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쇼핑 바구니
개나리가 담장 아래로 소풍을 왔다. 엄마 뒤를 종종 따라다니는 노란 병아리처럼 사랑스럽다. 언제부터인가 길가에 개성을 외면당한 채 시루를 엎어놓은 머리 스타일로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서 있는 개나리를 보면서 왠지 슬퍼졌다. 싹둑싹둑 일자로 커트를 하고 무덤덤하게 서 있는 개나리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처럼 느껴져서 조금은 쓸쓸하다.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퍼즐 놀이를 하고 있다. 자동차 박람회를 방불케 하는 주말의 도로는 숨이 막힌다. 쇼핑센터로 가는 길이 두루마리 화장지를 줄줄 풀면서 가는 것처럼 축축 늘어진다. 단세포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나에게는 대형마트를 가는 일이 색다른 이벤트다.
혼자서 대형할인점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지인들과 함께 쇼핑하다가 일행을 놓치고 혼자 남게 되면 미아가 된 기분에 불안한 적도 있었고, 더 솔직히 말을 하면 혼자 이렇게 넓은 공간에서 쇼핑하다가 길을 제대로 찾아 나올 수 있을까? 두려운 생각도 했었다. 함께 하는 쇼핑은 즐겁다.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카트를 끌고 다니면 얼마나 신이 날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만년필을 사러 백화점에 가면 만년필만 사고는 바로 나오는 단세포적인 여자다. 어쩌면 재미없는 여자인지도 모른다. 은행에서 일 보는 일도 카드로 현금을 인출해서 쓰는 일 외에는 창구 여직원에게 다 맡긴다. 그러고 보면 잘하는 일이 없다. 정신적으로 머리를 쓰는 일은 글을 쓰는 일 외에는 귀찮아하는 스타일이다.
내 안에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쁜 옷을 사러 백화점에도 간다. 가끔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먹는 것도 좋아하고, 비행기 트랩을 여행 가방을 들고 오르는 것도 즐긴다. 가장 부르주아적 여자이면서 가장 프롤레타리아적인 여자라고 누가 그랬다. 네 겹짜리 화장지 한 통과 크리넥스 한 봉지. 그리고 씨가 없다는 탱글탱글한 청포도 한 통,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하임 비스킷 한 통, 착한 쇼핑 바구니다. 청포도 향기가 가득한 주말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