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원죄를 갚지 않는 나라ㅡ백린, 탄저균, 그리고 철수라는 선택지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7월 28일 오후 5시 7분, 평택 오산기지에서 백린이 흘러내렸다. 대피령이 내려졌고, 36분 만에 해제됐다. 미군은 "위험성이 낮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장면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2015년, 살아있는 탄저균이 페덱스 택배로 이 기지에 배달됐던 그 사건이다.
10년의 시차를 두고 반복되는 이 데자뷰 앞에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관리 부실"이라는 설명에 만족할 수 없다. 왜 반복되는가. 그 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된 곳에 있다.
청산되지 않은 원죄
미국이라는 국가는 원죄 위에 세워졌다. 원주민의 땅과 생명을 수탈한 토대 위에서. 노예제는 남북전쟁이라는 참혹한 값을 치르고서야 청산의 실마리를 잡았지만, 원주민 학살은 아직도 미해결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이를 '제노사이드'라 부르고, 뎁 홀란드 내무장관이 "이 나라는 제노사이드 위에 세워졌다"고 말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 스스로도 이 빚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원죄가 왜 오산기지의 백린과 탄저균으로 이어지는가. 그것은 이 원죄의 핵심이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타자의 생명은 부차적으로 취급해도 무방하다"는 인식체계이기 때문이다. 그 인식체계가 19세기에는 원주민에게, 21세기에는 동맹국 국민에게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형식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구조는 그대로다. 청산되지 않은 원죄는 반드시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이런 사고가 만약 미국 동부의 인구밀집지역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면, 미군은 정말 "위험성이 낮다"는 한마디로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감정은 쌓인다, 그리고 넘친다
탄저균이 처음 알려졌을 때 한국 사회는 충격을 받았지만, 분노보다 불안이 앞섰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백린 사고가 반복된 지금, 반응의 결이 달라졌다. 이번엔 불안이 아니라 피로와 냉소다. "또야?"라는 반응,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조용한 확신 — 이 나라는 우리의 생명을 정말로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확신.
이것이 무섭다. 왜냐하면 의사결정의 최상위에 있는 것은 정교한 손익계산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이다. 논리는 협상 테이블 위에서 조정될 수 있어도, 축적된 배신감은 협상되지 않는다.
사고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한국 국민의 마음속 계좌에는 조용히 손실이 쌓이고, 그 계좌가 일정 수위를 넘는 순간 — 그 어떤 안보 논리도 그 감정을 되돌리지 못한다.
지금 한국 국민에게 미국은 이미 예전처럼 "보탬이 되는 나라"가 아니다. 이 문장을 미국은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일방적으로 얹혀사는 약소국이 아니다. 반도체와 방위산업, 조선과 배터리로 미국의 기술패권을 떠받치는 대등한 기술동맹의 한 축이다. 대등한 파트너를 관리 대상으로 계속 취급한다면, 그 착각의 대가는 결국 미국이 치르게 될 것이다.
미군철수, 이제는 금기가 아니라 전략이다
여기서 나는 논의를 한 걸음 더 확장하고자 한다. 감정적 충돌이 계속 쌓여가는 이 구조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보다, 이제는 주한미군 철수를 진지한 전략적 선택지로 검토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 반미가 아니라 냉정한 계산이다. 한국군은 이미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을 압도한다. 확장억제(핵우산)는 자동 발동 장치가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약속일 뿐이며, 그 이행 가능성을 100%로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반면 평택·오산의 기지는 억지력인 동시에 중국·러시아의 표적 1순위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이라는 '인계철선'은 미중 충돌이 벌어지는 순간 한반도를 자동으로 전장에 편입시키는 장치이며, 이 좁고 초고밀한 국토에 26기의 원전과 촘촘한 송전망이 얹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위험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이 한국을 방어할 전략적 유인은 주한미군의 주둔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존재한다. 한국의 반도체와 첨단기술 공급망이 어떤 형태로든 상실되는 것은 미국에게 단순한 동맹 상실이 아니라 기술패권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상군의 상시 주둔이라는 형식에 집착할 이유는 점점 옅어진다.
필자는 이미 철수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 충분히 언급해두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569
그리고 여기에 원죄의 문제가 다시 얹힌다. 만약 미중 충돌이 현실화되어 기지가 공격받는다면, 그 기지에 집적된 생물학적 실험 물질(주피터 프로그램)의 유출은 재래식 피해를 훨씬 능가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그 재앙의 첫 번째 피해자는 언제나 한국 민간인이다. 평시에는 백린과 탄저균으로, 전시에는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 같은 인식체계가 낳는 위험은 형태만 바꿔 반복된다.
감정의 손실 앞에서, 미국은 원점에 서야 한다
동맹은 신뢰 위에 선다. 신뢰가 무너지면 동맹이라는 건물도 함께 무너진다. 지금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홍보문구가 아니라, 자신의 원죄를 직시하고 그 원죄가 낳은 인식체계 — 타자의 생명을 부차적으로 취급하는 습관 — 를 스스로 바로잡는 일이다. 그 성찰 없이는, 백린과 탄저균은 다른 이름으로 계속 되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제, 그 반복을 감정으로만 견디는 나라가 아니다. 스스로의 안보를 재설계할 힘과 권리를 가진 나라다. 청산되지 않은 원죄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 — 이것이 미국이 지금 한반도에서 다시 배워야 할 교훈이다. 이젠 떠나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