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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사랑과 이별의 홍수에서 건진 성찰의 음악 - 김두수의 '곱사무'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최종업데이트 2015-01-28 10:57:19
유혼(幽魂), 추혼(追魂), 창백(蒼白), 고혼(孤魂), 단소(丹霄), 서천(西天), 허(虛), 해방(解放), 해갈(解渴), 정(靜), 비(秘), 회향(回向), 누생(累生), 동영(東瀛). 익숙한 한자어들과 생경한 한자어들이 난무한다. 모두 김두수의 새 음반 [곱사무]의 수록곡들에 쓰인 한자어들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단언할 수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런 한자어들을 사용하는 뮤지션은 김두수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김두수의 음악이 향하는 남다른 철학의 반증이다.
그는 대개의 대중음악이 담는 사랑과 이별의 기쁨과 슬픔에 무심하다. 일상의 풍경과 사건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현실의 불의와 저항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노래로 담겨진 적은 거의 없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대개 삶이라는 긴 여행의 시작과 끝이며 그 여행을 감당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생의 고독한 나그네이다. 그는 자신의 음반에서 늘 생의 방랑자이자 여행자로서 지나치는 세계를 관찰하면서 존재 자체를 성찰했고, 생이 시작되었던 곳과 끝내 이를 곳을 묻고 또 물었다. 그 결과 그의 노래는 한국의 어떤 대중음악보다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며 관념적인 세계를 홀로 이루었다. 이번 음반은 그가 한사코 노래해온 그 세계가 더욱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사랑과 이별의 홍수에서 도드라지는 존재의 운명적 슬픔
단지 관념적인 한자어들을 사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이번 음반에서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더 깊게 살피면서, 덧없고 연약한 삶의 운명적 슬픔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사랑에 실패했거나 돈이 없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삶의 근원적 한계 때문에 슬픈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고, 김두수의 노래 또한 사라질 것이다. 하물며 김두수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조차 사라질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필멸의 진리,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고뇌와 철학과 종교가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종말과 영원에 대한 질문은 언젠가부터 예술에서는 드문 것이 되어버렸다. 오늘의 사랑과 이별이 의미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소한 일상이 무가치하다는 뜻도 아니다. 일상의 가치와 영원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면 영원도 일상만큼 자주 표현되고 질문되어야 함에도 종말과 영원에 대한 표현과 질문은 종교와 극히 일부 예술의 몫으로 한정되어 버렸다. 지금의 예술은 그저 찰나의 생만을 바라보는 쾌락주의자들의 것일지도 모른다. 김두수의 음악이 특별해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그는 생의 본질에 대한 구도자로서의 성찰과 질문을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철학과 종교가 말과 논리와 신념으로 쌓은 성찰의 체계와 정서를 음악으로 대신했다. 문학, 미술, 영화, 연극 등으로 던지는 질문을 그는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다.
김두수는 [곱사무]의 노랫말 내내 ‘시간의 길을 따라 떠가는’ ‘방랑자’로서의 인간과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삶의 슬픔에 대해 노래하며 ‘누생’의 ‘강’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시간은 소멸을 불러’올 것이며, ‘수없는 날이 지나고 숱한 고뇌와 방황도 잊은 듯 지워’질 것임을 예언한다. 그는 오늘의 삶을 슬프게 바라보면서도 ‘욕망의 탈을 벗고’ ‘해방’될 날을 꿈꾼다. 오늘은 ‘길 없이 천박한 세계’이지만 ‘우린 그리움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 시작과 끝, 찰나와 영원, 번뇌와 초월이 모두 그의 노래 속에 담겨 있다.
김두수 6집 ‘곱사무’ CD 자켓 이미지ⓒ리듬온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만으로도 자욱한 안개가 낀 길을 하염없이 걷는 방랑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김두수의 음악은 이번 음반에서는 키보드, 첼로,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펫 등의 악기들을 더함으로써 더욱 사이키델릭하고 프로그레시브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수록곡들에서 현악기와 관악기들이 개입하는 순간 김두수의 음악은 한없이 그윽하고 아련해진다. 가령 첫 번째 곡 <바람개비>에서 김두수 특유의 쓰리핑거 스타일 기타 연주와 시종일관 떨리며 흩어지는 보컬이 연약하고 고뇌에 찬 인간의 방황을 형상화한다면, 플루트, 키보드, 바이올린 연주가 더해지는 순간 만들어지는 사운드의 하모니는 김두수의 음악을 영원으로 만든다. 음반에서 특히 돋보이는 트랙인 <노을>에서도 김두수 특유의 스트로크로 만드는 유랑의 느린 걸음걸이를 감싸는 첼로의 저음과 고독한 트럼펫의 엇갈림은 끝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슬픔과 해방의지를 표현해냄으로써 음악을 통한 감응과 성찰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유한할 수밖에 없음에도 오늘 하루의 생을 살아야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 같은 생의 불가능과 슬픔, 그 허무주의와 페이소스가 김두수 음악으로 실체화 되면서 감응하게 하는 동시에 그 너머를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음반에서 첼로,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펫의 결합은 김두수 음악의 영적인 질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냈다. 김두수의 음악이 철학이나 종교처럼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곱사무]를 듣고 있으면 끝나지 않고 끝날 수 없으며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형이상학적 추상과 관념의 세계를 들음으로써 경험하게 된다. 아니, 그 질문들을 외면한다 해도 음악의 아름다움에는 경탄할 수밖에 없을 만큼 [곱사무]의 음악은 아름답다. 처연하고 고독할 정도로 감정을 밀고 나가는 보컬의 멜로디와 아우라에 영적인 여운을 더하는 편곡은 묵직하고 어두우면서도 따뜻하다. <시간의 노래> 간주를 채우는 아코디언 연주와 프로그레시브 포크의 질감을 뿜어내는 대곡 를 비롯해 이 음반에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그득하다.
고뇌와 성찰을 담은 아름다운 소리
그렇다고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담은 음악만이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 피우는 한 대의 담배를 단념하기 어렵지만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범부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렇게 진지한 노래만 있다면 우리는 재미가 없어서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김두수의 음악만이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오만이다. 하지만 반대로 한계를 인정하고 본질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세상은 단순하고 찰나적이다. 김두수의 음악이 소중한 것은 바로 예술이 답하고 물어야 할 화석 같은 질문들을 끝내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모든 의미 부여를 차치한 본연의 아름다움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두수의 음악은 그렇게 고귀하고 숭고한 것의 아름다움을 증명했으며 김두수의 음악을 듣는 일을 하나의 정신을 듣는 것으로 만들었다.
갈수록 아무도 묻지 않고 답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그 우직한 태도야말로 우리를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존재할 수 있게 하며 때로는 배고픔을 감당할 용기를 갖게 한다. 또한 질문하는 이의 고뇌와 성찰에 준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음악이 소리로 완성되는 예술이며 아티스트에 의해 창조되는 세계였음을 증거하기 충분하다. 사실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의 아득한 아름다움을 비평의 언어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다. 오직 듣는 이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적다. 우리에게는 김두수가 있음에도 그에게 향하는 다리는 부서진지 오래다. 지금 부서진 것이 그뿐이던가. 부서진 정치, 부서진 인권, 부서진 사회, 부서진 희망. 남은 것은 이 한 장의 노래뿐이다. 인생이라는 꿈의 슬프고 아름다운 자장가. 깨고 나면 모두 강 건너에서 만날 우리.
김두수 6집 ‘곱사무’ CD 구성 사진ⓒ리듬온
첫댓글 _()_.......
감사!~~~~~^*^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의 아득한 아름다움을 비평의 언어로는 도저히 전달할 수 없다. 오직 듣는 이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귀절이 두수님에 대해 가장 솔직한 평론인듯 합니다. 읽고 또 읽고, 몇번을 읽어도~~~ 듣고 듣고, 또 들어도~~~~
집중해서 정독해야되는데 아버지 검사 결과 엄마 생신 등,,의논하느라 ^^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