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년기가 조금 지난 시절에 고향 마을 옆으로 흐르던 도랑의 물 고인 웅덩이에서 중태기 낚시로 낚시를 배웠고 성인이 될 때까지 건넛마을 뒤를 흐르는 팔거천(금호강 지류)을 주 무대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 물고기잡이로 청소년기를 보냈었다.
헝겊으로 둥그렇게 봉처럼 만들어 석유를 묻혀 불을 밝힌 횃불을 이용하여 밤에 움직임이 없는 갈겨니며 피라미 등을 잡던 불치기, 가을 무렵 나락이 영글 때 논에 담가 놓았던 물을 빼기 위해 도구를 치고 물이 나가던 끝 부분에 얼기미를 받쳐서 미꾸라지를 잡던 통발 대기, 비교적 규모가 적은 웅덩이를 대상으로 양동이를 이용하여 물을 퍼낸 후 바닥을 훑어서 온갖 종류의 고기를 잡던 물 퍼내기, 110v 가정용 전기에다 삐삐선을 연결하여 비교적 큰 고기를 잡았던 지지기(고교 시절에 이거 하다가 한전 직원에게 발각되어 혼났음), 비교적 폭이 좁은 개울의 상류에서 사이나(청산가리)를 분해한 물을 흘려보내 개울에 살던 모든 고기의 씨를 말렸던 사이나 풀기(철이 없던 시절 불법이란 것을 생각조차 못 할 시기라서 ㅋㅋ, 사이나 대신 농약을 이용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여뀌라는 식물의 줄기를 두두려 찧어 나온 물을 이용하기도 했음), 큰 망치로 물속 돌을 두드려 돌 밑에 은신해 있던 고기 기절시키기, 물길 일부를 돌려서 물을 마르게 한 다음 도랑을 샅샅이 뒤져서 잡던 물길 돌리기, 손이 들어가는 틈이 있는 돌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더듬거려서 잡기, 사발을 이용한 사발모찌 놓기, 수경을 끼고 물속에서 손 작살을 이용한 작살 쏘기, 여러 개 낚시를 한 줄에다 연결한 파리낚시, 반도와 얼기미를 이용하여 폭 좁은 도랑 하류 부분에다 대고서 일정 부분 위에서부터 발로 수로 바닥을 굴려서 미꾸라지를 잡던 구르기 등.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도 단연 낚시가 제일 재미있었고 많이 했던 방법이었죠.
그렇게 자란 내가 20대 초반 가을이 한창 깊어갈 무렵 팔거지(송림지)에서 잉어를 낚기 위해 릴낚시를 할 때 생긴 일입니다. 80년대 초반이라 송림지에는 당연히 외래어종이 유입되지 않았고 주로 붕어와 잉어가 서식하고 있었죠. 지금 송림지 우안 중류 부근에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 공사 지점 앞이 수위가 제법 내려간 탓에 릴낚시 대여섯 대 펼 수 있었던 포인트가 드러나 있었고 우리 일행 외에도 바로 옆에서 다른 일행들이 릴낚시를 하고 있었죠. 잉어는 나락이 익을 무렵에 잘된다는 사실을 어디서 주워 들은 나는 해가 지자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 철수하자는 일행들의 한결같은 권유도 무시하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서 던져 놓은 릴대 끝 부분의 방울이 울리기만 기다리고 있었죠. 배고픔도 잊은 채 끈질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방울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릴링 끝에 올라 온 녀석은 수염 난 두자 짜리 잉어였습니다. 그 시절은 붕어보다 잉어를 더 쳐주던 시절이라는 것은 아실만한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그렇게 잡은 잉어를 넥타이로 묶어서 물에다 풀어 놓고 다시 주먹만한 떡밥에 여러개의 바늘을 꿰어 캐스팅을 하고 모닥불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자는 일행들도 누런 잉어를 보니 생각이 바뀌었는지 회 쳐먹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고 가자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한 동안 조용하던 방울이 다시 울리기 시작한 것은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고 공교롭게도 우리 릴대의 방울이 울리고 난 몇 초 뒤에 옆 일행의 릴대에서도 방울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모닥불과 릴대까지는 약 10m의 거리가 있었고 소리를 듣고서는 얼릉 릴링을 시작했죠. 마찬가지 옆 일행들로 릴링을 시작했죠. 대를 들고 릴링을 하는 순간 분명 방울소리가 요란하게 났는데 힘없이 릴이 감기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하며 계속 릴링을 하는데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 지고 나서야 낚시줄이 릴끝에서 일직선으로 달려 오는게 아니고 우측 45도 각도를 유지한 채로 감기는 것이었고 그제서야 뭔가 걸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상하게 끌어내면 낼수록 낚시줄은 우측으로 강하게 끌려갔고 결국 고기는 우측 옆 지점으로 끌려 나왔고 두어자 넘는 잉어였습니다. 고기가 물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 일행들은 고기를 거두로 고기가 올라온 지점으로 향했죠. 그런데 옆의 일행들도 우리와 같이 고기가 올라온 지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고기 구경하러 오는 것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옆의 일행들이 잉어를 먼저 들고서 바늘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어어 우리가 잡은 고기인데 라고 하니 옆 일행들이 하는 말 “아닌데 우리가 잡은 고기인데”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랜턴이 없었기에 옆의 일행이 랜턴을 가져왔고 랜턴을 비춰 고기를 확인해 보니 아뿔싸! 이런 경우가.....공교롭게도 끌려 나온 잉어 주둥이 속에는 색깔이 다른 목줄이 달린 바늘이 두 개씩 총 4개가 박혀 있었는데 두 개는 우리 일행의 바늘이었고 두 개는 옆 일행의 바늘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옆 일행이 투척한 미끼와 우리가 투척한 미끼가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아 식탐 강한 잉어 넘이 우리 먹이를 먼저 취하고 멀지 않은 옆의 먹이를 취했던 것이었고 릴링시 낚시줄이 45도를 유지한채 당겨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바늘도 두 개씩 나란히도 걸렸는지 참.... 우리 일행은 고기를 반반 나누자고 했습니다만 마침 옆 일행중에는 임산부가 있었고 그 임산부 남편되는 사람이 정중히 부탁을 하길래 우린 조건없이 드렸습니다.
그 잉어 고아 먹고 나온 아이가 아마 서른은 넘었을 건데 눈이 초롱초롱한 성인으로 잘 자라겠죠? 아직도 그길을 자주 다니는데 가을 무렵 그 지점을 지나노라면 그 옛날 작은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첫댓글촌놈의 성장 과정은 와 그렇게 똑 같노.... 글 서두에는 나의 유년기 시절이랑 흡사 하네 그때는 고기도 참 많았제 대나무 소쿠리 한나들고 주전자 하나 들고 도랑가 수초에 소쿠리 대고 발로 푹푹 밟아 소쿠리 들면 미꾸라지와 송해(붕어) 많이도 잡혔는데 그 고기 다 어디갔노
첫댓글 촌놈의 성장 과정은 와 그렇게 똑 같노.... 글 서두에는 나의 유년기 시절이랑 흡사 하네 그때는 고기도 참 많았제 대나무 소쿠리 한나들고 주전자 하나 들고 도랑가 수초에 소쿠리 대고 발로 푹푹 밟아 소쿠리 들면 미꾸라지와 송해(붕어) 많이도 잡혔는데 그 고기 다 어디갔노
그나저나 올해 출조는 쫑냈는교?
뒷골못에 수초 삭아내리면 한 번더 쪼아봐야 하는거 아잉교?
나이가 먹었나...! 글 읽는데 한참이나...!
잘 읽어습니다.ㅎㅎㅎ
아~! 그 옛날 금호강가에서 시전했던 절세의 비급들이 이렇게 공개되다니......
제가 주로 시전한 신공은 사발모찌와 파리낚신데 언제 그 엄청난 기량을 함 보여줄 기회가 올랑가??
추억에 젖어들게 하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