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맞이 -
2013년 12월 30일(월). 우리 부부의 결혼 13주년 기념일이다.

아내가 준비한 조촐한 식단은 김치볶음밥과 샐러드이고, 머핀 케잌에 초를 꽂았다. 바닥에 깐 종이는 HEB라는 여기 마트에서 몰래 왕창 가져온 광고지이다. (나는 평소에 밥을 기다릴 때도 저것을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한다. 크크.. 저 안에도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하다.) 아무튼 미국 땅에서 맞이하는 결혼기념일이라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 내년에는 플로리다 같은 곳에 가서 맞이하고 싶다...
2014년 1월 1일(수).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이국땅에서 지내는 우리 가족에겐 새해 아침이라 해도 특별한 의미가 없다. 올해가 무슨 띠의 해일까? 모르겠다... 다른 식구들이 일어나지 않은 시각에 혼자 거실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며 모두들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 어린이공원 -
오전 내내 영어공부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까지 집안에서 토플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은 너무 지겹기 때문이다. 오늘의 행선지는 리오비스타파크. 오늘은 웬만한 곳이 다 쉬기 때문에 마땅히 갈 곳도 없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인지라 금방 도착했는데, <리오비스타파크>보다는 <어린이공원>이 사람도 많고 멀리서 봐도 재미있어 보였다.

멀리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공원 간판과 안내문. 안내문 중에 특별한 대목은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 주변에 바비큐 시설들이 군데군데 있는데도 그렇다. 날씨 따뜻해지면 여기 와서 고기 구워 먹으면 좋겠다.

가까이서 보면 이렇다. 아이들이 와서 놀기 좋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저런 시설물에 달라붙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안에서만 놀던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즐거워했다.
저렇게 놀고 있으면 아이스크림 차가 와서 요란한 소리를 내고, 그러면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색소가 잔뜩 들어있어 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온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 놀고 나니 시들해졌다. 한번은 몰라도 별로 다시 오고 싶지는 않은 곳. 집사람 말이 “여기는 다 가난한 집 애들만 와서 노는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차림새들이 하나같이 남루하고 땟구정물이 흐르는 히스패닉들의 세상이다.

- 서브웨이 -
여기 와서 겪은 재미있었던 경험을 소개하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서브웨이에 갔었다. 이게 한국에서도 본 것 같은데,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여기는 패스트푸드점이면서도 소비자가 기호에 맞게 재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고, 그래서 우리 가족처럼 영어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기서 샌드위치 하나 먹는 것이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다.

그냥 돈만 내고 주는 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순서를 따라야 한다.
1) 메뉴를 고른다.
Footlong, 6-inch, Salad, Flatbread 이렇게 네 종류가 있다. 나는 당연히 뭐가 뭔지도 모른다. 게다가 알아도 점원이 말을 빨리해서 알아듣지 못한다.
2) 빵을 고른다.
9-grain wheat, 9-grain honey oat, Italian, Italian herbs & cheese, Flatbread 다시 다섯 종류가 있다.
3) 치즈를 고른다.
American, Monterey Cheddar 둘 중에 고른다.
4) 안에 들어갈 채소를 고른다.
Lettuce, Tomatoes, Cucumbers, Peppers, Red Onions 다섯 가지가 있다. 여기는 아는 단어가 좀 있을 거다. 토마토... 그런데, 여기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을 때는 Pickles, Olives, Banana peppers, Jalapenos 중에 고를 수도 있다.
5) 소스를 고른다.
Mustard, Honey Mustard, Sweet Onion, Red wine vinegar 이렇게 넷 중에 고르고, 이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면 Light mayo, Chipotle Southwest, Ranch mayo, Oil 중에 골라도 된다.
6) 음료를 고른다. 이젠 다 귀찮아서 콜라라고 했다.
친구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는 것도 없고 알아듣지도 못해서 아무거나 막 찍었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는데, 종업원도 답답해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도 보였다.
그 결과로 이런 것이 나온다. 이게 Footlong 사이즈인데, 하나 시켜서 둘이 나눠 먹으면 딱 맞는다. 저게 길이가 30cm인 모양이다.

맛있었다. 아무거나 되는대로 다 처넣고 만든건데도 희한하게도 맛있었다. 하하하...
- 미국인들에게 느끼는 감동 -
이번에는 감동적인 경험이다. 여기 와서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남은 하나가 은행에 가서 계좌를 트는 일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Bank of America 샌마커스 지점이다.

일단 시작부터 나의 무지가 불편함을 초래했다. 여기 보면 Wells Fargo 라는 곳이 있다. 혹시 친구들은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아는가?

이름이 그래서 그렇지 저기도 은행이다. 그것도 샌마커스에 최초로 생긴 국가은행이다. 지점의 크기도 BOA보다 크고, 결정적으로 저 은행의 지점은 학교 안에도 있다. 그것도 학생회관에...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리 없는 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미국은행은 토요일에도 영업을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상식이 없는 것이... savings account와 checking account의 차이를 바로 전날에 인터넷을 보고서야 겨우 알고 갔다. 그러면서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나같은 사람에게 savings account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더라구. 이거 우리식으로 말하면 예금아닌가?
은행원은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나를 보더니 두 계좌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해가 안되고... 그런 나같은 사람을 놓고 차분하게 설명을 하는데... 참... 듣고 있는 내가 민망해... 내가 웬만하면 전부 예스라고 하고 끝내겠는데, 이게 하필이면 돈이 걸린 문제라 그러지도 못하고... 결국 참다못한 여성이 전화에 대고 뭐라고 하더니 통역사를 대줬다. 야... 정말 좋은 세상이더라. 내가 말만 하면 지지배가 영어로 통역해줘. 근데 난 이것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해서 통역사한테 질문을 했지. “제가 여기 유학생인데, 세이빙스 어카운트도 만들어야 해요?” 크크... 지지배가 어이가 없었을 거다... 지지배는 대답은 안하고 통역만 했다. 이제야 사태를 깨달은 나. 저렇게 하려면 나는 통역이 필요없는데... 내가 통역사한테 너 꺼지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앞에 앉은 여성을 봐서 참았다. 지지배가 싸가지가 없더라구.
우리가 흔히 Be patient라는 말을 한다만, BOA의 이분만큼 그 말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싶다. 나같은 사람을 놓고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차분하게 설명을 하고 안내를 하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며칠 후에도 등록금내러 갔었는데, 나를 보더니 일어나서 내게로 오더니 악수를 청하더라구. 정말 영광이었다. 사람이 참 괜찮거든...
사족:
1) 12월31일 밤이었다. 거실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계속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돌 부딪히는 소리로 들려서 어리둥절했는데, 시계를 보니 밤 12시였다. 새해를 맞아 쏘는 폭죽이로구나... 그렇지만 밖에 나가보지는 못했다. 폭죽소리에 섞여서 총소리도 같이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밖에 나가기는커녕 거실의 불도 끄고, 방으로 올라갔다. 여기 와서부터 무슨 소리만 나면 그것을 총소리로 생각하는 나...
2) 동네가 그래서 그런지 길을 다니면서 보면 여기도 가난한 사람들이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은 집을 손질도 못하고 살아서 밤에는 귀신 나오게 생긴 곳이 한 둘이 아니다.
3) 어린이공원에서 본 아이스크림 차가 내보내는 음악은 ESL교재에도 나올 만큼 유명하다. (그런줄 알았으면 동영상을 찍어놓는건데, 사진 한 장이 없다. 당시에는 그 가치를 몰랐거든...) 음악만 들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아이스크림을 생각나게 하는 것인데, 이런 것을 Earworm이라고 한다. 축구경기할 때의 응원구호 대한민국!!! 이런 것도 대표적인 예다.
4) 비단 은행원뿐만 아니라 이곳에 와서 만난 여러 미국인들이 보여준 친절과 배려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평가함은 단지 1인당 GNP만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님은 분명하다.
첫댓글 I love Subway! 그리고 은행원과 친해지셨으니 자주 놀러가세요. 그게 바로 현지영어 실력 향싱의 지름길입니다! 저도 친절한 미국인들 참 많이 만났습니다. 미국, 선진국 맞습니다!
제가 올리는 글에 그런 이야기가 계속 나오겠지만, 한국과 미국이 이제는 하드웨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문화나 생활방식 더 나아가서 시스템에서는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었어요. 한국이 미국을 1인당 지엔피로 따라잡는 것은 오히려 가능해보이는데, 시스템적인 부분에서는 더 오래 걸릴것 같네요.
Austin에 있는 Costco 가보세요. 쇠고기, 각종 식품, 공산품 좋아요. membership만드시구요. 한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Costco, 4301 W William Cannon Dr, Austin
네 알겠습니다. 코스트코는 한국에서도 다니던 곳이라 더욱 친숙합니다. 어차피 한인마트 가려면 오스틴 한번 가야 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