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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4분기 우수작품상
2020년 2/4분기 우수작품상 선정 결과를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 작품]
♣ 동시 부문 : 박정식 「아빠 읽기」 (열린아동문학)
♣ 동화 부문 : 고수산나 「슈퍼 히어로를 찾아」 (아동문학평론 )
♣ 시상 내용 : 상패와 기념품
♣ 시 상 식 : 2021년 1월 정기총회 시
[심사위원]
♣ 예 심 위 원 : 김종헌, 안수자, 추필숙
♣ 본 심 위 원 : 박성배, 이정석
[심사 경위]
2020년 2/4분기 우수작품상 심사는 『아동문예 5/6월호』, 『열린아동문학 여름호』, 『아동문학평론 봄호』, 『시와 동화 여름호』, 『어린이와 문학 여름호』, 『동시먹는 달팽이 봄호』, 『동시발전소 봄호, 여름호』, 『시와 소금 봄호, 여름호』, 『동화향기 동시향기 봄호』
까지 9종 11권의 잡지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2020년 2/4분기 동시
심사 대상은 총192편이었고, 동화는 18편이었습니다. 예심을 통해 동시 9편, 동화 6편이 본심에 올라왔습니다.
우수작품상 운영진은 심사위원 심사를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바쁜 일정에도 심사마감일 전에
결과를 보낸 예심·본심 심사위원님께 정중히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우수
작품상 선정이 공정하게 좋은 작품을 뽑아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상이 될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2020년 2분기 우수작품상 심사평 - 동시 부문]
2020년 2분기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을 받았다. 코로나19 등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작품 이 2편, 아빠와 관련된 작품도 3편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심사위원 눈을 끝까지 떼지 못하게 만든 동시「어떤 꽃은 눈을 맞고」도 있었다. 이 작품은 한 치의 어김없이 흘러가는 불 가항력적인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을 끌어와 안타까운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는 점과, 눈물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절절한 슬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관 심을 끌었으나 다만 본회 이창건 회장님의 작품이었기에 일부러 배제하였다.
나머지 여덟 작품 중에서 「아빠 읽기」에 주목하였다. 이 작품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생들의 원격 수업과 직장 정리해고라는 2020년 사회적 충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일자리에서 쫓겨 난 아빠의, 가족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린 동시조이다. 특히 제목에 드러나 있듯이 실직한 아빠를 안타깝게 바라다보는 어린 자녀가 시적화자라는 것이다. 본심을 감추면서 애써 웃는 아빠와 그런 아빠의 진심을 발견하고 말없이 응원하고 있는 시적화자 사이에 따뜻한 가족애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그리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2분기 우수작품상 심사평 - 동화 부문]
대상 작품으로 6편을 받아, 찬찬히 읽은 후, 먼저 3편을 덜어냈다. 많은 작가들이 이미 다룬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진실 되고, 애정에 찬 목소리일지라도 반복되면 상투적인 이야기가 되고 만다. 소재나 제재가 같다고 해서 비슷한 이야기라고 보지는 않는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려는 말이 새로우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어 또 한 편을 덜어냈다. 주인공의 특별한 행동에 궁금증을 갖게 하다가 이야기의 흐름에 없던 다른 일이 갑자기 끼어들어 마무리된 작품이었다.
남은 2편은 각각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특별한 장면을 간직한 작품이었다. 이 중에서 주인공 인 어린이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 「슈퍼 히어로를 찾아」를 남겼다. 주인공의 순수하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심리변화가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흐르는 물살에 배가 떠가듯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타고 흐르는 이야기가 감칠맛을 준다.
문학 장르 중 동화는 유일하게 판타지가 강점이다. 본심에 올라온 6편 중 1편만 광의의 판타 지에 끼어 넣을 수 있는 의인화동화였으나, 진부한 이야기여서 아쉬웠다. 판타지 동화는 동화 작가들이 꾸준히 올라야 할 큰 산이다.
[2020년 2분기 수상 작품 - 동시 부문]
아빠 읽기
박정식
온라인 수업 도와주는 아빠가 싱글벙글
요즘 너랑 노니까 기분 참 좋구나
하지만
나는 알아요
직장 잃고 애써 웃는
새벽같이 일어난 아빠가 휘파람
또 가보자 인력 대기소 허탕 치고 허탕 치고
그 어디
막일이라도
벌이 없나 골몰하는.
동시 부문 수상 소감
세상 모든 아빠가 고맙습니다
아파트 근처에 인력대기소가 있습니다. 산업 현장에 일일 단위로 일할 사람을 소개하거나 중
계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곳입니다. 그곳은 늘 꼭두새벽이면 사람들로 붐빕니다. 허름한 작업
복 차림과 가방 하나 둘러맨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직장을 잃고, 어떤 이는 가게 문을 닫고, 또 어떤 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생업을
접고, 마지못해 그곳을 찾습니다. 개별 일자리를 얻어간 날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예 일자리가 없거나 마땅한 일감이 없어 그냥 되돌아갈 땐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생
계를 책임진 아빠는 더욱 그렇겠지요. 그래도 가족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픕니다.
요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19로 무엇보다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그 인
력대기소마저 셔터를 내리고 있는 게 퍽 안타깝습니다. 인기척 없는 그 앞을 어떤 건장한 사람
이 마스크를 쓰고 지나갑니다. 혹시 우리 아이들의 아빠가 아닐까요?
“아빠, 빨리 오세요! 온라인 수업 시간이에요!”
발걸음 재촉하는 아빠 모습이 선히 보입니다. 아빠가 직장 일로 못 놀아줄 때는 서운하게 생
각하더니 이젠 아빠 마음을 제법 읽을 줄 압니다. 나는 가슴이 찡합니다.
내 조카네 가족 얘기도 별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아빠가 고맙습니다. 하루빨리
활기찬 날이 돌아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끄럽게 쓴 작품을 뽑아 주신 예심 본심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박정식
1991년 아동문예작품상 동시 당선동시집 〈자전거보조바퀴〉,〈우리대나무〉,〈비디오판독중〉외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등
[2020년 2분기 수상 작품 - 동화 부문]
슈퍼 히어로를 찾아
고수산나
“내가 사람들과 세상을 구했어. 이제 지구는 안전해. 나는 슈퍼 히어로니까.”
망토를 입고 하늘을 날고 거미줄로 빌딩 사이를 옮겨 다니고 최첨단 기능이 있는 옷과 가면을 쓰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주는 특별한 사람들. 그렇다. 나는 그런 멋진 영웅,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슈퍼 히어로가 아닌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초등학생 꼬마이다.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를 원래부터 좋아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완전히 푹 빠져 지낸 것은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뒤부터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는 집을 떠났고 그 뒤로는 쭉 아빠와 단둘이 살았다. 아빠는 작년에 공사를 하다 건물 더미에 깔려 돌아가셨다. 사람들이 콘크리트 조각들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굴삭기가 와서 건물 더미를 들어냈고 아빠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그 때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 있었다면 아빠는 죽지 않았을 거야. 세상 어디엔가 분명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가 있을 거야. 아니 내가 그런 슈퍼 히어로가 될 지도 몰라. 원래 슈퍼 히어로는 나 같은 고아가 많잖아.’
그런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도 아빠가 죽었다는 슬픔이 조금 덜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아파지려고 할 때마다 슈퍼 히어로 생각이라는 담요를 뒤집어쓴다. 그려면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이해 못한다. 벌써 같이 산 지 6개월도 넘었는데 말이다.
나를 이해 못하는 건 학교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학교에서 장래희망이 슈퍼 히어로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웃었다.
“영화에나 있지 진짜 슈퍼맨 스파이더맨이 세상에 어디 있냐?”
“야, 강선우. 나는 아이언맨이 되는 거 유치원때 졸업했다.”
하지만 딱 한 명,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얼굴이 까무잡잡한 윤수가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와서 진지하게 물었다.
“선우야, 슈퍼 히어로는 종류가 되게 많잖아.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도 있고. 넌 그 중에 어떤 게 되고 싶어?”
그 때부터 윤수와 나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선우야, 저녁 먹자.”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새로 산 식탁에 반찬을 올렸다.
“나 치킨 먹고 싶은데.”
“다음에 해 줄게. 오늘은 된장찌개 먹자. 여기도 고기 들었어야. 봐봐. 차돌백이.”
할아버지는 뚝배기 속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래 되어서인지 음식을 잘했다.
“느그 아빠가 차돌백이 된장찌개를 참 좋아했는디. 시골에서 나랑 농사짓자니께 너 도시에서 학교 보낸다고.”
할아버지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가 죽은 것이 내 탓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슈퍼맨~. 슈웅.”
나는 팔을 뻗고 어깨에 두른 무릎 담요를 펄럭였다. 마치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망토를 펄럭거리는 것처럼.
“아이고, 이 놈아. 밥 먹다가 먼지 나게 뭐 하는 짓이여. 인자 그런 짓 고만 좀 혀라.”
나는 망토를 내리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슈퍼맨은 내가 슈퍼맨이다. 너랑 같이 살려고 술이고 담배고 다 끊었단 말이여. 그것이 을매나 힘든 줄 아냐. 슈퍼맨도 그 둘을 한꺼번에 뚝 끊지는 못헐 것이다.”
할아버지의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이제 67세인데도 팔 십세는 넘어 보인다. 깡마른 체격에 손끝은 나무통처럼 딱딱하고 까끌하다.
며칠 뒤, 할아버지의 트럭을 함께 타고 장에 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유치원 버스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유치원 버스는 아스팔트에 끼인 살얼음에 미끄러져 길옆을 구르더니 저수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저수지가 깊진 않았지만 물이 버스 안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얼른 갓길에 차를 세우고 뛰어갔다. 그리고 나한테 휴대폰을 던져주며 소리쳤다.
“얼른 119에 신고해라, 얼른.”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는 저수지 아래로 첨벙 첨벙 내려갔다. 나는 너무 놀라서 휴대폰을 든 채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운전기사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차 안에 있는 선생님이 소리를 쳤다.
“도와주세요. 아이들 안전벨트부터 풀어야 해요.”
할아버지는 문을 열고 손을 뻗으려고 했다. 하지만 문이 바닥 쪽에 닿아 열리지 않았다. 차체를 들어 올려야 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끙끙대며 차문을 밀어보았다.
‘아, 이때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되는데. 저걸 삐쩍 마른 할아버지가 어떻게 들어. 누군가 와서 도와줘야 되는데.’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나 두리번거리다 그제서야 손에 쥔 휴대폰을 보았다.
나는 얼른 119에 신고를 하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차 안으로 물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겁이 나 더 크게 울었다.
“아이고 내 새끼들. 걱정 마라, 이 할애비가 구해 줄테니께.”
할아버지는 끙 하고 소리를 내더니 어깨로 차체를 밀었다. 다시 한 번 입을 꽉 다물더니 온갖 인상을 쓰고 윽 하며 차를 들어올렸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차가 조금 위로 들렸다.
할아버지는 차를 어깨에 멘 것처럼 기댄 채 아이들의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한 명씩 밖으로 꺼냈다.
나는 정말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슈퍼 히어로가 큰 차를 번쩍 들어 올리고 아이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다.
‘우, 우리 할아버지가 저, 저렇게 힘이 세다니. 말도 안 돼.’
할아버지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고 할아버지의 덩치도 엄청 커 보였다.
“선우야, 애들 받어라.”
나는 그제야 저수지 둑에서 올라오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아서 끌어 올렸다. 그렇게 아홉 명의 아이들을 꺼내고 물에 젖은 선생님을 끌어 올릴 때 구급차가 도착했다.
나는 트럭을 타고 집에 올 때까지 할아버지의 옆모습을 흘끔 흘끔 쳐다보았다.
‘우리 할아버지가 진짜 슈퍼 히어로였어.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이려고 늙고 초라한 할아버지 행세를 했나 봐. 원래 진짜는 자기 곁에 있어 알아보지 못한다더니.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슈퍼 히어로와 관계가 있을 줄 알았다고.’
영웅은 내 곁에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모든 규칙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아이고 삭신아. 선우야, 여기 어깨랑 등에 파스 좀 붙여라.”
할아버지는 멍이 들고 쓸린 어깨를 내밀었다.
‘나한테 정체를 숨기려고 아픈 척 하시는 거야. 큭큭, 할아버지, 나를 속일 수는 없어요.’
그 날 저녁 할아버지는 내내 끙끙 앓으셨지만 나는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안다.
‘할아버지, 비밀 지킬게요. 원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슈퍼 히어로의 정체를 숨겨주는 거예요.’
며칠 뒤였다. 할아버지에 대한 소문이 금방 퍼져 할아버지가 장한 의인상을 타게 되었다. 군수실에서 표창장을 받고 인터뷰도 했다.
“할아버지, 어떻게 차에서 아이들을 꺼내셨어요?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고 하던데.”
기자의 말에 할아버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겄네요.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애기들이 죽겄다는 생각이 드니께 나도 모르게 젖 먹던 힘이 나왔나 봅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럼 뉴스 기사에 올릴 사진 찍을게요.”
기자가 할아버지 앞에 사진기를 내밀자 할아버지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그라믄 내 얼굴이랑 기사랑 뉴스에 나간다요? 전 국민이 다 보게?”
“네, 그럼요.”
기자의 말에 할아버지는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를 불렀다.
“내 손자도 같이 찍어주셔라우. 나를 도와서 아이들을 같이 구했다니께요.”
할아버지가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얼떨결에 할아버지 옆에 섰다. 순간 이 기사를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엄마도 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물이 나오는 걸 참으려고 사진 찍을 때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 날 나와 할아버지는 군수님이 사 주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한밤중에 나는 잠이 깨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안방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전화 통화를 하시나? 이 밤중에 누구랑? 혹시.’
나는 드디어 할아버지의 정체를 알아챌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오늘 뉴스에 나가서 누군가 알아본 걸 거야. 아니면 정체가 탄로 났다고 대장한테 혼이 나고 있을 지도 몰라.’
나는 영화에서 본 이야기들을 끼워 맞추며 까치발로 할아버지 방으로 갔다. 빠끔히 열린 방문으로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내가 진실을 알게 될 때가 왔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내게도 들렸다.
“내 새끼 잘 있냐? 오늘 애비가 술 몇 잔 했다. 술 마시면 네 생각나서 우니께 그동안 술을 안 마셨거든. 근디 오늘 군수님이 따라 주는디 안 마실 수가 있어야제.”
할아버지는 전화통화가 아니라 아빠의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영준아, 니 새끼 걱정에 하늘에서도 눈을 못 감고 있지야? 걱정 마라. 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서 네 아들 내가 잘 키울란다. 잘 멕이고 잘 입히고 대학교까지 잘 갈친란다.”
할아버지는 아빠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울먹거렸다.
“고생만 하다 죽은 내 새끼. 무거운 거에 깔렸을 때 얼마나 아팠겄냐. 그 생각만 하면 내가, 내가.”
할아버지는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할아버지의 울음 소리를 들은 나는 놀라서 내방으로 후다닥 뛰어왔다.
‘나는 바보다. 할아버지가 슈퍼 히어로라면 왜 아빠를 구하지 않았겠어? 슈퍼 히어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구하는 건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할아버지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시골 농부다. 나도 슈퍼 히어로의 손자가 아니고 그래서 슈퍼 히어로가 될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내가 만들어낸 착각이었다. 슈퍼 히어로는… 다 가짜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이 따끔따끔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 가슴을 감싸고 있던 담요가 벗겨져 내 맨 상처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을 이불속에 대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나만 들릴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놀라서 내 방으로 뛰어오셨다.
“아가. 뭔 일이냐. 왜 그래?”
나는 할아버지의 러닝셔츠를 잡아당기며 울었다.
“할아버지,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는 왜 나 놔두고 죽어 버렸어요. 왜 아빠는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놀라서 나를 끌어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그래. 그동안 얼마나 참았냐. 울어라, 울어.”
할아버지가 내 등을 가볍게 문지르셨다. 한 시간도 넘게 운 것 같았다.
다음 날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학교에 갔다.
“너 밤에 라면 먹고 잤냐? 벌에 눈탱이를 쏘였냐?”
윤수의 물음에도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다. 교실에 들어 온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고 웃었다.
“우리 슈퍼 히어로가 어제 악당들과 한바탕 했나보네. 선생님도 뉴스에서 슈퍼맨 할아버지랑 선우랑 나온 거 봤다.”
“우리 할아버지 슈퍼맨 아니에요. 저도 슈퍼 히어로가 아니고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잖아요.”
내 말에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더니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슈퍼 히어로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초능력과 무기요.”
“멋진 옷이 있어야 해요. 영웅을 상징하는 옷이요.”
아이들의 대답에 선생님은 손사래를 쳤다.
“슈퍼 히어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희생에서 남을 구하려는 마음이야. 그런 마음이 없으면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없어. 오히려 악당이 될 수도 있지.”
나는 선생님의 대답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마음만으로는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없다. 초능력이나 무기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거니까.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어제 잠을 설쳐서인지 금방 잠이 들었다.
나는 저녁 준비를 하는 할아버지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가 나를 침대에서 벌떡 일으켰다.
할아버지는 초능력도 무기도 멋진 옷도 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양념치킨을 기가 막히게 잘 하신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으신 거다. 아빠를 구하지 못해서 나, 강선우라도 구하고 싶어서 말이다.
우수작품상 수상 소감
우리는 날마다 뉴스에서 각종 사고 소식을 듣습니다.
화재로 교통사고로 공사장에서 일하다 수많은 귀한 목숨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것을 늘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요즘 인기 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가 진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요. 그러면 수많은 고귀한 목숨들을 아슬아슬하게라도 구할 수 있을 텐데 하고바랍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을 구해주는 슈퍼 히어로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예전부터 슈퍼히어로를 꿈꾸는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나에게 특별한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아니 지금의 저도 꿈꾸는 일이거든요.
어쩌면 동화작가도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고 치유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한 아이의 인생을 변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단편을 발표한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아동문학평론에서 아평이 만난 작가로 선정되어 신작을 보내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써 놓은 단편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슈퍼히어로 생각이 나서 다행히 빨리 쓸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늘 막내(?) 같은 제가 등단한 지 22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동화를 써 온 저에게 큰 격려를 해 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꾸준히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약 력
1998년 샘터사 동화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아동문예 문학상에 ‘삽살개 이야기’가 당선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와 6학년 도덕 교과서,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동화가 실려 있으며, 작가와의 만남 강의를 통해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반에 도둑이 있다>,<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생>,<동물원 친구들이 이상해>,<콩 한쪽도 나누어요>,<뻐꾸기시계의 비밀>,<거꾸로 걸리는 주문>,<별에서 온 엄마>등 100여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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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두분을 응원합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