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계의 초상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6년전에 런던에 있는 초상화박물관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초상화의 눈을 먼저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Visual History of Korea] Capturing personality, temperament, and inner spiritual world in portraits
(보는 한국역사) 초상화를 통해서 성격, 기질, 내적인 정신세계를 포착
By Korea Herald
Published : Oct 27, 2021 - 17:48 Updated : Oct 27, 2021 - 17:49
By Hyungwon Kang (hyungwonkang@gmail.com) 강형원
Korean American photojournalist and columnist Hyungwon Kang is currently documenting Korean history and culture in images and words for future generations. -- Ed.
재미한국인 사진작가이며 칼럼리스트인 강형원씨는 현재 미래세대를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미지와 글로 문서화 작업을 하고 있다. -편집부
Capturing the true essence of a person in pictures, portrait photography is one of the most difficult areas of photography. 사람의 진정한 본질을 그림으로 포착하는 초상사진은 사진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이다.
Long before photography arrived in the Joseon Kingdom (1393-1910), portrait artists were challenged to draw detailed portraits that included a view into the inner spiritual world of the subject.
사진이 발명되기 훨씬 전인 조선시대(1393-1910)에 초상화작가들은 대상물의 내적인 영적세계를 포함한 상세한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도전했다.
The official portraits of Yi Seong-gye, the founder of the Joseon Kingdom, tell volumes about the gifted military man who became the last ruler of the Goryeo Empire in 1392, before launching the Joseon Kingdom, which lasted for 500 years.
조선왕조의 창건자인 이성계의 공식 초상화는 500년을 존속한 조선왕조의 출범전인 1392년 고려의 마지막 통치자가 된 타고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Gen. Yi Seong-gye’s piercing eyes look like they can freeze the enemy just with a glance. Enemies feared him and his several thousand loyal soldiers, who never lost a battle.
이성계장군의 뚫어질 듯한 눈은 적을 한번 망 쳐다보아도 얼게 할 수 있는 눈 같다. 적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그의 충성스러운 수천명의 군사들은 전투에서 지지 않았다.
King Yi Seong-gye is believed to have been born with long arms, and according to the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he was a gifted marksman who could shoot anything down. He won many battles when enemies surrendered upon seeing him accurately hit enemy fighters.
왕인 이성계는 긴 팔을 가지고 태어났고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타고난 사격수로 어느 것이라도 명중시켰다. 그는 많은 전투에서 적의 투사를 정확히 저격해서 항복을 받아 내고 항복을 받아냈다.
The 1,893 volume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the Joseon Wangjo Sillok, is an authentic historical record of Korea from 1392-1863 that forms part of the UNESCO’s Memory of the World.
1,893권의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1392~1863년간의 한국의 진정한 역사기록이다.
Until the 14th century, might was always right. Prominent rulers of Goryeo, just as was the case in the Eurasian plains, were mostly military men. 14세기까지는 힘이 언제나 정의였다. 고려의 탁월한 통치자는 유라시안 평원에서 그렇듯이 대부분 무인이었다.
Yi’s successful military coup made him the last ruler of the Goryeo Empire in 1392, and he established the Joseon Kingdom in 1393.
이씨의 군부 쿠데타성공은 1392년 그를 고려의 마지막 통치자로 만들었고 그는 1393년 조선왕조를 창건했다.
The first syllable in Goryeo’s capital Kaekyong, “Kae” means “openness.” Kaekyong is the present-day Kaesong in North Korea.
고려의 첫번째 음절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이며 “개” 는 “개방”을 의미하고 개경은 오늘날 북한의 개성이다.
All roads led to Kaekyong when it was a happening place in the 14th century. The capital had 25 gates on its 23-kilometer walls, connecting it to faraway places in all directions.
모든 길은 개경으로 연결되어 있고 14세기에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이 수도는 모든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는 23km의 벽에 25개의 문을 가지고 있다.
There was sizable and visible Muslim population living in Korea through the 15th century. Researchers believe there were some 40,000- 70,000 Muslims living in the Goryeo Empire through the Joseon period. The Joseon Wangjo Sillok documents King Sejong’s decree in 1427 to bar Muslims from wearing different looking outfits after hearing “the people are shying away from marrying people wearing clothes looking different (from ours).”
15세기까지 한국에는 상당한 무슬림인구가 살고있었다. 연구자들은 고려왕조부터 조선시대까지 40,000명에서 70,000명 정도의 무슬림이 살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우라와 다른 옷을 비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는 말을 들은 후 다른 옷을 비는 무슬림교를 금지하는 세종의 칙령을 1427년에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The English name Korea has its origin during the Goryeo period when seafaring merchant ships from the Arabian Peninsula, the Indian subcontinent, and the Mekong region in Southeast Asia often visited Kaekyong, as documented in the 1124 “Goryeo Picture Book” by Song Dynasty envoy Seo-geung (1091-1153).
한국의 영어명칭인 코리아는 송나라시대의 서궁(1091~1153)의 “고려 그림책”에 의하면 해양상선이 아라비아반도, 인도대륙과 동남아시아의 메콩강으로 부터 개경에 자주 방문했다.
As the founder of a new kingdom of Joseon, Yi needed a fresh start from Goryeo’s economic and political establishment. 새로운 조선왕국의 창건자로서 이성계는 고려가 이룩한 정치경제적인 업적으로부터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었다.
Yi chose to create a new capital city 75 kilometers south of Kaekyong and moved the capital to Seoul in October 1394. Seoul in Korean language is a common noun, referring to the capital city.
이성계는 개경 남쪽 75km지점에 새로운 수도를 만들었고 1394년 10월 수도를 옮겼다. 서울은 한국어로 보통명사이고 수도를 말한다.
The very private militia which defined Yi’s power, became a curse in his own family.
이성계의 권력을 규정하는 시민군은 자신의 가족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Efforts to consolidate the private armies of Yi’s eight sons backfired. Militias loyal to Joseon’s princes would not disband and merge their forces into the national armed forces.
이성계의 여덟명의 아들의 군대를 통합하려는 노력은 실패했다. 조선의 왕자들에게 충성하는 군대는 해산해서 국가의 군인으로 통합하지 않았다.
The forces loyal to Yi’s fifth son Bang-won, who assisted his father’s rise to power, assassinated two young princes, step brothers to Bang-won, in a succession struggle while his father was ill.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방원에게 충성하는 세력은 아버지가 아픈 와중에 승계다툼 중에 아버지의 권력을 돕기 위해 두명의 이복형제들을 살해했다.
The founder of Joseon lived to be 72 years old, but relinquished his power to his fifth son, after six years on the throne.
조선의 창건자는 72세까지 살았지만 재위 6년후 자신의 다섯째 아들에게 권력을 넘겼다.
Kingmaker Bang-won temporarily yielded the throne to his elder brother Bang-gwa in 1398 for two years. The second king of Joseon had no children.
킹메이커인 방원은 1398년 형인 방과에게 2년동안 왕좌를 임시로 넘겼다. 조선의 두번째 왕은 자식이 없었다.
Joseon founder’s fifth Bang-won became the third king of Joseon and ruled for another 18 years.
조선 창건자의 다섯째 아들 방원은 조선의 세번 째 왕이 되어 18년을 통치했다.
Bang-won, the third monarch of the Joseon Kingdom, is the father of King Sejong the Great.
조선왕조의 세번째 왕인 방원은 세종대왕의 아버지이다.
Yi, who was the last military leader to take the throne in Goryeo, was the last of its kind. The practice of consolidating private militias into the national military became the norm for the rest of Joseon’s history.
이성계는 고려에서 왕권을 잡은 마지막 군사 지도자였다. 사적인 군대를 국가의 군대로 통합하는 것이 남은 조선왕조의 규범이 되었다.
During centuries of wars, most of the official portraits of Yi were burned or disappeared, but two of his portraits, one when he was a young king and another at an advanced age, survive.
수백년의 전쟁중에 이성계의 공식 초상화는 타거나 사라졌지만 젊은 왕이었을 때와 나이가 들어서의 모습 등 2점은 남아있다.
Joseon-period portraits have colors painted on both sides of the silk. The painting on the back of the portrait adds to the richness of the color in the portrait paintings, as well as completing the archival component of the paintings.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비단의 양면에 그렸다. 초상화의 뒷면을 그리는 것은 그림의 기록적인 요소를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색의 풍족함을 더한다.
When his portrait was moved from Seoul to the current location at Gyeonggijeon in Jeonju, North Jeolla Province, 200 kilometers away, where a Royal Portrait Museum is built to house his portraits, an entourage of 300 people carried the portrait in a procession that lasted seven nights and eight days.
그의 초상화가 서울에서 그의 초상화를 보관하기위해 지어진 어진박물관이 있는 200km떨어진 전라북도 전주의 경기전으로 옮길 때 300명의 수행원들의 행열이 7일 낮과 밤을 걸려 옮겨졌다.
In 1872, when the original portrait was deemed too old, a team of painters made duplicates with exacting details, including every piece of hair and a wart on Yi Seong-gye’s forehead.
1872년 원래의 초상화가 오래되었다고 판단해서 한 팀의 작가들이 이성계의 머리카락 하나, 이마의 사마귀까지 정확하고 상세하게 복제했다.
The original portrait was washed and placed inside a Joseon white porcelain and buried at the Royal Portrait Museum in Gyeonggijeon.
원래의 초상화는 잘 닦아서 백자속에 넣어 경기전의 어진박물관에 묻었다.
When Yi passed away in 1408, he wished to be buried in his hometown in Hamheung, in present day North Korea, but due to the Royal Palace rule placing all royal tombs within 100-ri (40 kilometers) of the palace, Yi was buried at Geonwonneung in Guri, Gyeonggi-do, less than an hour by car from Seoul.
1408년에 이성계가 죽었을 때 그는 지금은 북한인 자신의 고향인 함흥에 묻히고 싶었지만 왕의 무덤은 궁에서 100리(40km)안에 있어야하는 왕궁의 규칙에 따라 이성계는 서울에서 차로 한시간 이내 거리인 경기도 구리의 건원능에 묻혔다.
The royal tomb, which required 6,000 workers to build, has a unique feature. Unlike other tombs, with tall mounds that get mowed regularly, Yi’s tomb has silver grass growing on it. His fifth son Bang-won had the silver grass and soil from Hamheung planted on his father’s tomb. It only gets mowed once each year on April 5, on Hansik day, when Koreans traditionally visit their ancestors’ graves.
왕능은 만드는데 6,000명의 일꾼이 필요한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다른 능과는 달리 높아서 매년 벌초해야 하는 이성계의 묘에는 은초가 자라고 있다. 그의 다섯째 아들인 방원은 함흥에서 흙과 은초를 가져와서 아버지의 묘에 심었다.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조상의 묘를 방문하는 매년 4월5일 벌초를 한다.
#태조 이성계 #방원 #방과 #어진박물관 #경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