우주에 퍼지도록 공사를 보셨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의 일부인 여성 해원 공사는 단순한 인간사회의 개혁적 차원이 아니라 온 우주를 개벽하고 조화하여 정음정양, 건곤조화를 완성함에 그 근원을 두었으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성지위향상의 움직임은 마침내는 커다란 결실을 거두어 완전한 남녀평등이 실현될 것이다.
5. 結
인간사회에 있어서 남존여비의 관습은 참으로 뿌리 깊은 것이다. 여성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보편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남성에 비해 자유와 권리가 크게 제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사실은 선천의 모든 사상이나 종교이론에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자체에 어떤 결함이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선천은 본래 우주의 구조가 천존지비, 양존음비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선천의 사상과 종교는 이 기운을 그대로 받아 표현되고 이론화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상극(相克)과 원(원)으로 가득찬 선천을 해원상생의 법리로 치료하고 인류창생을 광제하기 위해 인세에 강세하신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여성의 오랜 원을 풀어주는 공사를 보셨다. 이 공사는 단순한 인간차원의 개혁적 의지가 아니라 인간계는 물론 신명계를 모두 해원시키고 우주를 개조함으로써 이러한 원이 생길 수 있는 근원을 없애는 실로 전대미증유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음양도수(陰陽度數)를 조정하고 여성의 기세를 높임으로써 여성의 뿌리깊은 원은 풀리고 인간사는 점차 화평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조화되고 천지인 삼계가 점차 개조되고 재조정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요컨대 상제님께서는 건곤의 질서를 새롭게 고치고, 천지의 이치의 근원인 음양의 기운을 조화하여 공사로서 확정하심으로서 인간계의 음양, 즉 남녀의 기운을 조절하셨다. 해원의 의미가 단순한 한풀이, 원풀이가 아닌 우주완성의 의미라면 여성해원 남녀평등 공사도 이러한 우주완성의 일면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회의 단순한 저항이나 반발이 아닌 새로운 우주창조, 우주변화에 근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순회보 제12호 8-9면 연구위원 교감 김 홍철
....상략(上略)
성경신의 의미
성(誠)
성(誠)의 자원(字源)적인 뜻은 언(言)과 성(成)을 합(合)한데 있다. 즉 <말한바(言)를 반드시 이루도록(成) 정성을 다함>을 말한다. 여기서 사람의 말이란 진실되고 참된말을 뜻하는데, 진실은 속 알맹이가 들어있기에 <실(實)>이 붙은 성실이요, 거짓은 속이 비어있기에 <허(虛)>가 붙은 허위라고 한다. 그러니 성실과 진실은 서로 통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용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誠者는 天之道也오 誠之者는 人之道也라" "誠者는 物之終始니 不誠이면 無物이라" 이것은 성(誠) 자체가 하늘(天)의 도로써 모든 사물을 참되고 실로 존재하게끔 하는 진리이며, 이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 사람은 매사에 정성을 드리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 곧 사람의 도리라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볼때 성(誠)이란 곧 하늘이 모든 사물에 부여한 참 진리로써의 실체를 말하며 우리 수도인에게 있어서는 또한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듯이 수도생활에 항상 성을 결부시킴으로써 상제님과의 감응이 이루어져 결국에는 바라는 바 소원도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경(敬)
성(誠)이 내면적인 마음의 거짓없는 자세라고 한다면 경(敬)은 밖으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예의를 갖추는 실천자세가 된다.
이것은 수도인으로서 성심으로 수도에 임할 때 매사에 경을 위주로 함으로써 마음과 몸이 항상 일치되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즉 발은 한걸음 가는데 마음은 두세걸음 밖에 있고 발음 두걸음 가는데 마음이 다섯.여섯걸음 밖에 있을 것 같으면 이것은 경이 아닌 것이다. 글자를 쓰거나 일에 처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된다.
한 글자를 쓰면 마음이 그 한 글자에 위에 있고 한 일을 할 때에는 마음이 그 한 일에 있어 사사건건에 전일(專一)하면 곧 이것이 경(敬)인 것이다.
따라서 경(敬)이란 모든 예의범절을 갖추는데 근본이 되며(敬者는 禮之本也) 수도인에게 있어서는 상제님을 믿고 수도하는데 있어 지성봉축에 변함이 없고 양면이 없는 자세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신(信)
신(信)은 오행(五行:목화토금수)으로 보면 중앙 5.10토에 해당된다. 이 자리는 만물을 주재하고 성사시키는 밑바탕을 뜻한다.
따라서 매사에 신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만사불성(萬事不成: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음)이 된다. 다시말해서 바라는 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에 관해서는 전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 농가에서 추수한 후에 곡식 종자를 남겨 두나니 이것은 오직 토지를 믿는 연고이니라. 그것이 곧 믿는 길이니라"
이것은 종두득두(種豆得豆)라는 말이 있듯이 뿌린 대로 반드시 거두는 이치에 대한 믿음을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임을 나타내 주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상제님을 신앙하는 수도인은 의심없이 매사에 신심으로 일관하되 가식없는 자세로 항상 언행을 일치시키는 생활을 하여야 하며, 실천수도를 통해 상제님의 진리를 자각하여야 될 것이다. 그리고 수도의 목적인 영통의 통일로 위와같은 신심이 견고하게 뒷받침된 연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성경신의 실천
위에서 각각 언급한 성경신의 의미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았지만 수도생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체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대순진리회가 안심.안신.경천.수도를 4강령으로써 수도의 기본으로 삼고 이 4강령이 또 성 경 신 3요체를 기본으로 삼고 있으므로 수도생활에서 성 경 신이 빠진다면 그것은 곧 수도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수도인은 일상생활에 있어 성 경 신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는데 그 예로써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성하며 남에게 성실하고 일에는 정성되이 하는 것이 곧 성을 실천하는 것이요
둘째, 신명을 숭경하며 부모와 존장을 공경하고 타인을 존경하며 스스로의 마음과 몸을 경건히 하는 것은 경을 실천하는 것이다.
셋째, 도에 신심을 가지고 상제님을 신앙하며 남을 신뢰하고 스스로의 신용을 지키는 것은 바로 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성.경.신의 실천이 수도인으로 하여금 진정한 수도인의 자세확립에 도움이 되리라 보며 수도인들의 적극적인 실천무행(實踐務行)이 요구된다.
....末略
대순회보 제32호 6면 수원3방면 선감 손창식
옥추문과 48장 “장차 48장(將)을 늘여 세우고 옥추문을 열 때에는 정신 차리기가 어려우리라.”하시니라.
옥추라 함은 옥은 하늘과 땅, 해와 달의 정기의 빛이며, 음과 양, 물과 불의 빼어난 것의 맺힘이다. 추는 기틀이다. 축(軸)이며 살리고 죽이는 것의 가장 말미암은 근본이 된다. 즉 옥추는 천지의 소식(消息)이며 음양의 동정(動靜)이다. 옥추문을 여신다는 것은 천지인 대판결을 의미한다. 옥추통(玉樞統)에 천문지호 옥추대판 상제출좌 만신거령 자우검극 전후기치…(天門地戶 玉樞大判 上帝出座 萬神擧令 左右劒戟 前後旗幟…)
다음은 옥추보경에 나온 48장이다.
48장(四十八將)
1. 만법교주(萬法敎主), 2. 동화교주(東華敎主), 3. 대법천사(大法天師), 4. 신공묘제허진군(神功妙濟許眞君), 5. 홍제구천사(弘濟丘天師), 6. 허정장천사(許靜張天師), 7. 선양허진군(旋陽許眞君), 8. 해경백진인(海瓊白眞人), 9. 낙양살진인(洛陽薩眞人), 10. 주뇌등천군(主腦鄧天君), 11. 판부신천군(判府辛天君), 12. 비첩장천군(飛捷張天君) 13. 월패주천군(月 朱天君), 14. 동현교주신조사(洞玄敎主辛祖師), 15. 청미교주조원군(淸微敎主祖元君), 16. 청미교주위원군(淸微敎主魏元君), 17. 동현전교마원군(洞玄傳敎馬元君), 18. 혼원교주로진군(混元敎主路眞君), 19. 혼원교주갈진군(混元敎主葛眞君), 20. 신소전교종려진선(神소傳敎鍾呂眞仙), 21. 화덕사천군(火德謝天君), 22. 옥부유천군(玉府劉天君), 23. 영대천군( 大天君), 24. 임대천군(任大天君) 25. 뇌문구원수(雷門苟元帥), 26. 뇌문필원수(雷門畢元帥), 27. 영관마원수(靈元馬元帥), 28. 도독조원수(都督趙元帥), 29. 호구왕원수(虎丘王元帥), 30. 호구고원수(虎丘高元帥) 31. 혼원방원수(混元龐元帥), 32. 인성강원수(仁聖康元帥), 33. 태세은원수(太歲殷元帥), 34. .고교당원수(考校 元帥), 35. 풍도맹원수( 都孟元帥), 36. 익령온원수(翊靈溫元帥), 37. 규찰왕부수(糾察王副帥), 38. 선봉이원수(先鋒李元帥), 39. 맹렬철원수(猛烈鐵元帥), 40. 풍륜주원수(風輪周元帥), 41. 지기양원수(地祇楊元帥), 42. 랑령관원수(朗靈關元帥), 43. 충익장원수(忠翊張元帥), 44. 동신유원수(洞神劉元帥), 45. 할락왕원수(割落王元帥), 46. 신뢰석원수(神雷石元帥), 47. 감생고원수(監生高元帥), 48. 신소전교여진선(神 傳敎呂眞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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