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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의 시선에서 만나는 교사
칠월의 마당, 아름다운 이름 교사
2026년 한 해의 시간 중 7월의 달력은 다양한 캘린더 이미지들을 통해 그동안 달려왔던 시간들에서 잠시 멈추어서 휴가를 통해 쉼의 시간을 갖도록 안내한다. 저마다 어디로 휴가를 떠나야하는 지 바다로, 산으로, 휴양지로 계획하고 시행하는 여행의 달로 분주하기만 하다. 그러나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교회학교의 달력은 오히려 이 칠월이야말로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고 온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해 교육에 집중하고 복음 사역에 전력 질주하는 뜨거운 여름의 달로 안내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가 해마다 칠월 둘째 주일을 교회학교 교사주일로 정해 지키는 것도, 이 계절의 수고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교단 전체가 함께 기억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교회들도 7월 각 부서 여름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섬기는 교사들을 위해서 특별헌신예배와 기도후원과 격려의 시간을 특별히 갖고 있다.
이처럼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준비하는 현장의 교사들은 무더위 속에서 흥미롭게 구성된 말씀 교재를 가르치고, 찬양율동을 함께 익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찾아내어 함께 나눈다. 우리 교회들은 지금 성령 충만한 교사들을 통하여서 그 어느 달보다도 소중한 여름 사역의 시간으로 다음세대의 땅에 복음을 심고는 은혜를 전하는 복음의 계절 위에 서있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애쓰고 수고하는 교사들의 손길 위로 여름 사역의 계절이 영글어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에 기쁨으로 감당하는 수고, 드러나지 않아도 한 사람의 교사로서 멈추지 않는 헌신의 역사가 교회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귀한 달이다. 이에 이 여름의 자리에서 땀방울로 꽃을 피우며 서 있는 교사란 과연 누구인지 교회력의 시선으로 되짚어 보고자 한다.
교사라는 이름은 주일학교라는 제도보다 훨씬 오래된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한 아이 앞에 앉는 일이 얼마나 오래되고 얼마나 거룩한 부름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 뿌리는 신명기의 쉐마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신앙의 첫 교사로 부모를 세우시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 6:7)고 명하셨다. 여기서 '가르치라'로 옮겨진 히브리어 동사 '샤난'은 본래 '날을 세우다, 새기다'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한 번 설명하고 마무리하는 교육이 아니라, 앉았을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되풀이하여 마음 깊은 곳에 새기는 교육을 가리키는 것이다. 학사 에스라의 모습을 통해서 가르치는 교사의 성경적인 모델을 만날 수 있다. 성경은 그를 두고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스 7:10)고 기록한다. 먼저 배우고, 배운 대로 살아 내고, 그 삶으로 가르치는 것, 이것이 에스라를 통해서 보여주는 교사의 실천적인 모형인 것이다. 나아가 신약성경을 통해 교사와 관련 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예수님 자신이 '랍비'로 불리셨고, 니고데모는 그분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요 3:2)이라 고백하였으며, 승천을 앞두고 남기신 지상명령 역시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는 가르침의 명령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오래된 흐름은 근대에 이르러 제도의 옷을 입는다. 오늘날의 교회학교의 전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주일학교 교사'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기억되는 인물은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 1735~1811)이다. 1780년, 영국 글로스터의 신문 편집인이었던 레이크스는 주중 내내 공장에서 시달리다 주일이면 거리를 배회하던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몇 사람의 교사를 세워 글 읽기와 교리를 가르치게 하였고, 매 주일 작게 시작되었던 이 모임은 점차 영국 전역으로 번지는 주일학교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전세계 교회학교 운동의 큰 불씨가 되었다. 이 주일학교 운동의 물결은 바다를 건너 조선 땅에도 닿았다. 1888년 1월, 이화학당의 한 작은 방에서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은 어린이 열두 명과 부인 셋, 그리고 몇 명의 여선교사와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였고, 이것이 우리나라 주일학교의 첫걸음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서울 연동교회와 평양 장대현교회를 비롯한 전국 각처의 예배당마다 주일학교가 세워졌고, 그 작은 복음의 교실들이 오늘 우리가 몸담은 장로교회 교회교육의 뿌리가 되었다. 레이크스의 글로스터에서 스크랜턴의 이화학당까지, 교사의 자리는 시대와 대륙을 건너오며 다음세대를 향한 하나의 긴 다음세대 교사들의 계보를 이루어 왔다. 그 계보의 끝자락에 오늘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의 뜨거운 교사들의 함성과 땀에 젖은 교사들의 이름표가 놓여 있는 것이다.
교회사적인 시선에서 만난 교사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토대로 교사 쉐마코칭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는 아이를 '빚어 가는' 사람이다.
기독교교육학자 마리아 해리스(Maria Harris)는 교회의 교육을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한 백성을 빚어 가는 일이라 하였다. 그녀는 코이노니아(사귐), 레이투르기아(예배), 케리그마(선포), 디다케(가르침), 디아코니아(섬김)라는 다섯 형식 가운데 가르침이 나머지 넷과 결코 떨어져 홀로 서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참된 가르침은 함께 예배하고, 함께 나누어 먹고, 함께 섬기는 삶의 한복판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름성경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아이와 함께 부르는 찬양 한 소절, 나누어 먹는 간식 한 봉지도 이미 가르침의 일부이다. 이 계절, 교사들에게 권하고 싶은 첫 실천은 가르침의 자리에서 가장 소중한 이름을 불러주는 실천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하고 돌보는 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 교사는 자신의 모습과 존재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교육철학자 파커 파머(Parker Palmer)는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교사의 눈빛과 말투,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의 온도가 이미 하나의 교재라는 뜻이다. 이것이 곧 쉐마의 방식이기도 하다. 신명기의 부모가 일상의 모든 순간에 말씀을 새겼듯, 오늘의 교사도 여름성경학교의 뜨거운 마당에서 율동과 눈맞춤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복음을 새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실천은, 아이들을 향한 진실한 복음의 증언과 진실함으로 가르침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우리 교사들이 준비한 순서가 조금 흐트러질 수는 있어도, 한 아이, 한 아이 그들의 눈을 제대로 마주 보아 준 진실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교사는 기다리며 부지런히 뿌리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천국을 씨 뿌리는 자에 비유하셨다(마 13장). 씨 뿌리는 이는 열매를 당장 손에 쥐지 못한다. 다만 뿌리고, 기다리고, 다시 뿌릴 뿐이다. 그리고 이 씨 뿌림은 결코 교사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뿌린 씨앗 위에 교회학교 교사가 물을 주고, 신앙공동체 전체가 햇빛이 되어 감쌀 때, 한 아이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린다. 그러므로 세 번째 실천은 교사 홀로 감당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모에게 오늘 아이가 배운 한 구절을 문자 한 통으로 전하고, 다음 교사에게 이 아이의 이야기를 이어 주는 작은 연결이, 한 아이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 내는 힘이 된다.
칠월의 태양이 가장 뜨거운 날, 교회학교 교사들은 목이 쉬도록 찬양을 부르고, 준비한 말씀 공과의 성경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로 다시 풀어낸다. 누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교사들의 그 수고를 온전히 다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해마다 이 계절을 비워 두지 않고, 어김없이 교사의 자리를 다시 불러 세운다. 그것은 교사가 여름 한철의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성경의 에스라와 글로스터의 레이크스와 이화학당의 스크랜턴을 잇는 긴 신앙 전수의 계보 위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다음세대의 위기를 통계와 그래프로 말한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학생 수가 줄고, 교회학교의 빈 의자가 늘어난다는 숫자 앞에서 우리는 자주 낙심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신앙이 숫자로 자란다는 약속은 없다. 신앙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마주 보는 그 좁은 자리에서, 더디지만 분명하게 자란다. 한 교사가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그 곁에 나란히 앉는 순간, 복음은 다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조용히 건너간다. 교사의 헌신은 결코 화려하지 않고, 때로는 통계에 잡히지 않으며, 때로는 교회 안에서조차 충분히 기억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름 없이 이어져 온 그 손길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의 교회학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사는 교회사의 역사가운데 정말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번 여름, 교회는 교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부모는 교사와 손을 맞잡으며, 공동체는 교사를 외롭게 홀로 두지 않아야 한다. 강단의 언어만이 아니라 교실의 손길로도 복음은 전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계절에 다시 배운다. 누군가는 오늘도 땀에 젖은 티셔츠를 입고, 아이 앞에 무릎을 낮추고 있을 것이다. 뜨거운 칠월의 마당마다, 찬양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이는 그 자리마다,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교사들의 목소리 위로 다음세대의 신앙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도한다. 오늘 한 교사가 심은 눈물의 씨앗이, 언젠가 이 아이의 삶 속에서 웃음의 열매로 거두어지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이 계절의 모든 수고를 기억하시고 갚아 주시기를 함께 기도한다.
테바 이진원 목사 (Th.D.)
한국교육선교진흥원(KCMA) 대표
한국기독교교육학회 이사
CTS마을아기학교 대표강사
서울여자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