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나그네 / 종범스님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는데, 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자신이다.
자신의 꿈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 꿈속의
일은 없는 것이고, 또 꿈이 사라지는 즉시 그 꿈속의 일은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 사라지는 순간 나의 생각이
보았던 것은 다 사라지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이다.
이것은 몸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이 것은 몸을 의지해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죽는 순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망한 것이다.
우리가 영가시식을 할 때 ‘육진심식본래공(六塵心息本來空)’ 이라고 늘 하는 것이 그것이다.
환경에서 얻어진 것은 환경이 바뀌면 없어지고, 몸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은
몸이 사라지면 다 사라지는 것이다. 진짜로 마음의 고향에서 얻는 것이 불생불멸이다.
‘눈으로 어떻게 보느냐’ 하는 눈으로 보는 능력이 본래 마음이다.
슬프면 울면 된다. 하지만 울지만 말고 그 슬픈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를 찾아
들어가면 금방 깨칠 수 있다.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가 좋다, 나쁘다 하며 소리에만 따라가면 윤회이고
소리를 듣는 마음이 뭔가를 찾아 들어가면 마음의 고향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마음은 몸이 생겨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몸이 없어진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살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고향에 들어가는 것은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는 마음을 돌이켜
보고, 들리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듣는 마음을 돌이켜보는 반조(返照) 를
하여야 한다. 몸을 가만히 살펴보면 몸은 무상한 것이다.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은 다르다. 순간 순간 늙어가는데 그것을 모른다.
인생무상이라고 하지만 죽는 순간만 무상한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무상한
것이다. 이것을 알면 탐욕이 일어날 수가 없다. 무상을 모르기 때문에
탐욕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살피고 살피면 세상 어떠한 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나그네의 시름을 벗어나 죽음이나 슬픔이 없는 나의 고향에 이르게 되면
완전한 휴식을 얻을 수 있게된다. 그 속에 들어가려면 먼저 믿어야 한다.
그 신심만큼 자기를 확실하게 구제하는 것은 없다.
이것을 고향집 문안으로 들어가는 입문이라고 한다.
신심이 자꾸 성장해서 커지면 한단계 더 나아가 마당을 지나 마루위에
올라간다고 하여 승당(昇堂)이라 하고,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하여 입실(入室)이라 한다.
이렇게 단계가 있지만 믿지 않으면 입문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믿어야 향상이 되어 승당을 하고 입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입실을 하고 나면 방안에서는 모든 것이 편안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해서 고향에 들어왔다면 자신을 위해서는 더 할 것이 없고,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
즉 보살행을 하여야 한다.
방에 들어왔더라도 그 방에서 기쁨과 편안함을 누리기만 한다면 덜 된것이고,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계속 길을 인도하여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훌륭한 길을 찾아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을 이해를
못해서 항상 생각을 멈추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멈추고, 놓아야 한다.
생각을 조금만 멈춰도 편안해진다.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생각을 멈추고, 생각을 놓고,
보면 그대로 고향인 것이다.
근세에 훌륭한 스님 중 한분인 경허스님의 오도송 중에 ‘돈각삼천시오가
(頓覺三千是吾家)’라는 구절이 있다. 삼천대천세계가 모두가 나의 집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생각으로 세계를 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지 지혜로 보면 보이는 것이다.
삼천대천세계가 나의 집이라는 말은 곧 가는 곳 마다 나의 고향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 고향으로 갈려면 먼저 믿어야 하고, 계속 노력하면
결국 입실을 하여 깊은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그 다음에는 아직 고향을
모르는 많은 나그네들을 위해 보살행을 펼치는 것이 부처님의 길이고
불자가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