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새해엔 무엇을 할까? 고민도 많고 희망도 그만큼 부풀거다.
난 올해는 홀가분한 느낌을 갖고 시작을 한다. 나이도 참 많이 먹기도 했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느끼며 산다. 한 해가 거듭날수록 고민은 더해가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참 오묘하기도 하지.
그 오묘한 느낌을 갖고 친구랑 달랑 배낭 하나에 1월 정초에 목적지도 없이 서해안고속도로를 탔지.
부안 내소사를 좋아하던 친구는 내소사의 창살을 얘기하고 채석강을 좋아하는 난 선캄브리아 시대의 층층 쌓인 돌의 신기함을 나누고......
서해안의 일몰을 채석강에서 싱싱한 회 한 접시와 술 한 잔의 회포를 풀고 회 한 접시를 담아주는 아주머니의 바쁜 손놀림을 바라보다 그렇게 점점 밀려오는 밀물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맞이했다.
서해안의 일몰을 지켜보며 모항에서 붉은 태양을 바라보다가 고즈녁한 내소사에 다달았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하늘에 별이 희미하게 보였다.
일주문을 지나니 긴 소나무 숲길을 지나 개울다리가 나오고 아담한 내소사의 천왕문이 보이고 커다란 정자나무가 개소사 한마당에 떡 버티고 있었다. 제2의 나무 천황이리라. 희미한 불빛 틈사이로 대웅전의 불이 켜지고 나무꽃창살의 다양한 꽃모양이 아름답게 정면 세칸에서 흘러나왔다.
어둠속에 비치는 스님들의 독경소리와 삼층석탑이 내소사에 가득찼다.
캄캄한 숲길을 걸어나오며 차를 전주로 돌렸다.
전주에는 저녁 아홉시에 도착을 하여 전주다문찻집에서 술한잔을 마시고 여독을 풀었다.
전주한옥마을을 지키고 옛문화를 지키고 마을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또랑깡대의 일원인 김병수 님을 만나서 전동성당과 한옥마을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술 한 잔을 마시다가 오년 전에 겨레문화답사로 둘러본 한창기 씨 생가에 있는 야생차밭과 쪽물들인 거, 보성옹기를 보러 간 기억이 떠올라 우리전통문화의 살아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다음날 점심에 여기에서 만나서 보성으로 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래서 한 사람이 더 보태져 세 사람이 몸을 싣고 보성으로 향했다. 맛있고 정갈한 전주한식을 먹고 보성에 도착하니 다시 저녁이 오고 있었다.
완전히 서울에서 박서방 찾기로 어설픈 기억하나만 믿고 왔다가 한창기 씨 생가를 찾으려고 하니 무모한 생각까지 들었다. 왜 내가 이 말을 했을꼬.
한참을 가다가 보성다원에 이르러 저녁을 먹고 있는 아저씨들한테 물으니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번호부를 찾더니 한씨 성을 갖고 있는 사람 3명을 소개해주었다. 보성에서 살고 있는게 아니라 벌교 증광리에 살고 있다는 한창기 씨 조카를 알게 되어 그 조카만 믿고 찾아갔는데 완전히 숨은그림 찾는거보다 힘들었다.
드디어 지곡마을에 도착하여 얼굴 한번 못 본 집에 들러 사랑채에 무사히 당도했다. 몇년 전에 돌아가신 한창기 씨 생가는 나중에 들었지만 거의 자연상태 그대로 라고 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고 했다. 아니 그럴수가? 내가 원하는 곳엔 이 밤에 찾아서 가기란 무척 힘들었고 결국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무거운 맘을 이끌고 돌아와야 했다.
우리가 도착한 집은 우리나라 쪽 염색 일인자로 칭할 수 있는 한광석 씨였다. 아무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사랑채로 맞이해준 그가 참 고맙기도 했다. 이미 술 한 잔을 마시고 술냄새가 나고 있는 그는 겨울엔 쪽염색을 못하기 때문에 쪽도 못쓴다고 했다.
인천에서 왔다고 하니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왜 왔을까 의구심을 갖다가 함께 온 전주사람을 보더니 아주 반가워 했다. 왜냐하면 친구가 함께 하는 일에 그가 관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 찬밥신세가 될뻔 했는데 그래도 전주사람 때문에 면목을 세웠다.
거기에서 하룻밤을 무사히 자고 백만원짜리 나주상을 받아보고 그 집을 떠났다. 씩씩한 아들이 그 다음 희망을 부여주며 처음 본 사람들이 그곳에서 낯설지 않게 재워주고 먹여주고 했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이 엄동설한에.
******상에 얽힌 이야기 / 한광석 님과 대화(박수:박사백수)
친구: 상이 참 이쁘군요.
주인: 상이 어떻게 보이나?
나: 새 상으로 보이는데요?
주인: 아, 그렇게 무식하게 말하지 말고 자세히 봐!
나: 아, 옻칠도 했군요.
주인: 이 상은 나주상인데, 부모님을 위하여 마련한 상이야. 내가 어렵게 백만원을 주고 샀지. 이게 바로 상받았다는 거야. 사람이 상받는 거 말야.
나: .....................
**********
여러분들도 제대로 된 상을 받아봤나요? 우리집에서 상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참 신선하고 새롭더군요.
전주에 가면 느낍니다.
전주 다문에 가면 제대로 된 옹기와 밥과 반찬, 탕 등이 준비되어 있지요.
올 새해엔 상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몇 년 지나서 자신의 글을 보니 참 부끄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