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쓴 동시와 어른이 쓴 동시
2009. 6. 3. 수. 최운경
<선생님 과자>는 1986년에 초등학교 4학년이던 장명용 어린이가 쓴 동시다.
<선생님이 과자를 잡수시네 / 선생님 혼자 잡수시네 / 야 조거 얼마나 맛있겠노 / 선생님은 그래도 냠냠 / 다른 아이들도 눈은 과자 먹는 선생님 쪽으로 간다 / 선생님은 ‘뭐 보노? 공부나 해라 / 좀 안 주신다 / 선생님요 좀 주소/ 선생님은 그래도 우리들 마음을 모르시는지 맛있게 먹는다 >
선생님이 좀 유치한 듯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선생님의 모습이 익살스럽고, 즐겁다. 사람은 함께 무언가를 먹으면서 친밀도가 높아진다. 아마도 이 선생님은 먹을 것으로 아이들과 함께 더욱 친해지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잔뜩 약을 올려 놓고, 나중에 더욱 맛있게 먹으라고.... 어른의 마음에도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 밑바닥에는 깔려 있다. 다만 삶에 지쳐 동심을 다 날려 보낸 것이지. 어린이가 쓴 시라서 그 마음이 그야말로 가득, 가득, 담겨 있다. 어른이 쓴 동시와 다른 것은 어린이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집 밥상>은 서정홍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어른이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 쓴 동시다. 쌀, 배추 무, 고추 등이 어디서 왔는지 그 출처를 밝히는 시다. 한마디로 토종 웰빙 밥상인 셈이다. 예전에는 다 이렇게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식탁이 위험해졌다. 주부들의 꼼꼼하고 세심한 선택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 누구나 그렇게 먹던 밥상이 거꾸로 외국산을 먹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으로 바뀌었고, 비싼 우리 농산물을 먹는 사람들은 부유층이 되었으니 참,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바나나 하나 먹고 싶어 소풍 날 바나나 싸 온 아이가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바나나 값이 한끼 식사비만큼 비쌌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이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우리 물건을 쓰는 사람들이 부자인 세상, 세상은 길게 살고 볼 일인가? <아버지 일옷, 아버지는 농부입니다.> 같은 시를 보면 이 시인이 노동자와 농민을 연민하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와 농민의 고달픈 삶을 잘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빨아도 기름 찌든 때로 빨아지지 않는 아버지 일옷, 날씨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른 농부 아버지.... 몇 년 전부터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는 나도 아마 그 텃밭을 가꿔보지 않았으면 농부 심정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 거다. 손바닥 만한 텃밭을 하는데도 한 해는 망치기도 하고, 한 해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도 했다. 하물며 그 농사에 온 식구의 생계가 달여 있다면 얼마나 애가 탈까? 경험해 보아야 그 사람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피상적인 것은 그저 머리 속의 상상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삶에 밀착된 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리라. 마지막 <누렁이> 부분에 이르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데 항상 친구처럼 따라 붙은 소에 대해 쓰고 있다. 지난 2월 말에 보았던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기자단 수업을 했던 학생들과 함께 보았는데 아이들도 울고, 나도 울고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영화관을 나왔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많은 공감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농촌 체험이 그리 많은 어른이 아니지만 할아버지와 소의 가족과도 같은 친밀감과 사랑에 가까운 애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집에서 누렁이는 가족을 위해 일하다가 뒷다리가 조금 굽었다는 소장수의 말에 아버지가 팔까 하는 생각을 하는 대목에 아이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 3년 정도 산 기억이 있다. 임실덕, 오까떡, 재너머 신리덕이라 불리던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빨래를 들고 나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면서 오만 집안 일들을 늘어 놓던 수다, 봄이 되면, 우리 집 앞 복숭아 과수원에 연분홍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천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뒷산에는 온갖 야생 동물들이 밤새 우리집 뒤란 불쏘시개 해놓은 장작더미 근처에 내려와 잠을 청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텃밭이 엉망이 되어있던 기억, 여름방학이면 재너머 뽕나무 밭에 이웃집 중대장님댁 누에 먹이느라 수레가득 뽕잎을 따러 갔던 기억, 뽕나무밭에서 먹던 오디와 이름 모를 열매들....그리고나서 시퍼렇게 물든 입이랑 옷이랑 때문에 엄마한테 야단 맞던 기억, 아이들과 등에 업힌 동생을 데리고 신나게 이산 저산 누비면서 장난치고 술래잡기 하던 기억, 겨울이면 엄청나게 눈이 많이 매렸고, 문풍지로 들어로는 바람이 살을 에는 듯 했지만, 가을에 문풍지에 엄마가 예쁘게 발라 놓은 은행잎, 단풍잎 때문에 아침 햇살이 유난히 곱게 느껴졌던 날 등등....
이런 시골기억들은 내 유년의 일부지만 참 소중하게 오롯이 남아 있다. 이 시집에는 그런 농촌풍경의 원형이 담겨 있다. 지금은 많이 변해 버려서 농촌같지 않은 농촌들... 농사꾼이 대우받지 못하는 세상... 먹을 것을 무시하다가 언제가 큰 코 닥칠 날이 오리라. 남의 나라에 먹을 것을 저당잡히는 순간 엄청난 식량 전쟁이 일어날까 걱정스럽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즐거운 상상, 그러나 한번쯤 짚고 가야할 우리의 현실도 이야기 나누어 보면 좋겠다.
어린이가 쓴 동시와 어른이 쓴 동시.hwp
첫댓글 내가 읽은 동시로 쓰면 참 좋겠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
샘은 이제 글을 낚시질 하고 계시는군요. 이거 제가 발제 당일 아침에 20여분 만에 쓴 거라 허접해서 안돼요. 그래도 안동모 자존심이 있지, 얼굴에 먹칠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