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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7:1-13
찬송가 356장 ‘주 예수 이름 소리 높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제비뽑아 분배받게 된 이야기 중 여호수아 16장에서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자손이 받은 땅의 기업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으며 오늘 본문에는 이어서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가 받은 땅의 기업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1-6절)
(1-2) 므낫세 지파를 위하여 제비 뽑은 것은 이러하니라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으므로 므낫세의 남은 자손을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그들은 곧 아비에셀의 자손과 헬렉의 자손과 아스리엘의 자손과 세겜의 자손과 헤벨의 자손과 스미다의 자손이니 그들의 가족대로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남자 자손들이며
먼저 므낫세를 소개하며 요셉의 장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를 왼손으로 둘째인 에브라임을 오른손으로 축복하였고, 훗날 북이스라엘에서 에브라임이 더 유력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므낫세가 혈통적 장자임을 인정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특히 여호수아가 속한 지파가 에브라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므낫세를 장자라고 지목하여 소개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성품이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흔히들 자신이 주목받거나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다면 자신이 유리하고 강한 부분을 부각 시키고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므낫세의 혈통적 장자 됨을 기록하여 높임으로서 민족적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용사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용사’란 ‘싸움에 능한 장부’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마길은 요단 동편 길르앗과 바산을 점령할 때 큰 공을 세운 것을 인정받아 르우벤, 갓 자손과 더불어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므낫세 반 지파라고 부르며 “절반의 므낫세 지파”라는 의미입니다. 그로인해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과 서편 둘 다에서 기업을 받은 유일한 지파가 됩니다.
(3-6) 헤벨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 마길의 증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요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 앞에 나아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 하매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기업을 주므로 요단 동쪽 길르앗과 바산 외에 므낫세에게 열 분깃이 돌아갔으니 므낫세의 여자 자손들이 그의 남자 자손들 중에서 기업을 받은 까닭이었으며 길르앗 땅은 므낫세의 남은 자손들에게 속하였더라
3절부터는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이 받은 땅 분배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제한적인 본문에서 한 개인의 딸들이 땅 분배를 받은 이야기를 밀도 있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이미 민수기 27장에 하나님께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약속하신 땅의 소유권이 정말로 분배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므낫세의 현손 곧 손자의 손자, 마길의 증손 곧 손자의 자식,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인 슬로브핫 이라는 사람은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습니다.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입니다. 민수기 27장에 이 딸들은 광야에서 아들이 없이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의 이름으로 된 기업을 이을 수 있도록 딸들이 그 땅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한 여인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성의 숫자가 계수에 포함이 되지 않을 정도의 여성 인권의 시대였던 것을 상기시켜 볼 때 약자의 입장에서 모세를 찾아가 아직 차지하지도 않은 가나안 땅의 분배 몫을 요구 하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이 당당하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아니라 지파마다 정당하게 자신의 몫을 받아 기업을 이어 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았기 때문이며 또한 가나안 땅을 이미 점령한 것처럼 여기는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민수기 36장에서 훗날 슬로브핫의 딸들이 그 땅을 가지고 다른 족속의 남자들과 결혼하여 그 땅이 다른 지파에게 흡수될 것을 염려할 때 슬로브핫의 딸들은 전부 그 지파의 남자들과 결혼하여 책임과 희생까지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약자라고 해서 자신의 요구할 것 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책임과 희생을 잘 감당할 때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슬로브핫의 딸들이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모세는 그 문제를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가로막지 않았고 하나님께 물어보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들의 의견이 옳다고 여겨주시고 아들 없이 죽은 자의 상속에 대한 특별 규례를 제정하시는 기회로 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더 나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무시당하기 쉬운 소수나 개인의 의견들에 열려있는 귀와 마음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고민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슬로브핫의 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 새로운 특별규례가 생겨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많은 혼란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소리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함께 마음을 모을 때 더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의 공동체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개인의 안위와 유익을 위한 의견이 아니라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에 합당한 의견들을 개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므낫세의 지경(7-13절)
(7-11) 므낫세의 경계는 아셀에서부터 세겜 앞 믹므닷까지이며 그 오른쪽으로 가서 엔답부아 주민의 경계에 이르나니 답부아 땅은 므낫세에게 속하였으되 므낫세 경계에 있는 답부아는 에브라임 자손에게 속하였으며 또 그 경계가 가나 시내로 내려가서 그 시내 남쪽에 이르나니 므낫세의 성읍 중에 이 성읍들은 에브라임에게 속하였으며 므낫세의 경계는 그 시내 북쪽이요 그 끝은 바다이며 남쪽으로는 에브라임에 속하였고 북쪽으로는 므낫세에 속하였고 바다가 그 경계가 되었으며 그들의 땅의 북쪽은 아셀에 이르고 동쪽은 잇사갈에 이르렀으며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곧 벧 스안과 그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마을들과 돌의 주민과 그 마을들이요 또 엔돌 주민과 그 마을들과 다아낙 주민과 그 마을들과 므깃도 주민과 그 마을들 세 언덕 지역이라
이제 요단강 서편 땅을 분배받은 지역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땅은 북쪽으로 아셀에서 남쪽으로 세겜 앞 믹므닷까지 비교적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서쪽으로는 바다라고 기록된 지중해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요단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래로는 에브라임과 단, 베냐민과 이웃하고 있었고 위로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또한 그 경계들에 있어서는 성읍들과 땅이 조금씩 얽혀 있어서 서로의 땅 소유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성읍도 있었음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므낫세의 땅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읍으로는 ‘사마리아’가 있으며 훗날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고 그 영향력으로 인해 사마리아 성읍을 넘어 그 주변 므낫세 지파의 땅까지 ‘사마리아 지방’이라는 확대된 의미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12-13)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넓은 지역을 분배받은 므낫세 자손은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던 것처럼 그 땅에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고 그 결과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 물론 그 땅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힘이 강성하여 정복을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몰아내지 않고 노역을 시켰다는 내용으로 볼 때 그들의 가나안 백성들을 그 땅에서 공존하도록 허락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쫒아내지 않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안에 이미 공존하고 있던 기브온 족속을 보았을 때 가나안 백성들의 노동력을 통해 자신들이 좀 더 편리한 생활과 물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결정에는 그들의 탐욕이 엿보입니다. 그들의 결정에는 가나안 백성들이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심지어 기브온 족속처럼 화친을 요청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역’을 시키는 일꾼으로 부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는 탐욕적 선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한 땅과도 같으며 자신들이 아간과 동일하게 말씀보다 탐욕을 앞세운 사람들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것은 그들의 ‘교만’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군사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그들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은 가나안 백성들을 통해 전해진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타락시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들을 쉽게 용납합니다. 술, 담배, 마약, 거짓말, 탈세, 위법, 음란 등 조금은 괜찮다고 다 조절할 수 있다고 과신합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결국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은 잊고 삽니다. 술이 음주운전이 되고, 담배가 폐암이 되고, 마약이 구속이 되고, 거짓말과 탈세가 범죄가 되고, 음란이 불륜이 되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남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작은 담배꽁초 하나가 온 산을 태우듯 강제 노역을 시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나안 족속의 우상숭배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삶에도 ‘이 정도 쯤이야 괜찮겠지’ 하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말씀의 기준이 아닌 안일하게 합리화 하며 살아가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삽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옷이라도 그 옷이 기계에 끼어 말려 들어갈 지경이라면 벗지 않겠습니까? 그 옷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 그 작은 이익과 쾌락으로 인해 내 삶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뽑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에 심으실 때 기대하신 것은 100배의 결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맺은 것은 100배의 결실이 아닌 다른 열매였습니다. 이사야 5장 2절입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사 새생명의 은혜를 누리고 자녀 삼으셨는데, 내가 맺고 있는 열매는 좋은 포도인지, 아니면 들포도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내 삶의 열매가 좋은 포도, 100배의 결실이 아닌 들포도인것처럼 느껴진다면 지금이라도 내 마음을 주님께 드리며 내 마음에 염려와 재물과 향락의 기운이 제하여지고, 온전한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려 자라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갈아엎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나안 족속 곧 세속화의 가치관들을 뿌리 뽑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 앞에 순전한 밭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포도, 100배의 결실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약자의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큰 뜻을 구하며 책임을 다하며 아버지의 기업을 잇기 위해 믿음으로 나아갔던 슬로브핫의 다섯 딸을 기억해 봅니다. 또한 그들의 목소리를 묵살하지 않고 귀 기울였던 모세와 그 제안을 통해 특별 규례까지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 봅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도 이런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용기 있는 목소리와 희생이 있게 하시고 또 소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허락해 주시고 특별 규례까지 지정하시며 그들의 삶을 돌아봐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 삶에 가나안 백성 곧 세속적 가치관의 유익을 제하여 주셔서 나의 이익을 위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안일하게 붙들고 있던 쾌락의 끈을 이제 놓게 하시고, 순전하고 좋은 땅이 되어 하나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이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민수기 27장을 다시 읽어보며 슬로브핫의 딸들이 보여준 믿음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 봅시다.
2. 므낫세를 요셉의 장자라고 기록한 여호수아의 겸손함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3.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않고 공존하며 노역을 시켰던 므낫세 지파처럼 내 삶에 유익이 있다고 하여 적당히 타협하며 버리지 못하고 있던 세속적 가치관과 관습 혹은 잘못된 악은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
4. 내가 쉽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버리지 못한 것 특히 범죄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그것을 내려놓고 기도해 봅시다.
(작성: 강요섭)