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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네. 앞에 훈련 출가여행 다녀오신 여섯 분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분들 외에도 이태성 서현정 나인명 그리고 마산에서 올라온 이명섭 일본 오사카에서 올라온 황자명, 청년들 예비 교무들 많이 함께 했습니다.
우리 훈련 나신 분들이 알아서 다 이야기 해줘서, 가보고 싶어도 못가신 분들, 갈 수 있어도 안가신 분들, 핑계대고 마음을 못내신 분들, 여러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까 우리 황원공 교도가 (이야기) 했는데, 남들이 볼 때는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 변호사지, (최근에) 마누라는 아이도 낳고, 아이 핑계로 안갈수도 있는데 출가여행 11번 중에 9번을 갔다 온 사람입니다. 뭔가 있겠죠. 그 신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심산 김혜관님. 산에도 (잘) 올라가시려나 했는데 잘 올라오세요. 내가 80 되면 올라가릉가 하는데, 하여간 심산님의 특징이 있죠. 열정이 있고 적극적이시고, 그래서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활기를 받는게 아니라 활기를 주는 역할도 충분히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걸 안느끼는데, 나이먹은 사람은 이번이 마지막이련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마 심산님도 그 마음이 충분히 드셨을 겁니다. 사실 모르거든요. 갈 수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하는게 좋죠. 타일도 만드셔가지고 공양도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우리 법공님이 한 6개월 되셨는데 거의 법회하고 공부방을 무결석이세요. 근데 저는 몰랐었는데, 훈련나기 전에 교전을 우리 전진경님이 읽고 가라고 해서 교전 전체를 읽고 오셨더라구요. 15일 동안. 이게 뭐냐고 하면, 훈련을 위한 준비하게 되죠. 그 준비가 뭐냐 하면 동정일여. 이때만 훈련하는게 아니라, 이때를 위해서 일을 조정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고. 그것이 뭐냐면 이게 무시선이거든요. 그리고 또 운전도. 승합차 (운전을) 해주셔 가지고 고맙습니다.
우리 심경례님. 참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오롯하게 그 선의 맛에 진경에 들어가서 정말 예뻤습니다. 얼굴이 예쁜게 아니라, 그 자세 그 마음 그 기운. 그 마음이 너무 예뻤습니다. 우리 성묘님도 성묘님의 뭐랄까 간절함이라고 할까요? 진실함이라까 오롯함이 우리 청년들에게 많이 도움이 된 것 같고, 선도 잘 되신 것 같습니다.
원진천님은 때꼽자국이 많이 끼고 오셔가지고 그걸 품어내는데 2~3일 걸리죠. 만일 그걸 안품어내고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죠? 본인이 회사가 중견기업이 되어서 직원만 해도 백 몇십명이고, 회사 사장이라도 죽을 때는 아무 상관없어. 죽을 때는 니가 얼마나 참마음의 힘을 갖췄느냐, 니가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본인이 얼마나 생사문제에 있어서 영생길을 자기가 자유자재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 그것이지 갖고 있는 건 다 놓고 가니까요. 그래서 회사를 해도 사실은 정산종사님은 그건 주업이 아니라고 했어요. 부업이에요. 진짜 주업은 뭐죠? 본업은 마음공부여. 금주도 선언하시고... (이야기한 걸 다 여기에서) 오픈해야겄다.
우리 태성교우와 현정교우는 더 나고 싶어도 회사에서 불려가서 반만 하고 가기 싫다고 하면서 가셨습니다. 우리 나인명 교우가 보니까, 이 생에 아마 뭔 계기가 아직도 됐는가 아닌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성격이 만사가 편안해. 아마 그래서 그것을 고쳐보겠다 해서 훈련을 오는데,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난 것보다는 훨씬 났습니다. 그것이 콩나물 크듯이 서서히 크거든요.
그 우리가 사람들이 다 행복을 향해서 달려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마치 제가 볼 때는 우물 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쫌 올라간 듯 하면 내려가고, 올라간 것 같아 하면 내려가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삽니다. 이것을 부처님은 윤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윤회. 그래서 그 윤회가 육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금 올라가면 사람 몸 받았다가 도로 또 강급해서 축생보를 받기도 하고, 몸을 못받기도 하고, 이렇게 윤회를 하는 것이 중생세계입니다. 어떻게 보면 대종사님은 우리에게 ‘야~ 너 그렇게 윤회하고 살래? 그거 확 벗어나서 한번 부처님 세계에 안갈래? 이거 정말 좋은데...’ 하고 말씀해주신 것이 아닌가. 대종사님의 서원은 일체동포를 빠짐없이 부처를 만들고 싶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이 시간 지금 얼마나 피곤하신 분들도 계실꺼에요. 그런데 왜 여기에 오시냐? 여기에는 바로 대종사님의 그런 원력이 있어. 여러분들을 부처로 만들고 싶은, 즉 공의 세계, 즉 내 본래의 세계를 만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왠지 힘들어도 갔다 오면 좋고, 또 가고 싶고 그런다고. 내 안에 욕심의 힘이 클 때는 가기 싫어. 그런데 가기 싫고 안가더라도 가는 것이 맞다 하고 생각을 하죠. 인연이 없는 중생은 어디 갈지를 몰라. 설사 인연이 있어도 그 욕심의 힘과 업력의 힘이 큰 사람은 그렇게 하면 좋겠다마는 아따 가기가 싶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안이뻐.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보면 좀 변화를 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지만 생각을 멈추죠. 제가 보니까 안된다는 사람이 많이 있더라고. 회사도, 일도, 수행도. 내가 그 사람들 보며 공통점 하나 찾았네. 안해. 안하면서 안된데. 그럼 아예 안했느냐 몇 번 해봤어. 몇 번 해보면서 안된데.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일반인들에게 제일 쉽게 진리를 말한다면 하면 된다는 진리를 저는 제 삶 속에서도 확인하고 있어요. 하면 돼. 하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원불교의 신이야. 나는 안돼 이것이 불신이라.
윤회는 그 어릴 적에 애들 소꿉놀이 하는 걸 보셨어요. 집도 짓고, 지들끼리 전쟁놀이도 하고, 별걸 다해. 재밌다고 해. 그러나 그걸 우리가 봤을 때는 소꿉놀이지 소꿉놀이여.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동물은 동물이여. 그러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속에 다른 것이 있어. 많죠. 도구도 이용하고, 언어도 쓰고, 불도 이용하죠. 그러나 그것 말고도 다른 부분이 있더라. 그건 뭐냐 하면 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잘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여. 동물도 그렇지만 동물은 그 의식주만 해결하면 되요. 그러나 사람은 의식주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더라. 그 걸 뛰어넘은 어떤 영적 성장, 그걸 뛰어넘은 진정한 행복,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가는 것이 사람이더라. 그 길로 갈 때는 내가 예쁘고 행복하고 뿌듯하고 좋아. 그러나 그 길이 안될 때, 또는 막혔을 때, 또는 그 길을 내 스스로 알면서도 안할 때는 그리워만 하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저기 뒤에 애기. 우리 (애기가) 처음으로 교당에 왔습니다. 100일 다 되가지고... 원공이 딸. 지금 즈그 새끼가 좋아 죽겄는거야. 근데 동물들도 즈 새끼 다 이뻐합니다. 동물들도요. 얼마나 지 새끼 이뻐하는지 봐. 사람은 물론 자기가 자식을 낳았으니까. 아버지들은 애를 낳아 놓고 너 하나만은 내가 책임질께 하는 마음이 있어. 그러니 무거워지지. 근데 그렇게만 살면 그건 사실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없다. 그것도 어렵지. 그거 하나 키우는데 죽겄다고 하니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그러나 우리가 의식주 구하고 새끼들 낳아 키우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푠가. 그건 동물들도 다 하는 거여.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깨달을 수 있는 각혼이라는게 있더라. 양심이라는 게 있더라. 깨달으면 그게 뭐냐 깨달음의 그 세계가 일반인들에게는 바로 양심이여. 그 양심의 힘이 바로 확장이 되어야 하거든. 이게. 살아가면서, 사실은 양심을 가지고 싶고, 양심을 외면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그 양심에 때가 낍니다. 그 참. 방 청소도 말이여. 창틀 같은데 보면, 어찌 그리 먼지가 끼는가. 하다못해 이런 것들도 먼지가 끼는데 우리의 몸에도 때가 끼어. 그러면 우리 마음은 뭐여. 물드는 것이지. 그래서 그 사람 기운을 딱 보면 그 생기가 있어서 생기가 살아있는 사람이 있고, 때가 끼어서 탁기 진기 (가득하여) 그냥 냄새 나는 사람이 있다고. 생기는 향기가 나는데, 이 오염된 사람은 탁기가 나와. 저는 누가 잘 산 사람이냐. 회사 있는 사람? 돈 많고? 그건 기본 의식주여. 그것만 있는게 아니더라. 정말로 탁기로 사는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더라. 안 행복해. 아까 이야기한 사람 어때요? 벌써 마음이 어때요? 본심을 많이 회복했지. 도심이 많이 돌아왔어. 이제 어떻게 나사가 풀릴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은 한생을 살면요 이런 거 같습니다. 현재가 있어. 그러면 이 현재에는 또 많은 과거가 있습니다. 어제도 과거고, 태어날 때도 과거고, 중음에 있을 때도 과거요. 그 전생도 과거고 그 전생도 과거일겁니다. 얼마나 많은 과거의 업력 속에서 이 전생에 때로는 동물 육신을 받을 때도 있고 때로는 몸을 못받고 중음에서 몇백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현재에 태어났지만, 사람 몸을 받은 사람도 있고 축생보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가만히 보니까 평균(하고) 평균(해서) 보니까 우리 교도님들 같은 경우는 제가 볼 때...(과연 어떨까요?)
이 과거 과거를 업이라고 표현합니다. 지은게 다 업이니까. 저 업에 의해서 우리가 다 성격이 다르시죠. 생김새도 다르거든요. 지혜도 달라요. 복도 달라요. 그죠? 인연도 다릅니다. 이게 왜 그럴까요? 이게 결국은 다 본인들이 과거에 지었던 겁니다. 그래서 현재를 지금 여러분들이 만드신거죠. 받고 계신 거에요. 그러면 이것을 그대로 갈 것이냐? 요것을 확 한번 업그레이드 한다고 할까 확 바꿔버릴 것이냐 그것은 누가 선택해요? 누가 선택해? 여러분 각자의 마음이 선택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내가 지금 과거로부터 지어온 것도 누가 지었어요? 여러분 각자의 마음이 몸을 동원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지어서 현재 받았고, 현재도 순간순간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그대로 나타날 뿐인 것입니다. 원망할게 한가지도 없어요. 왜? 내가 그대로 지은거니까.
어릴 때 태어날 때 이쁘게 태어나고 다 애지중지 해서 임신해서 낳았습니다. 그렇지만 났지만 엄청난 복합적인 것이 있어요. 어떤 애는 예쁘고 지혜롭게, 복 있게, 왕자 공주로 태어나고, 어떤 애는 났지만 찢어지게 가난하고 버림받기도 하고, 장애를 안고 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묶여서 사연을 갖고 나옵니다. 그런데 내 자유의지에 따라서 %가 달라져요. 내 자유의지가 강한 사람은요. 한 50% 정도 내가 이 과거의 업을 바꿀 수 있습니다. 100%는 안되요. 여러분 미안하지만 한 생에... 이 생만 노력해서 내가 인생을 바꾸는 것은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다가 이것을 과거의 힘이 크고 내가 현재의 힘이 작으면 이게 50%가 아니야. 과거의 업에 짓눌려 살아 숙명 같이. 그래서 과거의 업에 의해서 그것이 50%을 넘어서서 60, 70, 80%까지 가.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보세요. 중간 중간 오매 미안해라, 오매 죄송합니다, 몰라서 그랬어, 어쩌다 그랬어, 습관 때문에 그랬어, 성격 때문에 그랬어, 인연 때문에 그랬어. 온갖 것들이 내 업으로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에 살면서 이 업의 영향을 안받을 수가 없고, 이 업을 해결하면서 가야 한다 말이여. 그런데 보통 사람은 원불교에 들어와서 이 업을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고 이 업을 녹일려다 말아버리고 가.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래서 이걸 비심이라고 해. 부처님의 비심. 참 안타깝거든. 자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계속 그 속에서 나오지를 않고, 계속 그 속에서 나름대로 스스로 위로하면서 위로꺼리를 찾아서, 때로는 술집에, 때로는 여행으로, 때로는 잠으로, 때로는 수다로, 때로는 나름대로 책도 한번 봐보고. 그러나 제가 볼 때는 이 삶을 살면서 탁 한번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하거든요.
여러분 보세요. 살면서 계기가 있거든요. 엊그저께 우리 나인명 교우가 그러대. 초등학교 때 로빈슨 크루소를 읽었데. 그랬더니 그 무인도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이 총동원되서 생존을 하더라. 그러니 나는 지식을 최대한 쌓아야겠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갔잖아요. 근데 그게 다는 아니지. 근데 봅시다. 여러분 언제가 계기가 되세요? 참회의 계기 또는 내가 어떤 마음이 새롭게 되는 계기, 철이 드는 계기, 감사가 느껴지는 계기, 원망심이 녹는 계기, 수행심이 증장되고 서원을 세우는 계기, 신심이 뿌리를 박는 계기. 이것이 언젭니까? 언제에요? 어떤 사람은 좋은 책을 하나 봤더니 자서전이라든가 이런 걸 봤더니 아, 나도 한번 잘 살아봐야겠다. 이런 분의 이런 걸 닮아서 살아봐야겠다. 하는 계기가 있죠.
책도 안본 사람은 그런 게 없네. 책을 교양서적을 봐도 그런 계기가 되는데, 이 정전을 봐서 그런 사람이 많죠. 지금 충북교구장님은 원래 법대생이거든요. 고시공부를 하다가 친구 집에 가서 교전을 한번 봤어. 저녁에 다 읽었어. 펑펑 울고 그 다음날 교당 가서 저 출가하겠습니다. 그런 분이 충북교구장입니다. 원불교 하나도 몰랐습니다. 하루 보고 출가했습니다. 왜 경전을 보고 계기가 된 겁니다. 그리고 인연을 통해서 계기가 됩니다. 인연을 통해 강급할 수도 있고, 진급할 수도 있고, 대진급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얽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 스승의 인연, 법연의 인연, 불연의 인연, 부처님과 인연 대단히 중요합니다. 대단히 중요해요. 또는 경계를 통해서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사람은 평상시에 철학적인 생각이 좀 있던 사람이에요. 부모님이 열반했다던가, 자식이 열반했다던가, 형제가 열반했다던가. 아니면, 병고가 생겼다던가. 이렇게 하면서 인생에 대한 정말 어떤 게 인생의 낙일까? 어떻게 사는게 잘사는 것인가? 하는 계기를 갖다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도님들 같은 경우는 법회를 보시잖아요. 법회를 통해서 정말 이거 하나는 잡고 가겠다. 계기가 됩니다. 또는 공부방을 통해서 하~ 대종사님 법이 이랬었구나. 이런 걸 내가 모르고 살 뻔 했네. 클날 뻔 했네. 이게 행복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나. 진정한 행복과 가치 보람은 이거구나 하는 것을 배움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요. 여러분이 일주일 훈련 났었거든요. 자 수학적으로 계산해봅니다. 일주일간 훈련나면 우리 반타원님이 일년간 교당 온 것보다 시간이 더 많습니다. 반타원님 일년간 교당와서 법회보는 것보다 시간 일주일이 더 많습니다. 근데 어쩌죠. 밥에 불을 떼다 말다 떼다 말다 하면 밥이 돼 안돼? 안되죠. 설 익어버리든가, 아예 미지근한 물로 되다가 식어버리고, 되다 식어버리든가 그러죠. 팔팔 끓여서 완전히 뜸이 들어버려야 되거든.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그 뜸이 드는 시간이에요. 나름대로. 왜냐하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대게 첫날 둘째날, 빠른 사람은 첫날부터 환경이나 훈련을 준비한 사람은 상시응용주의사항이나 교당내왕시주의사항을 잘한 사람은 첫날부터 잘 진입해 들어가 버립니다. 수행의 맛에. 그러나, 보통은 둘째날이나 셋째날 지나봐야 합니다. 그러면 삼일만 지나도 서서히 몸이 달라지고, 호흡이 되고, 기운이 달라집니다. 그래도 전생에 업이 많은 사람은 이것도 닷새 엿새가 되도 안돼. 남들은 침을 꼴딱꼴딱 삼기고 하는데 안돼. 전생에 닦은 사람은, 이것도 업이여. 똑같이 수행을 해도 전생에 닦은 사람은 금방 잘가요. 머리 좋은 거랑은 상관이 없어. 근데 안한 사람. 온갖 몸을 혹사해가지고 거기 가서나 해야겄다 하는 사람. 그 업을 녹이는데 까지 얼마나 걸리겄서.
그러나 보통 교도님은 (대체로) 한 이삼일이면 녹더라. 그래서 제가 결제식 때 이야기했죠. 삼일간 훈련한 것 하루 더하면 그 삼일의 두배가 됩니다. 사일간 훈련난 것 하루 더하면 그 4일 훈련의 두배의 효과 납니다. 오일을 하면 하루 더하시면, 그 두배의 효과 납니다. 왜? 상향 곡선이거든. 1일 3일 4일 5일 효과가 팍팍팍 차이가 납니다. 왜? 연단에서 계속 불을 떼고 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봐도 공간적으로 봐도 (출가여행 훈련난 그곳은) 성집니다. 인연으로 봐도 저는 그동안 거의 출가위를 모셨습니다. 우리 교단에서 제일 전달력이 있으시고, 제일 수행력이 있으시고, 법력이 있으신 분들은 교당까지 잘 안오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그것도 일주일간. (교육을 받기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공들여서 그렇게 모셨죠. 그런데 이 계기가 되려고 할 때, 자기가 지은 업에 의해서 인연에 끌려서 못하는 사람, 또는 고집 부리느라고 못하는 사람, 핑계대기를 좋아하는 사람. 지금 우리 서현정 교우의 시할머니가 계십니다. 나이가 몇이여? 87이지. 저 양반 만덕산 동선도 갑니다. 안아픈줄 알어요? 무릎도 아프고, 수술도 다하시고. (그래도) 훈련 안빠지십니다.
내가 정말 진정으로 내 안에서 원하는 간절한 구도심, 정말 내 영혼을 턱 성장을 시켜보겠다 하는 사람은 혼자 힘으로는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타력의 계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 중에 저는 제일 좋은 것이, 아까 다 좋지만, 훈련이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훈련을 당대에는 동하 3개월씩 났죠. 농경시대라 그랬죠. 그러다 태평양 전쟁 시에는 한달로 줄었죠. 옛날에는 재가출가 같이 했습니다. 대종사님 당대에는. 그리고 지금은 우리 교무님들도 부직자 몇 년차? 3~4년차까지만 (훈련) 이주하고, 저희 같은 경우는 총부에서 한주밖에 안해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6개월 하던 것을 한주로 줄이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게? 이건 문제가 좀 있습니다.
(다시 대종사님 때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서 대종사님 당대에 동하 3개월. 3개월만 훈련 나도 달라져요. 대종사님이 직접 지도하셨지, 직접 일기 점검 감정하십니다. 직접 감정하셔서 띠~ 너 갑. 너 을. (성적을 바로 매기십니다) 의두요목 직접 질문하십니다. 만법귀일 어디야? 만법귀일 대답해봐. 직접 묻습니다. 대답하면, 다시 묻습니다. 대답하면, 다시 질문합니다. 왜? 알면 계속 대답할 수 있어요. 모르면 조금만 (방향을) 꺽어도 대답 못하거든. 그렇게 해서 3개월 훈련 나면 달라져. 확 달라져. 그러면 전무출신 지원서를 받았어. 훈련 나서. 지금이야 교당에서 전무 출신 지원서를 받지만, 옛날에는 뭐 교당이 있습니까? 거기서 전물출신들이 다 나온 거에요. 왜? 아까 업력에 짓눌린 그런 삶. (훈련으로 바뀌니까요) 또 저기 보세요. 내가 나를 이기는게 아니라 누가 나를 이겨부러? 업력의 나가. 참나가 업력의 나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업력의 나가 참 나를 이겨부러. 그런 삶에서 확 바뀌어버리는 거지. 그래서 원불교 훈련은 서로서로 훈련이 있습니다. 스스로 훈련만이 아니라. 불교는 이게 아니야 불교는 벽보고 앉아있죠. (원불교는) 같이 훈련을 하고 같이 회화를 하고 같이 강연을 하고 같이 선을 합니다. 여기에 무서운 이치가 있습니다. 이안에. 왜냐하면 혼자 하는 것은 자력이 선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근데 보통은 타력이 어우러져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훈련이야.
심산님 혼자 삼밭재 갔다 오라면 못갑니다. 같이 하니까 가는 거에요. 새벽 4시45분에 눈뜨라고? 어떻게 눈떠요? 같이 하니까 가능한 겁니다. 사실은 내가 오픈을 안했는데 아침 좌선을 매일 5분씩 연장했습니다. 5분씩. 과거에는 수행한다고 하면 주로 심성 훈련이었다고. 마음만 했어. 근데 새시대에는 기질, 몸, 습관. 이것까지 변화할 수 있도록 두가지를 같이 해야 한다고 하셨다. (영육쌍전). 생각으로만 잘 살아야겠다 안된다 이거야. 몸으로 실제로 내가 은혜를 직접 느끼고, 직접 내가 보은을 하고, 직접 내가 경전을 읽고 쓰고, 직접 내가 선을 하고, 직접 내가 일심을 들이대서 오롯하게 맡은 일을 책임감있게 한다는 것. 그것이 이제는 현대 도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당장에 얼마나 기운이 있느냐. 단전자리에 그냥 허리띠 같이 고무줄 쑥 들어간 자리만 있는 사람들. 옷 벋고 보면 그 자리에 줄만 나와 있는 사람들. 참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훈련을 정기 훈련을 났는데, 원불교의 진정한 훈련은 사실은 정기 훈련이 아닙니다. 원불교의 진정한 훈련은 뭐하자는 것이여? 정기 훈련을 통해서 상시 훈련을 하자. 그 상시 훈련은 자력으로서 집에서 직장에서 하는, 사회에서 하는 상시응용 주의사항.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교당에서 해야 하는 교당내왕시 주의사항 이렇게 해서 정기 훈련 에너지를 갖다가 상시훈련으로 적용을 해라. 왜? 훨씬 많은 시간을 상시에서...(보내기 떄문입니다.) 여러분 교당 일년에 많이 온 것 같죠? 얼마 안와. 기준이 낮은 사람은 많이 온 것 같을 꺼에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시간을 분석하면 여러분이 대부분 보내는 시간은 집과 직장입니다. 사회입니다. 교당 겁나게 잘 온 것 같아도 일년 전체에 10%도 안됩니다. 5%도 안됩니다. 그 90% 이상의 시간을 쓰는 집에서, 또 일주일에 한두번 쓰는 교당에서 어떻게 하면 상시훈련을 잘할 것인가. 이게 이제 대종사님이 동정일여의 법을 새시대에 내놓은, 영육쌍전을 내놓은 그 법의 원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 업에 대해서 두가지만 말씀 드리고... 과거 업은 누가 지었지? 본인이 지었어요? 맞어? 진짜? 과거의 업은 내가 지은거에요. 그러면 현재의 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요? 내가 좋은 것만 받아들이면 되지? 응? 좋은 것만? 남보다 조금 더 나은 것만 받아들일까? 정말로 과거에 대한 업을 내가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의 받는 모든 업은 어떻게 해? 좋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안좋은 것은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달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아까 그 업을 경감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현재 마음공부를 하는데 먼저 가져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안되면, 일단 안에다가 쟁여놓고, 그 원망과 아픔을 안에다 쟁여놓고 내가 마음공부 하겠다 (해도) 싶지 않습니다. 먼저 이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게 신앙의 세계입니다. 신앙의 세계. 인과를 신앙한다 입니다. 그래놓고 현재 마음공부를 내가 어떻게 만들어 갈 꺼냐? 이겁니다. 어떻게 내가 지금 몸과 입과 마음을 쓸 것이냐? 이게 결국 미래의 나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정말 잘 사는 것은 의식주 풍요한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맑은 그 청청한 기운을 갖고 있는 것. 즉,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내 영혼이, 내 주체자로서 자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모든 대상에게 선업을 지어라. 선업을 지어라. 만나는 대상 대상에게 불공을 통해서 내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주고, 도움을 주는 하는 것 같이 잘사는 게 없다. 그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요? 제가 보기엔 귀찮을 꺼 같애. 하도 복이 많아서. 하도 복이 많아서 미안할 것 같애. 딴 사람에게.
제가 요것만 말하고 마칠께요. 제가 출가할 때 우리 아버지께서 인과 이야기를 하면 그런 말 하지 마쇼. 그래야 세상이 편안항께 합리화시킨 말이요. 어떻게 정확히 다 맞는다요? 대체적으로 맞지만 안맞는 것도 많아요. 내가 그랬어. 근데 교전을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제가 군대에서 읽어보니까, 아 인과가 맞구나. 세상에 공짜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다음에, 그런데 죽으면 끝나는게 아니라 내 참 마음은 사실은 생사 자체가 없어. 인과는 여실히, 몸은 생사가 있지만 내 마음은 불생불명이여. 영생이다 이 말이여. 그러면 영생을 통해서 현실에 살아가는 심신작용 모든 것이 인과로 나오는구나 영생과 인과가 딱 만났구나. 그러면 나는 이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면 나는 이 생에 이 수행하는 재미. 저는 군대가기 전에 이미 수행의 맛을 받기 때문에 일생 수행만 하라고 하면 좋겄더라고. 그래서 나는 수행만 할 줄 알았어. 이렇게 학사 한다고 노력 안해도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내가 수행을 더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고 제가 받은 은혜가 있으니까. 안 착한거 같은데 제가 착하거든. 심부름도 잘하고. 도와주는 것 제가 그렇게 좋아했어요. 어릴 적에. 하, 내가 좋아하는 것 했으면 좋겄다. 하, 그리고 내가 법을 공부해보니까, 하, 이게 이렇게 좋아. 아디오스 아디오스 이렇게 좋은 걸 내가 뭣허로... 응? 사회나가서 아부하고 아첨하면서 내가 먹기 싫은 술 먹으면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에이 잡 것. 던져버리자 하고 나왔어.
근데요 인자 제가 그렇게 나온지 30년이 됐어. 근데요 그때 제가 출가를 하면서 이렇게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부피로 말하면 이 정도였어. 아까 인과와 영생을 통해서 수행을 하고 봉사를 하고 이 경전 공부를 하고. 이게 정말 나는 내 출가에 요것만 이뤄도 행복하겠다. 내 일생 다 줘도 되겠다 하고 나왔어 아 그런디 좀 미안한 이야기. 말하기 좀 미안한데, 이것을 해서 살아보니까 이것의 (아까 표현한 부피의) 수십배의 더 큰 재미가 있었더라고. 그것을 선배들이 좀 말해주지. 예를 들어 그래요. 우리 학사 누가 하라고 한 사람 없어요. 근데 대종사님 법을 공부해보니까 외국에서 온 애들, 지방에서 온 애들. 이 비싼 서울 부동산비 어떻게 감당하냐. 가난한 집 애들 어떻게 공부하냐. 그럼 (내가 학사를 만듦으로써) 야들이 공부를 해서 야들이 크면. 원불교 교도가 된다 이거 (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야 나는. 야들이 크면, 이 사람이 국가 사회에 능력 있는 사람이 되지 않냐, 능력 있는 사람이 되지 않냐, 이 세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지 않냐. 그 중요한 시기에 공부하는데 도와줘야겠다. 지만 잘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 번역하는게 있어. 아 미국 봉불식에 갔더니 말이죠. 전부 노인만 있네. 봉불식에 갔는데 전부 노인만 있어. 젊은 사람이 없어. 내가 데리고 간 김성현이랑 몇사람만 젊은 사람이여. 그때 마음이 아파가지고 어떡해야 세계교화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제가 애들은 만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그게 뭘까? 대종사님의 일화를 만화를 넣어서 쉽게 해서 이아이들에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요것을. 교전보다도 아이들에게 그것이 낫자나요. 나 대종사님께 전화 안받았거든. 그거 허라고. 출가해서 보니까 세계 일체생령에게 이 대종사님의 인과의 이치와 영생의 원리가, 이 삼학팔조 사은사요가 인연이라도 맺어준다면, 얼마나 이 세상이 좋을까. 대종사님의 사은사상 들어가 버리면 전쟁 없어져 버려. 종교를 넘어서거든. 사은사상에 들어가 봐.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이 엄청난, 우리가 참, 천지의 은혜 부모의 은혜 동포의 은혜 법률의 은혜가 전달이 되면, 이 세상은 평화 세상이 된다. 그리고 사요가 들어가면, 이 세상은 정말로 평등 세상이 되겠다. 낙원 세상이 되겠다. 복지 세상이 되겠다. 그러면 내가 사은사요 이 수행의 삼학팔조 한사람에게만 전달이 된다 해도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출가할 때는 안했다니까 내가. 출가하면서 살아보니까 너무 좋은 거여.
한 가지만 더 하고 마칠게. 하도 좋아서. 배아플랑가? 배아프든 말든 상관 없어. 여러분, 내가 히말라야를 갔다 왔거든요. 오천미터가 넘은 오천오백고지를 갔는데 별이 막 쏟아질라고 그래. 숨을 못쉬겠더만 그냥. 죽겄더라고 첨엔. 근데 명산은 이런 거여. 하나 불뚝 있으면 명산 아니여. 진짜 산은 이렇게 주변에, 이걸 뭐라고 해요? 첩첩산중이라고도 하고 겹산이라고 해요. 겹산. 진짜 명산은 받쳐주는 산이 있더라고. 지리산도 그러거든. 그런데 (이런 산처럼) 제가 출가하고 나서 보니까 제 핸드폰에 (입력되어 있는 사람이) 사천명이 넘어요. 제가 아무나 입력도 잘 안하거든. 교화할 사람만 입력하지. 뭐 어지간하면 입력도 안해. 귀찮아서. 그런데 제가 만약 출가 안했어봐 몇 명이었을까? 평균 잡아서. 내가 출가 안했어봐? 일반 보통 사람이여 재가 교도. 그러지 말고 한번 물어볼까? 핸드폰에 몇 명 있어? 많아봤자 몇백명입니다. 천명 넘는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들이에요. 생각지도 않는, 출가할 때는 그런 것도 생각지도 않았지만, 복 중에 최고인 인연. 그것도 그 사천명이 주로 어떤 사람이여? 거의가 법연이지. 법연이여. 소중한, 나를 언제서나 함께 끌어주고 함께 밀어줄 그런 이연들이더라. 아유, 이런 참 복이 있더라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형님들이, 내가 처음 간사 일년인가 이년 마치고 우리 큰 형님을 만났는데, 야~ 인자 돌아올 생각 없냐? 그러더라고~ 우리 큰 형님이. 없는디요~ 원불교를 우리 누나 출가한 우리 누나부터 제대로 댕긴 거에요. 우리 아버지가. 옛날 정치 좀 하시다가 중간에 좀 안 되가지고 원불교를 만나서. 그런데 참~ 우리 형님들이 놀랜 거야. 저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삼천명이 넘게 왔어요. 형님들이 형수씨도 좀 우습게 알았거든 원불교를. 그러더니 제 생각에 뭣 때문에 왔겄어? 바쁜 세상에. 찾아온 사람만 삼천명이니 그냥 보낸 사람은 어땠겄어. 이게 뭣이냐? 인연의 소치다. 공가에 살면 인연이 엄청나게 넓어져버리더라고. 다 말하면 여까지만 말할게 배 아프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