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상업과 동래중학이 선점한 일제시대 부산야구의 명맥을 해방직후인 46년 창단과 함께 이어받아 단 한번도 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명문중의 명문..
라이벌 부산고가 비슷한 시기에 창단하고서도 60년대에 와서야 활성화되는데 반해 경남고는 40년대 창단과 함께 바로 우승권에 다가선 부산야구의 상징이고.. 위에서 보듯 전국의 모든 고교를 비교한 각종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한 이 학교를 빼놓고는 한국의 야구를 논할 수 없을만큼 대단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성적을 자랑합니다..
50년 이전의 경남고야구는 단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장태영>입니다..
1946년 제1회 청룡기대회에서 왼손잡이 유격수로 등장해서 부산상에게 결승전에서 패한 이후 장태영은 투수로 전향.. 이듬해인 47년 청룡기-황금사자기 동시우승.. 48년 청룡기-황금사자기 2년연속 동시우승.. 49년 김양중이라는 일생일대의 라이벌과 만난 청룡기 결승전에서 연장 1:2로 패할때까지 2년반동안 장태영의 경남은 단한번도 패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또다시 쌍룡기와 황금사자기를 우승하면서 재학시절 청룡기 2연패.. 황금사자기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던 우리 야구사에 전설로 남아있는 인물입니다.. 장태영님은 지난 99년 별세하셨습니다..
이후 전쟁이후에 50년대를 인천세가.. 60년대는 선린상을 앞세운 서울세가.. 70년대에 대구세로 넘어가는 주도권싸움에서 경남고는 67년도 경북고의 전관왕을 저지하면서 55년 우승이후 12년만에 황금사자기를 우승합니다.. 당시 경북신화의 주인공인 임신근을 3:2 극적인 승리로 무너뜨린 주역은 조홍기와 허구연입니다.. 당시 2학년이던 2루수 허구연은 이듬해인 68년부터 고교대표와 대학대표, 국가대표를 역임하다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슬라이딩하던 선수를 피하지 못해 정강이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사실상 선수생활을 마감했던 대표적인 경남고출신 슬러거였습니다..
본격적인 대구야구의 전성기였던 70년대.. 대구야구를 견제하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경남은 73년 유격수 김용희와 투수 천창호의 합작으로 모처럼 청룡기를 차지하였지만 앞으로 지긋지긋한 악연에 시달릴 대통령배 결승에서 대구상고에 지면서 첫번째 대통령배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74년에도 황금사자기에서 투수 정춘섭과 배경환이 포수 차동열과 호흡을 맞추며 우승하면서 통산 9번째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이때 매스컴은 이미 당시 1학년이던 한 선수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장태영의 경남고 신화를 재현해줄 최동원이라는 이 강속구 투수는 고2가 되던 75년 지금은 없어진 국회의장배에서 경북과 대구상을 누르면서 기지개를 시작하더니 76년 청룡기에서 믿을 수 없는 철완을 선보입니다.. 승자결승전에서 그해 대통령배 우승팀인 강타선의 군산상고를 맞이해서 안타 3개.. 삼진 20개를 뽑는 괴력을 과시한 것입니다... 최동원은 패자전을 거쳐서 또다시 최종결승에 올라온 김용남의 군산상을 이번에는 2안타와 삼진 12개를 기록하면서 가볍게 3:0으로 일축하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또한 최동원은 이에 앞서 부산에서 벌어진 4도시 고교야구대회에서 역시 괴물투수로 불리던 대구상고의 김시진을 4:2로 제치면서 필생의 라이벌을 제압한 바 있었습니다.. 당시 막강한 팀들이던 대구상고나 군산상고에 비해서 경남고 야수들의 전력이 쳐졌기에 더욱더 값진 승리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동원 이후 경남고가 다시 최강의 전력으로 전국대회를 도전했던 해는 84년과 87년..
80년대 이후 급부상한 부산고에게 부산의 주도권을 빼앗겼던 경남고는 84년에 배석곤-윤동배-김선일-이종운 라인으로 전국대회 준우승만 두차례 기록했고 87년에는 투수 김병주-김재성과 유격수 김상현으로 우승에 도전했으나 구대성의 대전고.. 박철홍의 신일고 등에 막혀 역시 준우승만 두차례 기록했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라인업으로 주목받았던 경남고 맴버들은 에이스였던 김병주가 프로행에 실패했음에도 동기중 7명이나 프로선수를 배출하면서 한학교 한기수 프로선수배출 최다기록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남고가 모처럼 다시 우승기를 가져간 해는 90년... 걸출한 투수였던 김건태와 현재 프로에서 활동하는 안상준, 박현승, 박보현을 앞세워 당시 최고팀이었던 충암고에게 1회전에서 신승한후 나머지 게임을 무난히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때도 에이스 김건태를 제외한 6명이 프로에 진출하였습니다..
경남고가 다시 전국대회 2관왕을 차지하면서 위용을 과시한 98년.. 3학년 에이스 송승준과 2학년의 강민영을 앞세워 대통령배에서 경남상에게 일격을 당한후 이어 벌어진 청룡기와 봉황기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해 최강팀으로 등극합니다.. 외야수 이상훈과 포수였던 김진욱은 각각 청룡기와 봉황기에서 타점,홈런,MVP를 차지했고.. 2루수 신민기는 97년에 이어 사상처음으로 이영민타격상을 2년연속 수상했습니다..
이렇게 근60년간 전국을 호령하며 최강팀중에 하나였던 경남고이지만 거론조차 하기싫은 징크스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풀리지 않는 대통령배의 불운입니다...
앞서 말했듯 73년 첫번째 준우승을 차지한 이래.. 대략적인 대통령배 실패사례를 살펴보면..
84년엔 결승전 3:1로 이기고 있다가 9회말 서울고에게 역전패했고.. 86년 결승에서는 김병주가 8회까지 군산상을 무안타로 완벽하게 막다가 9회에 동점타.. 그리고 연장 11회에 역전패를 당한적이 있습니다..
92년에는 라이벌 부산고와 결승에서 만나 2안타 완봉을 당하는 수모를 당했고.. 98년에도 연장 12회에 결정적인 점수를 따놓고도 12회말에 역전투런홈런으로 경남상에게 우승을 내준적이 있습니다...
경남고의 이러한 대통령배의 연속된 불운는 선린의 봉황기.. 부산고의 황금사자기와 함께 안타까운 고교야구계의 징크스로 남아있습니다...
또하나 경남고는 역대 에이스들이 프로에 진출조차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2, 제3의 선수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납니다..
배석곤과 윤동배의 경우도 그랬고.. 김병주나 김건태 대신 김상현이나 박석진, 박보현 등이 성공하는 것이 그런 예인데.. 올해 경남고의 에이스이면서도 미지명인 양정모와 지명받은 임재청, 윤성귀의 앞으로의 행보를 눈여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졌네요.. 이제 겨우 부산팀들이 끝났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중간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