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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라이너 회스와 아베 | |||
라이너 회스가 누군가. 루돌프 회스의 손자다. 루돌프 회스는 또 누군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초대 소장이었다. 루돌프 회스는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아우슈비츠에서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로 악명을 날렸다. 그는 유대인 학살을 위해 살충제인 자이클론 B를 인류에게 처음 사용했다. 총알로는 그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많을 때는 하루 6천 명의 유대인이 회스가 만든 가스실에서 사라져갔다. 아우슈비츠에서 숨진 유대인은 100만 명을 웃돈다. 나치 독일이 패퇴하자 루돌프 회스는 ‘랭’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지내다 붙잡혔다. 자신이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는 그의 사형장이 됐다. 오직 그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교수대는 아직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다. 라이너 회스는 그의 할아버지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고 자랐다. 누군가가 루돌프란 이름을 입에 올리면 그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10대가 된 라이너는 가족 책장에서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읽게 된다. 그리곤 루돌프 회스가 할아버지란 사실, 수천 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가스실로 보낸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성년이 된 라이너 회스는 집안과 의절했다. 그리고는 웨이터로, 요리사로 일하며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을 찾아 사죄했다. 오직 “할아버지의 죄악은 내 선에서 끝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 마음의 문을 굳게 잠갔던 아우슈비츠 생존자들도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다. 엊그제 열린 아우슈비츠 해방 70년 기념식에 라이너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수용소 생존자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사과할 시간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라이너가 나치 전범 루돌프 회스의 손자라면 아베 신타로는 일제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기시는 일제하 괴뢰정권이 들어섰던 만주국 경영에 깊숙이 개입했고 도조 전시내각에선 상공상을 지내 A급 전범으로 체포됐던 인물이다. 하지만 투옥 3년 만에 풀려나 훗날 총리 자리에까지 올랐다. 루돌프의 손자는 고령의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사죄할 시간이 없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아베는 일제 강제연행의 산 증인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사라질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이 오늘날 전쟁의 상처를 딛고 EU의 리더국으로 성장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의 외톨이로 남아 있는 이유를 여기서 본다. 정창룡 논설위원 jcy@msnet.co.kr의 다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