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과학의 원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사회주의운동가 한 분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며 쓴 책인데, 유물사관에 입각해 우리나라 전통 사상이나 관습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러다보니 귀신의 존재를 무시하여 종교란 종교를 다 깔아뭉갰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는 너무 명백한 미신들이 아직도 버젓이 활개를 친다.
오늘도 혈액형별 성격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아래 참조)
특히 혈액형별 성격에 관련된 기사는 끈질기게 올라오고, 돌아다니고, 부담없이 믿는 사람이 많다.
신문사마다 기자가 많고, 그중에서 자신이 쓴 기사가 채택된다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이렇게 튀어보려고 애쓰는 기자들이 애많이 쓴다.
우리나라 신문에는 다른 나라 신문에 없는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에헴 하면서 늘 가르치려고 드는 거대 보수신문들이든, 개혁을 울부짖다시피 하는 진보 신문이든 가리지 않고 꼭 귀퉁이 한 쪽에 <오늘의 운세>를 싣는다. 웃기고도 또 웃기는 일이다.(우스개 해석. 보수신문 ; 수입이 많아 지킬 재산이 많은 신문. 진보신문 ; 수입이 너무 적어 어떻게든 꼼지락거려야 살아남는 신문)
<오늘의 운세>는 완전한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그걸 믿고 의지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어쩔 수없는 모양이다. <오늘의 운세>를 쓰는 자들도 제 앞을 못본다. 어떤 이들이 그걸 쓰는지 알고나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우습지만 내가 신문사에 소개해준 사람도 있거든요.)
아직도 사람들은 부적을 지니고, 굿을 하고, 꿈을 해석(해몽)하고, 묘자리를 따진다.
물론 사주를 보는 것은 그 이론의 황당함은 제쳐두고라도 상담의 가치는 약간 있으니 돈 내는 사람 마음이라고 하자. 이런 점에서 굿도 의뢰인의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정 효과가 있으니 그 비과학성을 떠나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부적, 해몽, 풍수, 작명은 사정이 다르다.
이걸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아 호되게 야단치고 싶어도 그들의 생계에 지장이 있을까봐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자제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부적에 나오는 한자어는 대부분 왕명, 조서, 군령 등에 나오는 말이고, 그러한 위엄을 칭탁하여 그럴싸하게 시뻘겋게 그려대는 질낮은 추상화일 뿐이다. 해몽이란 두뇌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니 그냥 해먹을 수 있었지만, 이젠 안된다. 꿈꾸는 과학이 다 나와 있으니 그런 장난도 치지 말아야 한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해몽도 다 거짓말이다. 풍수 역시 지리학이 있고, 환경학이 있을지언정 생기복덕하는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화장을 하면 혼이 비산되어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풍수쟁이들이 그러지 말라고 매장을 권했는데, 요즘은 이론을 약간 다듬어서 분골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자손이 발복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풍수는 없다. 풍수심리학이라고 만들면 그건 가능하다.
작명이라는 것도 그렇다. 허섭한 이론으로 기망하는 것이다.
난 소설을 쓰기 위해 부적에 관한 한 여러 권의 서적을 읽고, 중국에서 나온 아주 방대한 자료도 구해 읽었다. 또 <우리말 시리즈> 집필 차 한자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짓는 이치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자료도 번역하고, 왕실 자료도 읽었다. 풍수 역시 최고의 풍수연구가도 알고, 나 자신 소설에 써먹을 만큼 따로 배우느라 여러 권 읽어보았다. 사주니 역학이니 명리학이니 주역이니 육효니 하는 것들도 나는 충분히 익혔다. 주역은 고등학교 때부터 익혀 그 이치에 관한 한 공자가 알던 지식을 나도 조금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그러니 내게 덤비지 말고, 직업상 일대 일로 조용히 하는 일이라면 나무하지 않을 테니 너무 나서서 목에 힘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음양오행 연구하는 이 치고 사기천관서나 여씨춘추를 읽어본 이가 극히 드물다는 걸 내가 안다. 어떤 자들은 용기가 지나쳐 사주는 음력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24절기는 음력의 위대함을 나타낸 우리 조상의 지혜라고 저홀로 찬탄한다. 초등학교 과학 지식도 안되는 무리들이다. 그러니 지금도 어딜 가면 하라는 진찰은 안하고 목기가 어떻고 금기가 어때서 화기를 어쩌자는 미신 처방을 지껄이는 자들이 널려 있다.
슬슬 열이 오르니 종교적 미신도 줄줄이 생각나는데 내가 스님들 저주받고, 목사님들 저주받고 싶지는 않으니 참으련다. 적어도 욕먹어 기분 나빠지는 건 미신이 아니고 진실이니까.
아는 만큼 알고 모르는 만큼 속게 돼 있다. 우리가 지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조차 따지고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장차 과학이 더 발달하면 어떤 오류가 밝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미 밝혀진 미신부터 손을 끊어야 한다. 미신 아니고도 세상은 너무나 오묘하고, 이해하기 숨차다. 책을 읽고 또 읽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세상은 바른 지혜가 발전시켰지 미신이 세상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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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중 A형 울고 O형은 이성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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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입력 2009.06.04 10:56
도브 10-50대 1만명 대상 설문조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샤워할 때 하는 행동이나 생각도 혈액형.세대별로 특징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도브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나는 샤워하면서 000한다'라는 주제로 9천927명의 방문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샤워 중에 운 적 있다'는 응답자의 35%가 A형이었으며, `샤워 중 이성을 생각한다'는 응답자의 55%가 0형으로 각 질문에 최다 응답을 보였다고 4일 밝혔다.
또 `샤워 중 내 몸을 감상(?)한다'는 응답자의 33%가 B형으로 집계돼 `바람둥이 B형'이라는 속설을 입증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세대별로는 `스트레스를 샤워로 푼다'는 응답자의 20%가 직장인.주부들이 많은 30대였으며, `샤워하면서 옛날 생각한다'는 응답자의 30%가 50대로 나타나 각 질문에 가장 많이 응답한 세대로 조사됐다.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