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 년] |
동독 군인 콘라트 슈만, 서독으로 탈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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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을 뛰어넘는 콘라트 슈만 |
이틀 전부터 동서 베를린간의 통행이 차단되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동독 병사 콘라트 슈만은 철조망 부근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명령서에는 '국경을 수비하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사람의 탈주를 저지해야 할 그가 1961년 8월 15일 서베를린으로 탈출했다. 완전무장을 한 군복차림으로 자동권총을 어깨에 메고 대담하게 철조망을 뛰어넘어 자유의 나라로 넘어왔다. 다음날 그 모습은 전세계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다. 철조망을 뛰어넘는 도약의 순간을 카메라가 잡은 것이다. 베를린 장벽 건설은 전후 독일의 가장 암울한 비극이었다. 동독에서는 1953년 6월 17일에 발생한 동베를린 노동자의 봉기 이후, 국민과 정치 체제와의 알력이 확대일로를 걷고 있었다. 1959년 한 해 동안 무려 14만 5천명이 서독으로 망명했다. 1960년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5만 6천명이 동독을 등졌다. 1961년 7월 한 달동안만 망명자수가 3만을 넘어서자 동독 국가평의회 의장 울브리히트는 마침내 제동을 걸었다. 장벽건설을 명령한 것이다. 장벽설치가 시작된 것은 8월 13일 새벽 2시였다. 46킬로미터에 이르는 베를린 시내 지역 경계선을 따라 장갑차가 배치되고 경찰, 군인, 민병대가 출동했다. 그들은 포석과 포장을 떼어내고 철조망을 둘러쳤다. 작업은 며칠 동안이나 계속됐다. 슈만은 그 경계선의 감시를 맡고 있었다. 동베를린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놀러왔다가 장벽설치로 돌아가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던 한 어린이의 애절한 소식과 자신의 사상성을 시험한 동독 비밀경찰의 비열한 행위에 분노한 것이 슈만이 탈출을 결심한 이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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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년] |
이내창군 의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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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6일 중앙대 운동장에서 치러진 이내창군 장례식 모습. |
1989년 8월 15일 전남 여천군 삼산면 덕촌리 거문도 앞바다에 한 구의 변시체가 떠올랐다. 당시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이었던 이내창씨였다. 서둘러 조사를 끝낸 경찰은 나흘뒤인 19일 이씨의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바닷가 암석 해변을 거닐다가 실족해 익사했다'고 발표했다. 당장 의혹이 제기됐다. 이씨의 주검에 7군데나 난 피하출혈 흔적과 평소 약속시간을 잘 지키기로 소문난 이씨가 사건 당일 광복절 행사가 있었고 다음날 총장과 면담상태가 잡힌 상태에서 연고도 없고 생전 가보지도 않은 그 먼 곳까지 간 이유 등등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의혹은 학생과 교수, 교직원과 재야단체들로 구성된 '사인진상규명을 위한 범 중앙인 공동대책위'를 낳았고 대책위는 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씨가 사고 전날 안성의 학교로 찾아온 남녀 2명을 따라 나섰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들 중 한명이 안기부 인천직원이라는 사실이 폭로됐다. 또 다른 인물 역시 군인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이처럼 의혹에 둘러싸인 이씨의 죽음은 석달전 의문의 변시체로 발견된 조선대 이철규군 사건과 맞물려 정권퇴진운동으로 이어졌지만 아직도 명확한 사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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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
일본 행동파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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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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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
시인 박인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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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
레닌 '국가와 혁명'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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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
'아라비아 로렌스'로 알려진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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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
영국 계관시인 월터 스코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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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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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년 |
서로마 제국의 황제(393-423) 호노리우스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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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고려 우왕 2) 무위소, 신무기 수차 등 제조
1916 대종교 나철, 세상 떠남
1924 형평사 통일대회, 대전에서 열림, 31개 단체 참가
1926 시인 박인환 태어남. 대표작: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1944 수풍발전소 송전 시작
1945 여운형,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
1948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1954 경부선 통일호 개통, 서울-부산간 9시간 30분
1965 동양텔레비전 방송, 중앙텔레비전방송(JBS-TV)으로 상호를 변경
1966 중앙텔레비전방송, 동양방송으로 상호를 다시 변경. 동양라디오는 TBC, 동양TV는 TBC-TV, FM은 TBC-FM으로 개칭. KBS TV, 20시를 기해 전국 TV방송 실시
1970 남산1호 터널 개통
1974 박정희대통령 영부인 육영수여사, 문세광에게 피격당하여 서거
1974 서울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 9.5㎞), 수원-인천간 전철(98.6㎞)개통
1974 박정희대통령, 광복절 제29주년 경축사에서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 제시
1979 국방부, 국군방송 FM송신 시작 101.㎒
1979 보신각 완공
1989 임수경 문규현신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후 판문점 통해 귀환
1989 중앙대 안성 캠퍼스 학생회장 이래창, 거문도에서 변사체로 발견
1992 범민족청년학생연합회 결성
1995 옛 총독부 건물 첨탑 제거 광복 50주년 되던 해, 내무부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 전국에서 쇠말뚝 20개를 제거했고, 일본식으로 교묘하게 개명된 지명 129곳을 우리 식으로 고쳤다. 또한 1926년에 건립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첨탑을 제거했다.
1995 김수환 추기경, 5.18 학살자 처벌해 민주질서 바로잡자는 메시지 발표
1886 인도의 종교가 라마크리슈나 세상 떠남 불이일원론에 바탕을 두고 모든 종교에서 신에 이르는 길은 같다고 주장
1914 파나마운하 개통
1945 일본,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1947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하여 독립선언
1947 인도네시아 단일공화국 선포
1956 독일 극작가 브레이트 세상 떠남 저서: 제3국의 공포와 빈곤, 용감한 어머니와 그 아이들, 코카사스 백토
1975 방글라데시 무지브라 라만 대통령 피살
1979 지옥의 묵시록 개봉 "코폴라 감독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영화를 선사했다." 베트남전 배경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개봉되었을 때《뉴스위크》지는 이렇게 격찬했고, <<타임》지는 "근래 10년동안 펼쳐진 예술행위 중 가장 어리석은 짓을 담은 영화이며, 이로 인해 코폴라는 예술적 자멸을 초래했다."고 비난. 연출자는 "전쟁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도덕적 문제를 거론하고자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1991 마다가스카르서 대통령 친위대가 반정부시위대 138명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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