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 더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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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세계 최고의 갑부 석유왕 폴 게티의 손자가 로마에서 마피아에게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1700만 달러를 요구했지만 폴 게티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납치범들은 손자의 귀를 잘라 협박했고 요구 금액도 300만 달러로 줄이면서 손자는 석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폴 게티는 손자의 신체가 훼손되기 전까지 손자를 구하지 않는 비정한 할아버지라는 비난에 직면하였고 회사제품 불매 운동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사태를 지켜보아야 했다. 300만 달러 역시 세액공제가 되는 220만 달러만 주었고 나머지 80만 달러는 아들에게 연 4%의 이자로 빌려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과 냉소를 동시에 받은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세계적 거장인 리들리 스콧은 이 사건을 소재로 <올 더 머니>를 만들었고 올해(2018년) 개봉하였다. 감독은 작품 제작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이야기는 현대판 비극이며, 동시에 매우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돈이 많은 것과 돈이 없는 것, 그 사이의 공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감독의 변과 같이 이 영화는 ‘돈’을 얻으려는 자들과 ‘돈’을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등장하고 그 속에서 돈에 의해 종속되고 변질되어 가는 인간들의 모습들뿐 아니라 돈의 힘에 저항하는 또 다른 인간들의 모습을 공존시키고 있다.
영화는 납치 사건의 과정을 매우 빠르고 치밀하게 전개한다. 영화는 긴박하고 속도감 있게 화면을 전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끝까지 몰입시킨다. 납치, 탈출, 재납치, 신체훼손, 살해위협, 돈과 인질의 교환, 재개되는 마피아의 추적 등 영화는 끝날 때까지 손자의 구출에 대한 안도감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의 멋진 반전을 통해서야 손자는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었다. 그 반전은 손자를 납치했지만 납치과정에서 서로 정이 든 마피아 하수인의 개입이었다. 인질과 인질범 사이의 인간적 유대가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듯이 이 영화는 사건의 압축성 못지않게 등장인물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 구축을 통하여 영화의 매력을 증진시킨다.
이 영화의 대표적인 캐릭터는 먼저 폴 게티 회장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갖고 있음에도 인질범들의 요구를 쉽사리 들어준다면 자신의 13명의 손주들도 똑같은 위협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인질범들의 요구를 묵살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폴 게티는 엄청난 돈을 미술품 구매에 사용하였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기 위한 건설투자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다. 가족의 목숨까지 마치 비즈니스 협상같이 생각하고 냉정함과 잔혹함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게 했던 ‘돈’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곧이어 폴 게티는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그가 모았던 엄청난 양의 미술품들은 ‘폴게티 미술관’의 설립을 가능하게 하였다. 엄청난 부를 모았던 한 인물의 재산이 살아생전에는 봉인되었지만 사후에서야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아이러니를 그는 보여준다.
폴 게티의 반대쪽의 인물은 며느리 게일이다. 게일은 강인한 정신과 아들의 생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납치범뿐 아니라 폴 게티와도 투쟁하는 인물이다. 손자가 납치당했을 당시 그녀는 남편과 이혼상태였다. 그녀는 이혼협상 당시 자녀들의 양육권만을 갖고 그 밖의 재산에 대한 요구를 포기했을 정도로 돈의 집착과는 반대쪽에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아버지의 지원거부에 분노하면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거대한 부의 위선과 맞선다. 특히 협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과거 아들에게 선물했던 폴 게티의 고대 조각 선물이 가짜 복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치솟는 부자들의 거짓과 위선에 대한 분노는 게일의 '돈에 대한 저항'을 극대화시킨다.
이 영화의 등장하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는 폴 게티에게 고용된 CIA출신 협상가 플레처이다. 처음에는 고용주의 명에 따라 협상금액을 줄이고 며느리의 개입을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협상 과정에서 보게 된 폴 게티의 비정함과 게일의 열성적인 노력에 공감하게 된다. 그는 점차 돈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고용인의 자리에 회의를 느끼고 회장의 ‘비정함’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폴 게티로부터 돌아선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그의 파격적인 도발이 폴게티의 마음을 흔들어 협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폴 게티는 손자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돈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 인간들의 지속적이고 저열한 욕망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 사건의 실제 상황은 영화보다 훨씬 비극적이다. 납치되었던 손자는 사건의 진실을 모두 알게된 후 방황과 분노로 인해 약물중독이 되었고 결국 비참하게 54세로 사망했으며 어머니 또한 망가져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현실보다는 희망적이다. 우선 실제 인물이 아닌 CIA출신 협상가와 납치범이 보여준 전복적인 변모는 돈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욕망으로부터의 탈출가능성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피아의 의해 납치를 실행했지만 손자를 끝까지 보호하려 했던 납치범의 모습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양심과 연대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협상가 또한 돈 때문에 회장에게 고용되었고 이익을 위해 온갖 부정한 일도 마다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결국 돈의 통제를 기꺼이 포기하고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더 머니>는 영화적인 재미 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속 돈의 영향력과 가치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면서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인 ‘돈’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매우 의미있는 영화이며 강력하게 관람을 추천한다.
*(사족) 이제까지 특별하게 주목하지 않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많은 수가 ‘리들리 스콧’의 작품(<브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1>, <글라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해 80(1937년생)을 넘었지만 아직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감독의 건투를 빈다.
첫댓글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지만 현대인의 삶에서 돈이 갖는 위력은 엄청나다. 나이가 들수록 실감하고 있으며 주위에서 돈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이 다일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는 점점 더 돈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관계 교육 자연 문화 예술 명예 ...... 모두 돈으로 환산되는 작금의 현실이 씁쓸하지만 어쩔 수없이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돈 없는 삶은 고달픈 인생이 되고 만다. 소로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