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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히 아주 신심(信心) 있는 분들이 오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중국하고 우리나라하고의 교류 연수 관계로 중국의 사찰에서 좀 살다가 왔습니다. 그냥 사찰여행만 한 것이 아니고 중국사찰에서 중국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살아보니까 여행할 때 못 보던 그런 것을 많이 보게 되고 많은 것을 느꼈어요. 아주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동안 신도님들과의 공부는 몇 번 빠졌습니다만 저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중국이 그동안 문화혁명이라고 해서 종교를 부정하고 배척했지요. 청나라 때부터 청나라말까지 있었던 중국의 여러 가지 사회제도에 대해서 공산당에서 몇 가지 배척하는 것이 있었지요.
자본주의 형식이 들어오는 것을 배척하고, 미신을 배척하고, 종교를 배척하는 등 몇 가지 강령(綱領)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종교도 들어가게 되어 20년에서 30년 동안 종교불모지가 됐지요. 완전히 정체상태에 있다가 1978년부터 개혁 개방정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개방을 한지가 금년이 딱 20주년이 돼요. 그래서 현수막에 보면 ‘개혁개방 20주년’이라고 상당히 소개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개방이 되면서부터 종교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불교는 중국에서 2000년 가까운 세월을 믿어오던 종교이지요. 특히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청나라 말까지는 중국에서 불교는 보통종교가 아니었어요. 국교가 되다시피 했지요. 왕조에서도 그렇고 당나라 때 송나라 때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말까지 내려오면서 불교가 보통 성(盛)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20년, 30년 동안 정체 상태에 있었는데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로 살아 있었지요. 말하자면 겨울을 맞이해서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것처럼 정체상태에 있었던 그런 입장이었기 때문에 봄이 되자 바로 새싹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사도 크게 일어나고요. 절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인연 있는 절에는 보면 우리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큰 불사를 해요. 구화산이라는 곳에 갔는데 거기에서는 대리석으로 계단과 난간을 하고 있어요. 사찰에다 대리석으로 그렇게 불사를 합디다.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400명의 학인을 거느린 승가대학이 있는데 거기도 가 봤어요.
내가 가서 살던 곳은 대만 바로 건너편인데 상당히 남쪽이지요. 대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복건성 광화사라는 절인데 200명 대중이 사는 대총림이에요. 해인사와 맞먹는 그런 규모의 절이예요. 그런데 그 많은 대중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상당히 궁금했어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큰 불사를 일으키는지 가는 곳마다 물어봤더니 국가에서 보조하는 것은 없고 전부 신도들의 힘이라고 해요. 물을 때마다 한결같은 말이 '해내외 신도'라는 말을 해요. 바다 안에 있는 신도, 바다 밖에 있는 신도라는 말이지요.
바다 안에 있는 신도도 신도지만 '해내외'라고 하는 그 말 속에는 화교(華僑)가 들어있지요. 공산주의 혁명 때 외국으로 피난 나간 그 화교들의 힘으로 대개 그 절이 운영되는 거예요.
물론 국내신도도 많지만 국내신도들의 힘은 아직은 미약하다고 할 수 있고, 밖에 있는 신도들의 힘이 상당히 커요. 주로 대만과 홍콩, 싱가폴, 말레이시아 신도들이지요. 싱가폴에 있는 신도들이 대단해요. 인도네시아, 일본, 미국에까지 화교가 삼천만이 나가 있습니다. 밖에 나가 있는 중국사람들이 삼천만이나 되는데 그 사람들이 대개 다 잘 살아요.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대개 다 잘 삽니다.
그곳에서 성공은 했지만 자기들이 번 돈을 거기다가 쓰기는 아깝고 해서 자기 고향에다 뭔가 뜻있는 것을 하고 싶겠지요. 또 여행이 자유로워지니까 많이 들락날락 합니다. 또 중국에서는 그것을 장려를 합니다. 왜냐?
예를 들어서 돈 만원을 가지도 들어와도 중국에 남는 것 아닙니까? 시주를 하든, 불사를 하든, 전부 그걸 정책적으로 장려를 해요. 그러니까 밖에 나가 돈 번 사람들이 그냥 뭉텅이 돈을 서슴없이 그렇게 시주를 해요. 자기들은 쓸데는 없고, 그 나라에 쓰자니 아깝고 그래서 자기 고향에 쓰는 거지요.
그래서 그냥 사찰에다 대리석으로 계단을 하고 난간을 하지요. 또 200명 400명 대중들이 공부를 하고 생활을 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시주를 하고, 그리고 큰 행사 같은 것도 자주 벌어져요.
중국 불교의 새싹이 돋기 시작한 게 이제 15년, 조금 일찍 스님이 된 사람들이 18년이지요. 18년 된 스님이 방장스님을 하고 있어요. 물론 노스님도 계시지만 사실은 뜻있는 사람들은 그 전에 다 홍콩으로 대만으로 도망을 갔지요. 거기에 남아 있는 노스님들은 사실 별 수 없는 스님들이지만 젊은 스님들은 그렇게 똑똑하고 또 교육을 많이 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불교대학이 한 20개가 되고요. 불학원이라고 하는데 다 국가에서 인가를 받은 학교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운영하는 것은 대개 종단 인가이지 국가 인가는 아니거든요.
그 사람들은 꼭 국가 인가의 대학인지를 묻더라고요. 자기네들은 20개가 되는 불교대학이 전부 국가의 인가를 받은 대학이라고 해요. 완전히 학교체제로 스님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중국이 이제 정치적으로 세계에서 상당히 힘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힘을 쓰는 저 거대한 나라가, 등록된 인구가 12억 5천만 정도이고 등록 안 된 인구도 5천만 명이 된다니까 그 많은 인구가 세계적으로 힘을 쓸 때, 그 가운데서 불자가 많다면 따라서 불교도 세계적으로 많이 소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마침 구화산에 가서 좋은 글을 봤어요. 우리나라 신도님들 중에서 구화산에 가보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구화산은 우리나라와도 상당히 인연이 깊고, 중국불교의 4대성지(四大聖地) 중 하나입니다.
4대성지 중에 구화산은 지장보살 성지이거든요. 거기에 있는 지장보살이 누구인가 하면 우리나라 신라의 왕자인 김교각스님이 거기 가서 말하자면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으로써 수행을 하고 교화를 했습니다.
이번에 구화산에 가서 인생의 14대 교훈 이라고 하는 이런 글을 얻고는 ‘아, 이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화산은 우리나라 신라의 훌륭한 고승이 가서 교화를 폈던 그 사상, 그 정신이 배여 있는 곳이고, 이 글에 그 정신이 단적으로 표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교각스님은 본래는 결혼을 했던 분이고, 나중에 부인이 그 절까지 찾아가서는 그 절 아래 마을에 집을 얻어 놓고 살면서 자기는 출가를 못하고 거기서 수행을 했다는 그런 기록까지 있어요.
김교각 스님이 수행을 한참 하고 있던 구화산에는 구화산의 산주이자 그 지역의 아주 거부장자인 민공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성이 민씨인데 이 분의 아들이 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호랑이한테 쫓겨가지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이 스님이 토굴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민공의 아들을 살렸어요.
그래서 그 은혜로 민공이 스님에게 땅을 시주 할테니 절을 짓고 좀 여법하게 살라고 했어요. 절을 짓는데 땅이 필요하다면 얼마만큼 필요하겠는가,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스님께서는“많이는 필요치 않고, 가사 한 벌 깔 정도의 땅이면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민공이 있다가, “가사 한 벌 깔 정도의 땅이야 얼마 되겠습니까 한 번 펴 보십시오.”했지요. 그래서 김교각 스님이 산에 올라가서 가사를 펼치니 구화산 그 넓은 아홉 봉우리를 가사가 다 덮었다는 것입니다. 민공이 거기에서 또 감화를 받게 되지요.
그래서 신라에서 건너간 김교각스님의 교화활동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게 됩니다.
아들이 먼저 머리를 깎고 정식제자가 되었고 아버지는 두 번째 제자가 되면서 외호대중이 됩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 경제적인 문제, 행정적인 문제 등 불사를 일으키고 교화하는데 있어서 덕망 있는 유지인 민공이 외호대중이 되고 그래요.
거기 보면 김교각 스님이 중앙에 앉고, 왼쪽에는 그 아들이, 오른쪽에는 민공이 앉아 좌우보처가 됩니다. 부자(父子)가 김교각 스님의 좌우보처가 됩니다.
우리가 지장보살께 예배드릴 때 보면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양쪽 가에 있거든요. 그 민공의 아들 이름이 도명입니다.
무독귀왕은 독이 없는 귀왕이기 때문에 해치는 것은 아니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불법을 지켜주고 옹호해 주는 그런 입장입니다. 민공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어요.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장신앙은 사실은 신라의 김교각스님의 구화산에서의 교화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져왔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신도님들이 그곳 구화산에 잘 가고, 또 가면 그쪽 지역사람들은 우리 신도님들을 상당히 좋게 봅니다.
왜 그런가 하니 부처님처럼 떠받드는 김교각스님의 나라에서 왔으니까요. 김교각 스님의 후신이라 생각해서 상당히 좋게 봐 줍니다.
대리석으로 불사를 한다고 한 사찰이 지장도량인데 바로 구화산에 있더라고요. 그 전에는 안 그러더니 구화산에도 지금은 불사가 아주 크게 일어나고 있어 정말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불사라고 해도 그런 불사를 못 봤어요. 대리석으로 난간을 하고 계단을 하더라니까요. 얼마나 시주를 많이 했으면 그렇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신도님들 엄청 납니다. 중국신도들이 본래 별나요. 4대 성지를 돌면서 절을 합니다. 어떤 이는 보타낙가산 관음도량이 섬인데 삼보일배를 하면서 그 섬을 한 바퀴 다 돌아요. 그런 스님도 있고 신도도 있어요.
우리는 그동안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라 종교가 그다지 힘을 못 쓴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이고 정작 가서 보니까 아주 자유로워요, 너무나 자유로워요. 그렇게 자유롭게 종교활동을 하고 있고,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종교활동을 하도록, 보장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중국 갔던 선물로, 우리나라 신라에서 건너가신 김교각 스님의 정신이 아마도 여기에 들어있지 않나 하고 [인생 14대 교훈]을 가져 왔습니다.
거리를 이렇게 주욱 지나가다보니 상점이 많은데, 뭔가 자그마한 족자가 걸려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이렇게 좋은 글귀가 적혀있어서 내가 가져와서 우리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나 혼자 중국 갔다 오기 미안하니까 이것이나마 보시고서 지장도량과 조금 인연을 맺어 놓으면 김교각스님의 정신을 우리가 이해하고, 또 그곳에 한 번쯤 가실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 14대(大) 교훈]이라고 내가 그냥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인생 14최(最)라고 했어요.
이건 최고(最高)다, 최대(最大)다, 가장 슬픈거다, 가장 기쁜거다, 가장 불쌍한거다, 이런 등등에 가장 최(最)자가 들어가요. 그걸 해석하려니까 마땅찮아서 그냥 [인생 14대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 인생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이건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요. 뭔고 하니 이것은 어떤 경기에서라든지 사업이라든지, 공부하는데 있어서라든지, 기도라든지 참선이라든지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사람은 이기기 쉽습니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상대는 이기기 쉬운데 결국 마지막엔 내 자신하고 싸우거든요. 전부 내 자신하고의 싸움입니다. 특히 여러분들 중에 기도해 보신 분들은 알거에요. 기도를 하다보면 부처님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하고의 싸움입니다. 내가 어떤 다른 유혹에 또는 편하고자 하는 마음에 흔들리지 않을까하는 그런 거지요.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든지, 어떤 일에도 궁극에 가서는 결국 자기 자신하고의 싸움이다, 라고 하는 말을 우리가 흔히 하지요. 그런 뜻에서 아마 이런 말이 쓰여진 것 같습니다.
그 다음,
. 인생 최대의 실패는 스스로 잘 났다는 생각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싶어요, 자기가 스스로 잘 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이미 그 사람은 실패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실패는 가장 큰 실패입니다. 우리는 사실은 대개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는 하지만 정말 안목이 좁은 사람들의 생각이지요.
내가 잘 났으면 다른 사람도 역시 잘 났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정말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 넓어지고 도량이 넓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기 한문에 보면, 인생 최대적 실패는 시자대(是自大)라 그랬어요. 스스로 크다, 스스로 잘 났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 뜻입니다.
. 인생 최대의 어리석음은 남을 속이는 것이다.
남을 속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지혜롭다, 꾀가 많다고 그러는데 그것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남을 속이는 게 자기가 영리하고 잘나서 그런 걸로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지요. 사실은 그거야말로 제일 어리석은 거지요. 또 조금만 한 단계 높여서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남을 속이는 게 잘나서, 지혜로워서, 영리해서가 아니고, 정말 그게 어리석은 짓이라는 거지요. 불자들은 최소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되지 않나 그렇게 봅니다.
연속극 같은 데 보면요, 대개 사기꾼들이 사기 한 탕 잘 치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박장대소를 하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기고만장하게 웃습니다.
자기 꾀에 넘어갔다 이거지요. 상대는 어리석고 자기는 잘 났다고 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에서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웃습니다. 사실 그것 같이 어리석은 게 없지요. 사실은 어리석은 짓이고 결국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텐데 그걸 모르고 당장 자기 손안에 뭔가가 들어왔다고 그것만 보는 거지요.
사람이 하루만 사는 것도 아니고, 한 생만 사는 것도 아닐진댄 참 깊이 생각해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게 아마 지장보살 김교각스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다음
.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은 질투다.
불쌍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비애(悲哀)로운 거지요. 질투하는 마음이 남자나 여자 모든 사람에게 있는데 참 아픈 데를 꼬집는 그런 말 같습니다. 이거 참 슬픈 일이에요. 비애로운 것이라고 했어요.
. 인생 최대의 착각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내가 못 배웠다. 나는 여자니까, 나는 힘이 없으니까, 나는 없으니까 하고 자포자기 하는 것은 제일 큰 착각이에요. 그보다 더 큰 착각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불교적인 안목에서는 우리가 언필칭 불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그랬지 않습니까?
부처의 성품을 고스란히 가진 인간인데 왜 자포자기 하느냐는 거지요. 자포자기라고 하고, 자기가 못났다고 하고, 자기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착각 중에서도 제일 큰 착각입니다.
특히 요즘의 우리나라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좌절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불자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그 전에 실업인들의 법회에 가서 한마디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 중 한 명을 만났더니 하는 말이, “아, 스님 그때 하신 한 말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기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고 하니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업을 하면 부도를 많이 당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자기 사는 것은 부도가 난 게 아니란 말이에요. “사업이 부도났지 인생이 부도 났느냐? 아, 사업이야 하다가 부도 날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고 또 일어날 수도 있는 거지, 삶 그 자체가 부도난 것은 아니니까 절대 흔들리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참 좋은 말이었다고 어떤 실업인이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상당히 힘이 됐던가 봐요.
‘아, 사람 사는 문제하고 사업문제는 다른 것이구나’, 다르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그런 여유, 그게 참 필요하지요.
우리가 뭘 하다보면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게 자기인생의 전부인양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되면 인생을 정말 자포자기해 버리는 그런 경우가 많지요. 그것은 착각이란 것입니다. 인생이란 자포자기할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거지요.
여섯 번째,
. 인생 최대의 잘못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다.
이것은 죄과라고 그랬어요, 제일 큰 허물은 남을 속이고 자기도 속이는 것이라고 했어요. 자기 기인이라고 했어요.
. 인생에서 가장 가련한 성품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
저 앞에서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을 착오라고 그랬고 여기에서 아주 가련한 마음씨는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 ‘나는 못났다’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겸손처럼 보이지만 겸손하고 비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요. 겸손은 하되 자신을 비하하는 일은 없어야 되는 일이지요.
. 인생에서 중요하게 지녀야 할 것은 정진(精進)이다.
참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이지요. 시작이야 누구나 잘 합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일이라고 작정을 했으면 계속 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차고 다녀야 할 것, 여기 원문에 보면 패복(佩服)이라고 했어요. 허리띠처럼 지니고 다녀야 할 그런 것이 무어냐? 정진이라는 거지요.
계속하는 노력, 이 계속하는 노력만 있으면 돈 버는 사람이든, 공부하는 사람이든, 예능을 익히는 사람이든, 어떤 분야에서든지 안 될 일이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지니고 다녀야 할 것은 정진(精進)이라고 했습니다.
. 인생 최대의 파산(破産)은 절망이다.
사업하다 보면 파산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순간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는 절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절망하면 그것보다 더 큰 파산(破産)은 없다는 거지요.
. 인간 최대의 재산은 건강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요.
. 인생 최대의 채무(債務)는 인정(人情)에 대한 채무(債務)이다.
이것도 우리가 느끼고는 있지마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는 아주 눈이 반짝 뜨이더라고요.
인생 최대의 빚은 뭐냐? 인정에 대한 빚이라는 거지요. 돈 좀 떼먹는 게 문제가 아니고 사실은 인정을 떼먹는 그보다 더 큰 빚은 없다는 거지요. 인정에 대한 채무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이더라고요.
돈은 가벼운 거고 인정은 무거운 것이라 해서 가벼운 돈은 떼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인정에 대한 채무가 제일 큰 채무라는 거지요.
이런 것들도 다 지장보살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 인생 최대의 예물(禮物)은 관용과 용서이다.
이것 참 어려운 것이지요. 거의 안 되는 일이지요.
자기에게 해를 끼치고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욕하고 자기를 비난하는 그 사람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보살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니 어떤 비싼 예물보다도 관용과 용서 같은 이런 좋은 예물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 인생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자비와 지혜이다.
보통사람들의 가장 부족한 부분이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친척, 자기 자식, 자기 핏줄에 마음 쓰는거야 누구나 다 하지요. 그렇지만 자비라는 것은 그런 분별없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평등한 마음을 베푸는 것을 말하지요. 그건 보통사람들에게 제일 부족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혜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니까 중생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 인생 최대의 기쁨은 베푸는 일이다.
이것이 지장보살의 사상이고, 불교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사실 맞는 일이지요.
베푸는 일처럼 흐뭇한 일은 없습니다. 여기 기쁨이라고 옮겼지만 흐뭇하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흠미라고 했어요. 기쁠 희자 보다는 아주 흐뭇한 거지요.
보시를 하고 나면 그렇지요.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하든지 조그마한 거라도 뭔가 베풀고 나면 마음이 흐뭇하지요. 바로 그런 내용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크게 불교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마음이야말로 진짜 불교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장보살의 정신이 서려있는 구화산에서 이런 글을 만나니 여러 가지로 생각키는 점이 많더라고요.
‘아, 딱딱한 경전도 결국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되어야 우리 가슴에 제대로 와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동안 법화경 수업을 쉬고 해서 연결이 잘 안 될 텐데요, 우리가 일곱 번째 품인 화성유품을 시작해 놓고 공부를 쉬었습니다.
오늘 공부할 대목은 121쪽의 23번부터 입니다.
공부할 차례는 그곳이지만 화성유품(化城喩品)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과거에 한량없는 세월 전에 부처님이 계셨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습니다. 화성유품(化城喩品) 처음에요.
누군가 하면 대통지승여래라, 대통지승여래라는 분의 이야기를 지금 쭉 해나가고 있습니다. 화성유품이 거의 그분에 대한 이야기이고 정작 화성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나옵니다만 서두에는 전부 대통지승여래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대통지승여래가 아주 오랜 세월동안 말하자면 수행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려고 했는데도 성불이 잘 안되었다, 그 세월이 얼마냐? 십겁동안 도량, 보리수 아래 앉아있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십겁동안 앉아 있은 뒤에야 비로소 성불하게 되었다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그럼 이 대통지승여래는 언제적 부처님이냐?
과거 부처님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 대통지승여래는 여기에 뭐 상상도 못할 많고 많은 세월, 오랜 세월 전에 계셨던 부처님이며, 그렇게 오래 전에 있었던 대통지승여래는 그 성불하는 기간도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백년 미만의 삶을 살지요. 또 인류의 역사도 그렇고 우리나라 역사라고 해 봐야 기껏 오천년 역사를 가지고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또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당히 오래된 역사이지요.
지금 화석이 발견되어 가지고 그래도 한 이백만년 전에 동물이 있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람까지도 이백만 년 전에 있었다고 하지요. 기껏 이백만 년의 세월을 가지고 그렇게 오래된 세월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경전에서 깨달은 사람이 생각하는 시간관념이라고 하는 것은 이백만 년이니 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라고 생각하지요.
왜 그런고 하니 이 마음을 통째로 깨달은 사람은 바로 마음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습니다.
지구의 역사, 지구가 생긴 지는 오래 됐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몇 년 되지 않는 것이고 이 지구상의 생물의 역사, 동물의 역사는 기껏 해봐야 몇 백만 년 밖에는 안 되니까요.
그렇다면 마음의 역사는 어느 정도냐? 도대체 몇 년이냐? 깨달은 사람은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걸핏하면 마음의 역사,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은 지구상의 동물이니 생물이니 지구이니 하는 것은 유한한 거지요. 한계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마음의 역사는 한계가 없는 겁니다. 간단하게 이해하면 그렇습니다. 한계가 없는 마음의 역사 속에 들어가서 살고 항상 거기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기껏해야 백년 미만의 삶을 살고 있고 기껏해야 몇 백만 년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안가요. 얼른 납득이 안 간다고요.
일 겁이라고 하는 것이 수 백만 년, 수 천만 년이 되는데 그것을 열 번, 십겁이라는 세월동안 좌도량(坐道場), 보리수 아래에 앉아 있었다는 겁니다. 이때까지 불법이 안 나타나다가 십겁이 넘어서야 비로소 이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수 억만 년이지요. 수억만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어요.
그럼 그 동안 어떻게 살았냐는 거지요.
우리는 기껏해야 백년을 살아도 많이 살았다고 그러는데 그럼 수명이 도대체 얼마기에 참선한다고, 수행한다며 보리수 아래에 앉아 있은 시간만 수억만 년이 되냐는 거지요. 그럼 그 전에 출가하기 전에는 얼마를 살았으며, 출가해서 수행하겠다고 한 그 기간이 수 억만년 십겁이고, 또 성불하고 나서 중생을 교화한 시간은 또 얼마냐는 거지요. 그럼 거기서 십겁이라고 하는 세월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6년에 해당되지요. 그런데 이 분에게는 수억만년, 십겁에 해당되는 세월이 지났다 이거예요. 그게 도대체 있을 수 있느냐는 거지요.
여기에 보면 그 분이 몇 년 전에 있었던 분이냐? 대통지승불이라고 하는 분이 몇 년 전의 분인지에 대해 처음에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뭐 이건 상상도 못하지요.
예를 들어서 이 사람이 열반하신 지가 매우 오랜 세월이다, 그것을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이 삼천대천세계를 전부 가루를 내어서, 그 먼지를 갈아서 먹을 만들어 동쪽으로 천 국토를 지나서 한 점을 떨어뜨리고, 그런 식으로 천 국토를 지나서 또 한 점 떨어뜨리고 그렇게 해서 한 점 떨어진 국토와 떨어지지 않은 국토를 다 합해서 가루로 만들어 그 먼지 하나를 다시 일겁이라 치자고 했을 때 그 많고 많은 겁, 그 겁 이전에 말하자면 대통지승여래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설사 지구 하나만 갈아서 먼지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먼지의 숫자가 얼마겠어요? 아니 지구는 놔두고 금정산 하나만 갈아가지고 먼지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먼지 숫자가 얼마겠느냐는 거지요. 지구가 금정산의 몇 배가 되지요? 몇 배가 되는지 여러분은 상상이나 되겠습니까? 상상이 안 되지요. 계산 하면 나오긴 나올 겁니다. 지구의 면적과 금정산의 면적을 따지고 하면 나올 수는 있겠지만 도저히 상상이 잘 안 되는 어려운 상황이지요.
그렇게 많고 많은 세월 이전에 성불했던 그런 분이다 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마음의 역사 속에 사니까 이런 이야기가 식은 죽 먹듯이 되는 거예요. 이게 전혀 엉터리가 아닙니다. 영원의 세계에 살다 보니까 몇 백만 년이라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거예요.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라고요. 영원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일생을 산다면, 일생을 산다고 하는 일이 하루 동안 길을 가다가 옆에 사람과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그 순간하고 같다고요. 백년의 세월이 한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과 똑 같습니다.
다를 바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가만히 지내놓고 보면 또 그렇지요. 예를 들어서 40년, 50년 살았던 분이 어릴 때, 십대 때 참 좋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뭐가 있습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십대, 이십대, 삼십대의 세월이 지나가 버렸어요.
조금 마음을 가라앉혀서 우리 마음의 무궁한 자세를, 억지로 라도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의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모든 게 순간입니다. 일생이라는 것도 순간이지요.
옆에 사람이 좋으니 나쁘니 그래봤자 하루 길 가면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거와 같습니다.
저기 전철을 타고 가면서 10분, 20분 옆에 같이 앉았던 사람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옆에 사람이 술 냄새가 나더라도 한 10분만 참으면 헤어져요. 옆에 사람이 좀 좋더라도 한 10분 후면 또 헤어진다고요.
우리 인생이란 게 사실은 그런 거예요. 그런 건데 어떤 짧은 시간 속에 눈앞의 것에 속아서 집착을 하지요. 보고 있으니까 좁은 눈을 가지고 살다 보니까 거기서 온갖 문제가 일어나고 가슴 칠 일이 생겨나고 별별 문제가 다 생기는 거지요.
불교를 공부하는 분들은 이런 법화경 같은 대승경전을 통해 마음을 크게 가지고 안목을 넓게 가지면서 좀 넉넉하게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고 내가 며칠 전부터 이 구절을 가만히 보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부처님 말씀 이게 하나도 거짓말이 아니고 공갈이 아닐진대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는 입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은 마음의 역사, 마음의 세계, 영원하고 무한한 마음의 자리에 앉아서 우리의 소견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넓이가 얼마이며 역사가 얼마이다 하는 것들을 이렇게 굽어보면 정말 한순간이야, 눈 깜짝할 사이거든요.
여기 보십시오. 대승지승여래의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것은요 영원 속에서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가 있는 거예요.
성불하는데도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성불하는 이야기가 이제 쭉 나오고 그 다음에 성불하고 나서 보면은 그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 열여섯 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첫아들 이름이 지적이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성불했다하는 그것도 십겁이라는, 수억 만년이라는 세월동안 앉아 있다가 성불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는데, 그럼 이 아들들은 도대체 나이가 얼마이겠어요? 속가에서 왕 노릇할 때 자식들을 두고 출가한 사람이니까 그 사이에 수 억만년이란 세월이 우리의 한 살, 두 살하고 맞먹는 거예요.
이 아들들이 아버지가 성불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는 자기들이 좋아하던 도구들, 장난감, 장난감이라고 하는 것이 뭐겠어요? 어른들의 장난감이 뭐겠어요? 명예요, 재물이요, 이런 것 아니겠어요? 아이들 장난감은 또 따로 있습니다. 딱지치기를 할 때는 딱지가 장난감이고 구슬치기 할 때는 구슬이 또 장난감이지요. 구슬이나 딱지가 어른들의 재산이나 명예와 같습니다. 어른들이 큰 사업을 하다가 망하면 가슴을 치며 울지요. 아이들도 딱지를 빼앗기면 울어요. 구슬을 빼앗기면 막 울지요. 아이들도 밤잠을 못자고 그렇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 가치관이 달라서 그렇지, 소중하게 여기는 입장에서는 똑 같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십육 왕자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던 것들을 전부 버렸다고 했어요.
어린아이도 아니고 성인들인데 왕자의 입장에서 좋아하던 것들을 다 버리고 성불했다고 하는 아버지 곁으로 막 쫓아가는 거예요.
또 그 할아버지 기조(其祖) 전륜성왕이,
오늘 공부하려는 18번을 보면은 전륜성왕이 나오지요. 이 분은 대통지승여래의 아버지가 되고 십육왕자의 할아버지가 되니까 그 할아버지 전륜성왕이라 했습니다. 부왕이 되는 거지요. 그 분이 대통지승여래가 성불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또 일백의 대신과 백천만 억의 백성들이 함께 에워싸서 그곳에 가서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절도 하고 공양도 대접하고 온갖 말로 표현하려고 막 몰려갑니다. 예배를 하고 또 부처님을 빙빙 돌고 그러지요.
요불(繞佛)이라는 말이 있는데 부처님을 돈다는 말이지요.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예불할 때 늘 돌고 했는데 중국은 아직도 하고 있어요. 중국은 예불을 무려 두 시간 동안 서서 하는데 아주 혼이 났어요. 우리는 대개 앉아서 하는데 그 사람들은 서서해요. 부처님 앞에서도 돌고 뒤로도 이렇게 돌고 그래요. 염불을 하면서 부처님을 빙빙 도는 것, 경전에 있는 대로 그 사람들은 하더라고요.
여기 보면 기조 전륜성왕이 손주들과 왕을 따르는 많은 백성들과 함께 대통지승여래가 성불했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서 칭양찬탄하고 또 게송, 시를 이렇게 읊어서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찬탄을 합니다.
오늘 공부할 마지막부분 바로 위를 보면,
시고함계수(是故咸稽首)하야 귀명무상존귀(歸無上尊)이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모두 머리를 조아려서 무상존(無上尊), 가장 높은 어른에게 목숨 바쳐 귀의하나이다.
이렇게 자기의 존경심을 한껏 표현합니다.
만약에 어느 누군가 성불했을 때, 여기에서는 대통지승여래가 성불했다고 되어 있지요.
누군가가 성불했을 때 나타나는 주변의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보면 권속들의 태도입니다. 십육왕자의 태도를 보면, 여자분들은 그 어머니는 울면서 보냈다는 말이 있거든요. 아들들이 아버지가 성불한 소식을 듣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니까 어머니는 울면서 그 아들들을 보내주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자기를 따르는 대신들과 전부 같이 부처님께 나아갔다고 되어 있지요. 권속들의 태도를 보면 모습들이 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정이 좀 많아서 그런지 가지 않고 앉아서 울기만 하고 자식들만 보내지요. 이 십육 왕자와 부왕(父王, 대통지승여래의 아버지)은 부처님께 나아가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통지승여래가 성불했을 때 나타나는 첫째 현상이 그것이고, 그 다음 두 번째 현상은 뒤에 나오는데 어떤 현상이 있는가 하니,
온 땅이 육종으로 진동하고 그 다음에 큰 광명(光明)이 나타납니다.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광명이 나타난다고 했어요. 광명이라는 말을 상당히 많이 씁니다.
그 다음 세 번째 현상이 뭔고 하니,
시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께 몰려갑니다. 광명이 비치자,‘이 빛이 웬 빛이냐? 세상에 이런 빛이 일찍이 없었는데’하면서 시방의 범천, 하늘사람들이 간다고 되어 있어요.
하늘사람이라는 말은 좀 수준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사람들이 몰려간다는 말이 뒤에 나와요. 시방의 범천들이 몰려가서 찬탄을 하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요. 여래가 나타날 때는 위의 세 가지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대통지승여래는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분이며, 그 분은 성불을 하는데도 십겁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이제 기억하셔야 되고, 이분이 결국 성불을 했는데 성불하자 자식들과 아버지, 또 대신들, 이런 이들이 법문을 들으려고 전부 대통지승여래께 갔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다음 세계가 육종진동하고 광명이 크게 비친다는 사실, 또 그 광명을 본 시방의 범천들은 전부 부처님께로 나아갔다고 하는 이런 사실들이 죽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정말 우리 마음의 깊이를 생각하게 하지요. 우리 마음의 깊이가 그렇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성불하며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결국 언젠가는 성불하고 만다는 그런 믿음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아무리 내가 게으름 피운다고 한들 이렇게 길고 긴 시간, 그때까지야 성불을 못하겠느냐는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수 억만 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아무리 낮잠을 많이 자고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지옥 아귀, 축생, 육도 온 데를 다 돌아다니고도 그래도 남는 시간이지요.
-무비 (無比) 큰스님 법화경 (53) 迹門· 正宗分· 卷 第三 · 第七 化城喩品⑦(화성유품) 문수원-
첫댓글 인생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은우님, 고맙습니다. _()()()_
1.인생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人生最大的敵人是自己 ; 인생최대적적인시자기] 2. 인생 최대의 실패는 스스로 잘 났다는 생각이다.[人生最大的失敗是自大 ; 인생최대적실패시자대] 3.인생 최대의 어리석음은 남을 속이는 것이다.[人生最大的無智是欺誑 ; 인생최대적무지시기광 ] 4.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은 질투다.[人生最悲哀的是嫉妬 ; 인생최비애적시질투 ]
5.인생 최대의 착각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人生最大的錯誤是自棄 ; 인생최대적착오시자기 ] 6.인생 최대의 잘못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다.[人生最大的罪過是自欺欺人 ; 인생최대적죄과시자기기인 ] 7.인생에서 가장 가련한 성품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人生最可憐的性情是自卑 ; 인생최가련적성정시자비 ]
8.인생에서 중요하게 지녀야 할 것은 정진(精進)이다.[人生最可佩服的是精進 ; 인생최가패복적시정진 ] 9.인생 최대의 파산(破産)은 절망이다.[人生最大的破産是絶望 ; 인생최대적파산시절망 ] 10.인간 최대의 재산은 건강이다.[人生最大的財富是健康 ; 인생최대적재부시건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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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생 최대의 기쁨은 베푸는 일이다.[人生最大的欣慰是布施 ; 인생최대적흔위시보시 ] - 참조 - 100편의 명구 게시판에서 너럭바위님 사경... 모든 분들께 정성어린 보시 감사드립니다._()()()_
() 잘 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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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_()()()_
자비와 관용을 내 인생의 예물로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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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님 공부 재밌게 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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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은우님!........._()()()_
법화경 녹취하시는 법우님들 수고가 크신데 제가 편하게만 들어니까 죄송한 마음에 법화경 145회 녹취를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외람된 일이 아닌지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조그만 힘이나마 보태고자 한 일이니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_()()()_
예, 태원해님. 이곳 문수원 법화경 담당 하시는 분이 명성화님이십니다. 쪽지드려 놓겠습니다. ()^^*
중국 구화산 김교각 스님, 그리고 인생 14대 교훈.. 은우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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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중요하게 지녀야 할 것은 精進이다...은우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은우...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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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인생 최대의 기쁨은 베푸는 일이다.
인생 최대의 실패는 자신이 잘 났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