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취임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 ‘개혁’을 강조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언론에서는 새정부 내각에 논문표절 의혹을 산 사람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대학과 교수들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논문표절 의혹이 있는 사람을 내각에 인선했다고 하니 기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학교수들의 논문표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다만 작년 초에 이필상 교수 논문표절 문제와 관련하여 언급한 바 있듯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대학통제의 산물로 교수재임용 제도가 악용된 결과로 논문표절이 양산된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이명박정부 내각인사의 논문표절 의혹은 논문표절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된 후인 200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악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필상 교수는 비록 유감스럽게도 논문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권력에 줄을 서지 않고 일관되게 시민사회 활동을 해오시면서 권력의 잘못에 대해 비판을 해오신 양심적인 분입니다.
논문표절은 말 그대로 남의 것을 마치 자기 것인 양 베끼는 행위를 말합니다. 특히 대학교수들의 논문은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국내외적으로 웬만큼 실력을 인정 받는 교수가 아닌 한 거의 읽어 보는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논문표절의 유혹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느 분야이건 그 분야에 관해 정통한 지식을 갖지 못할 경우 제대로 된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교수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교수들은 일정 기간 안에 논문을 발표해야 하는 의무도 있기 때문에 그 중압감은 더욱 심할 것입니다. 그래서 논문표절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표절 논문은 아무도 읽어 보지 않을 것이라는 부끄러운 믿음을 바탕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표절 대상인 논문은 되도록이면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논문 아닌 엉터리 논문들을 선정하게 됩니다. 훌륭한 논문을 표절 하면 금방 들통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논문표절 행위라기보다는 차라리 사기행위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논문표절은 꼭 남의 것을 베껴야만 표절인 것은 아닙니다. 대학교수들이 발표하는 논문 가운데에는 훌륭한 논문도 있지만 그러나 그 몇 배, 몇 십배 아니 몇 백배 이상으로 엉터리 논문들이 많습니다. 엉터리 논문이다 보니 자연히 아무도 그런 논문을 보거나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엉터리 논문은 그 교수의 연구업적에 포함됩니다. 엉터리 논문을 쓰는 교수 자신도 그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논문을 쓰기는 써야 하는데 논문표절은 이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으니 표절은 할 수 없고 그래서 결국 엉터리라도 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엉터리 논문들도 논문표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니 논문표절보다도 더 나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교수들이 다 훌륭한 논문을 써준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렇게 바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엉터리 논문을 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치권이나 권력에 줄을 서서 엉터리 주장을 마구 지껄여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대학교수라고 해봐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며, 능력도 모자라니 좋은 논문을 써서 유명해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강의랍시고 매번 똑 같은 소리를 되풀이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10년, 20년 계속 하는 것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현실참여라는 명분을 내세워 언론에 얼굴을 들이밀든지 어떻게든 권력에 줄을 서서 한 자리 해보려는 욕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욕심을 내는 순간, 권력자의 주의/주장에 자신을 동화시키게 되고, 권력자를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표절 수준 밖에 안 되는 자신의 알량한 지식으로 권력자의 주의/주장을 합리화시키는데 '교수'라는 이름으로 앞장 서게 됩니다. 운 좋게 권력자의 눈에 들게 되어 한 자리 하게 되면, 그때부터 갑자기 그 교수는 자칭 타칭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 버립니다. 예전에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런 부류의 교수들을 어용교수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지난 YS정부 때부터 오늘 출범한 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런 모습들이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교수들은 아예 줄을 서겠다고 작정을 한 순간부터 얼굴에 철판을 깔았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조차 없습니다. 그런 부끄러움조차 없기 때문에 버젓이 논문표절 의혹을 살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줄을 서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명박정부는 대통령부터가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을 정도이니 도덕성이나 양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부끄러움조차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과 학문의 시작은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출발합니다. 부끄러움을 잊어버렸으니 무슨 정책적 문제해결 능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YS정부 때부터 새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정책실패의 상당부분이 이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21세기판 어용교수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명박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정부개편 등의 정책들을 보면 여기저기서 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연구소가 그 동안 주장해왔던 방향이나 내용과 매우 흡사한 부분들이 발견됩니다. 물론 대운하와 같은 황당한 질러대기 정책은 우리 연구소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굳이 표절이라고 부를 생각은 없습니다. 연구결과의 상당부분을 공개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겉만 베끼기 식의 정책추진은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습니다. 만일 겉만 베끼기 식의 정책을 할 경우, 그로 인한 혼란과 결과에 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부동산정책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된 것도 우리 연구소가 분석 제시한 내용의 겉만 베끼다가 이상한 시장논리를 내세워 삼천포로 빠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권력자 앞에 줄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21세기판 어용교수들에게 부끄러움을 알라는 충고로써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다만, 많은 교수들 가운데에는 묵묵히 학문적 업적을 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진심으로 그리고 학자적 양심에 따라 권력에 줄을 서기보다는 권력의 잘못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형태로 현실참여를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글이 이런 훌륭한 분들께 누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첫댓글 기본적으로 교수님들이 직접 논문 쓰는 경우가 드물죠... 직접 쓰시는 분들도 있지만, 나이 드시고 정치 하시면서 거의 못쓰신다고 봅니다.
惡貨가 良貨를 몰아내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한데... 아직껏 소양을 갖춘 정치 지도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왜 외국선 꽤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국내에만 들어오시면 모두 딴 일에만 몰두하시는 걸까요?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외국서도 인정받은 분들이 국내에서 교수도 하는 건데 말이죠. 혹 한국의 교수님 접대가 너무 황홀한 나머지 학문의 열정이 식어버린 것은 아닌가요? 대충해도 인정해주는 한국식 문화에 젖어서 그런가요? 호되게 비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요? 혹 끼리끼리 문화 때문에 그런가요? 외국에선 대학 실험실에서 연구한 것만 가지고도 훌륭한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데...예컨대 '블링크'라는 책이 그렇죠. 뭔가 구조적인 원인이 있지 않고서야...
우리 사회의 부정과 반칙이 곳곳에 있습니다. 교수 집단만의 반성을 넘어 우리 사회 모든 지도층과 지식인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암만 비유라지만 특정지명(삼천포)을 거론하는 것은 전체 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군요. 남을 비판하는 것은 쉬워도 자신을 알기는 힘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