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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 둘 세 켤 레 |
-「고무신」전문, 1966
시각적 효과와 입체감을 회화적으로 시도한 새로운 형태의 구별배행 시조이다. 특히 진행감, 속도감, 직선감을 주기 위한 초장의 ‘── 全 ── 群 ── 街 ── 道 ──’라는 시각적인 효과와 종장에서 외딴 집 사각형의 섬돌에 놓인 아버지와 아이 그리고 어머니의 세 신발을 글자 크기를 달리함으로써 시골 생활의 단란한 정경을 따뜻한 시각으로 인상 깊게 형상화하고 있다. 종래 시조의 형식과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 평면적 묘사나 감상적 서정을 배격하면서 제재나 대상에 대한 인식의 깊이, 표현 기법 등 가히 시조문학사에 일대 혁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사설시조를 부활시켜 시조의 영역을 현대화 하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長澤高氏夫人, 이는 이름 한 자 없는 우리 할머니의 장황한 호칭//
호적을 들추면 高氏 家門에가 아니라 興城張氏
의 戶口에 자리하여 九十 春秋. 진실로 한 生의 數運이란 제 뜻 아닌 고작 몇 글자의 붓끝 으로 까불림을 뼈로 보노니, -중략- 목소리는 담 넘을세라, 어버이와 지아비와 그 아들의 잎 그늘 사이로만 날아온 잿빛 산비둘기, 이제 마지막 한 줄 「事由」를 보태고 더 큰 가지 에 날개를 접도록에 한마디 구구 소리도 없었건만, 탯줄에 주저리 열린 일곱 남매, 그 중 앞서 비인 한 칸에//
흥건히 고여 있고녀! 단 하나 당신의 뜻
-「 長澤高氏夫人傳」, 1967
비는 한참 나를 우체통 곁에 세워놓고
먼 숲 속에서 외톨밤을 줍게 하다가, 굽이쳐 흐르는 옛 성을 돌게 하다가, 그 성터의 여울목 에 날 불러 세우더니, 흙 속에 반만 묻힌 천 조각을 줍게 하고, 그리고 들여다보게 했다.
그건 참 오랜만에 찾은 나의 명찰이었다.
-「 고속도로」, 1980, 12
실험적인 시도가 엿보인, 중장이 길어진, 사설시조이다. 초장·종장은 각각 2 구절을 기본구조로 갖추고 있으나 중장만은 변형적 형태를 취하면서 삼종지덕으로 가부장제도의 희생물로 살다 간 한국 여인(할머니)들의 애닯은 삶과 추모의 정을 중장에서 구체적으로 소상하게 그려주고 있는가 하면, 「고속도로」에서는. 겨울 저녁 어느 처마 밑에서 비를 개면서 비온 날의 스산한 풍경과 또 일상에 쫓겨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조용하게 뒤돌아보는 관조와 성찰의 심리 상태를 보다 충실하게 전달하는 서사적 서정의 새로운 시조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은 본인의 말마따나 우연찮은 인연으로 경기도 파주군 교하리(交河里)자리를 틀고 앉게 된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교하(交河)라는 이국적인 지명도 마음을 끌고, 신촌리(新村里)라는 마을 이름도 뜨내기에게는 저항감이 적었다고 한다.
이제 서울에는 / 하늘이 없다
매연과 먼지와 / 소음과 악취로
허공을 가득 메우고 / 푸른 하늘은 없다
하늘이 이미 없거니 / 하느님인들 있으리
북악산 만경대(萬頃臺) 위 / 눈시리게 푸른 저 어름
아마도 거기 어디쯤 / 좌정했나 싶더니.
서울서 잃은 하늘 / 신촌리(新村里)에서 만난다
해돋이 해넘이며 / 흰구름과 별자리
천도(天道)의 수레바퀴가 / 예서 바로 돈다.
- 시조집 『서울 귀거래』, 「잃은 하늘, 찾은 하늘」, 1995, 가을
‘시는 농산물과 같아서 농촌에서 생산되어 도시에서 팔린다고 했다. 이제 시의 주산지라 할 농촌에 돌아온 늙은 농부’ 시인(「낙촌(落村)한 촌자(村者)」에서), 그래서 인지 이후 그의 시는, 이러한 농촌을 배경으로 자연친화적 한국적 정취의 세계를 노래하게 된다.
끝물 고추 붉히느라 / 수선피던 가을 해가
어둠 속 둥지에 들어 / 알을 품고 졸을 제면
농가의 창틀에서도 / 하나 둘씩 등불진다.
-「해는 져 둥지에 들고」에서, 1997
가을 한 낮 시골의 풍경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비롭게 변해가고 있다. 한낮(해) - 석양(둥지를 틀고) -저녁(창틀에 등불을 켜는) 것으로 점차 바뀌어 가면서 그것들이 서로 하나로 생성(生成)되어 가는 화목한 세계, 곧 ‘햇살’이 ‘붉은 고추’가 되고 그것이 다시 어둠 속 둥지 속에 들어 ‘알을 품는 어미 새’가 되기도 하는 주객합일의 우주적 신비와 자연친화적 초월의 선계(禪界)가 그것이다.
집 잃은 갈가마귀 빈 가지에 나래 접듯
두메 한촌 간이역 작정 없이 내려서다
설핏한 플랫폼 위에 길게 누운 내 그림자.
반백의 역무원은 날 못 본 체하고
기름진 신호기만 버릇으로 흔든다.
저 건너 외딴 주막집 푸른 연기 한 줄기
- 「간이역에서」에서, 2004
삶의 본향을 찾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인생 나그네의 객수(客愁)가 낯선 간이역과 ‘길게 누운 그림자’가 외롭게 조응되면서 부평초처럼 떠도는 생의 허망과 쓸쓸함을 고조시켜 주고 있다.
근래에는 시조의 대중적 접근을 위해 시조라고 하는 고답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보다 평이하게 시조의 저변을 확대하자는 의도에서 ‘경시조’를 쓰면서 끊임없이 시조의 영역 확대와 내면 인식의 깊이로 한국 현대시조에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다. “나는 시조를 본격 문학으로서의 시조(중시조)와 대중 문학 또는 생활 문학으로서의 시조(경시조)로 구분하자”고 한 경시조의 창안 배경이 그것이다.
너는 바람인가/ 움직일 뿐 얼굴이 없다/ 이목구비 오장육부/ 머리도 꼬리도 없다/ 서둘러 서발 막대에 거치는 것이 없다
번지 없는 빈 집에/ 문패 달랑 걸어 놓고 /온데간데없는 너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너 / 그러나 / 천지에 꽉 차서 / 없는 곳이 / 없는 너.
-「시간의 얼굴」일부
이 외에도 ‘너는 쏜살인가 / 나아갈 뿐 멈춤이 없다’, ‘만인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닌 너’라고 시간의 현상과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일반적인 시조의 단점 또는 한계로 운위되는 주제의 넓이와 깊이를 최대한 확보함으로써 시조의 시로서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대·심화’(김재홍) 형이상학적 인식의 깊이로 시조의 차원을 달리한 시인이다. 현재(2010년부터)는 강원도 춘천에서 거주하고 있다.
‘나이테는 밖으로 감고 추억은 안으로 푼다./ 정읍서 보던 산천 춘천가도 그 산천/ 스무 번 이사하면서 본 산천도 그 산천’( 「산천은 그 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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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십니다.
좋은 소식을 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교수님! 연락 주시면 약주 한잔 모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 나는대로 서로 연락합시다.
하하하하하! 장순하 시조시인! 대단한 분이네요!
소꼽 동무 같던 신랑 철 들자 가버린 뒤
어이없이 흰나빈 비녀 끝에 와서 앉고
애잔히 박꽃은 피어 날은 이미 저물었다.
다 이르지 못한 사연 말은 해 무엇하랴
잎 진 가지 끝에 남은 감 익을 무렵
새빨간 고추 널어 지붕 위를 덮었다.
- 「소복의 장」에서,1966년
표현 정말 죽여줍니다.
그린님! 약주 한 잔 모시는날 젓가락하나 더 놓으시면 안 될까요? 하하하하하!
참으로 깔끔하게 애절한 시조이군요. 장순하 시인의 시조에 이런 시조가 또한 있었다니, 어디로 옮겨 가고 싶군요.
하하하하하하! 아니 이 글은 이언시인이 올려 놓은 것이 아닌가요? 하하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요즘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쓴 지가 좀 되어 벌써 까마득히 잊고 있었나 봅니다. 아무튼 세상에 이럴 수가!에 나올 일 입니다.
하하하하하!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요?
아직 춘추가 한창이신데 이를 어찌하오리까? 하하하하하하!
사실은 저는 더하답니다.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