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비내길>
1. 충주 ‘앙성온천’에서 시작하는 ‘비내길’은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남한강의 푸른 줄기를 만나게 된다. 강 주변에 가꾸어진 나무들과 꽃들은 편안한 사색을 이끈다. ‘비내길’은 꽃도 아름답지만 꽃보다도 나무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연한 초록색이 잎을 서서히 물들이며 싱싱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초록색 잎들은 남한강의 푸른 줄기와 어울려지며 살아있는 것들의 진정한 시작을 축복하고 있었다. 꽃들의 화려한 만개가 아름답지만 사라져야 하는 것들의 순간적 쾌락을 보여주는 반면, 초록빛 잎들은 이제부터 숲을 가득 채울 수많은 생명들의 조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강과 숲은 서로를 도와가며 살아있는 존재들의 터전이 되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며 이곳을 찾는 모든 것들을 축복하는 넓은 품을 드러낼 것이다.
2. 잔잔히 흘러가는 남한강의 푸른 물결은 평화로웠다. 익숙한 북한강 줄기보다 더 작고 소박한 물의 흐름은 남한강의 색다른 정서를 느끼게 해주었다. 비내길 맞은 편 쪽에는 남한강 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국토 종주 자전거길’이 보인다. 충주댐까지 연결된 자전거 길은 충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는 길이다. ‘강’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거대한 생명의 원천이라는 점과 강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를 확인시켜 줄 때이다. 이명박의 <4대강 개발>은 ‘자연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너무도 큰 재앙을 불러 일으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강’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이것은 너무도 어려운 관계이다. 서로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만이 공존할 수 있는 동반자이다. 인간이 ‘자연’을 우상화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았을 때만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적절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3. 비내길 끝에는 남한강에 떠 있는 작은 섬, ‘비내섬’이 있다. 강에서 섬을 본 것은 한강의 ‘밤섬’ 이후 오래만의 일이다. 섬으로 들어가는 인도교를 건너자 자갈돌로 가득 덮여있는 해안과 바닥이 보였다. 섬에서 보게 되는 자갈돌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섬 안내판은 섬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이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천천히 섬 주위를 걷기 시작했다. 섬과 강 수위가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다. 조금만 강의 수량이 넘쳐나면 섬은 물에 잘길 듯했다.
약 20분 정도 걷자, 섬의 풍경이 달라졌다. 자갈돌이 많은 지역에서 벗어나자 갈대숲이 가득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섬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된 갈대숲이다. 섬에서 갈대숲을 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제 철이 지난 갈대밭은 지금 힘을 잃고 쓰러져있지만 자기의 시간이 오면 다시 힘차게 살아날 것이다. 갈대숲을 감탄하며 걸을 때, 안내판과 소품이 보인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tvN의 <사랑의 불시착>의 촬영지였다는 안내문이었다. 이렇게 멋진 장소를 드라마 촬영팀이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내섬’ 답사는 특정한 장소를 찾을 때와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를 만났기 때문이다. ‘비내길’을 걸을 때 강 속의 섬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도, 섬의 규모가 상당히 클 것이라는 점도, 섬이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섬과 만난 것이다. 이 우연한 만남이 즐거움을 더욱 크게 해주었다. 여행은 약간의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계획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은 어떤 ‘새로움’과 만날 때 여행의 의미는 더욱 커진다. 이것은 ‘계획’에서 파생되는 ‘우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학의 위대한 우연적 발견도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시행된 준비와 실험 속에서 나타났듯이, 우연한 여행의 즐거움도 여행이라는 구체적 계획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유사할 것이다.
첫댓글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연함이 아니다. 삶의 즐거움도 어쩌면 구체적 계획의 산물인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계획된 과정에서의 만남은 우연을 통한 필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