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로마의 저택에서 중원Atrium은 태양열을 받아들이는 역할만 했던 것이 아니다. 아트리움에는 보통 ‘임플루비움Impluvium’이라는 사각형 빗물받이 겸 연못을 만들어두는데, 비열이 큰 물이 중원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침실을 말 그대로 자는 용도로만 활용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밝게 햇볕이 들어오면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아트리움에서 보냈다. 또 다른 개방공간인 페리스타일Peristyle도 마찬가지였다. 기둥과 처마로 둘러싸인 공간인 페리스타일에는 정원이나 채마밭을 두곤 했는데, 식물들이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온도조절에 중정을 활용하는 방식은 남부 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페인의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이다.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알람브라 궁전은 가운데의 커다란 정원을 방들이 사각형으로 요새처럼 둘러싼 구조다. 중정에는 큰 연못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사방으로 수로가 뻗어나와 방 안쪽까지 물이 흘러든다. 중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생명의 물,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한편으로 효과적인 냉각장치 역할을 한다. 건물의 한가운데에 연못 정원을 두는 건축양식은 이슬람 세계에 오랜 시간 동안 장려되어 이른바 ‘지중해식 중정’으로 정착했다.
알람브라 궁전의 아세키아 파티오El Patio de la Acequia. 분수에서 시작된 물은 수로를 따라 방으로 흘러들어간다. 물이 있는 중정은 무더운 지중해의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게 해 주었다. ⓒ Andrew Dunn
물을 이용한 냉각방식은 놀라운 효율을 보인다. 한여름에 전형적인 지중해식 중정은 길거리보다 온도가 9도나 낮다. 중정의 시원한 공기를 이용하면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세비야 대학University of Seville에서는 지중해식 중정의 시원한 공기를 능동적으로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는 냉각기법을 개발하여 말라가 호텔Monte Malaga에 적용함으로써 냉각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반으로 줄이는 성과를 얻었다.
자연 냉각의 또 다른 키워드인 바람 역시 여러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전통 한옥이 바람을 이용한 냉각방식의 전형적인 사례다. 한옥은 앞뒤로 트인 대청을 사이에 두고 텅 빈 마당을 집 앞에, 식물을 심은 후원을 집 뒤에 둔다. 햇볕을 받으면 맨땅인 마당이 빨리 뜨거워져서 상승기류가 발생하고 식수를 한 후원으로부터 시원한 공기가 마당 쪽으로 흘러든다. 이 공기가 대청을 지나면서 집 전체를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통째로 들어올려 아예 벽이 없는 형태로 만들어줄 수 있는 들문을 설치하여 냉각효과를 극대화한다.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의 수신와 정면. 들어올려져 방을 완전히 개방한 문과 뒤편의 식수된 뜰, 앞쪽 맨바닥의 마당이 한 눈에 보인다. ⓒ한국관광공사
한옥이 수평적인 공기의 흐름을 이용했다면 이슬람 사원은 수직적인 공기 흐름을 활용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건축가인 시난Mimar Sinan은 그의 대표작인 술레이마니에 사원Suleymaniye Mosque 에 수직적인 환기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온도조절과 환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시난은 양초와 램프에서 생긴 그을음이 사원의 내벽을 더럽히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고심했다. 공간의 성격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기가 탁해진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시난은 출입구 위의 작은 공간으로 내부의 후덥지근하고 지저분한 공기를 빼내고 바닥에 둔 관으로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공기 흐름을 이용한 냉각의 진수는 인간이 아닌 흰개미에게서 볼 수 있다. 흰개미의 집에는 엄청나게 많은 통로가 복잡하게 얽혀 개미탑 표면의 수많은 구멍을 통해 바깥과 연결된다. 흰개미는 곰팡이와 버섯을 키우는 부분과 주요 생활공간을 집의 아래쪽에 두는데, 여기서 나오는 열이 집 내부의 공기를 위로 밀어올려서 개미탑의 위쪽 구멍을 통해 덥고 탁한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아래쪽 구멍을 통해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유입된다. 흰개미는 개미탑의 구멍들을 열고 닫으면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함으로써 집 내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흰개미의 환기 시스템은 이들의 주 서식지인 아프리카 초원은 한낮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고 일교차가 심한데도 흰개미집의 내부는 항상 29~30도 정도로 유지될만큼 효율적이다.
짐바브웨 출신의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earce는 자국 수도인 하라레에 에어컨이 없는 쇼핑센터를 설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아프리카의 에어컨 시설이 없는 쇼핑센터라니, 황당한 요구였다. 처음에는 막막해보였지만 피어스는 흰개미의 환기시스템을 모방하여 최초의 대규모 자연냉방 건물인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Eastgate Centre’를 건설했다. 구조는 간단했다. 건물의 가장 아래층을 완전히 비워버리고 꼭대기에 더운 공기를 빼내는 수직 굴뚝을 여러 개 설치한 후, 두 개의 건물 사이에 저용량 선풍기를 설치했을 뿐이었다.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있는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 전경. 넓게 펼쳐진 건물 옥상에 줄지어 선 굴뚝이 눈에 띈다. ⓒDavid Brazier
단순한 구조였지만 효과는 놀라웠다. 건물 내에서 더워진 공기가 꼭대기의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고 아래쪽에서는 신선한 공기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에어컨 없이도 실내온도가 24도 정도로 유지됐다. 전력이 소모되는 곳이라고는 공기 순환을 거드는 선풍기뿐이었다. 이 간단한 시스템 덕분에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동일한 규모의 건물의 10%에 불과한 전력만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