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는 (354~430)
이교도인 로마 관리인 부친 파트리키우스와
그리스도인인 모친 성녀 모니카(8월 27일)의 아들로
354년11월 3일 아프리카 누미디아 지방의
타가스테(현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성 아우구스타노는
어릴 때부터 타가스테와 인근 마다우라에서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는데,
370년에는 법률가가 될 꿈을 안고서
수사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카르타고의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 때 아우구스티노의 나이는 17세였는데,
여기서 한 여인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여
그의 부친이 항상 소중히 여기던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낳았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공부를 마치고
여러 지방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생활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성인은 점차적으로 철학에 흥미를 갖다가
존재 문제
특히 악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였다.
해답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마니교에 심충힌디.
성인은 신앙 없이
지혜로 인도해 주리라 기대했던 마니교에
점차 실망을 느꺄 회의론에 빠지게 된다.
성인은 타가스테와 카르타고 등지에서
10여 년간 교사생활을 한 후
383년에 로마로 가서 수사학교를 세웠으나,
학생들의 태도 때문에 크게 실망하다가
384년 가을부터 밀라노의 수사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성인은 신플라톤 철학과
성 암브로시우스(12월 7일)
주교의 설교에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암브로시우스의 강의를 통해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은유적 또는 영적으로 해설하는 방법을 배웠다.
성인은 명예, 재산, 결혼 등의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정원을 산책하다가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 하고
반복해서 외치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성서를 들어 펼쳐 읽어 본 것이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3장 13절의 말씀이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386년 8월 교수직을 그만두고
친구 성 알리피우스(8월 15일)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387년 4월13일 부활성야에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지도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와
일종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다가,
391년에 서품되었고
5년 후에는 히포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목자의 권위를 행사하되
백성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하여 사용하였고,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으며,
엄격한 규율 아래에서 범사를 행했으며,
주일과 축일에는 꼭 강론을 하였고
, 예비자 교리를 담당 하였으며,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의 재정지원을 물색하는 등
사회정의를 위하여 주교직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헌편 성인은 틈나는 대로 글을 썼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교구 신자들과
도나투스파 이단자들에게도 반박문을 써 보냈다.
특히 마니교와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박하는 강연회에는
청중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외에도 삼위일체와 은총론에 관해서도 책을 썼는데,
성인의 연구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였다.
전해오는 저작으로는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 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 등이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의 키워드는
사랑, 공동체, 일치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규칙은 복음 성경이다.
복음 성경의 핵심은 사랑이기에
성인의 가르침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애덕이다.
사랑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일치된다.
성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나가 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온갖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믿는 이들 사이에서
조화와 사랑은 하느님의 평화,
삼위일체의 평화를 반영해야 하며,
이것은 하느님 안에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는
자신의 개종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적 저서인 "고백록"과
호교론적 저서인 "신국론"이 있다
성인은 흔히 '은총론의 박사라고 불린다.
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교회 학자이며 영성가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서방 그리스도 교회 지성의 모델로서
가톨릭 신앙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성인은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 공격하던 430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 성녀 모나카는
눈물어린 기도와 끊임옶는 사랑으로
이념과 사상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던 아들을
회심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도구로 테어나는데
일평생을 바쳤다.
성 아우구스티노스는
북 아프리카의 교구에서
더 나아가 전세계 그리스도교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사람으로 거의 35년을 봉사하였다.
천주교 부산교구 홈페이지
오늘의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