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한국공학교육학회의 학회지(인재니움; 제24권 제4호, 2017년 12월호)에 기고한 필자의 글,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도시 디자인" 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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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글; 생략)
다시 보게 되는 우리 전통문양
21세기를 사는 우리네 의식주는 사실상 서양문화이다. 대도시의 현대 건축물도 서양문화의 산물이다. 기왕에 서양문물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데 서양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도시 디자인 요소, 즉 광장과 분수, 모자이크 문양을 우리도 적극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나 예쁘다고 해서 그대로 모방하면 짝퉁이 된다. 좋으니까 모방은 하되 입고출신의 정신에 따라 우리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내야 한다. 광장이 들어설 장소와 그곳에 얽혀있는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여 전통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여 현대적 감각에 맞게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혹은 궁전의 굴뚝이나 담벼락에 참고할만한 아름다운 문양이 많이 있다. 그 수많은 문양을 필자는 다 알지 못하지만 도시 디자인에 활용하면 괜찮을만한 두 가지 재미난 전통문양을 본고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 전통문양은,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정말 놀랍게도 그리스와 로마문양에 기원한 것으로 아마도 오랜 세월에 걸쳐 실크로드를 통해 고려까지 전달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양의 기원에 대해서는 필자가 올해 펴낸 졸저, 『산딸나무와 터키여행』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아래 글은 아직 한국 고고미술사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필자의 일방적인 주장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정도로 너그럽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그림 6. (왼쪽) 고대 그리스의 퀼릭스(kylix), (오른쪽) 고려청자 상감모란문 대접(사진 아래쪽 네모 칸은 테두리 장식문양을 확대한 것이다.)
[그림 6]의 왼쪽은 고대 그리스 술잔인 퀼릭스(Kylix)로 그림의 내용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아들, 아킬레우스를 위해서 어머니이자 바다의 요정인 테티스가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에게 아킬레우스가 사용할 투구와 방패, 정강이 보호대 제작을 의뢰하는 장면이다. 오른쪽은 모란이 상감된 고려청자 대접이다. 정말 놀랍게도 두 그릇의 테두리 장식문양이 똑같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각각의 문양은 뱀 무늬(Meander pattern)와 번개무늬로 불리고 있는데, 흔히 뱀 무늬로 불리는 그리스 문양은 필자의 판단으로는 지중해 일대 청동기 문명(키클라데스, 미케네)에서 널리 사용된 파도 문양이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청자 번개무늬의 원형이라 추정된다. 이 문양은 당초문처럼 광장의 테두리 장식 문양으로 적격이다.

그림 7. (왼쪽) 로마시대 꽃무늬 부조(스페인 코르도바 대성당(메스키타)), (오른쪽) 고려청자 상감포류국화문정병
[그림 7]의 왼쪽은 스페인 코르도바 대성당(메스키타)의 한 귀퉁이에 전시된 로마시대 꽃무늬 부조(제작 시기는 AD 6-7세기로, 로마제국이 멸망한 직후이지만 로마문명의 영향력이 여전할 때 제작된 것으로 짐작됨)로 아마도 이 성당을 복원할 때 발굴된 것으로 보이는데 필자가 대성당 구경 중에 발견하여 직접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은 2006년 경매에서 6억 원에 낙찰된 고려청자 상감포류국화문병이다. 두 문양은 마치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이 보인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필자는 고대 로마문양이 고려까지 전달되었음을 두 유물이 말없이 증언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려정병에 새겨진 문양을 포류국화문(蒲柳菊花文⸳버드나무와 국화무늬)으로 부르지만 사실은 정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십자형 꽃무늬가 주인공이고 포류국화문은 보조 문양이다. 도자기 명칭만 보더라도 우리는 우리네 전통문양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국미술사에서 공식적으로는 칠보무늬로 부르는 이 십자형 꽃무늬는,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 로마제국과 비잔틴 제국에서 아주 흔히 사용된 기하학적 문양으로 그 기원은 청동기 문명인 인더스 계곡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양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까지도 세계 각지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전통문양이다. [그림 7]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국화문양이다. 한국미술사에서는 고려청자에서 흔히 보이는 이 문양을 일컬어 국화문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한눈에 봐도 이 꽃은 국화가 아니고 들국화(쑥부쟁이, 구절초 또는 개미취)임을 알 수 있다. 청자의 들국화 문양은 오늘날 서양에서 ‘아시리아 데이지’ 문양이라고 부르는 고대 오리엔트 제국(히타이트, 아시리아, 신바빌론, 페르시아)에서 널리 사용된 들국화 문양이 그 원형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이 고대문양이 고려까지 전달된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이 십자형 꽃무늬는 광장의 넓은 면을 장식할 때 잘 어울리는 문양이다.

(참고 1) (왼쪽 위) 고대 오리엔트 문명 가운데 하나인 신바빌론 왕국의 이슈타르 문(Ishtar Gate)의 들국화 문양 (BC 575), (왼쪽 아래) 히타이트인들이 믿었던 풍요의 여신, 쿠바바(Kubaba)가 쓴 모자에도 들국화 문양이 보인다(BC 850-750), (오른쪽) 구절초

그림 8. (왼쪽) 로마 꽃무늬 모자이크(세비야 박물관), (오른쪽) 고려청자 베개
[그림 8]은 역시 십자형 꽃무늬(일명 칠보무늬)를 보인 것으로, 왼쪽사진은 세비야 인근 고대 로마도시인 산티폰세 지역의 이탈리카에서 발굴되어 세비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바쿠스의 승리’란 제목의 로마 모자이크 둘레를 장식한 꽃무늬 문양이며, 오른쪽은 고려청자 베개에 있는 꽃무늬 문양이다. 두 문양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놀랍기 짝이 없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고려청자에는 그리스 문양이 3종, 로마 문양이 1종, 고대 오리엔트 문양이 1종 관찰되고 있으며 조선 초에 생산된 백자(제기)까지 그리스 문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청자시대에서 백자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흰색 태토에 그림을 직접 그려 넣을 수 있게 됨으로써 고려청자를 상감 장식했던 다양한 문양이 사라지게 된다.

그림 9. (왼쪽부터) 스페인 코르도바 길거리 소화전 문양, 쿠키상자 문양, 우리나라 전통 보자기 문양
[그림 9]는 인더스 계곡문명에서 창안되어 로마제국, 비잔티움 제국, 고려, 중국(원⸳명⸳청)에서 널리 사용된 십자형 꽃무늬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실례를 보인 것이다. 우리나라 퀼트업계에서는 이 전통 보자기 문양을 일컬어 ‘여의주문’이라고 부르고 있고 뜨개질 업계에서는 ‘칠보문’으로 제각각 부르고 있는데, 이러한 명칭은 이 문양의 기원에 대해 전혀 모르던 시절에 붙여진 이름이다. 필자는 한국미술사학계의 공식명칭인 칠보문 대신에 이 꽃문양과 실제 비슷하게 생긴 산딸나무 꽃에 착안하여 ‘산딸나무 꽃무늬’로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수천 년 역사를 갖고 있고, 고려 때는 고려인의 일상용품(향로, 대접, 합, 베개)에 널리 사용되었던 이 전통문양이 현대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업계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필자는 무척 아쉽다.

(참고 2) 로마제국, 비잔티움 제국, 고려, 원.명.청, 에스파냐에서 관찰된 "산딸나무 꽃무늬" (일명 칠보무늬). 산딸나무 꽃무늬는 유라시아 대륙을 대표하는 전통문양이다.
맺는 말
지난 가을 추석 연휴 때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였다. 여행 중에 노벨상 수상자 발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올해도 남의 나라 잔치가 되어 많이 아쉬웠다. 노벨 과학상은 한 나라 과학수준의 척도이기에 영광스런 첫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나라처럼 꾸준히 배출해내려면 평균적으로 국민의 과학문화 수준을 높여야 한다. 과학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중⸳고 시절부터 고정관념을 배척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애국심이나 종교보다는 진리탐구가 연구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또 과학기술자들은 실적용 논문만 쓸게 아니라 대중들이 흥미를 갖고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대중 과학서를 출판하는데도 힘써야 한다.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핀치의 부리, ‘코스모스’, 혹은 ‘사피엔스’에 버금가는 책이 출판되고 이 책이 수 만권∼수십만 권 팔릴 적에 비로소 노벨상 수상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스페인은 정말 볼거리가 많은 나라였고 도시마다 제각각 특색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릴 뿐만 아니라 한국인 투어 가이드도 함께 먹여 살린다는 가우디와 피카소와 같은 천재 예술인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선인들이 이룩한 높은 수준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키워진 것이란 것을 현지 여행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 20년 안에 소프트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면 수많은 직종이 사라진다고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높은 수준의 창의력이 요구되기에 우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창의력 배양이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인간의 창의력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대도시를 여행해 보니, 왜 이 나라에서 위대한 건축가와 미술가가 많이 배출되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심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 3) 스페인 세비야 에스파냐 광장의 모자이크 문양. 광장의 넓은 면을 장식한 아름다운 전통문양이 에스파냐 광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2019년이 되면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100년이 된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은 찬양받아 마땅하지만 언제까지 과거의 영광만 되새김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100년을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 도시를 멋지고 특색 있게 가꾸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수년 내로 서울의 광화문 광장과 세운상가 앞 광장이 새롭게 조성된다고 한다. 광장을 조성할 때 100년 앞을 내다보고 이 광장을 방문하게 될 우리 젊은이들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제발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