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파랑길 47코스 제1부 역방향
섬진교 동단-하동송림-하동포구공원-주교천교-객길마을
20220125
47코스는 거리가 27km가 넘는다. 그 길이 평탄하여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27km 거리를 9시간(점심+저녁 포함)에 걸으며 풍광을 감상하고 지리적 위치를 확인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냥 종착지까지 따라 걷는 것만으로 한 코스를 끝냈다고 만족하면 되는 일일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는 미국 시인의 말을 되새기며 불완전한 앎을 채우는 경험을 더 폭넓게 체험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남파랑길 하동지역 코스를 이어간다.
남파랑길 47코스를 역방향으로 진행한다. 역방향길은 섬진강 동쪽 강변 하동포구 팔십리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섬진강 서쪽 강변에는 강을 따라서 광양시 진월면의 여러 마을들이 펼쳐져 있다. 하동포구 섬진강변은 곡선을 그리며 하동읍 광평리·신기리·목도리, 고전면 신월리·전도리 지역을 흘러가며, 강변에 넓은 모래밭을 만들면서 비교적 강 언덕이 낮아 섬진강에 바싹 붙은 곳이거나 가까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강과 밀접한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삶이 곧 강이 되고 강이 곧 삶이 된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였다.
섬진강은 남한에서 낙동강, 한강, 금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 섬진강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무산 능선 아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생명을 마치고 남해 바다에 몸을 푸는 강이다. 고려 우왕 11년(1385) 왜구가 침략하였을 때, 수 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떼를 지어 울어대자 왜구가 놀라서 물러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 '섬진(蟾津, 두꺼비 나루)'인데, 이 지명이 강 이름으로 굳어져 '섬진강(蟾津江)'이 되었다고 한다. '섬진(蟾津)'은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쫓비산 아래, 관광지로 유명한 '광양 매화마을'이 있는 섬진강변에 있었던 군사 요충지였다고 한다.
섬진강을 따라가며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집 <섬진강>을 생각한다. 김용택이 그리는 섬진강은 강 상류 이야기이다. 강의 유년기나 청년기라고 해야 할까? 그러므로 유속이 빨라서 그 명랑한 흐름과 색채가 다양할 것이다. "세상은 별것이 아니구나/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은/ 누구누구 때문이 아니구나./ 새벽잠에 깨어/ 논바닥 길바닥에 깔린/ 서린 낀 지푸라기들을 밟으며/. . ./ 마을마다/ 몇 등씩 불빛이 살아 있고/ 새벽닭이 우는구나."(김용택의 '섬진강12'에서) 반면에 남파랑길 47코스의 섬진강은 강의 하류, 바다에 다가가는 강의 노년기, 죽음을 향해 나가면서 먼 길을 걸어온 생을 추억하는 흐름이기에 유속은 유장할 것이다. 그래서 그 노래는 유장하고 애잔한 색채가 반짝일 것이다.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에 물새가 울고/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에 달이 뜹니다."(남대우의 '하동포구'에서) "다도해 가는 길목 섬진강 물은/ 굽이쳐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팔십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 주오."(정두수의 '하동포구 팔십리'에서)
하동포구 팔십리를 급하게 따라가며 섬진강 풍광을 마음껏 즐겼다. 빠른 발걸음에 유장한 가락의 애잔한 색채가 반짝반짝 빛나는 겨울 오후, 보슬비가 내린다. 봄비처럼 내리다 그친다. 강변의 매화나무 꽃망울은 푸른 빛을 띄고서 하구(河口)로 향하는 섬진강에 속삭인다. "그대, 긴 생애를 굽이굽이 아름답게 장식했으니 이제는 쉴 때가 다가오네요. 수많은 만남의 긴 과정, 그대는 봉사와 희생의 즐거운 길을 잘 가꾸셨습니다. 안녕히!"
2부로 이어짐
광양 매화마을은 왼쪽 맨뒤 쫓비산 아래 어림된다.
왼쪽 뒤에 하동공원의 섬호정이 보인다.
신앙은 인간생활에 의의와 목적을 부여하며, 인류는 국경을 초월하여 형제가 될 수 있으며, 경제적 정의는 자유기업을 통해서 자유인에 의하여 최선으로 달성되며, 정치는 법률에 기반을 두며 인간의 자의로 행해질 수 없으며 이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보배가 인간의 개성 속에 있으며, 인류에의 봉사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임을 우리는 믿는다.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에 물새가 울고/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에 달이 뜹니다.
섬호정 댓돌 위에 시를 쓰는 사람은/ 어느 고향(故鄕) 떠나온 풍류랑(風流郞)인고.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의 굽도리배야/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에 봄을 실어라.
백사장(白沙場) 모래 위에 남아 있는 글자는/ 꽃바람에 쏠리는 충성 충자(忠誠忠字)요.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의 물결이 고와/ 하동포구(河東浦口) 팔십리(八十里)의 인정(人精)이 곱소.
쌍계사(雙磎寺) 종(鐘)소리를 들어보면 알께요/ 개나리도 정답게 피어줍니다.
-남대우(南大祐, 1913~1948)의 시 '하동포구(河東浦口)'(1935년)
태초에 세상이 창조되던 때, 태양빛이 지리산 끝에 닿아 삼족오가 태어나고, 달빛이 섬진강에 맺혀 황금두꺼비가 태어났다. 그리고 하늘은 삼족오를 하늘과 땅을 잇는 전령으로, 두꺼비를 지리산과 남해를 잇는 섬진강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두꺼비는 그렇게 섬진강을 지키면서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던 천 년 전의 어느 날, 왜구들이 남해 바다를 통해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인근 마을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금두꺼비는 수많은 작은 두꺼비 떼를 이끌고 나타나 왜구를 물리쳤고, 재난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오랜 세월 섬진강을 지켜오던 두꺼비는 기력이 다 하게 되었고, 이내 보름달이 떠오른 섬진강으로 몸을 던져 강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그런 두꺼비의 희새을 감사히 여기며 두꺼비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삼족오가 나타나 섬진강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두꺼비는 천 년이 지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2018년 12월, 하동청년회의소 50주년을 맞아 하동의 정신을 일깨우고 다음 하동 백 년을 이어가기 위해 섬진강 깊은 곳에서 두꺼비 바위를 끌어올려 천 년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환생시켰다.
황금두꺼비 조형물은 벚꽃문양을 형상화한 화강암 받침석에 섬진강 만지 배밭에서 출토된 매화석으로 폭 1.2m 높이 1m의 큰 두꺼비(복두)와 폭 30∼50㎝ 높이 25∼30㎝의 작은 두꺼비 네 마리로 만들어졌다.
행운(복두), 자식(떡두), 액막이(업두), 사랑(짝두), 마지막 100년을 바라보는 혜안과 지식을 얻게 해주는 덕두, 이렇게 다섯 마리의 두꺼비를 만지면서 소원을 기원하면 천년의 기적이 이루어진다.
강화유리 표면을 깎아 새긴 에칭이미지가 입체감을 준다. 섬진강 물을 긷는 모습과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추억이 새겨져 있다.
옛 섬진교 건립연도의 교명주(橋名柱)에 단기 四二八六년 三월(1933년 3월)이 적혀 있다. 연도가 정확한 것일까? 옛 섬진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영호남 사이의 물량이동과 식량수탈을 위해 1933년 10월 공사에 착수해 약 2년간의 공기를 거쳐 1935년 7월 완공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군을 막고자 7월 25일 폭파했다가 1960년 2월 복구되었다. 1986년 옛 섬진교 옆에 새로운 섬진교가 가설되면서 두 다리가 공존하다가 2002년 옛 섬진교가 철거되었다. 2016년 '기억의 벽' 완공.
섬진교는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와 과양시 다압면 신원리를 이어준다.
불암사 윗 산봉은 무동산, 가장 높은 산봉은 불암산
경상남도 기념물 제55호인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 하동도호부사(河東都護府使) 전천상(田天祥)公이 섬진강변의 바람과 모래를 막아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해 광평리 일원에 심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1935년 섬진교를 준공(竣工)하고 홍수 방지를 위한 제방공사를 하면서 송림의 일부가 훼손되어 지금은 7881평에 620여 주의 노송(老松)과 300여 주의 작은 소나무가 전국 제1의 인공 숲을 이루고 있다. 맑고 푸른 섬진강이 감돌아 흐르고 백사장과 어울려 빼어난 풍광(風光)을 자랑하는 백사청송(白沙靑松)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이자 군민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거친 모래바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소나무의 선비 같은 기상을 본받고 백성을 사랑한 목민관(牧民官)의 애민정신을 기리고자 여기 송림의 유래를 적어 알린다.
2005년 2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경남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와 전남 광양시 다압면 월길리를 이어주던 경전선 폐선 철교(1968~2016). 하동군은 폐선 섬진철교를 새롭게 개발하여 2019년 7월 26일 '알프스 하모니 철교'라는 이름으로 관광자원화하였다.
전동차가 광양에서 하동을 향하여 섬진철교를 건너고 있다.
남파랑길 47코스는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47코스의 시작지점은 가운데 맨끝에 보이는 금오산 뒤 남해대교이다.
하동읍 비파리(신비지구)의 하동비행기장이 폐쇄된것을 환영하고 있다. 하동군에서는 이 부지에 '하동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섬진강 그림벽에 '삶이 곧 강이 되고 강이 곧 삶이 되다.'
전라도 땅 한 귀퉁이/ 다압이라는 동네/ 섬진강 따라 흐르고
맞은편 경상도 땅/ 강바람 시린 곳/ 하동이라는 동네/ 왼손잽이 총각머슴처럼/ 슴벅거리는 눈으로/ 강 건너 보며 늙는다.
다압 뒷산 무등사(無等寺)/ 조석 예불소리에 한소식 얻어/ 섬진강 잉어들은 모두/ 가슴 들어낸 목어가 되고
건너편 하동 땅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고무줄넘기 한/ 범종(梵鐘)소리에 귀 뚫려/ 경전선, 기적소리만 울려도/ 합장을 한다.
가까운 이웃은 정이 얽혀/ 아픈 원수 되기 쉽다고/ 5월, 아니 까마득한 그 이전부터
섬진강은/ 불러야 대답하는 그리운 거리만큼/ 떼어놓고 흐른다.
하동광양 섬진강 재첩잡이 손틀어업은 국가중요어업유산 7호로 2018년 지정되었다고 한다.
멀리 뒤쪽에 구름에 가린 광양의 쫓비산과 그 아래 섬진강변의 매화마을, 강 건너 왼쪽의 불암산. 오른쪽 뒤 하동공원과 섬호정,송림공원, 강변을 따라 걸어온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국도2번의 붉은 무지개 모양의 섬진강대교가 보인다.
섬진강변에 자리잡은 하동군 하동읍 시가지 건물들과 하동공원이 보인다. 오른쪽 마을은 하동읍 신기리 하저구마을이다.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 현대오일뱅크 세계화목도리 주유소 앞으로 진행
독도에 대한 사랑과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한 욕설이 적나라하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아!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일본놈과 결혼했다." 일본인 매제와 애증의 관계로 얽히게 되는 내용이다.
강 건너편은 광양시 진월면 송금리 금동마을, 그 왼쪽의 산봉은 삼봉산
하동읍 목도리 국도2번 섬진강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하동포구공원으로 이어간다.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섬진강변 대숲에서 허준의 장례 행렬을 촬영했다는 광고문이 하동포구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하동포구 아가씨 - 정두수/작사, 박춘석/작곡, 하춘화/노래
쌍돛대 님을 싣고 포구로 들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진 물결 위엔 꽃잎이 진다/ 팔십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 주오.
흐르는 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지리산 낙락장송 노을에 탄다.
다도해 가는 길목 섬진강 물은/ 굽이쳐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팔십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 주오.
왼쪽에서 횡천강이 섬진강에 합류한다. 오른쪽 강 건너편 강변에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거북등이 보인다.
하동군 하동읍 목도리에서 횡천교를 통하여 횡천강을 건너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로 넘어간다.
습지는 앞쪽 뎈길이 있는 곳은 신월습지, 대나무숲이 있는 곳에서 신월습지까지는 섬진강 습지공원으로 구분하는 것 같다.
신월습지 물억새밭 사이로 난 뎈길을 걸으면 재첩식당 앞으로 나온다.
섬진강대로에서 월진, 신방, 선소마을 갈림목인 신방교차로, 남파랑길은 오른쪽 신방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왼쪽 섬진강대로는 하동포구터널로 들어가고 남파랑길은 오른쪽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공원 팔각정자에서 점심을 먹고 신방마을로 향한다.
신방교 아래를 통과하여 강변길을 따라서 신방마을로 향한다.
섬진강 건너편은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돈탁마을이며 사진 중앙 건너편 강변에 나즈막하게 솟은 언덕이 거북등이다. 거북등 전설은 아래 이정표에 적혀 있어서 확인하고 살폈다.
거북등 전설 안내가 하동군 전도면 신월리 강변에 세워져 있다. 거북등 전설은 거북등이 있는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거북등터널 앞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이쪽은 이쪽대로 두고 저쪽에도 설치해야 한다. 이쪽에서 보면 더 잘 보이기 때문에 이쪽에 설치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정작 거북등이 있는 곳에는 설명판이 전혀 없는 것이 문제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광양시 진월면 오사리 돈탁마을 북쪽에 위치한 바위 등성이는 거북이 등과 흡사한 형상이다. 이 거북등에는 재미 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옛적 어느 비오는 여름날 큰 거북이가 섬진강변으로 어슬렁거리며 기어나왔는데 그 모습이 흡사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아 마을 처녀가 놀라 “산이 움직인다”고 소리치자 순간 거북이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우뚝 산이 솟아 버렸다고 한다. 거북이가 목을 쭉 빼고 섬진강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의 산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거북등이라 했는데 그 뒤 일제시대에 '돈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마을 앞에 '구인정(龜仁亭)' 정자가 있다.
국도19번 섬진강대로 왼쪽 마을은 선소마을
하동포구교를 건너 섬진강피크닉광장 파크골프장으로 넘어간다.
섬진강 하구 쪽에 남해고속도로 하동에서 광양으로 넘어가는 섬진강교가 보인다.
오른쪽 산 아랫마을은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 객길마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서 주교천교를 통하여 주교천을 건너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로 넘어간다.
주교천은 주교천교 아래를 흘러 오른쪽 조개섬 앞에서 섬진강에 합수한다.
섬진강을 가로지는 남해고속도로의 섬진강교가 광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교천은 조개섬(왼쪽) 앞에서 섬진강에 합수한다. 섬진강변에 섬진강피크닉광장 파크골프장이 보인다.
길을 건너 표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왼쪽 객길마을로 들어가야 하는데 횡단보도가 있는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 아래까지 내려가서 횡단보도를 건너 되돌아와 객길마을로 진입한다.
남파랑길은 고포공원으로 이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길을 건너 주교천교 입구까지 되돌아가 궁항리 객길마을로 향한다.
횡단보도가 없어서 도로 왼쪽을 따라 내려갔다가 길을 건너 되돌아와 주교천교 입구에서 오른쪽 객길마을로 향한다.
주교천을 따라오르며 주교천교 아래를 지나 주교천이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주교천을 경계로 건너편은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월진들판, 이쪽은 하동군 금성면 궁항리
금오산 뒤쪽 자락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노량해협 남해대교 입구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이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해파랑길18코스 친구랑 걷고있고
남파랑길은 혼자서 곧 시작할 예정입니다
집이 대구라서 오가는시간이 길어서 2박3일 예정으로 접이식자전거로 다녀볼까합니다 워낙 자전거를 좋아하고 조금더 빠르게 다니기 위해서인데 산길은 접어서 들고 다녀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약12키로정도ᆢ쌤글 보며 참조해서 다녀볼려구요ㆍ제글 보시고 삭제 하셔도 됩니다
남파랑길을 시작할 때의 가슴설렘이 떠오릅니다.
남파랑길 중에 자전거길이 있는 곳이 있고 없더라도 조심해서 다니면 될 듯싶습니다. 부산1-3코스, 거제 구간은 자전거가 좀 어려울 듯싶습니다.
코스개관을 살펴 보시고 자전거 여행을 결정하면 될 듯싶습니다. 그래도 해파랑남파랑서파랑은 도보순례가 제격이라 생각합니다. 걷기와 자전거는 차량과 자전거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좋은 출발이 되기를 바랍니다.
관심과 댓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모산 아ᆢ감사합니다
남파랑길 시작을 47코스로 하려다가 살짝 두려운 마음에 48코스로 틀어서 이번 주 토요일에 드디어 시작을 합니다.
선생님의 글 을 읽으며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갖게 되네요. 큰 힘이될것 같아요.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48-90코스 전라도 지역을 먼저 하시고
다음에 1-47코스 경상도 지역을 하셔도
무방하실 것 같아요.
작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영광입니다.
남파랑길 걷기를 힘차게 시작하여서
완주하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토이아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