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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46회
도래기재-구룡산-고직령-곰넘이재-신선봉-차돌배기
20231119
1.첫눈과 황홀한 상고대 풍경
2주만에 다시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래기재에 왔다. 지난 번에는 도래기재에서 남진하여 옥석산, 박달령, 선달산, 늦은목이까지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산행하였는데, 이번에는 도래기재에서 북진하여 구룡산, 고직령, 곰넘이재, 신선봉, 차돌배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을 산행한 뒤 차돌배기에서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석문동으로 하산한다.
구간 거리는 도래기재- 3.9km -임도 - 1.5km 구룡산- 3km - 곰넘이재 - 2km - 신선봉 - 2.2km - 차돌배기, 백두대간 마루금 거리 12.6km와 차돌배기 - 석문동, 하산 거리 4km를 합하여 총 산행거리 16.6km, 점심 시간을 합하여 총 소요시간 6시간 14분이 걸렸다. 갈수록 심장이 고통스러워 오르막 산길의 속도가 더뎌져서 산행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다.
구름이 끼어 있고 바람이 쌀쌀하여 초겨울 날씨치고는 추운 편이다. 속옷 두 개를 껴입고 방풍옷을 겉에 입었다. 장갑도 끼었다. 이렇게 차림하니 추위에는 문제가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도래기재에서 구룡산 방향으로 북진한다. 초입에 가파른 나무뎈이 설치되어 있으며 비탈길에는 잣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다. 쌀쌀한 바람은 계속 불어댄다. 성장(盛裝)을 다 털어내고 겨울 채비를 갖춘 낙엽활엽 교목들은 근골을 하늘로 솟구쳐 마치 지상의 유아독존적 자태를 뽐내는 것 같다. 산길에는 눈이 내려 쌓여 있다. 낙엽과 눈이 함께 쌓여 산길은 몹시 미끄럽다. 오, 첫눈 산행이네. 올겨울 들어 첫눈 산행의 감동을 맛본다.
이번 마루금 산행은 조망이 탁 트인 곳이 없어 흠이다. 그 대신에 숲 속의 나무와 풀과 바위를 살피며 고요한 명상과 자기 성찰의 산행길이 된다. 우뚝 솟은 금강송 춘양목의 늠름함은 그 어떤 시련이라도 극복하려는 고행자의 모습 같다. 임도(林道) 한 곳을 가로질러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또 한 곳의 임도가 나온다. 이 임도를 설명안내판에 서벽임도라고 적어 놓았는데 작은금정골 임도의 마루에 해당되는 것 같다. 이곳에는 이정목과 쉼터정자, 구룡산 설명안내판이 2개 세워져 있는데, 구룡산 정상도 아닌 이곳에 구룡산 설명안내판이 왜 2개나 세워져 있을까? 작은금정골 서벽임도 마루에서 구룡산은 1.56km 지점에 있다. 그렇다면 임도 마루에는 영주국유림관리사무소에서 세운 구룡산 설명안내판을 세워두고, 구룡산 정상에는 백두대간 구룡산 설명안내판을 옮겨야 할 것이다. 2개의 구룡산 설명안내판을 이곳에 세워둘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곳 임도에서부터 구룡산 정상까지는 계속 고도를 높여야 한다. 철쭉나무 군락지가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어 군락지가 끝나는 지점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지난 시절 여름날 이 구간을 산행할 때의 고통이 떠오른다. 지금은 초겨울이라 여름 만큼 고통스럽지 않지만 여전히 오르막 오르기는 힘겹다. 철쭉군락지 쉼터를 지나도 여전히 철쭉은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널빤지 모양의 여러 바위들이 비스듬하게 모여 있는 암석군 지대를 통과하는데 눈은 더 쌓여 있고, 안개가 밀물처럼 몰려온다. 하얀 안개의 숲에 찬 바람이 불고 안개는 바람에 불려 날아가기도 하고 안개의 한 무리는 떨기나무 가지에 앉아 휴식한다. 휴식하는 안개는 그 가지에서 아름다운 얼음꽃, 상고대로 피어난다. 첫눈 산행의 감동, 그리고 하얀 안개가 밀려오고,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황홀한 상고대 풍경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떨기나무 가지 상고대 앞에서 황홀한 감동에 잠겨들었다.
구룡산에 오르는 이 풍경의 황홀한 감동은 구룡산 정상에서 고직령으로 내려가는 동안에 햇빛이 들며 풍경이 투명해진다. 구룡산 정상에서 고직령까지는 1.6km의 내리막길이라 거의 달리기 수준으로 내려간다. 숲의 나무는 신갈나무가 중심이지만 물푸레나무와 거제수나무도 즐비하다. 물푸레나무는 표범 가죽 무늬를 연상시키는 단단한 나무 줄기가 멋지고, 거제수나무는 줄기에서 벗겨져 내린 얇은 껍질이 바람에 펄럭이며 묘한 감동을 준다.
매번 고직령에 올 때마다 이상스럽게 산령각을 보고 간다. 그냥 지나쳐도 될 터인데 이번에도 산령각을 들렀다. 일행들 중에는 이 산령각 앞에 절을 올리고 소망을 비는 산객도 있다. 이 길손은 언제나 호기심으로 문을 열고 산령각 내부를 살핀다. 예전과 별 차이가 없다. 고직령으로 되돌아오니 아침에 도래기재에서 거의 동시간에 출발한 남양주탑산악회 회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은 곰넘이재에서 하산한다고 한다. 우리 팀은 곰넘이재에서 신선봉을 거쳐 차돌배기 삼거리까지 4.2km를 더 산행해야 한다. 고직령 쉼터의자에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11월 하순으로 치닫는 계절 감각은 산에서는 한겨울 같은 느낌이 든다. 한 해가 다 떠나버리는 감각으로 샌드위치 두 조각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모두가 떠나 버리고 홀로 남았다. 곧은 낙엽활엽 교목들 사이에서 정희성(1945~) 시인이 표현한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있고"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빛 고운 사랑의 추억으로 가슴에 펄럭일 것이다. 나는 곰넘이재 방향의 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정희성의 '11월은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 전문)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
곰넘이재로 가는 중에도 물푸레나무와 거제수, 그리고 근골의 신갈나무가 즐비하다. 그리고 구름에 가린 신선봉이 북서쪽에 오롯이 솟아 있다. 곰넘이재에서는 약 2km의 참새골로 탈출할 수 있다. 앞서간 일행 중 참새골로 탈출한 산객이 있고, 남양주탑산악회 회원들은 모두 이곳에서 하산했다.
곰넘이재에서 북진하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곰넘이재에서 동쪽으로 둥글게 돌아서 서북쪽의 신선봉으로 솟구쳤다가 신선봉에서 고도를 낮춘 뒤 동남쪽으로 4개의 산봉, 신선1~4봉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마지막 차돌배기봉 삼거리로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 가장 힘겨운 곳은 신선봉에 오르는 마지막 구간, 산죽밭이 시작되는 곳으로부터 신선봉 정상까지가 힘겹다.
구룡산 아래에서 시작된 방화로는 신선봉 바로 아래까지 이어진다. 이 방화로가 끝나는 지점은 푸르른 산죽밭이 시작되는 바로 아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무덤이 있는 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구룡산이 가늠되며, 곧바로 머리 위에는 신선봉이 있고, 신선봉이 북동쪽의 차돌배기 삼거리로 이어지는 신선1~4봉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온다. 그러니까 산죽밭이 시작되는 곳 아래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는 백두대간 신선봉 남쪽과 북쪽 능선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탁 트여 있지는 않지만 나뭇가지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즉 구룡산, 고직령, 곰넘이재,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신선봉 남쪽 능선과 신선봉, 신선1~4봉, 차돌배기봉으로 이어지는 신선봉 북쪽 능선을 모두 조망하며 위치를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신선봉은 구룡산과 마찬가지로 전망이 막혀 있다. 정상 앞에는 경주 손씨 무덤이 있고, 평평하고 넓은 해발 1185m 신선봉 정상에는 춘양면이장협의회에서 정상 표석을 세워놓았다. 정상 표석에는 천하명당조선십승지 신선봉이라고 새겨져 있다. 십승지는 조선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곳의 피난처를 이른다고 한다. 이곳이 천하의 명당이며 난리가 났을 때 몸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피난처 10곳에 속하는 곳이라고 춘양면에서 홍보하고 있다. 천하명당은 각자가 살기에 편안하고 또 돌아가신 분들이 평소 편안하게 느낀 곳에 묘를 쓰는 것이 아닐까? 천하의 명당과 십승지를 찾아 헤매는 꼴은 길손이 보기에는 가당치 않아 보인다.
오후 2시가 넘었다. 차돌배기 삼거리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르내리막길은 있지만 지금까지 올라온 구룡산과 신선봉 오르막길에 비할 바 없이 쉽다. 이 산길에서는 정면의 차돌배기봉과 뒤돌아서서 신선봉을 바라보고, 남서쪽 나뭇가지 사이로 신선봉 남쪽 산줄기를 가늠하는 즐거움에 빠진다. 신선4봉을 내려와 차돌배기 삼거리로 오르는 비탈에서는 깃대배기봉과 그 오른쪽 두리봉을 가늠한다. 저곳을 산행할 때의 추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찬바람이 거칠게 불어대는 겨울날 눈구덩이를 밟으며 걸었었지. 가을날 바람이 불어대고 단풍이 물들어 도취했었지. 아련한 시절의 추억이 그립다. 가까이는 지난 10월 15일 태백산 구간 산행 때 화방재에서 출발하여 태백산 장군봉, 천제단, 부쇠봉과 깃대배기봉을 거쳐 차돌배기 삼거리에 이르러 석문동으로 하산하였다. 이번에는 도래기재에서 출발하여 구룡산, 고직령, 곰넘이재, 신선봉을 거쳐 차돌배기 삼거리에 이르러 다시 석문동으로 하산한다. 걸었던 깃대배기봉을 이번에는 올러본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차돌배기 삼거리에 이르렀다. 차돌배기는 이곳에 차돌이 많이 박혀 있어서 차돌배기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차돌배기에서는 서북쪽의 신선봉이 손가락으로 부를 듯이 가깝다. 차돌배기 삼거리에서 이번 백두대간 마루금 산행을 마치고 석문동 방향으로 하산한다. 석문 방향의 차돌배기 이정목에는 석문2km, 석문동4km라고 적혀 있다. 11월의 해는 짧다.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각, 마음이 바빠져 급경사 비탈길을 허청허청 내려간다. 석문이라 불리는 두 바위 사이의 좁은 곳을 지나고 위태로운 석문동 계곡길을 통과하여 석문계곡 갈림길에 이르렀다. 어려운 곳을 무사히 통과하니 안도의 숨이 절로 나온다. 파란 지붕의 외딴집을 지나 석문동길로 내려왔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진 11월의 오후 깊은 산골의 해는 벌써 기울었다. 한 해를 시작하여 11월 하순으로 달려가는 시기, 나태주(1945~) 시인은 11월을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이라고 보았다.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시인은 낮이 짧아진 11월, "더욱 그대를 사랑하겠"다고 한다. 한 해의 남은 날들이 얼마 되지 않고 낮이 짧아졌다면 그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해야 할 것이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의 시기에 일몰의 불타는 태양처럼 더욱 뜨겁게 삶을 살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나태주의 '11월' 전문)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6.59km
전체 산행 시간 : 6시간 18분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서벽리의 경계를 이루는 도래기재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한다.
도래기재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서벽리를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국가지원지방도 제88호선이 이곳을 지난다. 본래 이 곳에 조선시대 역(驛)이 있어서 도역마을이라 불리다가 도래기재로 변음됐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도력현(道力峴)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갈 수 있다. 이 고개 아래에는 1925년에 일본인들이 뚫은 터널인 '금정수도'라는 곳이 있다. 본래 이곳 근처에는 금정광업소라는 큰 금광이 있었으며 이 곳에서 캐낸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된 터널이었으나 1993년 이 곳을 운영하던 태백시에 위치한 함태탄광이 폐광하면서 금정광업소도 같이 문을 닫게 되자 터널도 폐쇄했다. 이 고개를 넘으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연결되고 이 고개 정상에 경상북도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이곳이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도계를 이룬다고 잘못 알고 있는데, 실제 도계는 이곳이 아니라 도래기재에서 강원도 방향으로 자동차를 이용해 약 20여분 가면 나오는 '조제2교'라는 다리가 실제 행정 구역상 도계를 이룬다. 봉화군 학예연구사인 정민호씨는 조제2교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게 된 이유가 "조선시대 임금이 한강이 위치한 서울에 팔도의 물을 다 모으고 싶어 강원도 땅이던 우구치를 인위적으로 봉화 땅에 속하게 했다"라는 설을 전했다. - 위키백과
경북 봉화군 우구치리와 서벽리의 경계를 이루는 도래기재에 동물이동통로가 조성되어 있다.
해발 770m 도래기재에서 구룡산 방향의 나들목으로 진입하여 북진한다.
구룡산 방향의 도래기재 나들목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구룡산 5.54km 거리이다.
도래기재 나들목을 지나서 곧바로 산비탈 잣나무 조림지에 조성된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른다.
소나무, 잣나무 숲 : 해발 757m 지점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소나무(일명 : 춘양목)가 우점하고 있었으나 솔잎혹파리라는 해충으로 소나무 숲은 점차 쇠퇴하고 현재 조림된 잣나무 숲으로 바뀌었다. 상층에는 소나무, 잣나무, 신갈나무, 중간층에는 버드나무, 층층나무, 개옻나무, 두릅나무, 하층에는 뱀고사리, 취나물, 미역줄나무, 조록싸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도래기재 나들목에서 곧바로 시작되는 급경사 비탈길을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이 힘차게 오른다.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와 평탄한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무덤이 있고 그 뒤에 멋진 금강소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도래기재 1.62km, 구룡산 3.92km 지점의 임도를 가로질러 건너편 나무 계단으로 오른다.
봉화, 울진, 강원도의 곧은 소나무를 금강소나무 또는 강송이라 하며 상록침엽교목성 수종이다. ▶특징 : 척박한 토양에도 강하나 극양수성이므로 다른 나무 밑에서는 잘 자랄 수 없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나고,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해 9~10월에 익는다. ▶이용 : 귀중한 용재로 쓰며, 괴혈병, 진해거담제\, 고약, 피부병, 류마티스염, 관절염, 두통, 김기 등 소나무는 부위에 따라 여러가지 질병에 쓴다.
도래기재에서 출발하여 34분이 걸려 임도에 도착하였다.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면 북쪽 비탈에 일본이깔나무들이 조림되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산봉에 오른 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간다.
쉼터의자가 설치된 산봉을 넘어 눈과 낙엽이 깔린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간다. 중앙 뒤에 구룡산이 어림된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도래기재-구룡산 현위치번호 3-5 지점의 산봉을 통과한다.
신갈나무 가지에 겨우살이들이 기생하고 있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도래기재-구룡산 현위치번호 3-6 지점은 폐헬기장인 것 같다.
폐헬기장 산봉을 지나 급경사 비탈길을 계속 내려간다. 신갈나무와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간다.
신갈나무(참나무과) : 산중턱 등에 많이 분포하는 낙엽 교목성 수종. ▶특징 : 나무껍질은 세로로 갈라지고, 전체적으로 털이 없으나 뒷면 맥상에 털이 있는 것도 있다. 잎자루는 털이 없고 길이 1~13mm로 매우 짧다.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는다. ▶ 이용 : 목재는 농기구재, 땔감, 표고버섯 재배의 원목 등으로 쓰이며 열매는 식용한다.(설명안내판)
산비탈길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중앙 왼쪽에 흰구름을 머리에 인 구룡산이 보인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도래기재-구룡산 현위치번호 3-7 지점의 산봉에 쉼터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백두대간 북쪽 비탈면에는 일본이깔나무(낙엽송)가 조림되어 있고 그 사이로 신갈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산길에는 금강송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는 작은금정골 임도 마루에 이른다.
도래기재 3.98km, 구룡산 1.56km 지점이다. 도래기재에서 이곳까지 1시간 18분이 걸렸다.
서벽임도에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설치한 구룡산 유래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룡산(九龍山) 유래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위치한 구룡산(九龍山)은 태백산(1,567m)과 옥석산(옥돌봉1,242m)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루는 산이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있는 이 산은 해발 (1,344m)로서 태백산, 청옥산, 각화산 등과 함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있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은 남북으로 흘러서 각각 낙동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이 산은 아홉마리 용이 승천(昇天)하여 구룡산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龍)이 떨어져 뱀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루금 :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
서벽임도에는 또 하나의 백두대간 구룡산(九龍山)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룡산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덕구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부에 있으며,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계를 이룬다. 구룡산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치악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백덕산과 사자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이 승천하여 구룡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가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 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도래기재에서 곰넘이재를 거쳐 태백산에 이르는 이 구간은 중간 탈출로로 곰넘이재, 구룡신에서 도래기재 사이에 있는 임도가 주요 탈출로라 할 수 있다.
쉼터정자, 그 왼쪽에 이정목, 그 오른쪽에 구룡산 설명안내판 2개와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서벽임도를 가로질러 구룡산 방향의 나무계단을 오른다.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의 터널을 통과한다.
철쭉나무는 계속 이어진다. 위자들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를 통과한다.
널빤지 모양의 여러 바위들이 층층을 이룬 암석군 지대를 통과한다.
안개가 밀려오고 안개는 나뭇가지에 붙어 상고대를 피운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안개들이 얼어서 상고대로 피어났다.
안개가 밀려오고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피어나는 구룡산 아래의 눈길을 걸어간다.
구룡산 정상 바로 아래를 통과하여 구룡산 정상에 오른다.
구룡산 정상 출입구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도래기재 5.54km, 곰넘이재 3.14km 지점이다. 도래기재에서 2시간 8분이 걸렸다.
해발 1345.7m 구룡산 정상에 춘양태백산악회에서 2000년 5월 21일에 세운 정상 표석이 서 있다.
구룡산 정상표석과 함께 백두대간 구룡산 산행을 기념한다.
구룡산 숲 : 해발 1,345m의 구룡산 일대는 1980년대 중반까지는 산불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방화선(防火線)이었던 지역이다. 현재 주변을 우점하고 있는 신갈나무는 벌채한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새싹(일명 : 맹아)으로 이루어진 숲이다. 신갈나무 목재는 임산연료 외에 표고버섯 재배를 위한 원목과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쓰이며 열매는 사람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의 먹이로도 쓰인다. 그 외에도 하층에는 병꽃나무, 국수나무, 물푸레나무, 조록싸리 등이 자라며 초본류로는 고려엉겅퀴, 큰까치수염, 콩제비꽃, 개별꽃, 뱀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구룡산 정상에서 잠시 머문 뒤 고직령으로 내려간다. 물푸레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직령으로 내려가는 산비탈에는 거제수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해발 1234m 고직령에는 이정목과 쉼터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향이동 방향으로 내려가 산령갈을 보고 되돌아온다.
고직령(高直嶺)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서북쪽으로는 구룡산(1,344m)과 삼동산(1,078m)으로 이어진다. 춘양면 쪽에서는 서벽리의 곡내 골짜기나 여기묘(女妓墓, 현지에서는 예기묘라고 함)에서 넘을 수 있으나 고개가 매우 높고 가파르다. 지명은 '고개가 높고 곧은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고직령(高直嶺)에 언문으로 '고직이재'라고 병기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고칙령(高則嶺)이라고 표기되어 있다.(네이버백과)
중앙 뒤 언덕에 고직령 산령각이 있다. 대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산령각 내부에 고직령(高直嶺) 현판이 붙어 있다.
고직령(高直嶺)은 '높고 곧은 고개'라는 뜻으로, 옛날에 이 고개에서 호환(虎患)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을 사람들이 산령각을 짓고, 매년 음력 4월 14일에 호환을 막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고직령으로 되돌아오니 남양주 탐산악회 회원들이 백두대간 고직령 이정목과 함께 산행을 기념한다.
구룡산 1.26km, 곰넘이재 1.88km 고직령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곰넘이재로 출발하여 고직령을 뒤돌아본다. 고직령에도 거제수나무들이 즐비하다.
고직령에서 곰넘이재 방향으로 진행한다. 거제수나무와 물푸레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성장(盛裝)을 벗은 신갈나무들이 근골의 자태를 겨울 하늘에 뽐낸다.
방화로를 벗어나 산봉을 올랐다가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부쇠봉-구룡산 5-25 현위치번호 표지목을 통과한다.
오른쪽은 방화로, 왼쪽 부쇠봉-구룡산 현위치번호 5-25 표지목을 통과하여 내려왔다. 방화로를 따라와도 이곳에서 만난다.
곰넘이재로 내려가는 산길에서 중앙 뒤 구름에 가린 신선봉을 바라본다.
해발 1070m 곰넘이재로 내려간다. 오른쪽은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참새골 방향이며 신선봉은 직진한다.
도래기재 8.4km, 구룡산 3km, 신선봉 2km 지점이다.
곰넘이재는 강원도 영월군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화방재와 도래기재 구간 내에서 유일하게 비교적 쉽고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 탈출로이다. 탈출로는 능선부에 있는 방화선을 설치하면서 장비의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도록 만든 길로 추정된다. 탈출로는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곰넘이재의 유래를 보면, 옛날부터 이 고갯길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며 특히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가는 관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고갯길이었다. 문헌 영가지(永嘉誌)에 웅현(熊峴)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언제부터인가 순 우리말로 순화하여 곰넘이재로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설명안내판)
곰넘이재에는 이정목과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정목에는 구룡산 3.14km, 설명안내판에는 3km라고 적혀 있다.
곰넘이재에서 백두대간은 동쪽으로 돌아서 북쪽의 신선봉으로 오른다.
방화로를 따라가며 북서쪽에 솟은 신선봉을 올려본다. 신선봉 산줄기는 오른쪽 차돌배기봉으로 이어진다.
왼쪽의 신선봉에서 오른쪽 신선1~4봉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신선봉 능선이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의 차돌배기봉으로 이어진다.
신선봉 오르는 비탈길 무덤이 있는 곳에서 남쪽의 구룡산을 가늠한다.
방화로가 끝나고 산죽밭이 시작된다. 중앙 뒤에 신선봉이 보인다.
계속되는 산죽밭을 지나야 신선봉 바로 아래에 이른다.
오른쪽 뒤에 비탈에 하얀 눈이 비탈에 쌓인 차돌배기봉이 보인다. 오늘 백두대간 산행은 차돌배기 삼거리까지이다.
신선봉 바로 아래에서 정상을 향하여 마지막 힘을 쏟는다.
신선봉에 경주 손씨 무덤이 있으며 바로 뒤쪽 신선봉 정상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신선봉 정상은 넓고 평평한 터이며 정상 표석이 세워져 있다.
해발 1185m 신선봉 정상에는 춘양면이장협의회에서 세운 천하명당조선십승지라고 적인 정상 표석이 서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정상의 경주 손씨 무덤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간다.
신선봉에서 내려가며 동남쪽 중앙의 차돌배기봉을 바라본다.
곰넘이재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신선봉 서남쪽 능선을 바로본다.
신선1~4봉 능선을 따라가는 중에 중앙의 차돌배기봉을 다시 바라본다.
신선1~4봉 능선을 따라가는 중에 뒤돌아서 신선봉을 올려본다.
겨우살이들이 신갈나무에 기생하여 파릇파릇 겨울을 나고 있다.
왼쪽 신선4봉을 올라갔다가 내려가서 중앙의 차돌배기봉으로 오른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차돌배기에서 북쪽으로 이어진다. 이번 백두대간 산행은 차돌배기에서 마치고 저 능선으로 하산할 것이다.
신선4봉에서 내려섰다가 차돌배기 산비탈을 오른다.
차돌배기 오르는 도중 백두대간 북쪽 깃대배기봉을 가늠한다. 그 오른쪽에 두리봉이 있다.
차돌배기 삼거리에는 쉼터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왼쪽으로 이어지고 석문계곡은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차돌배기 삼거리에 올라서서 남쪽의 신선봉을 바라본다. 석문 방향의 차돌배기 이정목에는 석문2km, 석문동4km라고 적혀 있다. "차돌배기 삼거리는 지나는 행락객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 있었고 하여 차돌배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차돌배기 설명안내판)
차돌배기에서 석문 방향의 이정목과 함께 기념한다. 백두대간 산행을 이곳에서 마치고 석문으로 내려간다.
석문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서북쪽의 신선봉을 바라본다.
차돌배기1.5km, 석문동2.5km라고 적혀 있다. 차돌배기 이정목에는 석문2km, 석문동4km라고 적혀 있었는데.
석문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두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석문이라 이르는 것 같다. 석문을 통과한다.
누군가 바위에 흰 페인트로 석문을 적어 놓았다.
석문계곡 출입구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아래 외딴집으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왼쪽 산길을 따라간다.
계곡출입구에서 왼쪽 산길을 따라오면 파란 지붕의 외딴집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이른다.
석문동길 418-2, 파란 지붕의 외딴집은 돌탑이 있는 아담한 집이다.
석문계곡 출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온 일행이 왼쪽으로 나온다. 길손은 왼쪽 산길로 올라와 오른쪽으로 내려왔다.
석문동길 415, 신선천(神仙天) 입구에 산악회 임시본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백두대간 도래기재-차돌배기 산행을 마친다.
신선천(神仙天) 입구에 차돌배기 4km 지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건너편 길로 오르면 신선천(神仙天)이 있는 것 같다.
건너편 방목이골 1km 지점에 있다는 신선천(神仙天)이 무엇일까? 혹 정신수양훈련을 사칭한 영리업체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