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바나바 - 사도 바울을 처음 인정하고 전한 하나님의 사람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도행전9:26-31)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11:25-26)
* 사도바울과 바나바
바나바 (Barnabas) 「권위자(勸慰子)」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인 요셉의 별명이다(행 4:36). 사도행전 13:15에는 분명히 권면한다는(paravklhsi, 파라클레시스) 뜻이 있고, 사도행전 9:31, 15:31, 32도 역시 그럴 것이다. 이 이름을 가진 자는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은,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사도행전의 기사에 의해 확증된다.
즉, 바나바는 초기에 그리스도교에 개종하여 자기의 소유지를 팔아 그 값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바쳐 가난한 형제들의 구제 자금으로 하였다(행 4:36).
전에 기독교의 박해자였던 사울(바울)이 예루살렘에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지만, 다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제자됨을 믿지 않았으나, 바나바는 사울(바울)을 데리고 가서 사도들에게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또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했는가를 자세히 이야기하여 그를 변호함으로써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없애주는 한편,그는 사울의 시중을 들고 그의 불안을 덜어 소개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행 9:26,27).
바나바는 사도행전 11:24에 `착한 사람'이라 되어 있고, 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다고 했으니, 그는 교회 지도자들 중에서도 본래 그 성품에 따라 아량이 넓은 자였으며, 영적으로도 담대한 은혜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그는 본래부터 착한 사람인데다가 영적 은사까지 충만했으니만큼, 그의 목회하는 임지에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것은 정한 이치이다.
즉, 안디옥 교회에서의 그의 큰역할을 볼 수 있다. 안디옥 교회에서 몇 사람의 구보로 사람과 구레네 사람들이 이방인에 대한 전도(유대인도 포함)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보내 돕게 하자, 그가 가서 그 교회의 은혜를 알아 보아 인정하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즉 주와 동거하라고 권면하였다. 그 결과 큰 무리가 주를 믿게 되었다(행 11:19-24).
그리고 그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리고 왔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진 지도자 중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위대한 사울을 등용하기를 기뻐하였다.
바나바는 사울이 받은 영적 은혜를 참된 것이라고 식별한 명견(明見)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안디옥에서 일년간 큰 무리를 가르쳤다(행 11:25,26). 구브로 섬 살라미스에 있는 바나바의 무덤 아가보의 예언대로 흉년이 들었을 때, 구제연보를 가지고 바나바는 사울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행 11:27-30).
예루살렘에서 구제사업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갈 때 마가를 데리고 갔다. 이것은 안디옥에서 출발된 바나바와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에 요한 마가와 동행하게 되었던 가능성을 알게 하여 준다(행 12:25,행 13:13).
안디옥 교회에서 선지자, 또는 교사라 일컬음을 받은 인물 중에 바나바가 들어있다. 바나바와 사울이 주를 섬겨 금식기도할 때에, 성령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외국 선교 사업)을 하라고 따로 세움을 받았다(행 13:1-3).
그들은 구브로 섬에서 버가˙비시디아˙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로전도여행을 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자를 고쳤다. 그 곳 주민들은 그들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 왔다고 생각하여 바나바를 그들의 최고신인 `쓰스', 바울을 `허메'라고 하면서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무리와 함께 와서 제사를 하려고 하던 사건이 일어났다(행 13:3-14:28). 이들은 구원문제를 놓고 유대주의자들과 다투었다. 교회는 이 문제 때문에 대표자로 이들을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되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총회의 성질을 띤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선교에서 본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보고하였다(행 15:1-3,12).
이 회의에서는(사도, 장로, 그리고 온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이방교회에 보낼 대표자를 택했다.
회의 결의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바나바와 바울에게 보낸다고 하였다(행 15:22,26). 이들은 안디옥에서 전도하다가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제안하자, 바나바는 친척인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자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 때 밤빌리아에서 떠나 자기들과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다고 반대하여 서로 몹시 다투었다.
이 다툼은 두 사람의 성격상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다.
바나바는 모성적이며 부드럽고 관용성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부성적이며 사랑이 많은 동시에 징계할 것은 징계한다는 엄격성이 있었다.
격론 끝에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구브로로 떠났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면서 전도하였다(행 15:35-41,골 4:10).
이들이 서로 갈라지기는 했지만, 주 안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바나바에 대한 애정(고전 9:6,갈 2:1,6,13,골 4:10)과, 제1차 전도여행에서 신용없이 중도에 집으로 돌아갔으나 회개하고 그의 유익한 보조자가 된 요한 마가에게도 칭찬을 보내고 있다(딤후 4:11).
* 출처:인터넷자료(정리)
< 바나바에 관한 또 다른 글 >
바나바 (Barnabas) [위로의 아들]
1세기 그리스도교의 이 탁월한 인물은 누가에 의해 사도행전 4:34-36에서
처음으로 성경에 소개된다. 그곳을 보면 이 독실한 사람이 레위 사람이고
키프로스 섬 태생임을 알 수 있지만, 그가 소개된 시점에는 예루살렘에 있었다.
오순절 얼마 후에 그리스도교 활동의 발전을 위해 자기들의 밭과 집을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에게 가져온 많은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 사람은 이름이 언급된
사람이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사도들은 “위로의 아들”을 의미하는
바나바라는 별명을 그에게 지어 주었다. 그 사람의 특징과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 주는 이런 일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매우 따뜻하고 관대한 사람이어서, 왕국 권익의 증진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소유물을 기꺼이 제공하였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을 기꺼이 ‘도왔으며’(행 9:27), 새로 관심 가진 사람들 앞에서
“기뻐하며, 그들 모두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격려하기 시작하였다.”
바나바는 “선한 사람이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으며(행 11:23, 24),
안티오크에서 예언자이자 가르치는 사람으로 일하였다. (행 13:1)
사도들은 바나바를 가리켜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들의 영혼을 내놓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행 15:25, 26)
그는 12사도 가운데 한 명이 아니었지만 사도라고 불리는 것이
적절했는데(행 14:14), 실제로 그는 “성령에 의해 보냄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행 13:4, 43).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던 바나바와 바울의 친교는, 바울이 개종하고 나서
약 삼 년 뒤에 예루살렘 회중과 접촉하고 싶어 했을 때 시작되었다.
바나바가 처음에 바울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하지만 바울을 베드로와 제자 야고보에게 소개할 특권을 누린 사람은
바나바였다.(행 9:26, 27; 갈 1:18, 19)
그동안에 그리스어를 하는 키프로스와 키레네 출신의 어떤 유대인들이
시리아 안티오크에서 그리스도교에 대단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 있는 통치체는 바나바를 안티오크로 내려 보내어 이 새로운
신자들을 더욱 격려하고 세워 주게 하였다. 이 일을 위해 바나바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는데, 그는 그리스어를 하는 키프로스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안티오크에서 “상당수의 무리가 주께 더하여졌”을 때, 바나바는 서둘러
타르수스로 가서는 바울을 설득하여 안티오크로 함께 가서 봉사의 직무를
돕게 하였다. 그 무렵에 기근이 들 것이라는 하느님의 경고가 있어서
안티오크에 있는 형제들은 많은 식량을 모으게 되었으며, 때가 되자 그것을
바나바와 바울의 편에 예루살렘 회중에 보냈다.?행 11:22-24, 27-30; 12:25.
이 구제 활동이 완수되자, 그 두 사람은 기원 47년경에 안티오크로 돌아왔으며
그곳에서 성령의 지시에 따라 선교 임무를 수행하러 떠났다. 이렇게 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먼저 키프로스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속주 총독
세르기오 바울로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전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그곳을 떠나 소아시아 내륙 지방을 두루 여행하였다. 때때로 그들은
폭도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았다. 리스트라에서 다리가 불구인 사람을 고쳐
주었을 때에는, (바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말하는 데 앞장 서는 사람”이었던
바울을 헤르메스 즉 메르쿠리우스라고 생각한 무리가) “자기들에게 희생을
바치지 못하도록 무리를” 잘 제지했는데, 곧바로 유대인들이 “무리를 설득하였다.
그들은 바울을 돌로 쳤으며, ··· 도시 밖으로 끌어 냈다.”?행 13:1-12; 14:1-20.
기원 49년경에, 바나바와 바울은 비유대인들의 할례라는 논쟁적인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통치체에 가져갔으며, 그 문제가 해결되자 그들은 곧 안티오크로
돌아가 다음 선교 여행을 준비하였다. (행 15:2-36) 그렇지만 그들은 요한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각각 별도의 구역으로 떠났다.
바나바는 사촌 마가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역들을 두루 다녔다. (행 15:37-41)
바울의 몇몇 편지들에 간단히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성경에서 바나바에 관한 기록은
그것으로 끝난다. 고전 9:6; 갈 2:1, 9, 13; 골 4:10.
* 출처: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