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으로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아니 여름에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았습니다. 여름과 초가을이면 늘 찾아오던 태풍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섬 지방 같은 곳에서는 먹을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집에도 수돗물의 양이 줄어든 집도 있을 것입니까? 저수지들도 물이 가득 차여 있어야 내년 봄에 농사를 지을 터인데 많은 저수지들이 아주 적은 양의 물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가뭄이 드는 것일까요? 왜 샘물이 줄어들고 지하수가 줄어들고 저수지 물이 줄어드는 것입니까? 너무나 뻔한 질문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아서입니다. 하늘에서 비가와야 샘물이 넘쳐나고 지하수의 물이 넘쳐나고 냇가의 물이 흘러나 저수지의 물이 풍성할 것입니다.
받는 것이 없으니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받지 않고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나무도 받은 것이 있으니 우리에게 열매를 주는 것입니다. 동물도 받은 것이 있으니 우리에게 고기를 주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받으니 주는 것입니다.
받아야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무엇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이 있습니까?
땅 스스로가 무엇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에 그리고 바람을 주시기 때문에 식물을 내고 그것을 동물이 먹고 사람이 먹어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사단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지 않을 것으로 하는 것은 사탄이 시켜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화요, 상처요, 고통이요, 불평을 낳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까? 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바울은 외치고 있습니다.
덧붙이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우리에게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운동은 하면 건강해집니다. 영어를 잘하면 외국여행하기 편리하고 취직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상뿐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장소에서 일뿐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만사형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쓸모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쓸 곳이 없다면 무엇하겠습니까?
하지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말씀합니다. 경건을 연습하면 내 모든 삶에 유익합니다. 언제이건 어떤 장소이건 나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나의 하는 모든 일속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더 나가서 경건은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새로 오는 세상에서도 유익이 된다는 것이 분명하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을 연습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경건이 그리도 중요하고 범사에 유익이 되고 또한 내세에까지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까? 경건이 무엇입니까? 경건은 어떤 모양을 말하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거룩한듯한 목소리나 걸음걸이가 아닙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건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받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방법과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은 어떤 모양이 아닌 행동입니다. 경건은 어떤 형식이 아니고 힘입니다. 경건은 세상에서 오는 힘을 끊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는 시간이고 그것을 위해서 행하는 모습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연습은 연습자체보다는 경건의 연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연습하는 것은 목표가 있기 때문에 연습합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것은 월드컵을 위해서입니다.
경건의 연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습자체보다는 목표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더 나가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길은 움직이는 길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야 하는 길입니다.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사과나무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지 않을지라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땅에서 양분을 먹지 않으면 자랄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분께 나가야 합니다. 그분이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는 말로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그러면 평안하고 어떤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늘로서만이 힘과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늘로서만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받는 것은 사탄이 주는 것이며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외치고 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만 하도다"
이 말씀처럼 중요한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모든 사람이 꼭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이 말씀은 믿을 만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지 않고 살 방법이 없기에 경건하게 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가 경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로서 오지 않은 것을 살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 때문입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돈이 없기 때문입니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입니까?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못 받아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단지 문제라고 하면 그것을 통해서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바닷물과 같습니다. 먹으면 갈증이 해결 될 것 같지만 계속해서 우리를 더 갈증케 할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무리 많이 충족이 된다고 해도 아무리 많이 가진다해도 역시 갈증에서 헤어 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이를 위하여'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경건을 연습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경건을 연습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의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으로부터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고하고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경건을 연습하기에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무엇으로 연습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아니고서는 하늘의 것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눈을 감는 것입니다. 눈을 감는 다는 것은 다른 것을 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보던 것에서 떠난다는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세상 생각을 세상 걱정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움직인다고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행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내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밖으로 향하던 모든 것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복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도 아니고 마귀의 속한 세계도 아니고 천사의 속한 세계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계신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실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말씀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의 문제를 푸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세상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나의 개인의 문제 우리 가정의 문제 나라의 문제까지도 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받는 기쁨보다는 주는 기쁨이 큽니다. 하지만 우리는 받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돈을 받기 위해서 관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무던히 애를 씁니다. 하지만 어떠합니까? 잘 받아 집니까? 노력해서 받았을 때 여러분의 기분이 어떠합니까?
하지만 주다보면 자동적으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받을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양을 키우면 양의 젓을 먹게 되고 양의 털옷을 입게 되고 양의 고기를 먹게 됩니다. 주었기 때문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기 위해서 힘쓸 필요가 없습니다. 받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께만 받아야 합니다. 세상 것은 움직여야 얻지만 하나님께 받는 것은 움직여서는 안되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는 시간을 우리는 많이 가져야 합니다. 많이 가질수록 많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고 돕기 위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움직여서 주면 세상 것은 자동적으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세상에 주면 세상 것을 풍성하게 얻게 됩니다.
이것이 삶의 원칙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살아가야 할 방법입니다. 이것을 벗어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고 주려고 하니 문제가 됩니다. 또 주지도 않고 받으려고만 하니 더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알아야 신앙 생활하는 것 아닙니다. 받아서 주는 삶 이것만 알면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만이 줄 수 있다는 사실만 알면 우리의 삶은 풍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내 안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납시다. 내게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내게 능력으로 오신 성령님을 만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사람들을 살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음식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살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받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하게 되면 망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데 문제가 있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아서입니다. 꼭 이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