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송 남 석 sns227@hanmail.net
천하 절경 하롱베이
하노이에서 동쪽 방향 약160km를 4시간 정도로 달려가면 하룡베이가 나오는데 우측 통킹 만을 끼고 바다가 끝나면서 하이난 섬이 나올 무렵의 경치 좋은 바다가 육지에 접하는 부분에 절경을 이루어내는 곳이 하룡베이다. 하룡베이는 3천여 개의 작은 섬들로 9개의 섬에는 들어갈 수도 있으며 5개의 섬은 접안시설이 되어있고 그중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있는 티톱섬이 있다.
6시간정도의 선상 유람이 시작되는데 각종 회를 곁들인 해물로 점심식사를 하고 보트로 갈아타고 구멍 섬에 들어가 보며 전망대에 올라보기도 한다.
하룡베이(Halong Bay)를 보기위해 우리일행은 전날 크라운 호텔에 투숙하게 된다. 이 호텔에는 한국인만도 세 팀이었다. 호텔은 깨끗하고 고급이었다. 유람선을 타기위해 부두로 나간다. 작고 아름다운 산들, 새끼 산들이 물속에서 춤을 추며 목욕을 즐기는 듯 아름다운 절경이다. 섬들의 잔치에 초대 손님이 된 기분이다. 물 박수로 수놓은 풍경인가 산과 물은 항상 조화를 이룬다지만 이렇듯 거대하고 아름다운 곳이 지구의 어디에 또 있으랴,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에서 맛본 자연의 경관에 이어 또다시 한 번 더 자연유산의 경이로움을 맛보게 된 것 같다.
3천여 개의 섬이 널려있다는 해안의 절경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200여개의 섬들이 물속에 잠겼다나왔다 숨바꼭질을 하며 세계의 관광객을 유혹한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서서히 점점 안쪽으로 그리고 깊숙이 움직인다. 잔잔한 물결위에 얇은 안개로 조명을 깔고 푸르른 섬산들의 짙은 녹음이 하늘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그 물위로 신선이 된 우리들은 미끄러지듯 하룡베이 강상을 유유자적 유람한다. 신선이 따로 있나 우리가 신선이고 신령님이지 하며 뱃머리에 나가 아름다운 경치에 잔뜩 취해 모두가 살아있는 신선이 되고 말았다.
잠시 후 전문 회집에 들러 여러 종류의 횟감과 과일 등을 사서 우리 유람선 식당에서 요리가 시작된다. 회를 겸한 점심거리는 풍족했다. 과일도 실컷 먹고 나서 마셔 보는 커피 맛은 느끼한 속을 넉넉하게 풀어준다. 이른 점심이지만 서둘러 먹고 구멍 섬에 가보자.
007네버다이를 촬영했다는 구멍 섬에는 구명조끼를 갈아입고 보트를 타고 간다. 이 섬에 들어가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밀물 때는 들어갈 수가 없다. 때를 노치지 않기 위해 서두른다. 두 대의 보트에 나눠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들어갔다 또 나와야한다. 너무 오래 머무르다가 나오지 못하고 갇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가 있는 티톱 섬에도 내려 본다. 전망대까지 오르려면 424계단을 밟아야 한다. 이 섬은 1962년에 붙여진 이름이다. 티톱은 호치민이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러시아인 친구 이름이다. 호치민이 공산 혁명에 성공한 기념으로 티톱을 초청하여 호치민과 같이 하룡베이를 구경하게 된다. 티톱이 호치민에게 이 많은 섬 중 하나만 나에게 줄 수 없겠냐고 묻는다. 호치민은 이 섬들은 내 것이 아니고 국민들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줄 수 있는 권한이 없고 그 대신 자네의 이름을 붙여주겠네. 하여 전망대가 있는 가장 좋은 위치의 섬이 티톱섬이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이라는 나라
베트남은 우리에게 ″월남전쟁″ 이라는 용어로 잘 알려져 왔다.
베트남은 라오스와 함께 공산국가다. 캄보디아와 태국은 입헌군주국으로 국왕과 총리가 있으나 베트남은 주석과 총리가 있는 공산국가다. 약 25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수도 하노이는 인구가 1100만이 넘고 수도로 지정 된지는 1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다.
이 나라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5년 8월 독립선언을 하게 되나 국제적 관심의 와중에 국토는 양분된다. 월맹과 월남이 남북으로 갈라져 우리나라처럼 공산대 민주의 대결구도가 된 것이다. 미군의 지원 아래 자본주의를 도입한 월남은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북은 호치민이 이끄는 민족주의 월맹이 공산정권을 수립했으며 자연환경조건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도 남쪽이 훨씬 잘 살았다.
잘 살았던 남쪽이 민족주의적 공산당에게 무너진 이유는 호치민의 탁월한 애국심으로 인한 독립운동이 성공한 결과로 보여 진다. 월남에는 존경받을만한 뚜렷한 지도자가 없이 돈만 있는 부자들로 군사정권은 부패하였고 그중에는 애국심이 강한자들로 베트콩이라는 조직이 결성되어 직간접으로 월맹의 지원을 받으면서 반미 지하운동을 하게 된다. 이 때 우리도 월남에 파병하여 미군과 함께 베트콩 소탕작전에 돌입하였으나 결국 그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고 1975년 미군은 철수를 하게 되며 베트남 전역이 공산화되고 1976년 7월 남북이 합친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하게 된다.
베트남 인구의 대부분은 농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특징은 농약이나 농기계를 쓰지 않고 옛날방식으로 우리입장으로 보면 전국토가 유기농인 셈이다. 병충해를 어떻게 막아 내는가 궁금했다. 논밭 사이사이에 유도화를 심어놓으면 거기서 나오는 독성이 병해충을 막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밥상위에 유도화 가지를 꺾어다 놓으라는 일화가 있다.
농기계는 왜 안 쓰는가? 기계를 자체 생산하지도 못하고 수입하려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기계를 쓰게 되면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막기 위함이란다. 수입자체를 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금을 몇 배로 물려버리기 때문에 수입해봐야 경제성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수입을 의도적으로 막는 셈이다.
베트남의 쌀농사는 세계 3위 수출국이다. 1위가 태국이고 2위는 미국이다.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있어 남쪽이 비옥하며 3모작까지 짓는다. 모내기는 년 중 한번만 하고 잘라내고 나면 밑둥에서 또 올라오고오고 하여 3모작이 쉽게 된다고 한다.
이 나라의 실재 인구는 1억 가까이 되는데 68%가 35세 이하라 한다. 전쟁으로 성인들은 많이 죽기도 했지만 의료시설이나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으로 장수하지 못하여 평균연령이 매우 낮단다. 최근 한국인들과 국제결혼을 많이 하고 있는 추세인데 나이가 너무 젊은 여자를 데려왔다고 우리 기준으로는 좀 이상하게들 보겠지만 베트남에서는 아무러치도 않으며 실재 20세 넘은 처녀를 찾아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 남자들은 신부를 맞이하고 보면 장모님이 부인의 나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지만 예외는 있는데 외국인 회사 근무자와 대학생은 옮겨살수 있고 5개 시와 61개 성(城=省?)이 있는데 그중 하노이와 호치민시의 거주자는 밖으로 나가는 것만 이주자유가 가능하다. 선교활동 자체가 금지되어 있어 기독교가 법으로 금지된 나라이기는 하나 봉사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묵인하고 있는 형편이다.
54개 민족이 섞여 살아가고 있으며 그중 낀 족이 64%로 가장 많다. 얼굴에 얼룩점이나 성형수술을 금하고 있다. 거주이전을 금하기 위한 얼굴변형을 막는 방법이기도한 것 같다.
오토바이가 우리나라 자장면 배달용 수준인데도 값은 우리 돈 약 2백 만 원 내외로 비사며 100% 수입인데 대부분이 일제다. 이 나라에 왜 오토바이가 이리 많은가 했더니 일본이 전후 보상비로 오토바이를 주었고 그 후 그들은 부품 장사를 하여 이미 본전을 다 뽑아 갔다는 것이다. 드물게 택시도 보이기는 한다. 택시의 40%는 한국산 마티즈였다. 평균 8~9백만 원대라 하니 한국과 비교하면 더블이다. 기아 모닝차가 2600만원 싼다페는 1억 가까이 간다는 것이다. 외제차니까 세금이 비싸서 그런다하니 우리나라도 외제차는 그래서 비싼 것 같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져 살 때는 남쪽이 훨씬 잘 살았다. 비옥한 땅에 농사짓기 좋았던 자연조건도 있었고 민주와 자본주의를 도입한 부에 빠르게 발전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쪽 월맹이 공산통일을 하게 되자 남쪽 사람들의 부를 뺏기 위한 수단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그래서 지금도 월남인들은 가장 안전한 돈 미화 달러를 좋아 한다.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胡志明)
호치민(胡志明)은 국민적 영웅으로 베트남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부로서의 존경을 받고 있다. 지금 베트남의 여러 종류의 지폐에는 액수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호치민 1인의 초상화만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대단한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호치민(胡志明)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오직 조국의 독립에만 몸 바친 영웅이었다. 그는 항상 검소하게 살았으며 독서를 좋아했고 5개 국어에 능통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국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나만 잘 먹을 수 없다하여 밥상에 3가지이상의 반찬을 놓지 못하게 했다한다. 당시 미군은 호치민을 잡기위해 하노이에 엄청난 폭격을 가하게 된다. 그 때 숨어 지냈던 거처와 방공호주변을 성역화 하여 호치민 생가라 명명하고 지금은 관광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는 호치민은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과 함께 골수 공산 독재자들이면서 동시에 시신을 미이라로 보관하고 있는 5대인물이다. 그 중 호치민은 자국에서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호화사치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고 처자식이 없어 재산 한 푼 물려줄 사람도 없었고 본인의 사생활도 너무나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이분이 3가지 유언을 남겼다. ① 남북 지역감정을 없애 다오 ② 문맹자가 없게 해다오 ③ 내가 죽거든 화장하여 그 재를 국토의 남쪽 중간 북쪽 세 곳에 뿌려다오 였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는 지켜주지 못했다. 사망 후 그의 추종자들은 모여 수차 회의를 한 결과 위대한 영웅을 도저히 그렇게 할 수 는 없다 하여 미이라로 만들어 영구히 보관해야 후세인들의 귀감이 된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하노이 호치민 공원 광장에 호치민 기념관을 만들어 보관해 놓고 매일 8시에 오픈하여 11시까지 3시간동안 개방한다 하며 모든 관광객에게 의무적으로 관람토록 하고 있으나 우리들이 갔던 날은 휴일이어서 담당공무원들이 쉬는 날이 되어 직접 보지는 못하고 기념관 앞에서 사진만 찍고 왔다. 이 미라는 3년에 한 번씩 러시아로 밀월여행을 가는데 전 세계적으로 미라 제작기술이 가장 뛰어난 러시아에 가서 보수처리를 하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글자는 독특하다. 뜻은 한자, 글자 모양은 로마자, 발음은 프랑스식이다. 프랑스선교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곰쓸개가 정말 좋은가
하롱베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곰 농장에 들르게 되었다. 이 나라는 공산국가라 모든 관광객에게 의무적으로 들르게 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호치민 생가나 기념관 등인데 곰 농장도 들려야 다른 곳들을 무사히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인 책임자의 안내를 받기는 했지만 곰 농장 자체가국영이기 때문에 담당 한국인은 월급쟁이라고 한다.
곰 농장! 웅담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내가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곰쓸개를 빼내면 곰이 곧바로 죽는 줄로만 알았고 그 잔인한 동물학대하는 짓을 왜 하는가 하는 수준이었다.
사람이 웅담을 섭취하면 만병통치에 가깝게 신효한 약이 된다고 한다. 웅담 1g의 값이 27만원인데 한국에 오면 값은 두 배로 뛴다고 한다. 곰 한 마리에서 나오는 웅담은 보통 50~60cc이고 많게는 90~100cc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빼내고도 4~6개월이면 정상 회복된다고 하니 그게 사실일까? 문제는 빼내는 기술이다. 빼려면 며칠을 굶긴 다음 마취를 시켜 틀에 뉘어놓고 주사기로 쓸개즙을 뽑아내는데 기계장치가 좋아 뽑아내고 한 시간 후면 마취에서 깨어난다. 그런 장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으니 현지에서 사면 절대로 속을 수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백프로 신뢰할 수 있어 한국인들은 웅담 사기위해 일부러 베트남 관광 온다는 것이다.
하늘에 별자리를 받는 동물이 2종 있는데 사자와 곰이다. 85cc만 나와도 500만원을 호가하며 5cc짜리 2병에 50만원이라 한다.
( 송 남 석 )
• 활동 :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문인협회원, 서울강남문인협회원,
서울교원문학회이사, 제주서귀포문협회원, 현대문예편집위원,
대한민국공무원문인협회원, 현대문예작가회 사무총장 역임,
• 약력 : 교육공무원 35년 봉직, 서울 경기고등학교 교감으로 퇴임,
조선대학교대학원졸업(공학석사) / 한국스카우트연맹훈련교수
• 저서 : 수필집 “칠십리 파도소리” 외 5권 , 시집 “화려한 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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