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성격이라는 게 있습니다.
성격은 감성이라고 부르는데, 이성과 더불어 그 개체의 안전과 발전을 돕는 기제(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입니다.
사람은 두 가지 관점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봅니다.
청춘 남녀가 배우자 감을 고를 때 이성으로는 배우자의 능력, 가능성, 집안, 신체, 건강상태, 학력, 이력, 직업 등을 살핍니다. 이때 이성적 관찰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감성 분야입니다. 말로는 성격을 본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다른 것도 있습니다.
이성이 상대를 살필 때는 해마가 주로 작동합니다. 해마가 바로 이성의 뇌입니다. 해마에서 대뇌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감성이 상대를 살필 때는 편도체가 주로 작동합니다. 편도체가 상대를 분석하는 기초는 과거 기억 중에서 그런 얼굴이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위협 요소가 된 적이 있었는가, 그 사람이 말하는 패턴이나 행동이나 어법이 편도체의 데이터베이스에 깔려 있는 나쁜 사람, 위험한 사람에 관한 정보와 일치되는 게 있는가 살피는 것입니다. 사실 뇌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본인도 모르고 상대도 모른다. 또한 그 기전이 구체적 원리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서로 유전적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즉 근친(近親)이 아닌가 분석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편도체는 상대와 유전적 거리가 멀면 멀수록 매력을 더 느끼도록 유도하며,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점수를 깎아버립니다.
물론 이런 감성이 동물에게도 있습니다.
어쩌면 식물에게도 있을지 모릅니다.
심리학계에서는 이성 판단은 해마의 지능을 검사하는 IQ 테스트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감성 판단 도구인 EQ는 사실상 마땅한 테스트 도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EQ가 중요하다는 데는 다 같이 인식을 공유하지만 막상 특정한 사람의 EQ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EQ를 아주 쉽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알아내는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바이오코드입니다.
다시 말해 EQ(Emotional/Empathy Quotient)의 결정판이 바이오코드입니다.
상대의 이성 코드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가는 얼마든지 재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성 코드는 그게 안됩니다. EQ가 중요한 건 아는데 막상 상대의 EQ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EQ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막상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리더십의 67%는 공감(共感) 능력입니다. 집단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 1946.3.7.)1015은 EQ(감성지능)를 주창한 심리학자인데, 그는 훌륭한 두뇌와, 높은 IQ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면 오히려 쓸모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리더십의 67%가 공감능력이라고 하면서 인류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EQ 즉 감성지능은 IQ보다 두 배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EQ 이론은 끝내 IQ를 넘지 못했습니다. 즉 감정이 매우 중요하고, 리더십의 주요 능력이라는 그의 주장이나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수치화하는데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즉 감정을 어떻게 수치화하고, 도식화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니엘 골먼이나 그 추종자들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직도 다니엘 골먼은 EQ를 설명하는 극적인 표현 <편도체 납치(amigdala hijacking)>라는 말은 확실히 과학의 세계에 우뚝 서게 했습니다. 바이오코드는 편도체를 매우 중시하며, 편도체 납치 현상에 대해 주의 깊게 바라보니까요.
다만 여기서 다니엘 골먼이 주장한 감성지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니엘 골먼의 감성지수는 오로지 바이오코드만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습니다. 바이오코드 144타입이야말로 감성지수이기 때문입니다. 생체시계와 편도체의 반응기전을 144타입으로 분류한 바이오코드는 거의 완벽한 감성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세상에는 80억 명의 인류가 삽니다.
겨자씨가 저리 작아도 각각이 다 온전한 생명체이듯이 우리가 비롯 1/80억이라지만 저마다 고귀한 생명체입니다.
이 많은 겨자씨 중 단 한 개만 싹을 틔워도 겨자씨는 대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은 늘 진보해왔습니다. 오늘의 인류는 천년 전의 인류와 다르고 만년 전의 인류와 십만년 전의 인류와 다릅니다.
오늘의 한국인은 1950년대, 60년대의 그 가난한 후진국의 국민이 아니고,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백성들과 다르듯이
현대인류는 그 어떤 고인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코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이오코드는 거의 완벽한 감성지수를 144타입으로 보여주며, 각각의 타입에 대한 자세한 기전과 여러 코드가 만날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바이오코드연구소에는 숱한 사람들의 바이오코드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그의 IQ가 아니라 EQ입니다.
EQ는 우리 자신을 규정합니다. 바이오코드가 곧 그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이성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목표가 있고, 감성으로 더 빨리 갈 수 있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성으로 갈 길은 이성으로 가고, 감성으로 갈 길은 감성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성과 감성을 잘 조율하면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