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자신을 문제로 삼으라"고 멋지게 말했듯이 자신에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대답을 구하는 인간은 자신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통찰하기 위해 자기 인생의 길을 마치 지도처럼 펼쳐 보게 된다. 그는 다른 누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때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 갈림길은 어느 자서전에서나 볼 수 있다. 인생의 묘사인가 체험의 묘사인가, 타인을 위한 예증인가 자신을 위한 예증인가, 객관적이고 외적인 자서전인가 주관적이고 내적인 자서전인가, 즉 단순한 사실의 전달인가 자신에 대한 보고인가로 길이 나뉘는 것이다. 앞의 길이 언제나 대중을 향하는 경향을 띠고 교회나 책에서 볼 수 있는 고해처럼 상투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한다면, 뒤의 길은 독백하듯이 생각하는 것이어서 대부분 일기의 형식만으로 충분하다. 괴테, 스탕달, 톨스토이와 같이 정말로 복합적인 성격의 사람들만이 이 두 길의 완전한 통합을 시도했고, 그 결과로 자신을 영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아성찰은 그저 준비단계일 뿐이지 깊이 숙고하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모든 사실은 그 자체로 그대로 있으면 진실로 유지되기가 쉽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할 때 비로소 예술가의 진짜 고난과 고통이 시작되고, 정직성이라는 영웅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형제애를 발휘해 인간의 일회성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본능적 충동이 우리를 몰아붙이지만, 그만큼이나 반대의 충동, 즉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에 대해 침묵하려는 의지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보호와 침묵의 의지는 수치심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 인간의 수치심이 지닌 근본적인 비밀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본질적 특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가장 잔인한 모습과 불쾌한 모습을 노출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도록 한다는 데 있다. 읽는 사람이 조롱하는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 가장 빠져들기 쉬운 위험한 유혹인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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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책소개 하나 합니다. 플로베르와 함께 하는 '고행적' 책읽기에 지치신 분들에게 추천~
소개해드릴 책은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필맥, 2005)입니다.
원래 <안나 카레니나> 깊이 읽기를 염두에 두고, 그러니까 '톨스토이' 때문에 읽기 시작했지만, [서문]이 오히려 인상 깊은 책입니다.
'톨스토이'에 관한 글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 빛과 어둠의 두 초상>(자연사랑, 2001)에도 똑같이 실려 있습니다. 다만 번역은 다릅니다. 문단 구분도 다소 차이가 있네요.
<카사노바...>는 본래 저자인 츠바이크가 카사노바-스탕탈-톨스토이로 이어지는 정신적, 예술적 발전 단계를 상정하고 쓴 책이기 때문에 필맥 출판사본을 읽는 게 합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소 인위적 발췌 편집이긴 하지만) ['톨스토이' vs '도스토예프스키' = '빛' vs '어둠']의 구도 역시 무척 땡기는 구도이긴 합니다. 러시아 문학에서 둘이 차지하는 비중을 봐도 그렇고, 둘의 라이벌 관계를 감안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원래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평전critical biography) 작가로 무척 유명하죠. 그런데 그 많은 평전들을 그저 무턱대고 써낸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바로 이 점이 츠바이크가 여타의 평전 작가와 구분되는 독보적인 평전 작가로 자리매김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가령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는 [세계의 거장들/대가들(Baumeister der Welt)] 시리즈의 세 번째 권에 속합니다. 원제는 <Drei Dichter ihres Lebens : Casanova, Stendhal, Tolstoi>
번역하면 '삶의 세 시인' (좀 멋을 부리면) '삶의 노래한 세 명의 시인'정도가 되겠네요. 하지만 국내 번역본에서는 이 제목을 빼고, 대신 '츠바이크가 본'이란 구절을 집어 넣었습니다. 국내에서 츠바이크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굳이 이렇게 제목을 변형시킬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하긴 뭐 '삶의 세 시인'이란 제목 역시 구매욕을 상승시킬 만한 제목은 아닙니다만.......
참고로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사노바...> [서문] 첫머리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1권 <마신(데몬)과의 싸움(Der Kampf mit dem Damon)> : 횔덜린, 클라이스트, 니체
- 마성적인 힘에 쫓겨 자신과 현실세계를 뛰어넘어 무한의 세계로 들어선 유형
2권 <세 명의 거장들(Drei Meister)> :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 현존하는 현실 곁에 소설이라는 우주를 만들어 제2의 현실을 구축, 즉 '서사적으로 세계를 재창조한 사람'의 유형
3권 <삶의 세 시인(Drei Dichter ihres Lebens)> :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 (대우주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 보다) 자아의 소우주를 세계 속에 펼쳐나간 유형. '주관주의적 예술가' '자서전'이라는 예술 형식은 어떤 것인가를 탐색.
1권에서 다루는 인물들이 걸어간 길이 '무한 세계'로 이어진다면, 2권에서의 길은 '현실 세계'로 이어집니다. 3권에서의 길은 '자기 자신'에게도 이어지게 됩니다. 어쨌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츠바이크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뤄지는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한 가운데, 1권이 특히 끌립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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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전은 시쳇말로 '신상털기'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때문에 일단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츠바이크가 단지 흥미 본위의 글을 쓴 건 아닙니다.....
- 3기 [도시]에서 다룰 책도 2권 밖에 남지 않았네요. 어느 덧 4기를 준비할 때가 되었습니다. 머리를 굴려 가며 열심히 목록을 짜고 있습니다. '플로베르의 아이들'인 카프카와 조이스의 작품이 들어갈 예정이고요. 또 다른 '아이들'인 사르트르의 작품도 고려 중입니다.
- 기쁜 소식(?) 하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확정입니다. 톨스토이는 플로베르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죠. 플로베르식 '스타일'을 나름의 방식으로 성취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4기는 '플로베르와 아이들' 특집으로 꾸려질 것 같습니다. 물론 주제어는 따로 고심 중입니다.......
-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분량이 무척 깁니다(3권이나 됩니다...). 그래서 최소 2번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소설 자체 이외에 몇 가지 글들을 함께 읽을 예정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소개한 츠바이크의 글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의 작가죠)의 글을 함께 읽어볼까 합니다. 분량이 조금 부담은 되겠지만 두 번 모임을 가진다면 한 달 동안 읽는 것이니, 크게 무리가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마담 보바리>를 하면서 플로베르식 '스타일'이 갖는 중요성과 후대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그게 실제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 및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미리(!)' 부탁드리고요, 다음 번 모임 때 다룰 <감정 교육> 역시 잘 읽어오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지난 시간에 못간게 아주 후회되네요 ㅜㅜ 이책 읽어보고 싶어요.
이책은 지난 시간에 소개한 건 아니고, 오늘 책 읽다가 좋아서 그냥 갑자기 소개해드린 것입니다. ㅋ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전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도 읽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책은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답니다. ^^
4기가 허벌라게 기대됩니다 !! 드디어 카프카 ㅠㅜ 님 강림이시고 다른아이들(!)도 오~~~!! 좋으네용 두근두근 ....^^ 츠바이크는 꽤나 어려워보이는걸요 ..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르주아의 유쾌한.... 은 빌려놓고 연체중이지만 ㅋ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분도있는데 ... 죄송!!
이상북에서는 츠바이크가 의외로 제일 쉽고 재밌었다는 의견도 많이 있었어요. 취향을 좀 타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츠바이크가 쓴 건 소설(픽션)이 아니고 평전(논픽션)이니까요. 대체로 역사 좋아하는 분들은 thumb up~! 하시더이다..
4기는 저도 두근두근하고 있습니다. '플로베르 빠'로서 카프카를 읽는 맛이 색다를 듯~
안나카레리나는 출판사 상관없나요? 롤리타도 볼까요? ㅡㅡ;
<안나 카레니나>는 민음사, 펭귄클래식, 문학동네 중에서 골라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본 것은 펭클과 문동 이 두 가지였는데, 펭클이 좀 읽기 편한 의역이고, 문동은 문체가 옛스럽고 문장 길이가 긴 직역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둘 다 읽기에는 괜찮습니다(민음사 건 직접 보지 않았지만 번역이 나름 괜찮다는 평). 평소 취향에 따라 선택해보시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롤리타>는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