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 한순간도 놓지말라 / 정각스님(법륜종 종정)
옛날 조주스님은 ‘날마다 좋은날(日日是好日)’이라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좋은고 하면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엔 시원한 바람,
가을에는 밝은 달이요 겨울엔 흰눈이 있어 좋구나
(春有百花 夏有風 秋夜明月 冬有白雪)’라고 했지요.
정말, 날마다 좋은 날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모두가 좋은 날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날도 허공처럼 머무름이 없었을 때 좋은 날인줄 알며 삽니다.
모든 것을 놓고 비우고 쉴 때 좋은 날이고 생활이 편안해 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공부는 바로 비우는 공부입니다.
우리는 늘상 말이나 생각으로 ‘비운다, 놓는다’ 하면서 막상 사물을 대하고
보면 그렇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중생이고 현실입니다.
‘나’를 버리는 공부로 <금강경>이 가장 으뜸입니다.
<금강경>에 보면 ‘여래(如來)는 참다운 말을 하는 이며, 실다운 말을 하는 이며,
한결같은 말을 하는 이며, 속이지 않는 말만 하는 이며, 사실과 다르지 아니한
말만 하는 이다(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語者 不異語者)’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말씀을 생활 속에서 확실히 체험해야 합니다.
<금강경>을 크게 세 단락으로 분류하면, 먼저 ‘무릇 있는 바 상(相)은 다 헛되고
망령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바로 진실한 여래를 보게 된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는 것입니다.
또한 본론격으로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느니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고 하였으며,
마지막 결론으로 ‘일체의 유위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하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고 하였습니다.
구구절절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놓고, 비우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살면 가장 편하고 좋습니다.
그러기에 조주 스님도 ‘평상심이 도(道)’라 하셨습니다. 도(道)가 길밖에
또 생활밖에 따로있는 줄로 알면 잘못된 것입니다. 평소의 내 생활 그대로 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끝없는 자기 반성과 참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즉 자기 점검이지요. 따라서 불자라면 항시 아침, 저녁으로 경전을
독송해야합니다. 특히 <금강경>을 독송해 보세요.
경전을 아무리 읽어도 뜻을 알 수 없다며 포기하지 마세요. 일심으로 독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성구 금언(聖句 金言)’으로서 독송하면
사기(邪氣)가 침입하지 못합니다. 독송할 때는 천천히 읽으면 망상이 생기니
빨리 읽도록 하세요. 빨리 읽으면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게 됩니다.
옛 선사들이 말하기를 ‘공부할 때는 고양이가 쥐 잡듯이 하라’했습니다.
혼신을 다해야 날렵한 쥐를 잡을 수 있습니다. 조금의 방심이나 흩어짐이
없어야 합니다.
처음 출가하여 청화 스님을 모시고 진불암에서 공부할 때였습니다.
대중이 묵언하며 아침 점심만 공양하고 오후불식하며 수행했습니다. 공부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로 부족했지만 그때만큼 공부 잘 되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수행자로서 자세가 흩어지지 않았기에 공부가 잘 되었던 것입니다.
강원을 마치고 전국의 선방에서 20여년 공부하다 우연히 허응당 보우 스님
(虛應堂 普雨)의 출산게(出山偈)를 보았습니다. 보우 스님이 공부하고
저자거리로 나오면서 쓴 시입니다.
‘내가 뜻을 세워 공부한 6년, 금강의 본 경지를 보았노라.
사나운 말(馬)과 간사스런 원숭이를 뜻과 같이 길 들였다.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다고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내 법당(法幢)의 주장자를 곧게 세우고 고통과 시련이 많은 사바세계
중생세계를 찾아가노라’ 하셨습니다.
중생들을 위해 세간으로 나가는 보우 스님을 모두 말렸는데 스님은 산문 밖으로
나와 포교하시다가 결국은 제주에서 유생들에 의해 돌아가셨습니다.
저 역시 무척 고민되었습니다. 불교는 생활 속에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때도 불자들의 생활은 불교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산중에서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세간 밖으로 나갈 것인가….
이때 보우 스님의 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곧장 불교 불모지 목포에 터를 잡고 ‘생활불교’를 펴고자 노력했습니다.
오늘의 보현정사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생활불교에 대해 이해는 하는데 실천하는 데는 부족합니다. 생활불교는
직접 보고, 듣고, 먹고, 잠자고 행동하는 것이 모두 생활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부처님의 진리가 생활과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이익이 되어야지 ‘이론 따로, 생활 따로’이어서는 안됩니다.
생활불교를 위해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합니다.
불자라면 모름지기 정기법회에 꼭 참석해야 합니다.
법회에 참석하여 법문을 듣다보면 지난 일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콩나물 자라나듯 공부가 되어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공양할 때 꼭 기도하셔야 합니다. 제가 간단한 공양문을
소개하겠습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부처님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부처님의
은혜가 스며있습니다. 이 공양으로 주림을 달래고 열심히 정진하여
성불하겠습니다.’
집이나 밖이나 어디서든 공양할 때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불교가 배불정책으로 산속으로
밀려났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진리탐구를 위해 공부할 때는 산이 필요하지만, 공부가 된 다음에는 중생제도를
위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요즘도 공부하는 큰 스님들이 산중에만 계시는데 모두 도시로 나와야 합니다.
큰 스님들은 연꽃처럼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니 견성하신 분들이 저자거리로
나와서 중생제도를 하셔야 합니다.
부설 거사의 열반송에 ‘눈으로 보되 분별하지 말고, 귀로 듣되 시비를 가리지
말고, 분별시비를 다 놓아버리고, 마음의 부처에 귀의하라(目無所見 無分別
耳聽無聲 絶是非 分別是非 都放下 但看心佛 自歸依)’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저의 생활이요, 신도들에게 제시하는 생활불교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그리고 불법을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느끼곤 합니다. 나옹 스님의 글을 끝으로 불자의 삶을 되새겨 봅니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부처님의 도량에서 정신 바짝차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성성하고 적적하여 자기의 본래면목을 확실히 찾아야 한다. 보이는 만물이나
보이지 않는 일체만물이 본래 그대로 주인이다. 참된 성품은 두루 밝아 본래
한물건도 없나니 목마가 밤에 우니 서쪽에서 해가 뜨도다.’
정리·사진=이준엽 기자 / 현대불교신문
기자가 뵌 정각 스님
의외였다. 스님들을 만나면 알고 싶어도 물어서는 안 될 금기사항중 하나가
속가(俗家)와 출가(出家) 이야기이건만 정각 스님은 허물없이 들려준다.
스님이 대학 때 고시를 준비하던중 병을 얻어 요양차 간 곳이 속가 은사가
주석하고 있던 지리산 백장암이다. 그 은사는 지난해 입적한 청화 스님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세속의 은사였고 출가 은사로 이어졌다.
정각 스님이 들려주는 청화 스님 이야기는 흥미롭다. 55년전, 무안 혜운사에
계시던 청화 스님은 직접 탁발하여 망운 중학교를 건립했고, 승복 입은 채
수학을 강의했단다. 스님의 행동, 말 한마디는 그대로 흐트러짐 없는 사표였다.
이처럼 큰 스승이었기에 고향에서 청화 스님 권속으로 출가한 이가 놀랍게도
100여명이라 한다.
강원과 선방에서 정진하던 정각 스님은 30여년전 ‘불교 생활화’를 내걸고
목포입구 승달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불교 불모지 목포에서 1만여평의 대지에
1만여명의 대중이 심신을 닦아가는 대가람 ‘보현정사’로 자리잡기까지
정각스님의 역할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님은 2시30분에 기상해 참선과 예불에
이어 법회, 불공, 신도대담 등 하루 200~300여명을 만난다. 부전, 법주는 물론
때로는 행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신도와 대중들로부터 ‘무쇠덩어리’로
통한다. 무슨 비법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채근하니 ‘경전을 독송하라’ 한다.
생활 속에 한시라도 부처님 말씀을 놓치지 말라 한다.
해인사 성우 스님에게 율맥을 전수받은 정각 스님은 ‘승단의 율이 바로서야
불교가 산다’는 신념으로 요즈음 계율 정비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1997년 법륜종 3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