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제목 : 피난처 되신 여호와(시편 46편 1-11절)
◇ 들어가는 말
시편 46편은 개신교를 탄생시킨 시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백년전인 1517년에 중세 카톨릭의 종교적 독단과 독선에 대해서 독일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솔직히 마틴 루터는 일이 이렇게 크게 번질지 몰랐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카톨릭 교회는 마틴 루터와 같은 사람들이 카톨릭의 종교체계에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루터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마틴 루터를 담대하게 만들어 준 시편이 바로 오늘 읽은 시편 46편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루터에게 그가 쓴 책과 논문을 모두 취소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루터는 “나는 절대로 취소할 수 없습니다. 내 양심에 거슬리는 일을 한다는 것은 지혜로운 일도 아니며 바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내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용감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시편 46편의 시에서 얻은 용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편은 루터가 지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 585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찬송을 통해서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특별히 교회를 핍박하고 신앙을 박해하는 권력가들과 세속적인 세력을 대항해서 영적인 투쟁을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편은 애용되어 왔습니다.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추도식장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이 지켜보고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추도사에서 연설가로 유명한 그가 연설을 하지 않고 일체의 정치적 발언도 없이 그냥 구약성경 중 시편 46편을 읽고 단상을 내려갔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바마 대통령이 2011.9.11 10주년 추모식장에서 성경 시편 46편을 읽은 것은 그가 했던 어느 연설보다 참으로 명연설이었습니다. 설교자도 알아야 합니다. 본문 보다 더 위대한 설교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를 누가 쓴 것인지가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통해서 절망 가운데 희망을 품고, 어려움 가운데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시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 진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 46편도 제목을 보면, “고라 자손의 시”라 했고,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라고 했는데, 여기 “알라못”은 ‘처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가리키는 뜻으로 오늘로 말하면 ‘소프라노’를 뜻한다고 합니다. 처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만들어진 배경이 출 14장-15장인데,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를 따르던 애굽 군대는 물속에 수장 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큰 도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후에 모세가 하나님께 노래로 영광을 돌렸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여인들이 소고를 치며 춤을 추며,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라” 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사건이 배경이 되어 처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그런데 시편 46편의 내용을 가지고 보면,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이런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우선, 다윗만 해도 얼마나 많은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까? 또 이사야 예언자도 하나님에 의한 승리의 확신을 노래할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시편 46편은 어느 한 사람만의 시라기보다는 큰 어려움을 겪거나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즐겨서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만큼 이 시편 46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과 안전을 주는 시입니다.
또한 시편 46편은 ‘셀라’를 기준으로 3개의 연으로 나눠지며(1-3절, 4-7절, 8-11절). 1연에 첫 부분, 그리고 2연과 3연의 끝부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라는 말이 본문에 세 번 나오는데 문자적인 의미로는 ‘목소리를 높이다, 찬양하다’는 뜻이다. 음악적으로 찬양이 최고수준에 달할 때, 지휘자가 잠깐의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반주자가 간주곡을 연주하는 멘트와 같은 것을 말한다.
<배경> 오늘 말씀 시편 46편은 구약성경 열왕기하 19장을 배경으로 기록한 고라 자손들의 시입니다. 주전 720 년경 히스기야가 유다를 다스리던 때에 앗수르왕 산혜립이 유대 땅을 침략했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정복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의 군사력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습니다. 그들은 파죽지세로 유대 땅을 쳐들어온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그들과 도저히 싸울 능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앗수르왕 산혜립이 요구한 대로 공물을 바쳤습니다. 금과 은을 모아서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지 않고, 유대의 항복을 받아서 통째로 삼키려는 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너희가 항복하지 않으면 멸망시키겠노라는 소식을 듣고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하룻밤에 앗수르의 군사를 치셨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밤에 십팔만 오천 명을 죽이신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산혜립이 놀라서 자기나라로 도망가고,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 노래가 시편 46편입니다.
1.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십니다.<1-3절>
시의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환난 중에 만날 도움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이 오더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연 현상 중에서 땅이 변하는 것, 산이 바다 가운데 빠지는 것, 바닷물이 넘치는 것, 산이 요동하는 것 등은 모두 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어려움을 만난다고 해도 하나님을 힘으로 믿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2절과 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흔들리거나 파도가 쳐도 두려움이 없다.
2.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도성을 묘사합니다.<4-7절>
두 번째 부분(4~7절)에서는 이른바 시온, 예루살렘에 대한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물이 없습니다. 4절의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라는 표현은 창세기 2장 10~14절에 나오는 낙원에서 흘러나오는 강에 대한 이미지를 연상시키게 됩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이 난공불락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튼튼한 성벽이나 자연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이신 하나님께서 그 성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또한 오늘 이 시간에 가장 우리의 마음에 깊이 파고드는 구절은 아마도 5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는 표현이 우리의 피곤함을 날려버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새벽에 우리를 도우십니다. 왜 그럴까요? 때 묻지 않은 하루의 첫 시간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고유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벽은 하루의 첫 열매이므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을 깨우는 자, 새벽에 기도하고 새벽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새벽은 우리의 영혼도 가장 맑고 투명한 시간이며,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 또한 가장 높은 시간입니다.
주님도 자주 새벽에 기도하셨고, 홍해도, 만나도, 여리고 성도 다 새벽에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8절)“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10절)“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부디 새벽에 기도하시므로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과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보다 깊이 체험하고 확신하는 축복이 있으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시냇물이 흘러 도성을 둘러 흐른다. 높은 성 주위에 강물이 흐른다. 강은 성벽 외곽에서 도리어 외부의 접근을 더욱 철저하게 차단한다.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강은 성에 맑은 물을 공급한다. 성은 건강하다. 하나님께서 계신 성이다.
3. 하나님께서 모든 전쟁을 그치게 하십니다.<8-11절>
세 번째 부분(8~11절)은 구약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워주시는 ‘거룩한 전쟁’의 개념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9절에서 ‘전쟁을 쉬게 하는 일’, 10절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는 표현, 그리고 11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라는 임마누엘의 표현은 그 당시에 ‘거룩한 전쟁’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주도권이 여호와에게 있으며,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싸워주실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물리쳐 이길 수 있는 믿음의 확신을 근거로 해서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전쟁은 자기편 진영의 승리는 자기들이 믿는 신의 승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 중에서도 ‘군’이라는 용어가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 하나님은 전쟁의 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홍해바다 앞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는 여호와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될 것이다.
◇ 나가는 말
시편 46편은 ‘임마누엘’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시편 46편의 마지막 구절이야말로 이 시를 쓴 시인의 신앙고백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기 위해서는 시편 46편 시인이 보여준 대로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이고 나의 산성이 되신다는 것을 시인하며 우리 앞에 주어지는 삶의 다양한 어려움을 능히 이겨내며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